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고슬라비아 태생의 인도 수녀. 사랑의 선교회 창설자. 본래 이름은 아네스 곤히아 보약스히야(Agnes Gonxha Bojaxhiu). 캘커타에서 시작된 그녀의 활동은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하며, 인도에서는 통상 “마더”(Mother)라고 불려진다.
1910년 8월 27일 유고슬라비아의 스코프예(Skopje)에서 알바니아계 부모에게서 태어나 국립 국민학교 재학중 신심회에 가입하였다. 당시 예수회 회원들이 캘커타로 전교하기 위해 떠났는데, 1925년 12월 30일 그곳에 도착한 제1진 가운데 커성(Kurseong)에서 소임을 맡은 예수회 회원이, 벵골(Bengal)지방에서 보고 느낀것을 감동적으로 기술하여 유고의 신심회 회원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들을 신심회 회원들이 모두 돌려가며 읽었는데 그중의 하나가 데레사 수녀였다고 한다. 그 후 캘커타에서 전교하는 아일랜드의 '로레토(Loreto) 수녀회' 와 연락을 갖게 된 데레사 수녀는, 1928년 11월 29일 '로레토 수녀회' 에 입회하였고, 다음 수련을 위하여 인도의 다르질링(Darjeeling)으로 파견되었다. 그리고 이듬해부터 1948년까지 캘커타 성모여자고등학교에서 지리학 교편을 잡았으며, 훗날 이 학교 교장이 되었다. 또 '로레토 수녀회' 와 관련 있는 인도 방인 수녀회인 성 안나 수녀원의 수련장을 지내기도 하였다. 이 기간 동안 데레사 수녀는 캘커타의 빈민촌에서 봉사하며 살고 싶다는 원의를 원장 수녀에게 간청하였고, 그 청원은 로마로 전달되어 허락을 받았다. 20년 동안 봉직하고 있던 학교를 떠나면서 "부유한 이들의 아이들을 가르치기보다 가난한 사람, 외롭게 죽어 가는 사람을 돌보는 것이 나의 소명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 퇴임의 말이었다. 1948년 캘커타의 빈민촌으로 들어가 거리에서 지내며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기 시작한 데레사 수녀는, 그녀가 교사로 있을 때 가르쳤던 제자들이 함께하기를 간청하여 1949년부터 최초의 12명이 함께 일하게 되
었다. 이는 후에 '사랑의 선교회' 로 인가받았으며, 죽어가는 이들을 위한 임종의 집 · 빈민 학교 · 병원 · 진료소 · 나환자 수용소 등을 운영하였다. 그녀와 '사랑의 선교회' 의 활동은 이미 전세계적으로 유명하며, 1971년 교황 바오로 6세로부터 교황 23세 평화상을 수상하였고, 1979년에는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다.
〔활 동〕 데레사 수녀의 활동은 그녀와 '사랑의 선교회' 를 통해 보다 조직적으로 전개되었다. 선교회의 목표에 명시되어 있듯이 이들은 "가난한 이들과 함께 생활하고 가난한 이들을 찾아 봉사하는 것", "버림받은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버림받은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사랑으로 봉사하는 것"을 목표로 "항상 웃으며 살아가는 명랑한 고난자"들이다. 그녀의 기도에서 밝히고 있듯이 사랑의 선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의 집이며, 붙잡힐까 봐 두려워서, 상처와 온갖 질병으로 뒤범벅이 되어 아무도 접근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의 집이며, 몸을 가릴 천 조각 하나 없이 버려져 있는 사람들, 더 이상 기운이 없어 먹을 수조차 없는 사람들, 그 누구에 의해서도 원해지지 않는 무관심의 희생자들, 이제 곧 죽을 것을 알면서도 길에 쓰러져 있는 사람들, 더 이상 흘릴 눈물이 없어 울지 못하는 사람들, 아무도 가까이하지 않는 천한 사람들"의 안식처이자 가정이고자 한다. 피상적으로 고찰한다면, 데레사와 '사랑의 선교회' 는 자선 단체 혹은 사회 봉사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일이 단순한 자선 활동이나 사회 봉사 활동으로 인식되는 것을 엄격히 경계하고 있다. 이는 일반적인 자선 단체 혹은 봉사활동과의 분명한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 더구나 그들은 일반 자선 · 사회 봉사 활동 단체와는 정반대로 그들의 삶과 활동이 널리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의 확신은 분명하며,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도움이 필요한 한 개개인들의 이웃이 되어 주는 것뿐이다. 그 개개인들은 곧 그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며, 또한 그들의 활동이 하느님의 사업이라면 그분의 방법대로 실현되어져야 한다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데레 사 수녀는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신앙인이다. 우리는 사회 사업가도, 교사도, 간호사도, 의사도 아니다. 우리는 신앙의 형제 · 자매들이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 속에 실재하시는 그리스도께 봉사한다.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시어 목숨까지 내놓으신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살고자 한다. 그분 없이 우리의 삶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분이 우리의 삶을 설명해 주신다. 그분은 우리 삶의 이유요 의미이다. 우리의 전부이다." 하루 24시간 그리스도처럼 살아가고자 하는 그녀의 시(詩) 같은 기도는 그녀와 그녀의 동료들이 무엇을 바라며 어떻게 살고자 하는가를 보여 주는 단적인 예이다.
