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교

大倧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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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를 창건한 나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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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를 창건한 나철.

1909년 홍암(弘巖) 나철(羅喆, 1863~1916)이 창건한 단군(檀君)을 교조로 하는 민족 종교.
〔창건과 발전〕 나철은 29세에 장원 급제하여 기거주(起居注), 권지 부정자(權知副正字)를 지내다가 31세에 낙향하였고, 33세에 고종으로부터 징세서장에 임명되었으나 거절하였다. 1905년 6월 오기호(吳基鎬)와 함께 일본으로 밀항하여 "동양의 영구한 평화를 위하여 한 · 일 · 청의 삼국이 상호 친선 동맹을 맺고 또 한국에 대하여는 선린의 교의로써 도우라"는 내용의 권고문을 일본정부의 각 대신들에게 전달하고 궁성 앞에서 3일 간 단식 · 항쟁하였다. 그곳에서 그는 을사조약을 체결하리라는 소식을 듣고 곧장 귀국하였다. 이때 나철은 서대문 역에 도착하여 세종로로 향하는 길에서 두암(頭岩) 백전(伯佺)이라는 노인으로부터 《삼일신고》(三-神誥)와 《신사기》(神事記)를 건네 받았다. 그러나 기울어 가는 국운을 걱정하던 그에게 있어서 그 책들은 관심 밖이었다. 1906년 그는 오기호 등 동지 50여 명과 함께 을사조약에 협조한 매국노 6적을 암살하려는 계획을 세웠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정부 전복 및 대신 암살 기도 사건' 이란 죄목으로 지도(智島)에 유배되었다가 고종의 내명으로 사면되었다. 유배에서 풀려난 그는 "내 생명이 붙어 있는 한 망국을 앉아서 볼 수만은 없다"라는 생각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외교적인 방법으로 구국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던 중 나철은 미도(彌島) 두일백(杜- 白)이라는 노인을 만나 《단군교 포명서》(壇君散佈明書), 《입교 의절》(入敎儀節), 《봉교 절차》(奉敎節次) 등을 전해 받고 생각한 바가 있어 곧바로 귀국하였다. 그는 민족 정신이 살아 있다면 조국이 독립될 날이 반드시 올 것으로 믿고 단군 교화 운동을 추진하였다. 그는 1909년 1월 15일 한성부 북부 재동에서 호남의 우국 지사들인 오기호, 강석화, 최동식, 유근, 정훈모, 이석, 김인식, 김춘식 등과 함께 '단군 대황 신위' (檀君大皇神位)를 봉안하고 제천보본(祭天報本)의 대례를 봉행한 뒤, 《단군교 포명서》를 선포하고 단군교(檀君敎)를 중광(重光)하였다. 그리고 1대 교주 도사교(都司敎)가 되었다. 대종교 교명은 처음에 '단군교' 였으나 1910년 내 · 외부의 사정으로 '대종교 로 바꾸었다. 대(大)는 '한' 이고 종(倧)은 '검' 이므로, 대종교는 순수한 우리말인 '한검교' 를 한자음으로 바꾼 것이다.
일제의 종교 탄압이 심해지자, 대종교는 1910년 10월 25일 교당 본부를 만주 북간도 삼도구(三道溝)로 옮겨지사(支司)를 설치하였다. 이듬해 1월 15일 나철은 《신리대전》(神理大全)을 저술 · 발간하였다. 그는 만주 청파호에 총본사를 두고 포교 활동에 주력하여 5년 만에 만주, 러시아, 중국 등지에서 30만의 신도를 확보하였다. 대종교의 빠른 성장에 놀란 일제는 1915년 10월 1일 조선 총독부령 제83호에 따라 〈종교 통제안>을 공포하고 대종교를 노골적으로 탄압하였다. 교단이 폐교될 상황속에서, 나철은 1916년 8월 15일 황해도 구월산 삼성사(三聖祠)에서 자결하였다.
