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에 성서의 번역 · 출판 및 보급을 목적으로 설립된 프로테스탄트의 연합 기관. 1887년에 구성된 '성서 번역위원회' 와 그것이 발전적으로 개편되면서 1893년에 조직된 '상임 실행 성서위원회' (Permanent Executive Bible Committee)를 기원으로 하고 있는데, 직접적으로는 1895년에 설치된 '영국 성서 공회' 한국 지부를 모체로 하고 있다.
〔성서 공회의 역사〕 성서 공회란 그리스도교의 전파를 위해 성서를 각국어로 번역 · 출판 · 배포하는 기관으로, 1710년에 세워진 캔스테인 성서 연구소(Canstein Bible Institution)가 그 효시라 할 수 있다. 이 연구소가 세워질 당시 유럽에는 성서가 많이 보급된 상태가 아니었다. 이러한 상황은 성서를 지식층만이 아닌 모든 사람들의 재산으로 생각하는 프로테스탄트를 자극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성서를 보급하려는 운동을 일으키도록 하였는데, 여기에는 유럽의 복음주의적 영향도 있었다.
18세기 동안 복음주의 운동(evangelical movement)은 전유럽, 심지어 다른 대륙에까지 퍼졌다. 그 결과 영국에서는 이와 관련된 여러 단체들이 생겨났으며, 또 이 시기가 되면서 해외 선교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게 되었다. 1804년의 '영국 성서 협회' (British and Foreign Bible Society, B.F.B.S.)는 바로 이러한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설립된 최초의 성서 공회였다. 영국에서의 이러한 움직임은 곧 다른 지역으로 옮겨져 많은 지역 성서 공회들이 설립되었고, 미국에서도 1816년에 '미국 성서 공회' 가 조직되었다. 1820년대 유럽의 여러 성서 공회들은 정치적 · 사회적·경제적으로 혼란한 상황 때문에 그 활동이 미미하였다. 그러나 영국 성서 협회, 스코틀랜드 성서 공회, 미국 성서 공회는 꾸준히 그들의 활동 영역을 넓혀 가고 있었고, 그 결과 1900년까지 성서 행상 및 보급을 목적으로 하는 권서(勸書, colporteur) 약 2,000명이 전세계 모든 나라에서 성서 공회를 위해 활동하게 되었다.
〔성서의 한글 번역〕 유럽의 성서 공회 활동은 한국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들 중 가장 먼저 한국과 접촉한 단체는 스코틀랜드 성서 공회였으며, 그 개척자는 스코틀랜드 연합 장로교회 선교사인 로스(J. Ross, 羅約翰)였다. 로스는 1872년 만주의 개항장인 영구(營口)에 들어온 이후 한국 선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동료 맥킨타이어(J. MacIntyre, 馬勒泰)와 한국의 선교 가능성을 타진하던 중 1877년에 이응찬(李應贊), 서상륜(徐相崙) 등을 만나 이들의 도움으로 《예수 셩교 요안ᄂᆡ 복음》, 《예수 셩교 누가 복음 젼셔》를 한글로 번역하였다. 1882년 출간 된 이 성서 중 《예수 셩교 누가 복음 젼셔》 1천 권이 일본의 스코틀랜드 성서 공회 권서인 나카사카(中坂)에 의해 다음해 부산에 유입, 국내에 전파되었다.
성서의 한글 번역과 관련된 로스의 노력은 1886년까지 계속되어 같은 해 가을신약의 번역이 완료되고, 1887년 《예수셩교 젼셔》란 이름으로 출간되었다. 그러는 사이 1882년 《예수 셩교 누가 복음젼셔》, 《예수 셩교 요 안ᄂᆡ 복음 젼셔》의 출간비를 영국 성서공회가 부담하면서 영국 성서 공회와 한국과의 접촉이 처음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들은 신약의 각 복음서가 나오자 봉천(奉天)에 있는 로스의 책임 아래 서상륜을 권서로 한국에서의 전파 사업을 시작하였다.
한편 일본에서도 성서의 한글 번역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1882년 수신사 일행으로 일본에 간 이수정(李樹廷)은 미국 성서 공회 소속인 루미스(H. Loomis)의 요청으로 성서 번역에 착수하여 《현토 한한 신약성서》(懸吐漢韓新約聖書)를 1884년에 출판했고, 이어 《신약 마가젼 복음셔 언ᅙᆡ》를 완역하여 1885년 2월에 간행했다. 1885년 4월 제물포를 통해 입국한 아펜젤러(H.G. Appenzeller)와 언더우드(H.G. Underwood)는 바로 이것을 가지고 한국선교의 첫발을 디딘 것이다.
이처럼 스코틀랜드 · 영국 · 미국 성서 공회는 한국 내에서 본격적으로 성서 번역 사업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독자적으로 성서의 번역, 출판 및 배포에 힘써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아펜젤러와 언더우드는 이후 이수정이 번역한 성서가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음을 알게되었다. 그러므로 그 수정본을 준비하는 동시에 서울에 있는 선교사들에게 성서 번역을 관장할 위원회의 구성을 제의하였다. 이 제의가 받아들여져 1887년 2월 언더우드, 아펜젤러, 알렌(H.N.Allen), 스크랜톤(W.B. Scranton), 헤론(J.W. Heron)이 모여 성서 번역위원회를 구성하였고, 같은 해 4월에는 이를 상임 성서위원회, 번역위원회, 개정위원회로 확대 개편하였다.
