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대교구 소속 본당. 대구시 중구 대안동 31 소재. 1965년 7월 1일 계산동 본당과 삼덕동 본당에서 분리·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모 승천. 관할 구역은 태평로1 · 2가, 북성로 1 · 2가, 대안동, 향촌동, 서내동, 북내동, 동성로 1가, 화전동, 포정동, 용덕동, 교동, 삼덕동, 서성로 1가, 사일동, 종로, 동성로 2가, 태평로 3가 일부지역. 〔교 세〕 1965년 667명, 1970년 1,102명, 1975년 1,346명, 1980년 1,534명, 1986년 1,840명, 1989년 1,975명, 1994년 2,036명. 〔역대 신부〕 초대 허연구(許淵九) 모세(1965. 7~1971. 11), 2대 이판석(李判石) 요셉(1971. 11~1976. 3), 3대 정재완(鄭在院) 니콜라오(1976. 3~1981. 4), 4대 이창호(李昌鎬) 안드레아(1981. 4~1986. 1), 5대 윤광제(尹光濟) 다윗(1986.1~1990. 6), 6대 이길준(李吉俊) 바오로(1990. 6~1993. 10), 7대 배임표(表壬杓) 요한(1993. 10~현재).
〔설립과 발전〕 대구대교구는 사목 계획에 따라 1964년 6월 대안동 50-8번지에 있는 일제 시대의 불교 사찰동본원사(東本願寺)의 부속 건물을 매입한 뒤, 그 해 7월 건물 개수위원회를 조직하여 11월에 개수 공사를 완료하였다. 그리고 이듬해 7월 본당으로 설정하고 동본원사 본관으로 성당 이전 계획을 세웠다. 1922년 목조로 건립된 건평 100평 규모의 동본원사는 일제 치하에서 일본 고위 관리들의 불교 사찰로 쓰여 오다 광복 후 난민수용소로 전락하였고, 한국 전쟁 때에는 많은 피난민들로 붐병던 곳이다. 당시 이 수용소에는 99세대가 기거하고 있었고, 그 주변으로도 19세대가 거주하고 있었는데, 1965년부터 대안동 본당은 이 난민들을 아파트 혹은 안정된 곳으로 정착시키는 등 연고권 매입에 나섰다.
처음에는 기존 건물을 이용하여 한 · 양 절충의 새 성당으로 개축할 계획을 세웠으나 1972년 2월 현지를 답사한 서정길 대주교가 기존 건물의 이미지를 흐리게 하는 개축 계획을 반대, 토착화된 성당으로 수축하도록 지시함으로써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여 보수키로 결정하였다. 따라서 1972년 4~11월 말 동양적인 멋을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내외부 보수 공사를 마치고 성당을 본 건물로 이전하였으며, 부속 건물이었던 16평의 납골당은 사제관으로 개수하였다.
〔성장과 변모〕 1973년 3월에는 옛 성당을 유치원으로 개조, 대안유치원을 개원(1987. 2. 20 폐쇄)하였고, 옛 사제관은 수녀원으로 수리하였다. 1968년 10월 허연구 신부의 요청에 따라 살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분원이 설치되었으나 수녀원이 없어 약 6개월여 동안은 대구 본원에서 출퇴근하였다. 1973년에 수녀원, 1976년 9월에는 교리실을 건립하였으며, 1977년 본당 입구에 있던 판잣집들을 매입, 철거함으로써 성당 마당 정리 사업이 완료되었다. 1981년 7월에는 교구 협조로 매입한 대지 60평, 건평 38평의 사삿집을 교리실로 개축하였다.
지속적인 발전을 이룩한 대안동 본당은 1994년에 본당 30년사 편찬을 위한 추진위원회를 구성하는 한편, 성당 신축을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1995년 7월 2일에는 초기 성당이었다가 유치원 건물로 활용되던 대안동 50-8번지의 부속 건물로 성당을 이전하고, 그 해 8월 15일 서정덕 주교 집전으로 본당 주보 축일 행사와 함께 성당기공식을 거행하였다. 상업 중심 지역에 위치하여 구역 외에 거주하는 신자들이 많은 대안동 본당은 본당 특징을 살려 상인 · 여행자 · 근로자들을 위한 사목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다짐하고 있다. (→ 대구대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천주교 대구대교구,(대구대교구 총람》 2, 1986/ 살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한국 살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100년사》, 1991. 〔편찬실〕
대안동 본당
大安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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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불교 사찰 동본원사를 보수하여 사용한 대안동 성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