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경

大藏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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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조 대장경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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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조 대장경의 일부.

불교 성전의 총칭. 일체경(一切經)이라고도 하며 약칭하여 장경(藏經)이라고 한다.
〔개 요〕 원래 불교 성전을 총칭하는 전통적인 용어는 삼장(三藏)이다. 삼장이란 경장(經藏, sutta-pitaka)과 율 장(律藏, Vinaya-pitaka) 그리고 논장(論藏, Abhidhamma-pitaka)을 아울러 일컫는 말이다. 경장은 내용상 붓다가 직접 설법한 것으로 되어 있는 모든 가르침들을 집성한 것으로 흔히 말하는 경전들의 총칭이다. 율장은 계율의 집성이다. 논장은 경장과 율장을 해설하거나 주석한 논서들의 총칭으로서 후대 학자들의 연구를 모은 것이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수대(隋代) 이후 인도에서 성립한 삼장에 중국에서 성립한 약간의 문헌들을 포함시켜 대장경
이라 하였고, 남북조 시대(南北朝時代) 이후에는 일체경이라 하였다. 따라서 대장경은 원래 한역되거나 한문으로 작성된 권위있는 불전들의 총칭이었다. 그러나 근세 이후에는 인도와 중국 밖에서 성립된 불전까지 모두 대장경이라고 한다. 따라서 현재 대장경은 붓다가 직접 설한 것으로 알려진 경(經)과 율(律)뿐 아니라, 이것들에 대한 일차적인 주석인 논(論)과 이 논에 대한 주석인 소(疏) 등을 비롯하여 전통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불교관계 문헌들을 모두 포함한다. 즉 대장경은 경전뿐만 아니라 후대 불교도의 저술, 불교의 역사 · 전기서, 불교와 관계된 주요 문헌을 총망라한다. 이것은 인도 · 중국 · 한국 · 남방 국가 등 불교가 전파된 나라를 거치면서 그 사이의 역사에 따라 점차 방대해진 것이다.
〔종류와 내용〕 대장경은 기록된 언어에 따라 분류된다. 전통적인 팔리(pāli)어 삼장, 한역 대장경(漢譯大藏經), 그리고 티베트 대장경을 비롯한 몽고어 · 만주어 번역의 대장경이 남아 있고, 서하어(西夏語)로 번역된 대장경도 있었으나 거의 사라지고 지금은 일부가 남아 있을 뿐이다. 한국의 유명한 고려 대장경은 물론 한역 대장경이다. 대장경(또는 일체경)이라는 이름으로 불전들이 방대한 규모로 집합 · 수록되기 시작한 것은 중국에서부터지만, 그 전통은 팔리어 삼장에서 유래한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석가모니 설법을 종합하여 확정된 결집(結集)에서 비롯한다.
팔리어 삼장 : 스리랑카를 비롯한 미얀마, 타이, 캄보디아, 그리고 라오스 같은 남방 불교 국가들에 팔리어로 전해진 불교 경전의 총칭으로 이것의 전통은 결집에서 유래한다. 결집이란 불교에서 경전이 성립하게 된 역사적 사건을 가리킨다. 제자들이 기억하고 있는 가르침을 일제히 읊는다는 뜻에서 원래 합송이라 하였다.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 때 불설(佛說)로 정하는 방법을 이용하였다는 점에서, 이 결집의 방식은 불교경전의 정확성과 확고한 권위를 대변한다. 전설에 따르면, 인도에서 네 차례의 결집이 있었다고 한다. 이 가운데 대장경의 성립과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제3회 결집이다. 제3회 결집에서 경 · 율 · 론의 삼장 체제가 구축되었다. 제3회 결집은 아쇼카(Asoka) 왕의 치하에 마가다(Magadha)국의 수도에서 목갈리풋타 팃사(Moggaliputta Tissa)의 주도로 1,000인의 비구를 소집하여 이루어졌다고 한다. 여기에서는 경장 · 율장에 이어 논장의 편집을 실행함으로써 이른바 팔리어 삼장이 완비되었다.
