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소속 본당. 서울시 강남구 대치동 1016-1소재. 1979년 6월 14일 청담동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어, 1981년 2월 본당명을 도곡동 본당에서 대치동 본당으로 변경하였으며, 주보는 칠성사. 관할 구역은 대치 1 · 4동, 도곡동 일부 지역이다. 〔교 세〕 1979년 1,311명, 1981년 4,564명, 1984년 11,488명, 1988년 14,473명, 1990년 16,639명, 1991년 9,580명, 1993년 10,090명. 〔역대 신부〕 초대 안상인(安商仁) 요셉(1979. 6~1981. 11), 2대 김수길(金秀吉) 루도비코(1981.11~1986.8), 3대 최광연(崔光淵) 모이세(1986. 8~1991.9), 4대 김몽은(金蒙恩) 요한(1991. 9~1995. 9), 5대 김영환(金永煥) 바오로(1995.9~현재).
〔공소 시대〕 공소 설립 이전 대치동과 도곡동 지역의 신자들은 청담동 본당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미사를 참례하며 신앙 생활을 하였는데, 당시 신흥 개발 지역이었던 이 일대는 신자수가 계속적으로 증가하고 청담동 본당과의 거리가 멀어 공소 설립의 필요성이 절실히 대두되었다. 그러던 중 1978년 4월 9일자로 청담동 본당 압구정 공소가 설립되자 대치동에 거주하던 신자들은 그해 7월부터 공소의 설립을 예상하고 공소 설립 모금 운동을 시작하였다.
대치동 및 도곡동 지역 신자들의 이러한 노력을 지켜본 청담동 본당 최창정(崔昌鼎, 요아킴) 신부는 1978년 8월 신축 상가 건물 3층(도곡동 439블럭 체비지 5호 나)에 85.5평 규모의 방을 매입하고, 그 해 9월 3일자로 도곡동 공소를 설립하였다. 이어 9월 24일부터는 당시 공군 군종 이성만(李星萬, 토마) 신부가 틈을 내어 미사 봉헌등 공소 사목에 협조하였고, 공소 설립 이전부터 창단된 레지오 마리애와 성체회를 비롯하여 성가대 · 복사단 · 학생회 등이 청담동 본당에서 분리하여 활동하였으며, 같은 해 10월 8일 주일학교가 독립 · 개교하였다. 이렇듯 공소 공동체가 활성화되자 1978년 11월 당시 서울대교구 총대리로 있던 경갑룡 주교가 사목 방문차 들러 본당 승격을 모색하도록 권장하였다. 이에 지금의 구역 모임의 전신인 세대주 모임과 공소 사목위원회의 구성 등을 통해 본당 승격을 준비, 1979년 6월 14일자로 도곡동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설립과 발전〕 공소로 사용하던 상가 건물이 협소하고, 소란스러운 주위 환경과 옆방에 입주한 개신교 교회 등으로 매우 복잡한 상황이었던 도곡동 공소는 본당 설립 이후 성당 신축 여론이 일기 시작하였다. 처음 교구로부터 도곡동 야산을 성당 부지로 배정받았으나 성당 위치로 부적합하다고 판단, 이를 반환하고 대신 본당 신자들의 성전 기금 모금 등으로 1980년 12월 현 본당 소재지인 대치동 1016-1의 부지 586.3평을 매입하였다. 대지 매입으로 본당의 위치가 도곡동에서 대치동으로 바뀌게 되었으므로 본당명을 1981년 2월 24일자로 대치동으로 개명하였다.
1981년 5월 10일 기공식을 거쳐 1983년 5월 29일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국내 최초의 중앙 집중 냉난방 시설을 갖춘 현대식 성당과 사제관, 수녀원, 사무실, 회의실(연건평 970평) 등을 완공하고 축성하였다. 축성에 앞서 '성전 봉헌 감사 대피정' 을 실시, 전 신자들이 자신의 신앙을 쇄신하고 신앙 생활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다.
〔성장과 변모〕 성당 신축과 함께 안정기에 접어든 대치동 본당은 1981년 3월 본당 관내 어린이와 근로 청소년들을 위해 인근 국민학교와 시내 버스 안내양 기숙사, 정비공 및 운전 기사 숙소 등에 도서를 기증하는 한편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을 주축으로 각 단체에서 내실 있는 봉사 활동을 전개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였다. 뿐만 아니라 본당 예산의 10% 이상을 복지 사업에 사용하는 한편 연말에 1개월분의 봉헌금을 더 봉헌하는 '13개월 교무금제' 를 실시하여 각종 후원회, 교구의 사회 복지 사업, 재정이 빈약한 지방 본당을 지원하는 데 사용하였다.
대림과 사순 시기 특강 · 단체별 피정 · M.B.W. · 성령 세미나 · 성서 연구반 개설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신자 재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피정과 청소년을 위한 교육관을 서울이 아닌 조용한 곳에 마련할 계획으로, 강원도 횡성읍 갈풍리의 임야를 매입, 1986년 4월 기공식을 거행하였다. 그러나 이 교육관은 마무리 단계에서 운영상의 난점을 고려, 도미니코 수녀회에 인계되었고, 이후 대치동 본당 교육관은 1992년 성당 증축 및 개보수 공사때 본당 지하에 마련되었다.
1988년 5월부터는 신자들의 일상 생활에도 도움을 주고자 상담실을 개설, 의료 및 가정 · 청소년 · 취업 · 법률 · 세무 상담을 시작하였다. 1992년 7월부터 1993년 10월까지 성당 보수 관계로 지하 강당에서 미사를 봉헌하였으며, 본당 설립 15주년이 되는 1994년 1월에는 본당 설립과 본당 발전상을 담은 《대치동 본당 15년》을 간행하였다.
1개의 꼬미시움과 2개의 꾸리아가 조직된 레지오 마리애를 비롯 28개의 평신도 사도직 단체가 활동 중인 대치동 본당은, 현재 지역 복음화와 이웃에 대한 사랑 실천 및 소공동체 활성화, 가정 공동체 강화 등을 사목 방향으로 삼고 있다. 한편 강남 지역의 인구 증가에 따라 1984년 8월 역삼동 본당, 1985년 8월 개포동 본당, 1991년 8월 대치2동 본당을 각각 분가시켰다. (→ 서울대교구 ; 대치2동 본당)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천주교 대치동 교회, 《대치동 본당15년》, 1994. 〔편찬실〕
대치동 본당
大峙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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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