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대교구 소속 본당. 경북 포항시 북구 덕수동 41-1 소재. 1977년 12월 포항(현 죽도)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로사리오의 성모. 관할 구역은 포항시 북구 덕수동, 덕산동, 대신동, 대흥동, 동빈동, 학산동, 신흥동, 우현동, 여천동, 중앙동, 두호동, 창포동, 장성동, 환호동, 여남동, 용흥1동과 영일군의 흥해읍, 청하면, 신광면, 송라면 지역이다. 〔교 세〕 1977년 522명, 1980년 826명, 1984년 1,726명, 1988년 3,237명, 1992년 4,799명, 1994년 1,843명. 〔역대 신부〕 초대 김문순(金文淳) 글레멘스(1977. 12~1982. 1), 2대 김재명(金在命) 바오로(1982. 1~1985. 4), 3대 이재원(李在元) 욥(1985. 4~1988. 6), 4대 조환길(曹煥吉) 타대오(1988. 6~1992. 6), 5대 권혁시(權赫時) 모세(1992. 6~1993. 11), 6대 이강태(李康胎) 베드로(1993. 11~현재).
〔설립과 발전〕 1968년 포항종합제철의 설립과 철강공단의 형성으로 포항시 인구가 급증하자 당시 포항 지역의 유일한 본당이던 포항 본당은 이에 대한 사목 대책으로 자(子) 본당 분가를 준비하게 되었다. 1977년 8월 포항시 덕수동 53-5번지의 대지 214평과 연건평 70평 규모의 옛 일본식 건물을 본당 신자들의 모금과 교구 보조로 매입하고, 그 해 10월 성당 건립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였다. 본당 설정과 함께 김문순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여 준비 작업을 주도, 1978년 3월 옛 일본식 건물을 성당(50평)과 사제관(20평)을 갖춘 임시 성당으로 개축하고, 3월 12일 기쁨과 감사 속에 첫 미사를 봉헌하였다. 한편 1978년 2월부터는 새 성당 건립을 위한 묵주 기도 10만 단 바치기 운동을 전개하였고, 3월에는 본당 주보 <로사리오 성모>를 창간하였으며, 6월에는 예수 성심 시녀회 분원을 설치하여 본당 발전의 밑바탕을 마련하였다.
〔성장과 변모〕 임시 성당의 노후 및 교우수의 증가로 새 성당 건립이 절실하게 요청되자, 1980년 6월 대지 434평, 건평 170평의 개신교 교회 건물을 매입하여 7월부터 신축 공사에 착수하였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헌금 배가 운동을 비롯 공사 현장에서의 노력 봉사 등 신자들의 적극적인 협조로 완공을 본 덕수동 본당은, 1981년 5월 31일 200평 규모의 성당 · 사제관 · 수녀원을 이문희 대주교 주례로 축성하였다.
1985년 4월에는 대화실이 완공되었으며, 1987년 8월에는 성모 성심 시녀회 소속의 성모 자애원 사택(덕수동 42-4번지)을 인수하여 교육관으로 사용하였다. 이후 교육관 신축이 불가피해져 1989년 2월 교육관 신축위원회를 구성하고, 같은 해 6월 120평 규모의 조립식 교육관을 완공하였다.
본당의 성장과 함께 1984년 10월 양로원과 장애인을 돕기 위한 야시장 개설, 1985년 10월 자애원 돕기 야시장 개설과 그 해 12월의 불우 이웃을 돕기 위한 알뜰 시장 개설 등으로 이웃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정기적인 행사로는 여성 단체 피정, 사순절 초청 강연, 사순절 십자가의 길, 성모의 밤, 주보 축일 체육 대회, 성탄절 성가경연 대회 등이 있다. 특히 성모 신심과 순교자 신심 강화의 일환으로 매년 순교자 성월이면 전신자를 대상으로 성지 순례를 실시하여 신앙 선조들의 믿음을 본받고자 노력하고 있다. 1993년 8월에는 장성 본당을 분가시켰고, 10월에는 본당 설립 15주년을 기념하여 본당 연혁, 포항 지역 천주교회 전래기 등을 각종 사진과 화보를 곁들여 자세히 소개한 《덕수 본당 15년사》를 발간하기도 하였다. (→ 대구대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천주교 대구대교구, 《천주교 대구대교구 총람 제2권》, 1986/ 덕수 천주교회, 《덕수 본당 15년사》, 1993. 〔편찬실〕
덕수동 본당
德壽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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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