〔사상 및 영성〕 마더 데레사를 영성 및 사상적 측면에서 고찰한다는 것은, 분명 어울리지 않는 초상화를 억지로 그리려는 시도에 비교할 수 있겠다. 왜냐하면, 그녀자신이 결코 원하지 않으며 그렇게 이해되기를 바라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녀가 여러 자리에서 말하고 밝힌 몇몇의 편린을 통하여 그녀의 사상 혹은 영성의 기초라고 할수 있는 단초들을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녀가 지향하는 지극히 분명하고 단순한 그리고 가난한 삶 그 자체에서 그것을 느낄 수 있을 뿐이다. "일상적인 사랑을 비범한 사랑으로 완수하신 분" 으로 확인되면서 시성된 리지외의 데레사를 수도 서원의 주보로 선택한 마더데레사가 즐겨 인용하는 복음 즉, "서로 사랑하여라(요한13, 34-35),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 25, 35-36. 40)의 구절들은 그녀의 깊은 신앙과 삶의 지향을 한마디로 압축하고 있다 하겠다. 그녀에게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두 개의 계명은 분리될 수 없는 단 하나의 요청이다. 그녀에게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이란, 결코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신학적 교설도 형이상학적, 윤리적 결론도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 친히 가르치신 바 그대로 살아가려는 삶, 구체적인 사랑의 실천일 뿐이다.
마더 데레사에게 그리스도인이란 다름아닌 "자신을 기쁘게 내어 주는 사람" 이다. 또한 "타인의 고통을-그가 우리와 다른 신앙, 가치, 문화를 갖고 있는 전혀 별개의 사람들일지라도-함께 나누는 사람"을 의미한다. 무엇보다 그녀는 우리 그리스도인이 진정 사랑하기를 원한다면 용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것은 또한 용서받기 위한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왜 우리가 용서받아야 한단 말인가? 세상의 수많은 고통과 아픔의 원인은 다름아닌 바로 우리들이기 때문이라고 데레사 수녀는 말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어 가야 한다면 그것은 하느님이 우리를 보살피지 않아서가 아니라 바로 우리들이 나누어 주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며, 우리가 하느님 구원의 손으로서의 도구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세계 평화를 위하여 대포나 폭탄이 결코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매일 우리가 간청하는 사랑과 자비, 기쁨과 기쁨이 가져다 주는 '이해 깊은 사랑' 이 요청될 뿐이라는 것이다. 이 사랑은 또한 겸손을 요구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겸손하게 살지 않는다면, 우리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관심을 기울일 수도 없고, 그들을 이해할 수도 없고 또한 그들을 효과적으로 도울 수도 없기 때문이다. 데레사 수녀는 "함께 나누는 고통"을 우리가 하느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선물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더욱 위대한 사랑과 더욱더 큰 관용에 이르는 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선물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기꺼이 참여하는 것이며, 이러한 고통이 없다면 그들의 일은 단순한 선행이나 도움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데레사 수녀의 표현처럼, "고통은 함께 받아들이고 함께 참아낸다면 바로 기쁨인 것이다."