삼장의 원어 티피타카(tpitaka)는 '세 개의 광주리' 를 뜻하며 각각 경장과 율장, 그리고 논장을 집합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팔리어는 원래 서인도의 방언이었다. 붓다의 입멸 후 초기 교단이 서인도로 확장함에 따라 그것이 성전의 언어가 되었던 것 같다. 기원전 3세기 무렵 아쇼카왕 시대에 그의 아들 마힌다(Mahinda)가 불교를 스리랑카에 전하였고, 스리랑카는 팔리어를 불교 언어로 사용함으로써 이 전통이 그 뒤 미얀마 · 타이 · 캄보디아 등 동남 아시아에 확산되어 이른바 남방 불교가 형성되었다. 따라서 팔리어 삼장을 전수한 남방 불교는 자신이 불교의 정통을 전수하고 있다고 자처하였다. 하지만 팔리어 삼장은 불교가 전개된 전체 역사로 보아 현재 통용되는 대장경의 차원에는 훨씬 미치지 못한다. 우선 남방 불교는 초기 불교의 전통만을 고수하므로, 팔리어 경장은 현재 통용되는 대장경에서 압도적으로 많은 양을 차지하는 대승 경전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 논장에 포함되는 문헌도 7종에 불과하다. 더욱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작성된 많은 교리 강요서나 성전 주석서 또는 사서(史書) 등은 '장외' (藏外)로 취급되어 역시 포함되지 않는다.
팔리어 삼장이 세계적으로 유통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유럽 학자들이 연구 · 출판하면서부터이다. 1881년 영국 런던에서 리스 데이비즈(R. Davids)가 팔리 경전 협회(Pali Text Society)를 설립한 이래 팔리어 삼장의 원전 및 영역본은 유명 학자들의 협력을 얻어 체계적으로 출판되었다. 현재 삼장은 출판이 완료되었고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장외의 문헌도 다수 간행되었다. 일본에서는 장외의 문헌까지 약간 포함하여 남전 대장경(南傳大藏經)으로 번역 · 출판되었다. 팔리어는 고유의 문자를 갖고 있지 않으므로 유럽에서의 원전 출판에는 로마자가 이용된다. 남방 불교의 국가들은 각기 자국의 문자로 삼장을 출판하였으며, 인도에서는 산스크리트어를 표기하는 데바나가리 문자로 출판하고 있다.
한역 대장경 : 한문으로 번역되어 수집 · 분류된 불전의 총칭으로 초기 불교 이래 대승 불교까지의 모든 경· 율 · 논과 인도 밖에서 저술된 문헌 일부도 여기에 포함된다. 따라서, 넓은 의미로는 중국 · 한국 · 일본 등의 불교도가 저술한 주석서나 논서들도 포함한다. 대승 불교가 흥성한 뒤, 인도에서는 새로운 경전과 논서들이 산스크리트어로 작성되었고 이런 문헌들을 통하여 중국에 대승 불교가 전래되었다. 이같은 새로운 대승 불교 경전들은 기존의 삼장 체재 안에는 수용될 수 없었다. 부파 불교는 일반적으로 팔리어 삼장 체재를 채용하였지만, 부파 불교 당시에도 잡장(雜藏)이라는 새로운 분류를 추가한 부파도 있었다. 나아가 대중부(大衆部)의 경우에는 다시 금주장(禁呪藏)을 더하여 5장을 채용하였고, 법장부(法藏部)의 경우에는 주장(呪藏)과 보살장(菩薩藏)을 삼장에 추가하였다고 한다. 대승 불교가 등장한 뒤에는 더더욱 삼장 체재의 전통을 지킬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대지도론》(大智度論)도 대승 경전이 소승 불교에서 설하는 삼장의 분류에는 적용되지 않음을 지적한다. 중국에서는 인도 불교를 수용한 이래 숱한 문헌들을 무질서하게 번역하였을 뿐만 아니라 중국인 저작의 새로운 문헌들도 다수 출현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중국 불교 특유의 분류법이 요구되었고, 새롭게 분류하여 집합한 불전 전체를 대장경(또는 일체경)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
