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 본당

代山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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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교구 소속 본당. 경남 함안군 대산면 구혜리 246-3 소재. 1976년 5월 8일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관할 구역은 함안군 대산면, 의령군 지정면, 정곡면 일대. 관할 공소는 동밭골〔東田〕과 성당리(城堂里) 2개소. 〔교 세〕 1976년 515명, 1980년 657명, 1985년 439명, 1989년 375명, 1994년 490명. 〔역대 신부〕 초대 정중규(鄭中圭) 글라로(1976. 5~1980), 2대 김민수(金珉秀) 유스티노(1980~1984. 1), 3대 김두호(金斗湖) 알로이시오(1984. 1~1985. 2), 4대 이응석(李應碩) 프란치스코(1985. 2~1989. 7), 5대 박두환(朴斗煥) 베네딕도(1989. 7~1992. 8), 6대 김성길(金成吉) 아우구스티노(1992. 8~1993. 1), 7대 김을용(金乙龍) 토마스 아퀴나스(1993. 1~현재).
〔공소 시대〕 대산 지방의 첫 번째 신자는 거제도에서 이곳으로 옮겨 온 윤사우(尹仕佑, 스타니슬라오)였는데 그의 셋째 아들이 순교자 윤봉문(尹鳳文, 요셉)이다. 대산 지방에는 근 100년 전부터 신자들이 모여 살게 되면서 교세가 크게 번창하였다. 1956년에는 함안 본당의 제찬규(諸燦奎, 시메온) 신부가 함안 지방에서 제일 오래된 가등 공소를 본당 관할로 이전하였다. 이때까지 함안 지방에는 가등 공소와 동발골 공소뿐이었다. 대산면 장암리 장포동의 동밭골 공소는 1885년경에 창녕군 영산에서 이사 온 정기문(鄭基文, 요한)이 전교하여 300여 명의 신자를 얻게 되고 10여 칸의 공소를 신축함으로써 시작되었다. 1917년 2월 14일 공소 건물을 기공하였는데 건축비 130원은 당시 부산 대청동(현 중앙) 본당의 페랑(Claudius Ferrand, 부) 신부가 개인 부담하고 그 외에 신자들의 도움으로 공사가 진행되어 그 해 11월 14일에 축성하였다. 가등 공소는 신자들의 도움으로 공소 강당을 신축하여 1923년 11월 20일에 그리스도인의 도움이신 성모 마리아를 주보로 정하고 봉헌식을 가졌다. 교세의 성장을 이룩한 대산 지방은 1931년 11월 24일 방목(말산) 공소 뒤편 밭 1,712평을 매입하여 본당 예정지로 삼았다. 1932년 7월 가야 본당의 뤼카(Louis Lucas, 柳嘉鴻) 신부가 부임하여 본당 시설을 갖추는 동안 1년 간가등 공소에 임시 거처하다가 그 이듬해 가야 본당으로 옮겨 간 후 35년 간 공소로 있었다.
〔설립과 발전〕 1966년 12월 26일 정수길(鄭水吉, 요셉) 신부가 부임하여 이듬해 1월에 준본당이 되었고, 1970년 1월 29일 정수길 신부가 은퇴, 이임하게 되면서 다시 가야 본당 관할 지역이 되었다. 1972년 성체회 분원이 설립되어 1976년 4월 25일 철수할 때까지 신부 부재의 공백을 채웠다. 1976년 5월 8일 준본당에서 정식 본당으로 승격된 대산 본당은, 1983년 9월 사제관 준공에 이어 신자수 증가로 성당이 협소해져 새 성당 건립을 계획하게 되었다. 1988년 5월 부지 1,653평을 매입한 후 1990년 7월에 착공식을 갖고, 이듬해 2월 4일 축성식을 거행하였다. 연건평 282평의 대산 성당은 1층 사제관 · 강당 · 회합실, 2층 성당, 3층 성가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별히 대산 본당은 순교자 신심을 강조하고 있다. 1977년에 구한선(타대오) 순교자 무덤을 하기리 새대 돌고개에 있는 문중벌에서 가등산으로 이장한 바 있는 대산 본당은, 본당 공동체의 신심 도모와 친교와 일치를 위하여 성지 순례를 개최하고 있는데, 1994년 11월 11일에는 본당 전 신자가 전주 숲정이, 천호 성지를 순례하기도 하였다. 신자 재교육에도 열의를 가지고 있어 사순시기와 대림 시기를 기해 특별 강의를 실시하고, 여름 신앙 학교를 열어 주일학교 학생들의 신앙심을 성숙시키려 노력하고 있으며, 매년 성탄 예술제를 개최하여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창작 활동을 전개할 수 있는 기회를 줌으로써 종교적 심성 양성에 노력하고 있다. (→마산교구)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