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어 데모스(δῆμος, 군중)와 헤르곤(ἔργον, 일)의 합성어로 '제조인' , '공작인' 을 뜻하는 일반 단어였던 데미우르고스를 플라톤이 세상의 '창조자' 라는 개념으로 철학에 처음으로 도입하여 "우주의 창조주이며 아버지" (Timaios 28)라고 했다. 그러나 물질 세계의 창조자 데미우르고스와 이데아 세계의 '선의 이데아' 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분명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데미우르고스가 선하다고 말할 뿐 세상을 창조한 것이 이데아 세계에 대한 질투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았으며 데미우르고스는 가시적인 물질 세계를 관장하고, 이데아 세계의 질서를 모델로 하여 물질 세계에 질서를 유지한다고 했다(동 29~30). 플로티누스는 플라톤의 이러한 이론을 충실히 따르는 한편, 더 나아가서 데미우르고스를 '세상 혼' (Anima Mundi)과 동일시하였다.
구약성서를 그리스어로 번역한 70인역에서는 이 단어가 사용되지 않았고, 신약성서에서는 유일하게 히브리서 11장 10절에 하느님은 만물의 창조주라는 문맥 안에서 사용되었다. 교부 문헌에서는 글레멘스 1세 교황의 《고린토 제1 서간》 20장 11절과 《디오그네토에게 보낸 편지》 7장 2절에 처음으로 등장하는데, 히브리서 11장 10절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은 만물의 창조주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그노시스주의에 나오는 데미우르고스〕 대부분의 교부 문헌들에서 이 단어가 사용될 때에는 주로 그노시스주의와 연관되어 있다. 그노시스주의는 철저히 대립적인 이원론에 기초를 두고 있다. 선과 악, 영(靈)의 세계와 물질의 세계, 영과 육 등은 서로 존재론적으로 대립 관계에 있다. 그노시스주의자들이 말하는 신은 영의 세계만 관할하고 물질의 세상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신이다. 그들은 영의 세계를 어떠한 물질적 요소도 존재하지 않는 "완전함"(플레로마)의 세계라 부른다. 인간의 육신을 포함한 세상의 모든 물질은 나쁜 것이며, 데미우르고스가 세상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그노시스주의는 이러한 이원론에 기초를 두고 있는 여러 학파들을 통칭하는 말로서, 각 학파마다 데미우르고스에 대한 설명 방법도 다르다.
발렌티누스 학파 : 발렌티누스(Valentinus)는 플레로마 세계에 엄격한 계급을 가진 30개 에온(aeon)이 있는데, '성부' 는 최고 에온이고 '소피아' (sophia, 지혜)는 최하위에온이라고 한다. 소피아는 성부를 감히 알려고 해서는 안되는데도 그런 잘못을 저질러 플레로마의 경계선인 '호로스'로 쫓겨난다. 소피아는 성부를 알려고 했던 '나쁜 생각' (엔티메시스, enthymesis) 때문에 '하급 소피아' 를 배태하는데, 이 하급 소피아를 '아카모트' (achamoth)라 부른다. 아카모트는 다시 호로스에서 쫓겨나 생명 없이 허공을 떠돌면서 자기 고뇌에서부터 '물질' (hylikon)을 배태하게 되며, 또한 자기를 구원하기 위하여 파견된 그리스도에 대한 흠모에서 영혼(anima)의 요소를 지닌 정신' (psychikon)을 배태하게 된다. 그 다음 하급 소피아 즉 아카모트는 자기의 '영혼적 실체' (psychikon)에서부터 천상 성부의 모상에 따라 데미우르고스라고 하는 창조신을 만들어 낸다. 이 데미우르고스가 하늘과 땅을 포함한 모 든 물질적 사물을 만든 구약의 신이라는 것이다. 창조신이 인간 아담을 창조할 때, 먼저 흙으로 인간을 빚어 만들고, 그 다음 거기에 자기의 영혼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리고 아카모트에서 생겨난 영(spiritus)을 아카모트 몰래 아담에게 심어 주었다. 이렇게 하여 인간 아담 안에는 세 가지 요소 즉 '물질적 요소' , '영혼적 요소' 그리고 '영적 요소' 가 함께 있게 되었다.