2대 교주 무원종사(茂園宗師) 김헌(金獻, 1868~1921)은 18세에 급제하여 규장각의 부제학을 지냈고, 43세에 종2품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으나 관직을 버리고 대종교에 투신하였다. 그는 1917년 대종교 본사를 만주화룡현으로 옮기고 독립 운동을 전개하였다. 1918년 11월 김헌은 김규식(金奎植), 박은식, 김동삼, 이승만, 이시영, 김좌진, 이동휘, 신채호, 조소앙, 안창호 같은 독립 운동 대표 39명의 동의를 얻어 <무오 대한 독립 선언서>(戊午大韓獨立宣言書)를 대종교 총본사에서 작성 · 발의하였다. 김헌과 함께 나철의 양대 제자로 꼽히는 백포종사 서일(徐一)은 중광단(重光團)을 조직하였다가 1918년 김좌진(金佐鎮) 장군을 영입하여 이범석(李範爽), 김규식 등과 협의하여 북로 군정서(北路軍政署)를 개편하여 무장 독립 운동을 전개하였다. 대종교의 교인이었던 이시영이 세운 서로 군정서(西路軍政署)가 이시영의 사재로 운영된 데 비하여, 서일의 북로 군정서는 대종교 40만 신도들의 성금으로 운영되었다. 북로 군정서는 1920년 청산리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 청산리 전투에서 참패를 당한 일본은 그 보복으로 1921년에 병신(丙申) 토벌을 감행하여, 만주에 있는 수많은 대종교 신도들을 학살하고 고문하였다. 대종교 신도들의 참화를 목격한 김헌은 울분과 비통 속에서 56세에 생을 마쳤다. 서일 또한 1921년 일본에 매수된 비적 2만여 명이 대한독립군단(大韓獨立軍團)을 야습하여 대종교 신도들을 무차별 학살할 때 41세의 나이로 숨졌다. 김헌의 사서(史書)로는 《신단민사》(神壇民史), 《신단실기》(神檀實記), 《단조사고》(壇祖事故) 등이 있고, 서일의 사서(史書)로는 《삼일신고강의》(三一神話講義), 《회삼경》(會三經), 《진리도설》(眞理圖說) 등이 있다.
3대 교주는 단애(檀崖) 윤세복(尹世復)이다. 윤세복은 나철로부터 깊은 감명을 받고 대종교에 입교하였다. 입교한 뒤 그는 친형 윤세용과 상의하여 사재 2,000석을 팔아 만주로 망명하여 포교와 교육에 열중하였다. 44세의 나이로 제3대 도사교에 취임한 윤세복은 수많은 고생을 하였다. 1942년 일제는 "대종교는 조선 고유의 신도(神道) 중심으로 단군 문화를 다시 발전시킨다고 표방하며 조선 민중에게 조선 정신을 배양하고 민족 자결의 의식을 선전하는 교화 단체이니만큼 조선 독립이 그 최후 목적이다" 라는 죄목으로 윤세복과 신도 21명을 체포하였다. 윤세복은 무기 징역을, 김영숙은 15년 형을, 윤정현 · 이용태 · 최관 등은 8년 형을, 이현익은 7년 형을, 이재유는 5년 형을 받았다. 그 가운데 오근태, 안희제, 강철구, 김서종, 이창언, 이재보, 나정연, 나정민, 이정, 권상맹 등원로 교인들이 옥중에서 숨을 거두었다. 대종교에서는 이를 임오교변(壬午敎變)이라 하며 숨진 10명을 임오십현(壬午十賢)이라고 한다. 윤세복은 옥고 4년 만에 해방이 되자 70세의 고령으로 목단강의 야하 감옥에서 출감하여, 1946년 1월 14일 서울로 돌아왔다. 6 · 25 동란 중에는 단군전에서 종사(倧史)를 집필했으며, 1960년 80세로 세상을 떠났다.