중국에서는 2세기 중엽부터 불전이 번역되기 시작하여 8세기 무렵까지 계속되었으나 불전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몇 가지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불전 자체의 산일(散逸), 번역자나 번역 연대의 불명, 그리고 위경(僞經)의 출현이 그것이다. 이에 따라 한역 불전을 수집 · 정리할 필요성이 크게 대두되었고, 이를 위하여 작성된 것이 경록(經錄)이라고 불리는 목록이다. 본격적인 목록으로서 최초로 유명한 것은 전진(前秦)의 도안(道安)이 364년에 편찬한 《종리중경 목록》(綜理衆經目錄)이나, 이것은 현존하지 않는다. 다만 여기서는 전체를 8록(錄)으로 분류하여 639부 886권을 수록하였음이 알려져 있다. 그뒤 계속 작성된 목록들 중에서 특히 유명한 것은 당(唐) 중기 730년 지승(智昇)이 편찬한 《개원 석교록》(開元釋敎錄)이다. 여러 목록들이 작성되면서 불전의 분류도 일정하게 되었는데, 《개원 석교록》의 입장록(入藏錄)이라는 분류가 특히 후세의 모범이 되었다. 더욱이 대장경에 넣을 수 없는 위경과 의경(疑經)을 제시하고 있는 점도 주목된다. 이 《개원 석교록》에서는 1,076부 5,048권의 일체경을 대승경(大乘經) · 대승율(大乘律) 대승론 · 소승경 · 소승율 · 소승론 · 성현집(聖賢集)의 7종으로 분류하고, 성현집의 108부 541권 중에 인도 논사들의 전기나 중국인의 저작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포함된 중국인의 저작은 주로 전기 · 여행기 · 목록 등으로 그수가 많지 않다. 그 뒤 빠진 것이 보충되고 새로 번역된 것이 증보되어 한역 대장경은 점점 양적으로 확대되었고 중국인의 저작도 많이 끼어들게 되었다.
초기의 대장경은 거의 필사본이어서 전화(戰禍)나 재해 등으로 상실되는 경우가 빈번하였다. 이에 영구 보존을 위하여 돌이나 목판에 새기기 시작하였다. 즉 대장경을 하나로 묶어 보존하려는 적극적인 시도는 조직적인 서사(書寫), 석각(石刻) 간행 등의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석각으로는 북주(北周)의 불교 억압 이후 정완(靜琬)이 개시한 하북성(河北省) 방산(房山)의 석경(石經)이 특히 유명하다. 그는 말법(末法)의 도래에 대비하여 불전을 영원히 보존하기 위하여 605년부터 타계할 때까지 약 30년에 걸쳐 작업에 몰두하였다. 이 작업은 그 뒤 면면히 이어져 원대(元代)에 이르기까지 약 700년에 걸쳐 계속되었다. 그러나, 서사와 석각보다 사회적인 영향력을 크게 발휘한 것이 대장경의 간행이다. 목판에 대장경을 새기는 이런 간행은 송(宋) 태조(太祖)의 발원으로 착수하여 태종(太宗) 때인 971년에 완성된 촉판(蜀版) 대장경 이래 한국의 고려 대장경을 거쳐 근대 일본의 대정 신수(大正新修) 대장경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판본으로 이어졌다. 이들 가운데 최초로 간행된 촉판 대장경은 관판(官版) 대장경 또는 개보판(開寶版) 대장경이라고도 불린다. 이 대장경의 특징은 앞서 말한 지승의 《개원석교록》에 수록된 불전들을 모두 새긴 데 있다. 13만매의 목판에 새겨서 천자문 순으로 배열한 480개의 함에 차례로 보관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1125년에 금(金)나라가 침입한 뒤에 사라졌다. 이후 중국에서는 원 · 명(明) · 청(淸)의 각 시대에 걸쳐 여러 차례의 대장경의 간행이 있었는데 주요한 간행만도 대략 10종에 이른다. 중국 밖에서는 거란판(契丹版) 대장경과 고려 대장경 등이 간행되었다. 일본의 대장경 간행은 한국보다 훨씬 늦은 17세기부터 시작되었으며, 초기의 것으로 유명한 황벽판(黃檗版)은 명(明)의 대장경에 기초한 것이었다. 현존하는 한역 대장경 중에서 전통적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고려 대장경이며, 이제까지의 각국 한역 대장경을 총괄하여 집성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근대에는 일본에서 출판한 대정 신수 대장경이 불교학계에서 널리 이용되고 있다.