이렇게 성립된 상임 성서위원회는 국내에 있어 본격적인 성서 번역의 모체가 되었다. 그러나 인적 자원의 절대 부족으로 그 기능은 전문적인 것이 되지 못하였고, 번역된 성서도 개인 번역 성서의 차원을 넘지 못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아펜젤러는 1890년에 로스 역 《누가 복음젼》과 《보라달 로마인셔》(保羅達羅馬人書) 수정 · 발행하였고, 1892년에는 《마태 복음》을 번역 출판하였다. 이때 출간된 《마태 복음》은 이수정 역이나 로스 역의 수정이 아닌 국내에서 이루어진 첫 번째 번역 성서였다.
그러나 성서위원회가 갖는 여러 가지 한계성은 성서위원회에 대한 재검토를 실시하여 보다 효율적인 조직과 체계를 세우게 만들었다. 1893년 종래의 상임 성서위원회를 개편하여 상임 성서 실행위원회를 두었고, 그 밑에 성서 번역자회를 두어 번역에 착수하였다. 이렇게 해서 1895년 마태, 마가, 요한, 사도행전이 발행되었다. 그후 신약의 단편 성서들이 꾸준히 간행되어 1900년에는 신약 전체가 한 권으로 묶여 인쇄되었으며, 1904년 1차 개정본이 나왔고, 1906년에 《신약 젼셔》가 간행되었다.
이와 더불어 구약의 번역도 시작되었다. 한국에 있어 구약성서 번역의 효시는 1898년에 출판된 피터스(A.A.Pieters)의 《시편 촬요》이지만 구약 전체에 대한 본격적인 번역은 1900년에야 이루어졌다. 그러나 선교사들의 잦은 이동과 다른 선교 활동 때문에 진척을 보지 못하다가 1907년 레이놀즈(W.D. Reynolds), 김정삼(金鼎三), 이승두(李承斗) 등이 번역에 착수하여 1910년에 마침내 구약 번역을 완료함으로써 성서 전체가 번역되었다. 이를 흔히 '구역 성서' (舊譯聖書)라 부르는데, 1937년 '개역성서' (改譯聖書)가 나오기 전까지 한국 교회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한편 성서 번역이 완성되자마자 곧바로 개역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에 구약이 간행된 1911년 구약 개역자회가 구성되었고 1936년 《구약 개역》이 발행되었다. 신약의 개역 작업은 1926년 신약 개역자회가 조직되면서 시작되어 1937년에 완료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개역 성서' 이다. 이 《신약 젼셔 개역》은 이듬해 출판되었으며, 이때 신 · 구약 합본인 《셩경 개역》도 간행되었다. 이로써 성서 개역 작업은 1911년 구약을 착수한 이후 26년 만에 완성되었고, 이것이 현재까지 한국프로테스탄트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공인 성서로 활용되고 있다.
성서의 한글 번역이 진행되는 동안 성서 사업의 주체에도 변화가 있었다. 그 동안 한국의 성서 사업은 스코틀랜드 · 영국 · 미국 성서 공회가 공동으로 비용을 분담, 운영되고 있었다. 즉 1903년 상임 성서 실행위원회가 해체되면서 1904년 3개국 성서 공회 연합 지부가 설립되어 성서 사업 전반을 관장하였다. 그러다가 3개 공회가 분담하던 비용 문제에 불편이 생기자 1907년 3개국 성서 공회 연합 지부는 해체되었다. 이에 스코틀랜드 성서 공회는 다음해 한국에서 물러난 뒤 영국 성서 공회를 통해 다소간의 재정 지원만을 계속하였고, 미국 성서 공회는 1908년 영국 성서 공회와 분리하여 독자적으로 성서 사업을 운영하던 중 1919년에 영국은 필리핀에서 철수하고 미국은 한국에서 철수하기로 합의함으로써 그 해 4월 한국에서 철수하였다. 이후 한국에서의 성서 사업은 영국 성서 공회에 의해 독점되었다.
1882년 로스의 성서 번역 지원으로 한국과 인연을 맺은 영국 성서 공회는 1887년에 발행된 《예수 셩교 젼셔》의 간행을 지원하였고, 1893년에는 털리(R.T. Turley)를 서울에 파견, 성서 보급소를 개설하였다. 특히 1895년에 설치된 영국 성서 공회 한국 지부는 한국 내 성서 사업의 중심 역할을 담당하였다. 1903년에 조직된 3개 성서 공회의 연합 지부에서는 영국 성서 공회 소속의 캔무어(A. Kenmure)가 1904년까지 공동 총무로 재직하였고, 그 다음에는 밀러(H. Miller)가 이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다가 연합 지부 해체 후 영국 성서 공회에서는 1910년 구약성서를 완역 출간하였고, 1919년부터 한국에서의 성서 사업을 독점하게 되었으며 1908~1925년 간 총 907만 권의 성서를 배포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제는 성서 사업 전반에 걸쳐 압력을 가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1938년부터 '영국 성서 공회' 를 '조선 성서 공회' 라 개명케 하였고, 운영권도 점차 선교사의 손에서 한국 · 일본인의 손으로 이전시키려 하였다. 그 결과 1940년 11월 성서위원회는 회규 개정과 동시에 한국 · 일본인만으로 구성되었다. 이와 함께 일제는 1942년 5월 성서 공회의 재산을 적산으로 편입시켜 관리하기까지 하였다.
