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야 본당

大野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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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소속 본당. 전북 옥구군 대야면 산월리 377소재. 1956년 4월 20일 둔율동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모 성심. 관할 구역은 대야면, 임피면, 개정면, 서수면, 성산면, 회현면, 김제시 청하면. 〔교 세〕 1956년 400명, 1965년 871명, 1972년 875명, 1978년 1,047명, 1987년 1,409명, 1990년 1,393명, 1994년 1,503명. 〔역대 신부〕 초대 이기순(李基順) 도미니코(1956. 4~1961. 6), 2대 허일록(許日錄) 타대오(1961. 6~1964. 7), 3대 송남호(宋南浩) 요셉(1964. 7~1971. 5), 4대 범선배(范善培) 라우렌시오(1975. 7), 5대 한기호(韓寄瑚) 세자 요한(1977. 7~1982. 10), 6대 김종택(金鍾擇) 요셉(1982. 10~1985. 8), 7대 한정현(韓正鉉) 아우구스티노(1985. 8~1986. 4), 8대 조정오(曹正吾) 요셉(1986. 4~1989. 1), 9대 이동(李東) 아우구스티노(1989. 1~1992. 2), 10대 박대덕(朴大德) 스테파노(1992. 2~1994. 2), 11대 최용준(崔容俊) 안토니오(1994. 2~현재).
〔공소 시대〕 옥구군 지역에는 일찍이 복음이 전래되어 1885년 성산면 산곡리 공소의 설립을 비롯하여 1900년 서수면 축동리와 성산면 고봉리에, 1932년 대야면 지경리, 임피면 읍내리와 개정면 옥석리에, 1934년 대야면 차상리에 각각 공소가 설립되었다. 그러나 대야 본당의 모체는 1948년에 설립된 대야면 신당 공소(회장 조귀봉)였다. 이 공소를 관할하던 군산(현 둔율동) 본당의 제5대(1947~1952) 주임 박성운(朴聖雲, 베네딕도) 신부는 본당 승격을 위한 공소 교우들의 노력과 1군 1개 본당 설립을 실현하려는 교구 사목 계획에 힘입어 재임 기간 중 산월리 소재 대지와 정미소 건물을 매입, 공소 건물로 개조하고 1951년 8월 22일 축성식을 거행하였다. 공소 주보는 성모성심이었다. 박성운 신부는 새로 지은 공소에서 주일마다 미사 성제를 집전해 주었고, 그 후임 신부들도 공소 신자들의 신앙 생활을 도와 줌으로써 신자수가 400여 명에 이르게 되었고 마침내 1956년 4월에는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설립과 발전〕 1956년 A.F.A.K. 원조와 교구 보조로 현재의 성당 대지를 매입하여 그 해 11월 유치원과 사제관을 지었으며, 공소 시절의 강당을 성당으로 사용해 오다가 너무 낡아서 1964년에 회의실 겸 강당으로 구조와 용도를 변경하였다. 그 대신 유치원과 사제관으로 사용하던 건물을 수리하여 성당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1976년까지 성당 마룻바닥에서 미사를 봉헌하다가, 1978년 5월 개수 공사와 더불어 대형 성모상을 축성하게 되었다. 1982년 2월 미리내 성모 성심 수녀회 분원이 설치되었으며, 3월에는 사제관(30평)을 신축하였고(현재 수녀원으로 사용), 본당의 발전에 따라 신자들의 신앙심이 뿌리내리면서 냉담자가 다시 성당에 나오는 등 신자수의 증가로 1993년 1월 성전 확장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같은 해 3월 사제관, 교육관, 회합실을 착공하여 12월 25일 준공하였으며 1994년 3월에는 성당 내부 확장 및 수리 공사를 시작하여 4월 23일 완공, 축성식을 가졌다. 이어 성모 동산 및 본당 조경 사업에 착수하여 1995년 4월 30일 성모 동산 축성식을 거행하였다.
그 동안 공소 건물의 건축에도 노력해 왔는데, 1960년 7월 김제군 청하면 동지산리 궁동에 궁동 공소와 임피면 읍내리에 임피 공소를 신축하였다. 그러나 1971년 10월 궁동 공소의 대지와 건물을 매각하고 그 대금으로 교회 묘지 조성을 위한 임야를 매입하였다. 점차 신자들이 도시로 이주하는 일이 많아지고, 교통이 편리해지면서 1993년 4월에 임피 공소마저 폐쇄되었다.
〔사목 및 활동〕 사목 · 선교 활동은 역대 주임 신부의 재임기를 거치면서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초대 이기순신부는 청년회, 부인회, 성가대, 본당 운영위원회 등 단체를 조직하여 사도직 활동에 힘썼고, 지역 사회의 유아교육을 중시하여 1958년 성모유치원을 개원하기도 하였다. 2대 허일록 신부는 레지오 마리애 4개 쁘레시디움을 설립하였으며, 3대 송남호 신부는 본당 단독의 꾸리아를 발족시켰다. 그러나 송남호 신부 이후부터 약 5년 간 주임 신부 없는 시기(1971.5~1975.7)를 맞게 되었다. 이 시기에는 이웃의 여러 본당 신부의 방문, 집전으로 주일 미사를 봉헌하면서 김창수(마오로) 사도회장을 비롯한 신자들의 단합으로 공동체를 유지시킬 수 있었다. 4대 범선배 신부는 청소년의 종교 교육에 주력하였고 신자들의 친교에도 노력하였으며, 5대 한기호 신부는 본당의 재정자립을 위해 애쓰는 한편 신자 재교육을 강화하였다. 외부 강사를 초청하여 신앙 강좌를 자주 개최하였고 방학때에는 신학생들로 하여금 각 공소와 본당의 중 · 고등학생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게 하였다. 또한 꾸르실리스타들도 다수 배출시켰으며, 첫 첨례 5 · 6 · 7 지키기와 성모상 모시고 가정 기도 드리기를 권장하였다. 1981년 한기호 신부와 사목회 임원진은 오랜 숙원이었던 본당약사를 편집하여 발간하기도 하였다.
7대 한정현 신부는 성시간(聖時間) · 성체 조배 등으로 성체 신심을 함양하였으며, 교구 단위의 신자 재교육 기회를 적극 활용하였고 청소년의 교리 교육에 노력하였다. 그리고 구역 모임, 구역 미사 등으로 구역 단위를 활성화시켰다. 구역 활성화에 노력하면서 신자들간의 유대관계와 전교 활동에 노력하여 많은 성과를 얻은 바 있는 대야 본당은, 1995년부터 매월 첫째 목요일 성체 강복, 영세자 및 신자들 가정 방문을 실시하였고 본당의 날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또한 선교 활동의 일환으로 본당 신자 군인에게 교구 주보인 <숲정이>를 보내어 좋은 반응을 얻고 있으며, 불우 이웃 돕기를 정기적으로 실시하고있다. (→ 전주교구)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