대부제

大副祭

〔라〕archidiacomus · 〔영〕archdea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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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들 중에서 선임된 으뜸 부제를 말하였으나 후에는 사제 서품을 받은 신부들 중에서도 대부제라는 직함을 받곤 하였다. 이 칭호는 4세기 밀레비스의 성 옵타토(St. Optatus of Milevis)에 의하여 처음으로 언급되고 있으나, 이미 3세기경부터 주교는 부제들 중에서 전례와 교구 행정에 있어서 주교를 보필하는 부제를 선임하였고 이들은 부제들의 으뜸으로서 주교의 교구 통치를 보좌하고 대행하는 기능을 담당하였다. 점차 이러한 기능이 강화되면서 대부제는 교회 재산의 관리, 하급 성직자들의 교육, 교회 규율의 감독을 담당하였을 뿐 아니라 주교좌가 공석이 되면 신임 주교가 임명되기 전까지 교구 통치를 맡았으며 후임자로 선임되는 예도 흔하였다.
774년에 스트라브르의 주교는 자기 교구를 여러 대부제구(archidiaconus ruralis)로 분할하였다. 대부분의 교구들은 한 명의 교구에 한 명의 대부제를 두었으나 9세기부터 교구 안에 여러 대부제들이 임명되었다. 그들은 교구 지역을 분담하여 주교를 대리하여 관리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리하여 도시의 주교좌에 상주하는 대부제는 '상급 대부제' (archidiaconus magnus), 시골 성당에 상주하는 대부제는 '하급 대부제' (archidiaconus minor)라고 불렸다. 10~13세기의 이 대부제들은 대부분 사제품을 받은 신부들이었는데 그 직함은 여전히 대부제였다.
하급 대부제들은 시골 대사제(archipresbyter)들의 상급자로서 그 권위는 11~12세기에 절정에 이르렀는데, 그들이 관장하는 대부제구 내에서 수임권이 아니라 정상권 즉 직권을 행사하였다. 서품 수여를 제외하고는 사목 순시, 제1심 재판, 부제들에 대한 감독, 비행 성직자의 처벌 등에 관하여 교구장 주교에 준하는 관할권을 행사하였다. 12세기에 이르러 교구 행정에서 교구장 주교를 거의 제외시킬 만큼 권한이 커졌고 자신들이 그들의 대리(vicarius)들을 임명할 정도가 되어 권리 남용의 사례가 많아졌다. 그리하여 13세기 이후 교구장 주교들은 대부제 제도를 기피하게 되었고 대부제의 관할권을 제한할 목적으로 주교가 임의로 임명하는 사무관(officiales) 제도를 만들었다. 교구청에서 일하는 사무관을 도시 사무관 또는 주 사무관 또는 총대리(vicarius generalis)라 일컫고 시골에서 일하는 이들을 시골 사무관(vicarius foranei)이라고 일컬었다.
트리엔트 공의회(1553)에서는 대부제의 권한을 대폭적으로 축소시켰고, 그 후 서서히 시골 대부제구 제도가 폐지되었다. 동방 교회에서는 대부제와 비슷한 제도가 발전하여 명예직으로 남아 있다. 영국 성공회에서 대부제는 전교구 혹은 교구의 일정 부분에 한해서 주교가 위임하는 행정권을 갖고 있으며 그 임무는 다양하다. 현재 가톨릭에서의 대부제는 일부 지역에서 명예직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 참고문헌  정진석, 《교회법 해설》 4,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3, pp. 118~122/ B. Forshaw, 《NCE》 1,p. 745. 〔宋悅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