또한, 데레사 수녀는 '가난' 에 대해서도 매우 독특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녀는 가난을 두 차원으로 나눈다. 하나는 물질적 및 물리적 결핍을 말하며, 또 하나는 정신적 · 영적인 가난으로 소외감, 고독, 이기주의, 윤리 의식의 결여, 애정 결핍, 무엇보다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결여를 지적한다. 전자보다는 후자가 더 근본적인 가난이라는 것이다. 물질적 결핍 혹은 빈곤은 영적 빈곤이 해결된다면 자연히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사랑과 나눔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어떻게 물질적 가난이 해결될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데레사 수녀는 "우리 모두가 함께 가난을 나눌 때 가능하다" 고 대답한다.
또 하나, 그녀의 사상 혹은 영성을 이해하는 하나의 적합한 예를 찾는다면, 교회에 관한 언급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가 교회의 주님이라면, 교회는 더 모범적으로 지금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물음에 데레사 수녀는 반문하듯 되물었다. "그러나 교회는 과연 무엇입니까? 당신과 나 바로 우리가 교회입니다. 예수님은 궁전을 필요로 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만이 궁전을 필요로 합니다." 그녀의 태도는 분명하고 단호하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각 사람 하나하나입니다. 부자들에게 관대한 수도회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우리의 특별한 성소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한 사람 한 사람 안에서 실재가 된 그리스도의 수난을 체험합니다. 우리는 대중을 보살피지 않습니다. 더 큰 일에 봉사하는 성소는 다른 이들에게 유보되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사회 구조를 개조하라고 요구하신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해도 그것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과 하느님 사이의 문제일 뿐, 우리는 명목이야 어떻든 한 사람 한 사람을 돕고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일은 사회 조직에 관한 일도 아니며, 무엇을 판단하는 위치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비평 및 평가〕 마더 데레사를 보다 심도 있게 기술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도' 라는 특수한 정치적 · 사회적 그리고 문화적(종교 및 철학적 전통) 상황에 관한 정확한 이해가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천의 얼굴을 한 불가사의한 땅' 이라고 신비화되기까지 하는 인도라는 대륙은 힌두이즘의 절대적인 영향 아래 유구한 역사와 심원한 종교, 철학, 예술의 위용을 자랑하여 왔다. 그러나 인도의 사회적 실상은 종교적 전통으로 정당화 · 신성화되기까지 하는 뿌리깊은 계급적 착취와 조직적인 불의와 인권 유린, 철저한 상호 무관심, 구조적 사회악의 불평등과 압제가 일반인의 상상을 훨씬 초월하여 팽배한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힌두이즘이라는 종교 전통이 파생한 카스트 제도, 윤회관, 업보설, 가치관이 사회 현실에 끼치는 영향을 심각히 고려하여야 한다. 최근의 중요 논란으로 문제가 되었던 만달 코미션(Mandal Commission) 사태는 이를 정확히 고발하고 있다.
사실, 피어리스(A. Pieris) 신부도 지적하고 있듯이 힌두교만 하더라도 "전문가에게조차 빙산의 일각밖에 보이지 못하는 종교적 이데올로기"로 인도 전역을 지배하고 있다. 인도의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의 실상은 우리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어 충격과 환멸, 그 자체로 다가온다. 인도의 그리스도교마저 힌두이즘에 함몰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인상을 준다. 인도의 해방 신학을 비롯 많은 지성인들이 이들과 정면으로 맞서 싸우고 있다. 이러한 인도의 특별한 상황을 고려할 때 마더 데레사와 그의 동료들의 삶은, 어떤 면에서 인도라는 '문제의 대륙'에서 점화되어 성공에 이른 유일무이한 "그리스도교적 혁명" 종교적 미명 아래 착취와 억압이 정당화되는 가증스런 현실에 대한 "참된 종교 정신의 구현" , 교묘한 힌두이즘의 호교적 변신론(辯神論)에 대항하는 "거부할 수 없는 도전"이라고 평가된다. 이는 조직적으로 전개되는 인도 지성들의 인권 투쟁 혹은 인도의 해방 신학적 투쟁을 훨씬 넘어, 한 여인의 삶으로 그리스도의 참된 메시지를 인도 전역, 나아가 전세계에 일깨운 "위대한 사랑의 폭발"이었다. 사실 인드라 간디(IndraGandhi) 수상마저도 불가능하다고 말했던 일들이 마더 데레사를 통하여 가능해진 것이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모든 평가에 대하여 마더 데레사와 그의 동료들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일을 묵묵히 실천해 갈 뿐이다.
