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교구 소속 본당. 경기도 안산시 사동 1178 소재. 1984년 2월 21일 수암 본당 사리 공소에서 승격되었으며 주보는 성 바오로 정하상. 관할 구역은 사동 전 지역. 〔교 세〕 1984년 924명, 1989년 1,196명, 1994년 7,221명, 1995년 6월 현재 2,170명. 〔역대 신부〕 초대 송영규(宋榮奎) 바오로(1984. 2~1986. 12), 2대 박종만(朴鍾萬) 세례자 요한(1986. 12~1990. 12), 3대 심영택(沈榮澤) 프란치스코 사베리오(1990. 12~현재).
〔공소 시대〕 1957년경 북한에서 피난 온 사람들이 사리 산 234번지에 정착하여 천주교 구호품으로 생계를 이어 가면서 간척 사업에 종사하였는데, 이 가운데 20세대 100여 명의 신자들로 1958년경에 사리 공소가 개설되었다. 1959년 고등동 본당의 신설과 함께 그 관할 공소가 되었다가 이후 계속적으로 수원교구에 본당이 신설됨에 따라 세류동 본당(1968), 고색동 본당(1970), 수암본당(1981) 소속이 되었다. 그러다가 1976년 8월 반월공업 단지 조성 계획에 의하여 안산 신도시 건설 사업이 시작되는 과정에서 원주민 이주 대책으로 안산시 사동 1178번지와 1180번지의 872.9평을 불하받게 되었다. 그 후 1981년 8월 수암 본당 초대 주임으로 부임한 송영규 신부는 수암 성당을 건축하던 중 사리 공소가 불하 받은 부지에 건물을 짓지 않으면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수암 성당 건축과 동시에 이곳에도 성당을 세울 것을 계획하게 되었다. 그리고 1983년부터 기공식에 착수하였다. 이런 가운데 1984년 2월 21일 수암본당과 서둔동 본당의 관할 구역 일부를 각각 분할받고, 송영규 신부가 초대 신부로 부임하면서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설립과 변모〕 성당 승격 이후 사동 1152번지 상가에서 미사를 봉헌하다가 1984년 8월 15일 성당 건축위원회가 결성되어 그 해 12월 24일 성당 지하층과 사제관을 완공하고 성탄 미사를 봉헌하였다. 그러나 재정 문제로 공사가 중단되었다가 2대 주임 박종만 신부의 부임으로 활기를 되찾은 대학동 본당은, 1988년 3월 성당 및 사제관 증축 기공식을 거행하였다. 그 해 9월 새 사제관이 완공되면서 옛 사제관은 수녀원으로 개수하였고, 12월 20일에는 성당을 완공하였다. 그리고 1989년 1월에는 수원 성 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 분원이 설치되어 사목에 협력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성당 위치가 안산시의 중심지로서 날로 번창할 전망이 있음을 감안하여 당시 주차장으로 사용하던 안산시 사동 1180번지에 교육관 설립을 계획하였다. 1991년 3월에 착공하여 그 해 12월 1차 완공하여 '말씀의 집' 이라고 명명하였고, 이듬해 6월 최종 완공을 거쳐 현재 신자 재교육의 공간으로 이용하고 있다. 특히 1995년 1월부터는 외부 강사를 초빙하여 매월 두 차례씩 구역장 · 반장 교육을 실시함으로써 평신도 지도자의 양성을 통한 소공동체의 활성화를 도모하는 등 공동체의 내실을 기하고 있다.
한편 신자수의 지속적인 증가로 본당 관할 구역을 대학동 지역 · 본오동 지역 · 반월 지역으로 나누어 본오동과 반월 지역에 새 성당 건립을 계획하고, 안산시 본오동 789-1번지와 789-3번지의 부지를 매입하였다. 교육관 신축이라는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재건축을 전제로 가건물 성당 · 사무실 · 수녀원 등을 건립하기로 한 본당에서는, 1994년 2월 이를 완공하고, 그 해 3월 4일 상록수 지역 성당이라 명명한 뒤 첫 미사를 봉헌하였다. 그러다가 1995년 1월 20일에 이를 본당으로 승격시켰다. 이에 따라 대학동 본당 관할 구역이었던 안산시 일동, 이동, 본오동, 팔곡동과 구반월 지역, 화성군 원리 등이 상록수 본당 관할로 편입되면서 신자수가 격감하였다. (→ 수원교구 ; 상록수 본당)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천주교 수원교구, 《수원교구 30년사》, 1993. 〔편찬실〕
대학동 본당
大學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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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