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동 본당

大成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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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대교구 소속 본당. 전남 목포시 산정동 1788-16소재. 1971년 10월 25일 산정동 본당과 북교동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 베드로. 관할 구역은 대성1 · 2동 일부, 양동 일부, 죽교1 · 2동 · 산정3동 · 대반동 일부. 〔교 세〕 1972년 2,168명, 1980년 2,219명, 1988년 3,362명, 1994년 3,497명. 〔역대 신부〕 초대 물라니(F. Mullani, 탁) 프란치스코(1971. 10~1973. 5), 2대 제닝스(N. Jennings, 진) 노르만(1973.6~1976.6), 3대 올레리(A. O'Leary, 오) 안드레아(1976. 6~1980. 4), 4대 로한(P. Lohan, 한) 파트리시오(1980. 4~1984. 5), 5대 시한(D.Sheehan, 간) 다윗(1984. 5~1985. 2), 6대 웃지그(A. Utzig,우) 알베르토(1985. 2~1986. 10), 7대 놀란(J. Nolan, 노) 야고보(1986. 10~1990. 11), 8대 날론(M. Nallon, 나) 미카엘(1990. 11~1994. 7), 9대 머피(P. Murphy, 민수왕) 파트리시오(1994.7~현재).
〔전 사〕 목포 지방의 복음화는 1897년 설정된 목포(현 산정동) 본당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그 후 끊임없이 성장하여 오던 이곳은 6 25 동란으로 인하여 위기에 처하는 듯하였으나 9 · 28 수복과 더불어 당시 목포 지방에서 전교를 담당하고 있던 골롬반 외방선교회 신부들의 활약으로 1951년 경동 본당을 비롯하여 북교동 본당과 연동 본당이 차례로 설정되면서 선교의 활기를 띠게 되었다.
〔설립과 발전〕 골롬반 외방선교회 한국 지부는 이 같은 기세를 확산시키고자 목포의 제5 본당 설립을 위해 성당 부지를 물색하고 있었다. 때마침 목포시가 북항 개발 계획을 발표하자 교구에서는 북항을 중심으로 하는 목포 북쪽 지역의 발전을 전망하고 당시 산정동 본당 주임 브라질(J.Brazil, 진 요한) 신부 주도하에, 1969년 7월 29일 골롬반회의 지원을 받아 현 본당 소재지의 성당 부지 1,296평을 매입하였다. 브라질 신부의 후임으로 산정동 본당에 부임한 카롤란(C. Carolan, 차 가롤로) 신부는 부지 정지 작업과 담장 공사 등 성당 건축을 위한 예비 공사를 진행하였지만, 헨리(H. Henry, 玄海) 대주교의 이임과 한공렬 대주교의 부임으로 본당 설립은 계속 미루어졌다.
1971년 10월 25일에야 본당 설정이 확정된 대성동 본당은, 1971년 11월 성당 신축 공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여 이듬해 3월 15일 성당(64평)과 사제관(46평)을 완공, 10월 3일 축성하였다. 그 동안 초대 주임인 물라니 신부는 연동 본당 사제관에서 임시로 기거하며 공사를 감독하였고, 건축비는 골롬반회에서 지원하였다. 물라니 신부 이임 후 1개월여의 공석을 겪은 대성동 본당은, 그 동안 꾸준히 예비자가 증가함에 따라 제닝스 신부때인 1973년 12월 5일 22평의 교리실을 건립하였다. 1978년 7월 2일에는 신자들의 경제적 부조를 위해, 대성 신용 협동 조합을 창립하였다.
〔성장과 변모〕 이후 본당 주변에 대규모 주택 단지가 조성됨에 따라 신자수가 계속적으로 증가하자, 1983년 6월 130평 규모의 성당 신축을 결정하고, 1984년 5월 4일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로부터 성당 머릿돌을 축성받는 영광을 누렸다. 그러나 목포시 당국의 토지 구획 정리 사업의 시행으로 1985년 10월 사제관을 철거하게 되어 이듬해 6월 성당 마당에 45평의 사제관을 신축 완공, 7월 6일 축성하였다. 이어 1987년 1월 성당 뒤편의 102.7평 부지를 매입하고, 3월 28일 성당 신축 기공식을 거행하였다. 3월 30일부터 기존 성당 철거와 동시에 60여 평의 가건물을 지어, 4월 26일 가건물에서 첫 미사를 봉헌하였다. 마침내 1988년 10월 3일 한 차례 설계 변경을 거쳐 연건평 392평의 성당을 완공 축성하였으며, 이어 본당 사무실(1989)과, 수녀원(1992)을 각각 신축하였다. 수녀원 신축 후 주말에만 거주하였던 까리따스 수녀회 분원이 1993년 3월부터 공식으로 설립되어 사목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기 시작하였다. 이와 함께 본당은 1993년부터 연 2회씩 성서 강좌를 실시하는 등 신자 재교육을 통한 신앙의 성숙을 도모하고 있다.
한편 1993년 2월 관할 공소였던 중앙 공소(1970)가 압해도 본당으로 승격 분리되었고, 이에 따라 신장 공소(1949)도 압해도 본당으로 소속이 변경되었다. (→ 광주대교구 ; 압해도 본당)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천주교 광주대교구, 《광주대교구 50년사》, 1990.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