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대교구 소속 본당. 대구시 북구 대현2동 403-2 소재. 1977년 7월 5일 신암동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사도 성 베드로. 관할 구역은 대현1 ~3동, 신암2동, 신천동 일부. 〔교 세〕 1977년 1,550명, 1981년 3,625명, 1988년 3,608명, 1993년 3,845명. 〔역대신부〕 초대 곽길우(郭吉祐) 베드로(1977. 7~1981. 4), 2대 이상호(李相浩) 베드로(1981. 4~1986. 1), 3대 이성한(李盛漢) 베르나르도(1986. 1~1989. 6), 4대 장효원(張曉沅) 요셉(1989. 6~1990. 6), 5대 허용(許龍) 요셉(1990. 6~1991. 9), 6대 장정식(張精植) 마티아(1991. 9~1994. 8), 7대 김윤호(金潤虎) 토마스 아퀴나스(1994. 8~현재).
〔설립과 발전〕 1977년 7월 본당 설정과 함께 성당 신축을 시작한 대현동 본당은 임시로 대현동 401번지의 한옥 한 채를 임대하여 사제관으로 사용하면서 이곳에서 주일 미사를 봉헌하였다. 그해 10월부터는 현 성당 인근에 위치한 대구시 의사 회관 3층 강당을 임대하여 임시 성당으로 사용하다가, 1978년 1월에 신축 중인 성당 1층 사제관에 입주하였다. 같은 해 2월 10일에는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분원이 설치되었는데 수녀들은 본원에서 출퇴근하면서 신자 가정 방문 · 주일학교 · 신심 단체 회합 등의 사목에 협력하였다. 1978년 3월 성당 뒤편 한옥을 매입, 수녀원으로 개축하였으며, 4월 23일에는 교구가 독지가로부터 희사받은 성금으로 매입한 현 본당 소재지의 대지 150평 위에 지하 1층, 지상 3층의 신축 성당(연건평 300평)을 완공 축성하였다.
초창기인 1978~1982년에는 신앙 공동체의 조직 · 교육 · 활동 · 쇄신 · 사랑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5개년 계획을 수립하여 사목 활동의 기초를 마련하였으며 신자 재교육을 위해 1979년 한 해 동안 수요 강좌를 개설하여 생활 교리를 교육하였고, 평신도 지도자를 대상으로 피정과 연수회를 지속적으로 실시하였다. 1980년부터 연 2회 신자 배가 운동을 실시하여 지역 선교에 앞장선 대현동 본당은, 1981년부터 매년 7월 성지를 순례하고 있으며, 1982년 8월 산격동 본당 분가 후 반감된 교세와 침체된 본당 분위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그 해 9월 19일 본당 발전을 위한 기도 운동과 함께 성당 내부 수리와 전체 도장 공사를 실시하였다.
〔성장과 변모〕 성장기에 접어든 대현동 본당은 1983년 2월 관내 노인들에게 무료 이발 봉사를 전개하였고, 일일 찾집, 성미 운동 등을 지속적으로 실시하여 그 이익금을 불우 이웃 돕기에 사용하였다. 같은 해 5월 1일부터는 한국 순교 복자 시성과 선교 200주년을 준비하는 기도 운동과 본당 발전을 위한 묵주 기도 80만 단 봉헌 운동을 시작하여, 그 해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에 봉헌하였다. 또한 1984년에는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 사업을 위한 모금 운동을 전개하여 성당 뒷마당과 현 수녀원 건물을 매입함으로써 기념 사업을 완료했다.
1990년대에 들어서는 잦은 신부 이동으로 본당 분위기가 다소 침체되기도 하였으나 전 신자를 대상으로 하는 매스컴 교육과 M.B.W. 교육, 혼인 갱신식 실시 등으로 신자들의 신심 향상에 주력하고 있다. 1997년 7월 본당 설립 20주년을 앞두고 있는 대현동 본당은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사제가 5명이나 배출되는 등 적극적인 후원을 통해 사제 및 수도자 양성에도 앞장서고 있다.
(→ 대구대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천주교 대구대교구, 《천주교 대구대교구 총람》 2, 1986/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한국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100년사》, 1991. 〔편찬실〕
대현동 본당
大賢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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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