한국의 대장경 : 고려 시대에는 초조(初雕) 대장경과 속장경 및 해인사 대장경 등 세 차례의 대장경 간행이 있었고 흔히 말하는 고려 대장경은 현재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는 해인사 대장경이다. 원래는 재조(再雕) 대장경인데 해인사 대장경을 고려 대장경으로 널리 부르는 것은 고려 대장경 가운데 그것만이 현재 해인사에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촉판 대장경 이래 간행된 완벽한 대장경은 고려 현종 때의 초조 대장경이었다. 이 초조 대장경의 간행은 적어도 1011년(현종 2)부터 1029년까지 18년에 걸쳐 완성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그 내용과 체재는 촉판 대장경을 토대로 한 것이었으나 몽고족의 침입으로 소실되었다. 그 일부는 국내 및 일본의 여러 곳에 남아 있어 원래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초조 대장경은 거란 대장경의 토대가 되기도 하였다.
초조 대장경에 만족하지 않은 고려에서는 보완 작업을 계속하여 문종의 넷째 아들 의천(義天)의 주도하에 교장도감(敎藏都監)을 설치하여 중국과 한국의 여러 선사(先師)들이 저술한 문헌까지 망라한 속장경의 간행을 착수하였다. 그는 이를 위하여 국내의 고서를 수집함은 물론 송(宋)에 가서 3,000권의 문헌을 수집하였으며 요(遼)와 일본에서도 서적을 구입하였다. 1092년 본격적인 간행에 착수한 이래 1,010부 4,740권의 문헌을 9년에 걸쳐 목판에 새겼다. 그러나 이 대장경 역시 소실되었으며 다만 그 간행본의 상당수가 일본 동대사(東大寺)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고 국내의 송광사에서도 일부가 발견된다. 이것은 해인사 대장경을 만들 때까지는 남아 있어서 해인사 대장경의 판각에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한편 의천이 작성한 목록인 《신편 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教藏總錄) 3권이 현재 전하므로, 속장경에 어떤 문헌들이 수록되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해인사 대장경은 부처의 힘으로 몽고족의 침략을 물리치고자 간행되었다. 고종 때인 1236년에는 대장도감(大藏都監)을 설치하였고 1237년에 착수하여 1251년에 완성하였다. 이른바 '팔만 대장경' 이라고 통칭하듯이 완성 당시 경판의 총수는 8만 1137매였고 현재 보관되어 있는 것은 8만 1258매에 이르며 1,516종의 문헌 6,815권이 수록되어 있다. 후대에 판각된 15종의 문헌이 추가되었다. 조선 시대 초까지는 강화도 선원사에 봉안되었던것이 해인사로 옮겨져 해인사 대장경으로 불리게 되었고 옮긴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으나 1398년(태조 7)에 옮겼을 것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일본의 대정 신수 대장경이 해인사 대장경을 기초로 삼아 현대적으로 간행되는 데에는 이 대장경이 그만큼 장점을 지니고 있어서이다. 첫째, 해인사 대장경은 현존하는 대장경판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며 여러 차례의 교열을 거친 가장 정확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여기에 수록된 문헌의 종류나 양에서는 이보다 상회하는 다른나라의 대장경판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들은 중국 찬술의 논서나 잡서를 포함시켰거나 그 종류와 양을 정확히 헤아리지 못한 착오에 기인하는 바가 있다. 둘째, 해인사 대장경은 최초의 대장경판인 송의 촉판 대장경을 토대로 하면서 거란판 대장경을 비롯한 당시의 권위 있는 모든 대장경과 대조하여 엄밀하게 교정하였으므로, 지금은 사라진 촉판 대장경과 거란판 대장경의 내용을 아는 데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 셋째, 독자적으로 수집한 귀중한 문헌이 수록되어 있다. 즉, 이전의 다른 판본에는 전혀 수록되어 있지 않았던 20종 가량의 불전이나 각종 목록 및 사서(辭書) 종류 등 이 대장경에 수록되지 않았더라면 전혀 알려질 수 없을 뻔한 귀중한 문헌들이 실려 있다. 해인사 대장경은 1976년 동국대학교에서 고려 대장경이라는 이름으로 영인하여 색인 1권을 포함한 48권의 축소판으로 완간하였다. 현대의 한글 대장경은 주로 한역 대장경을 번역한 것이다. 1966년에 간행되기 시작하여 1979년까지 205권이 간행되었다. 남전부(제201~205)와 한국 고승(제151~166)을 포함하여 21권을 제외한 나머지는 한역 대장경의 일부를 번역한 것이다.
