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교구 소속 본당. 부산시 남구 대연3동 390 소재. 1961년 2월 23일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 안토니오. 관할 구역은 대연1동 일부와 대연3 · 5 · 6동 전역. 〔교세〕 1965년 887명, 1972년 1,235명, 1975년 2,936명, 1980년 3,622명, 1985년 4,092명, 1988년 5,389명, 1990년 5,296명, 1994년 5,526명. 〔역대 신부〕 초대 팔다니(F. Faldani, 범덕례) 프란치스코(1961. 2~1962. 4), 2대 허철(許哲) 안드레아(1962. 4~1965. 4), 3대 파브리치(M. Fabrizi, 황만용) 마리오(1965. 4~1966. 4), 4대 노경삼(魯景三) 다니엘(1966. 4~1970. 8), 5대 투치(L. Tucci, 두로진) 라우렌시오(1970. 8~1971. 4), 6대 파브리치(1971.4~7), 7대 가스틸리오네(C. Castiglione, 강찬욱) 가밀로(1971. 7~1975. 12), 8대 팔다니(G.C. Faldani, 장자호) 요한 가롤로(1975. 12~1982. 2), 9대 프란체스코(A. di Francesco, 안현철) 안토니오(1982. 2~1987. 11), 8대 김옥수(金玉洙) 도미니코(1987. 11~1991. 2), 9대 김인규(金仁圭) 토비아(1991. 2~1994. 2), 10대 팔다니(P. Faldani, 배문호) 바오로(1994. 2~현재).
〔설립과 발전〕 대연 본당은 꼰벤뚜알 성 프란치스코회에서 전교 사업의 일환으로 설립한 본당이다. 1958년 10월 6일 이탈리아에서 부산항으로 입국하였던 팔다니(프란치스코) 신부는 본래 중국에서 처음 외방 전교를 시작하였다가 공산당이 중국 대륙을 장악함으로써 1952년에 본국인 이탈리아로 강제 출국당하였다가 꼰벤뚜알성 프란치스코회 소속 최초의 선교사로 한국에 파견되었다. 이때 팔다니 신부는 범일동 본당 주임 신부로 임명되었다. 그런데 당시 대연동 주민들은 끼니를 잇기 곤란할 정도로 생활이 어려운 상태였기 때문에 프란치스코 수도회에서는 이곳을 봉사 현장으로 적합하다고 생각하였다. 특히 용호동에 나환자촌이 있어 의약품 · 구제품 · 식료품 등이 절실하였기 때문에, 대연동과 용호동을 잇는 도로를 끼고 있어 교통이 편리한 현 소재지에 가까스로 2,000여 평의 부지를 매입하여, 1960년 8월 30일 임시성당 공사를 시작하였다. 성당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팔다니 신부는 급식소에 기거하며 일대의 300여 주민들에게 우유, 밀가루, 옥수수 가루 등을 조리해서 제공하는 한편, 가정 방문과 더불어 용호동 나환자촌을 찾아 전교활동을 벌이는 등 지역 사회 봉사에 주력하였다. 이듬해인 1961년 1월 10일 마침내 임시 성당이 완공되어 2월 23일 범일동 본당 주임이었던 팔다니 신부가 대연동 임시 성당으로 이주, 17명의 신자와 함께 첫 미사를 봉헌하고 대연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현재의 성당 건물은 1962년 3월 24일에 기공식을 가졌는데, 팔다니 신부가 당시 인근 미군 부대로부터 지원을 받아 터를 닦고 신자들과 함께 자재를 운반하고 손수 벽돌을 찍으면서 공사에 참여하여 그 해 12월 8일에는 성당 낙성식을 거행할 수 있었다. 이로써 대연 본당은 본당으로서의 기틀을 마련하였으며 당시 신자수는 300여명 정도였다. 1963년부터 인보 성체 수녀회 분원이 설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후 대연 본당의 교세는 점차 확장되어 1975년 4월에는 신자수 증가로 인해서 문현 본당을 분리시켰으며, 또 부산교구의 교세 확장 계획에 따라 3년 후인 1978년 4월에는 오륙도 본당, 12월에는 용호 본당을 분리 · 독립시켰다. 특히 오륙도 본당 분할은 팔다니 신부의 나환자들에 대한 배려에서 계획된 것이었다. 한편 팔다니 신부는 현재 석포 본당이 위치한 난민 주택 2동을 구입하여 용호동에 거주하는 극빈자와 나환자 자녀를 수용 · 양육하고 있다. 그 해 8월에는 교리실을 증축하였으며 이듬해 6월에는 남천 본당을 분할하였고, 1984년 2월에는 석포 본당을 분리시켰으며, 1986년 4월에는 물금 및 기장 본당과 자매 결연을 맺었다.
〔활 동〕 대연 본당은 1965년 3월 28일 새싹유치원을 부산시로부터 보육원으로 인가받아 운영해 오다가, 원생이 증가함에 따라 1970년 10월 성당 뒷마당에 지하 1층, 지상 3층의 총건평 650평의 건물을 지어 이사하였는데, 이곳을 거쳐 사회로 진출한 젊은이가 그 동안 250여 명에 이른다. 1963년 6월에는 콜베 유치원이 인가를 얻었는데, 1971년 5월 19일 '은하유치원' 으로 개칭되었다. 설립 당시에는 성체회 소속의 수녀들이 교육과 경영을 담당하여 매년 약 80명의 원아를 모집하였으며 이후 신자를 포함한 인근 주민들의 자녀에게도 개방하여왔다. 1974년 5월에는 부산시로부터 새싹유아원이라는 탁아 시설을 인가받아, 부모 모두가 직장에 다니는 영세가정의 자녀 40명을 위탁받아 오후 4시까지 돌보아 왔다. 1983년 2월 자립 유아원으로 독립하여 성체회 소속의 본당 수녀가 만 4세에서 취학 전까지의 아동 80명을 보살펴 왔는데, 1995년 1월부터 이 유아원은 재활원으로 새롭게 탄생되어, 모든 신자들과 성직자 · 수도자가 한마음으로 단결하여 신앙의 힘으로 바자회, 회원 모집, 자원 봉사 등을 하며 운영하고 있다.
특히 대연 본당 사회 복지 분과에서는 동사무소와 연계하여 동내에 거주하는 불우 이웃 및 생계 유지 곤란자들에게 매월 도움을 주고 있으며, '안토니오 장학금' 을 조성하여 형편이 어려운 중 · 고생 20명에게 학비 일체를 지원해 주고 있다. 빈천시오회에서는 회원들의 회비로 본당에만 한정하지 않고 범교구적으로 불우 이웃을 돕고 있다. 또 콜핑회에서는 본당 구석에 있는 콜핑 창고에 신자들의 분리 수거시 생기는 폐지나 병들을 모았다가 재생 공장에 팔아서 남는 이득을 교구 내 어려운 이웃들을 도와 주는 일에 쓰고 있다. 대연 본당은 부산시 남구의 모체가 된 본당으로서 점점 교세가 증가되어 가고 있다. (→ 부산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부산교구사 편찬위원회 · 한국교회사연구소, 《教區三十年史》 천주교 부산교구, 1990. 〔편찬실〕
대연 본당
大淵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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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