1950년 5월 대종교는 도통 전수제를 폐지하고 선거로 선출하는 총전교제(總典敎制)를 채택하였다. 제1대 총전교에 윤세복이 취임하였고 현재는 안호상(安浩相)이 제14대 총전교로 있다. 1958년에는 대종교 유지 재단이 설립 인가를 받고 1966년에는 대종교 고등공민학교 설립 인가를 받아 대종학원이 부활하였다. 1971년에는 《대종교 중광 60년사》(大倧教重六十年年史)가 간행되었다. 현재 총본사는 서울시 서대문구 홍은2동 13-78에 자리잡고 있으며 신도는 전국적으로 50만 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교리와 직제〕 대종교는 삼일신 사상(三一神思想)에 근거하고 있는데, 만물을 창조하는 조화력(造化力)과 인간을 가르쳐 깨우치게 하는 교화력(敎化力), 그리고 만물을 기르고 다스리는 치화력(治化力)의 3대 권능을 갖춘 세검 한몸〔三神一體〕인 한배검〔天祖神〕을 신앙 대상으로 하고 있다. 한배검은 한울에 있어서는 조화주이신 한님(桓因)이요, 이 세상에 있어서는 교화주인 환웅(桓雄), 치화주인 한검(桓儉)이다. 사람은 태어날 때 세검한몸이신 한얼님으로부터 세 참함〔三眞〕인 성품〔性〕과 목숨[命]과 정기(精)를 받는다. 그러나 육체가 이루어지면서 마음〔心〕과 김〔氣〕과 몸〔身〕의 세가달(三妄)이 이루어진다. 세가달에 끌리어 함부로 살아가다 보면, 인간은 태어남, 자람, 늙음, 병, 죽음의 괴로움으로 떨어진다. 그러나 어진 이는 느낌을 그치며〔止感〕, 숨쉼을 고르며〔調息〕, 부딪침을 금〔禁觸〕하여 세가달을 돌이켜 세참함에 이르고(返妄卽眞), , 세참함을 돌이켜서 한얼에 돌아가는 것(返眞一) 즉 세참함으로 하나에 돌아가는 것(三真歸一, 即三卽一)이 중요한 교리이다.
대종교가 추구하는 바는 천국과 같은 행복한 지상 천국을 건설하는 것이다. 즉 상극(相克)의 역사에서 협동하고 조화하는 상생(相生)의 역사를 창조하려는 것이다. 경전에는 《천부경》(天符經) 《삼일신고》, 《팔리훈》(八理訓), 《신사기》, 《회삼경》, 《신리대전》, 《삼법회통》(三法會通), 《신단실기》 등이 있다. 가장 중요한 경전은 《천부경》과 《삼일신고》이다. 81자로 되어 있는 《천부경》은 질서와 무질서가 뒤섞여 전개되는 우주관을 담고 있고, 366자로 되어 있는 《삼일신고》는 신론 · 인간론 · 천국론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의식에는 4대 경절인 개천절(開天節, 음 10월 3일), 어천절(御天節, 음 3월 15일), 중광절(重光節, 음 1월 15일), 가경절(嘉慶節, 음 8월 15일)이 있다. 그 밖에는 선의식, 경하식, 경배식, 원단 참알례(元旦參謁禮), 조배식, 봉교식, 자신식, 주유식, 고유식 등의 여러 가지 의식이 있다. 직제에는 대종교 최고의 존칭으로 대종사가 있고 그다음에 종사가 있다. 그 밖에 교인은 교력(敎歷)에 따라, 봉교(奉敎)한 지 6개월이 넘은 교인 가운데에서 참교(參敎)가 되고, 참교가 된 지 1년이 넘은 교인중에서 지교(知敎)가 되고, 지교가 된 지 2년이 넘은 교인 가운데서 상교(尚敎)가 되고, 상교가 된 지 5년이 넘은 교인 가운데서 정교(正敎)가 되고, 정교가 된 지 5년이 넘은 교인 가운데서 사교(司敎)가 된다. (→ 단군 신앙)
※ 참고문헌  《대종교 요감》, 대종교 총본사, 1983/ 大大倧教重光六十年史》, 대종교 총본사, 1971/ 《韓國宗敎思想史》, 연세대학교 출판부, 1992/ 우원상, <대종교>, 《전환기의 한국 종교》, 집문당, 1986. 〔車玉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