우리 한국 사회 또한 여러 종교 및 자선 단체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많은 사회 복지 기관과 봉사 활동 단체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마더 데레사와 그의 동료들의 활동은 우리들에게 많은 반성과 성찰의 계기를 시사해 주고 있다. 어떤 면에서 우리의 사회 복지 및 봉사활동은 마더 데레사가 보여 주고 있는 모습, 내용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기업화되어 가는 숱한 사회 복지 기관, 사회 복지라는 미명 아래 자행되는 철저한 인권 유린, 기업 같은 그 거대한 조직 속에서-오히려, 이러한 사회 복지 기관은 거꾸로 그들에게는 견딜 수 없는 포로 수용소 같은 공포의 대상일 수 있다-한 개인의 건강한 회생이 과연 얼마나 가능할까? 이러한 것이 과연 그리스도가 진정 원하는 이웃 사랑의 모습일까? 참다운 교회 정신의 구현인가? 우리는 복음의 정신에 비추어 진지하게 되물어 보아야 할 때에 이르렀다. '일을 위한 일' , 봉사를 위한 봉사' 가 되지 않도록 충고한 마더 데레사의 경고는 오늘의 우리 사회에 '궁극적으로 무엇을 위한 이웃 사랑인가? 사회 복지인가? 라고 착잡하게 되묻게 한다. 그녀와 그녀의 동료들의 삶은 단순하고 소박하며 그리고 분명하다. 그리고 끊임없이 가난한 삶을 선택함으로써 그리스도에게 가까이 가고자 노력한다. 이 모든 것을 통하여 우리는 이웃 사랑의 참된 의미와 실재를 재발견할 수 있지는 않을까? 본연의 교회정신, 복음의 참된 의미로부터 일탈된 우리의 걱정스런 사회 복지 현상에 대하여 마더 데레사와 그 동료들의 삶은 어떤 면에서 파격적인 도전이며 경고일 수도 있다. 힌두이즘의 전통 안에도 얼마든지 가난한 이들에게 베풀고 나누라는 교설은 넘쳐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결국, 그분처럼 살아가겠다는 준엄하고 철저한 결단과 선택을 통하여 마더 데레사와 그의 동료들은 우리들에게 "사랑의 혁명"이 무엇인가를 보여 주고, 진정한 이웃 사랑의 깊은 영성적 의미를 끊임없이 일깨워 줄 것이다.
※ 참고문헌 오장균, <현대 영성의 현장, 마더 데레사와 인도 캘커타 1~2>, 《경향잡지》 1514~1515호(1994. 5~6)/ 박재만 역, 《우리는 사랑을 깨달았습니다-마더 데레사의 말씀 모음집》, 성바오로출판사, 1992/ Fr. Paul Puthanangady ed., Towards an Indian Theology of Liberation, Bangalore, 1986/ Fr. Gispert-Sauch ed., Theologizing in India, Theological Pub., Bangalore, 1981/ Arun Shourie, Indian Controver-sies(Esscys on Religion in Politics), ASA, Delhi, 1993/ Aloysius Pieris, An Asian Theology of Liberation, T&T Clark, Edinburgh, 1988/ Katherryn Spink, For the Brotherhood ofMan under the Fatherhood of God(Mother Teresa of Calcutta, her Missionaries of Charity and her Co-Workers), Colour Library International, 1979/ Malcolm Muggeridge, Something Beautiful for God(Mother Teresa of Calcutta), Collins Fount Paperbacks, 1987/ Malcolm Muggeridge, A Gift for God(Mother Teresa of Calcutta), Collins Fount Paperbacks, 1987/ Bipan Chandra, Essays on Contemporary India, Har-anand pub., 1993/ M.N. Srinivas, Caste In Modern India, mpp, Bombay, 1989/ M.N. Srinivas, Social Change in Modern India, Orient Longman, Delhi, 1992. 〔吳將均〕
데레사, 캘커타의 Teresa, Mother of Calcutta(1910~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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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커타의 데레사 수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