〔대한 성서 공회의 역사〕 성서 사업은 해방과 더불어 다시 시작되었다. 일제 말 성서 공회의 총무로 있던 정태응(鄭泰應)은 1945년 9월 미군정청으로부터 일제 시대 적산으로 편입된 성서 공회의 재산을 되찾고, 이풍한(李豊漢)의 재산 희사로 1947년 4월 재단 법인 '대한 성서공회' 를 설립하였다. 이 시기에도 영국 · 미국 성서 공회는 한국 공회의 자립 운동을 적극 지원하였다. 이후 대한 성서 공회는 1949년부터 전국 교회의 성서 헌금을 통해 자립을 꾀하였으며, 성서 회원 제도를 도입하여 한국 교회에 의한 성서 사업을 추진해 나갔고, 1949년 6월에는 세계 성서 공회의 회원으로 가입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국내외적으로 자립의 기틀을 세워 가던 대한 성서 공회는 6 · 25 동란으로 수난을 겪은 다음 1954년 서울로 복귀하여 외국의 보조와 국내 교회의 협조 속에 다시 성서 출판 및 배포 사업을 추진해 나갔다. 특히 시대적인 변화에 맞는 성서의 번역을 계획, 1967년에는 《신약 전서 새번역》을 발행하기도 하였다.
한편 1968년에는 가톨릭과 협력하여 성서 번역 공동위원회를 구성, 구약부터 번역을 시작하였다. 한국 가톨릭 교회에서는 이미 1790년대 최창현(崔昌顯, 요한)이 최초로 4복음서에서 발췌하여 《성경 직ᅙᆡ 광익》(聖經直解廣益)을 번역 등서한 이래 1890년대에 활판본 《셩경직ᅙᆡ》를 간행하였고, 1910년에 《ᄉᆞᄉᆞ 셩경》(四史聖經)을, 1922년에는 《종도행전》(宗徒行傳) 등을 번역 간행하였다. 그 후 1941년에 《신약성서 서간 · 묵시편》을 번역함으로써 신약성서를 완역하였고, 1955년부터 구약번역에 착수하여 1958~1963년 사이에 구약 16권과 바룩서를 간행하였다. 가톨릭 교회는 이러한 전통을 바탕으로, 1962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에 따라 공동 성서 번역 작업을 시작하였다. 그 결과 1968년 4월에 조직된 구약 공동 번역위원회와 1969년에 조직된 신약 공동 번역위원회의 노력으로 1971년에 《공동 번역 신약성서》가, 1977년에는 《공동번역 성서》가 각각 간행되었다. 비록 공동 번역 성서에 대한 논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작업은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가 함께 성서 번역의 토착화를 위해 노력하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렇게 성서 출판 사업이 본 궤도에 오르면서 대한 성서 공회의 성서 배포 사업도 조직화되었는데, 1960년에 18만 6,000부에 불과했던 성서 배포가 1994년에는 거의 300만 부에 달하였고, 120여 언어로 번역된 500만부의 성서가 100여 국에 수출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1979년부터는 재정적으로도 자립해 세계 성서 공회에 부담금을 지불하는 입장에 서게 되었다. 1995년으로 설립 100주년을 맞는 대한 성서 공회는 이러한 전통을 바탕으로 성서의 출판 및 국내 · 외 배포 등 성서 사업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 참고문헌 이원순, <성서 국역사 논고>, 《민족 문화》 3집, 1977/ 백낙준, 《한국 개신교사》, 연세대학교 출판부, 1973/《기독교 대백과사전》, 기독교문사, 1981/ 최석우, <한국 천주교회의 선구적 역 할>, 《한국 교회사의 탐구》, 한국교회사연구소, 1982/ 《성서와 함께》 129호(1986. 12)/ 전택부, 《한국 교회 발전사》, 한국 기독교 백년사 대계1, 대한기독교출판사, 1987/ 한국 기독교사 연구회, 《한국 기독교의 역사》 1, 기독교문사, 1989/ 이덕주, 《초기 한국 기독교사 연구》,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1995/ 이만열, <한국 성서 운동 100년의 회고와 전망>, 《멀티 미디어 시대의 교회》, 대한성서공회, 1995/ O.P. Beguin, Bible Society, 《EB》 3, pp. 587~588. 〔方相根〕
대한 성서 공회
大韓聖書公會
[영]Korean Bible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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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로스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