일본의 대장경 : 현재 일본을 대표하는 대장경은 20세기 초(1924~1934)에 활자판으로 간행된 대정 신수 대장경이다. 목판에 의한 대장경으로는 1624~1644년의 관영사판(寬永寺版)과 1661~1673년의 황벽판(黃檗版)이 간행되었다. 19세기 말부터 활자판에 의한 간행이 본격화되었는데, 활자를 이용하여 인쇄한 최초의 대장경은 명치(明治) 시대(1880~1885)에 간행된 대일본 교정 축쇄 대장경(大日本校訂縮刷大藏經)이다. 이것은 고려 대장경을 모범으로 중국과 일본의 불전으로 증보하여 1,916부 8,534권을 수록하였다. 이어서 7,082권을 수록한 것으로 만자장경(卍字藏經)이라고 통칭 되는 1905년의 대일본 교정장경과 7,140여 권을 수록한 1912년의 대일본 속
장경이 간행되었다. 이처럼 일본 대장경은 20세기를 전후하여 간행된 활자판이 주종을 이룬다.
활자판 간행의 대장경으로는 가장 우수한 대정 신수대장경은 고려 대장경을 저본(底本)으로 삼으면서도 독자적인 분류로 불전을 배열하였다. 그것은 경전의 역사적 발전 순서를 가미한 내용에 따른 새로운 분류였다. 그리고 송 원 · 명의 중국 대장경과 일본에 소장된 사본들을 함께 대조하였으며, 중국 돈황에서 발견된 사본으로부터 많은 문헌을 선택하고 중국과 일본의 문헌들로 증보하였다. 그 결과 그것은 인도와 중국의 찬술부가 55권, 일본 찬술부 29권, 돈황 사본 1권, 도상부 12권, 목록 3권의 총 100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도상부 12권은 불교 미술을 촬영하여 수록한 것으로 이 방면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목록 3권은 각종 대장경 목록을 비롯하여 온갖 종류의 목록을 망라한 것으로 이를 통하여 각종 대장경의 내용과 유명 사원들이 소장한 대장경의 내용을 알 수 있다.
근대 이후 일본에서는 활발한 번역 작업을 진행하여 2종의 대장경을 출판하였다. 상세한 주(註)와 해제(解題)를 자랑하는 국역 일체경은 자국의 저술을 포함한 한역대장경을 일본어로 직역한 것이다. 1935~1945년 번역된 인도 찬술부 155권은 중요한 한역 경전 355부 3,300권을 수록하고 있다. 이의 속편으로 번역된 화한(和漢) 찬술부 100권은 중국과 일본에서 작성된 문헌들의 번역이다. 1935~1941년에 완성된 남전 대장경 65권 70책은 팔리어 삼장과 약간의 장외(藏外) 문헌을 번역한 것이다. 한역 아함경(阿含經)에 상당하는 니카야(Nikaya)와 상좌부(上座部)의 율장 · 논장 · 장외를 번역한 것이므로 한역 대장경과는 별개의 것이다.
티베트의 대장경 : 티베트어로 번역된 불전의 집성은 서장(西藏) 대장경 또는 티베트 대장경이라고 불린다. 7세기 초 고유의 문자가 성립되었던 티베트에서는 779년부터 역경(譯經) 사업이 시작되었고, 824년에는 티베트 대장경의 현존하는 목록 가운데에서는 가장 오래된 《덴카르마 목록》이 작성되었다. 여기서는 당시까지 번역되었거나 번역 중인 대승과 소승 및 현교(顯敎)와 밀교의 모든 경전과 논서의 제목을 23항 734부로 분류하여 기록하였다. 그러나 분류 방식은 현재 남아 있는 티베트 대장경이나 한역 대장경과는 두드러지게 다르며, 티베트와 중국 양쪽의 남아 있는 번역 문헌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은 문헌명도 기록되어 있다. 843년 왕조의 분열로 역경은 중단되었으나, 11세기 이후 밀교 관계의 경전과 논서들이 번역되면서 적어도 네 차례의 대장경 간행이 있었다. 티베트 대장경은 몽고 등에도 영향을 끼쳐 1310년에는 30여 명의 학자가 동원되어 티베트어에서 몽고어로 번역 간행된 바 있고, 또한 1772년부터는 약 20여년간에 걸쳐 만주어로도 번역 · 완간된 바 있다.
티베트 대장경이 성립된 데에는 《덴카르마 목록》과 같은 목록집 외에도 《번역 명의집》(翻譯名義集)과 같은 번역 용어집이 크게 공헌하였다. 후대의 번역에서는 《번역명의집》을 따라 번역이 개선되거나 번역어가 통일되었다. 현재의 티베트 대장경은 칸큐르(Bkah-hgyur, 甘殊爾)와 텐큐르(Bstan-bgyur, 丹殊爾)로 독특하게 둘로 나뉘어 있으며 수록되어 있는 경전의 수도 여러 대장경 중에서 가장 많다. 칸큐르를 불설부(佛說部) 텐큐르를 논소부
(論疏部)라고 한다. 경장 · 율장 · 논장과 비교하면, 경장은 칸큐르에 포함되고 논장은 텐큐르에 포함된다. 티베트 대장경은 율장을 분리하여 율장의 근본 문헌은 칸큐르에, 그 주석은 텐큐르에 포함하고 있다. 여기에 포함된 문헌들의 배열은 판본에 따라 다르나 1742년의 델게(Sde-dge)판을 기준으로 하면 칸큐르는 100함 1,108부, 텐큐르는 213함 3,461부로 구성되어 있다. 티베트 대장경이 처음으로 목판에 인쇄된 것은 13세기 무렵인데 이것을 '나르탕(Snar-than) 고판(古版)' 이라고 한다. 이것은 그 뒤 1410년과 1602년에 다시 새겨졌고 1730년에는 달라이 라마 7세의 명에 의하여 대규모로 개정되었다. 이것이 정본으로 취급되었으며 '나르탕 신판(新版)' 이라고 불린다. 같은 시기에 리탕(Li-than) 판 및 그 밖의 판본에 의거하여 델게판이 완성되었다.
한편 중국에서는 명대에 중국 최초의 티베트 대장경인 영락판(永樂版)이 완성되었고 이어서 만력판(萬曆版)과 청의 강희판(康熙版)이 등장하였다. 1684년에 시작하여 1700년에 완성한 이 강희판을 흔히 북경판(北京版, 칸큐르 1,055부, 덴큐르 3,522부)이라고 부른다. 이 밖에도 1731년의 초네(Co-ne)판을 비롯하여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여러 판본이 간행되었다. 1920년에는 달라이 라마 13세의 칙령으로 라사(Lha-sa)판의 간행을 시작하였으나 1934년 달라이 라마 13세의 서거로 간행 사업이 중지되어 칸큐르에 그치고 말았다. 현존하는 칸큐르 중 최고(最古)의 것은 영락판이며 텐큐르 가운데 최고의 것은 1724년의 옹정판(雍正版)이다.
양적으로 풍부한 티베트 대장경은 어느 것이나 인도 불교 말기까지의 전통을 정확하고 충실한 번역으로 전하고 있다고 평가된다. 한역 대장경과 비교하면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닌다. 첫째, 한역(漢譯)과 공통하는 문헌은 551부에 불과하고 나머지 중에 3,000부 이상이 밀교 관계의 것이다. 둘째, 한역은 의미를 밝히는 데 치중하고 있으나 티베트역은 산스크리트의 원문에 충실을 기한다. 셋째, 번역을 점차 고쳐 나가 과거의 것을 버리고 이역본(異譯本)을 남기지 않는다. 넷째, 티베트인의 저작을 대장경에 포함시키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하였다.
이 밖에 몽고어 번역의 대장경은 티베트 대장경을 저본으로 한 것인데, 원대에 번역이 시작되어 칸큐르의 전부와 텐큐르의 일부가 완료되었고 청대에는 개역(改譯)되어 목판으로 간행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티베트 번역으로부터 재차 번역한 것이 아니라 산스크리트 · 티베트 · 위구르 등의 언어에 능통한 학승이 경우에 따라서는 한역까지도 참고하여 번역한 것이다. 만주어 번역의 대장경은 1772년에 시작되어 1790년에 완성되었으나 아직 그 전모가 알려져 있지 않다.
※ 참고문헌  정승석 편, 《불교 해설 사전》, 민족사, 1989/ 이기영, <고려 대장경, 그 역사와 의의>, 《고려 대장경》48, 1976, pp. 1~17/ 水野弘元, 《經典, その成立 と 展開》, 동경, 狡成出版社, 1980. 〔鄭承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