마르치온 이단 : 마르치온(Marcion) 이단은 세상에 존재하는 악의 문제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는 하느님이 무한히 선하고 전능한 분이라면 어떻게 불행과 악이 만연해 있는 그런 불완전한 세상을 창조하셨겠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였다. 그래서 그는 서로 다르고 대립되는 두신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세상의 창조주는 이스라엘 백성의 신, 즉 구약의 신으로서 본성상 사악하지는 않지만, 그가 창조한 물질 세상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세상 악의 원인이 되며, 율법적 사고 방식에 따라 물질적 제사를 요구하며, 보복과 정의와 분노의 신이라는 것이다. 이 창조신은 모세의 율법 기준에 따라 세상을 엄하게 다스리기 때문에 선해질 수 없으며, 인간을 죽음의 틀 안에 가두어 두는 인색하고 폭군적인 신이다. 인간 역시 영혼과 육신이라는 두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영혼은 원래 영의 세계에 속해 있었는데, 지금은 창조신이 만든 육신 안에 감금되어 있다는 것이다. 마르치온은 영의 세계에 속해 있던 영혼이 왜 인간 육신 안에 감금되어 있는지에 대해 발렌티누스처럼 장황하게 설명 하지는 않는다. 선한 신은 창조신의 율법의 폭정에 시달리고 있는 인간 영혼을 불쌍히 여겨 당신 아들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갑자기 (subito) 세상에 내려보내 구원의 복음을 선포하게 함으로써 인간 영혼을 육신으로부터 해방시키게 하였다. 한편 창조신도 자기 아들을 그리스도(메시아)로 세상에 보냈는데, 이 메시아는 구약의 예언자들에 의해 예고되었고, 여인을 통해 받은 육신을 지닌 자로서, 그의 임무는 온 세상 사람들을 유대 백성에 종속시킴으로써 율법의 지배를 온 세상에 두루 확장시킨다는 것이다.
아펠레스 학파 : 아펠레스(Apelles)는 로마에서 마르치온의 제자로 있다가 스승과 결별한 다음, 알렉산드리아에 가서 고유한 이단 집단을 만들어 지도하였으며, 말년에 다시 로마로 돌아왔다. 그는 마르치온과는 달리 유일신 사상을 갖고 있었는데, 마르치온의 두 가지 원천은 전적으로 동등한 신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나는 심판하며 포악하고 호전적인 반면, 다른 하나는 온유하고 평온하며 무한히 선하다." 또 하나는 세상 안에 제한되고 한정되어 있는 반면, 다른 하나는 무한하며 자기 경쟁자를 지배한다. 아펠레스에 의하면, 신성(神性)의 본질은 '최상(最上)의 위대함' 인데, 차등이 있는 두 가지 원천 모두에게 '하느님' 이라는 명칭을 같이 붙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는 '최고 신' 인 반면, 다른 하나는 '최고 신' 에 종속된 하위의 '데미우르고스' (조물주)에 불과하며, 물질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창조주는 자기 경쟁자인 최고 신의 존재를 알고 있는 이상 절대로 자기를 하느님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데미우르고스는 '상위 신' (최고 신)의 피조물일 수밖에 없는 한낱 천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아펠레스는, '상위 신' 이 완전히 영적인 재료를 가지고 이 세상과는 전혀 다른 상위의 천상 세계를 창조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상위의 천상 세계 안에는 수많은 천사들이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뛰어난 능력을 가진 천사를 '고명(高名)한 천사' (angelus inclitus)라 부르며, 이 천사가 후에 우리가 살고 있는 물질 세계의 창조주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창조주(고명한 천사)는 상위 신과 경쟁하기 위해 또는 그의 적대자가 되기 위해 물질 세계를 창조한 것은 아니다. 반대로 그는 "그리스도의 영과 의지와 능력"의 도움을 받고 상위 천상 세계를 모델로 하여 지상 세계를 창조하였기 때문에 이 지상 세계는 원래 악한 것이 아니었다. 창조주가 만든 지상 세계는 우리가 보고 있는 하늘과 땅을 포함한 물질적 세상을 말하며, '상위 천상 세계' 는 물질로 구성된 우리의 하늘 위에 완전히 영적인 요소로 구성된 세계를 말한다. 따라서 아펠레스의 창조주는 마르치온의 창조신과는 달리 악의 기원이 되는 천사가 아니다. 그런데 아펠레스는 이 물질 세계가 창조주의 의도와는 달리 점차 타락해 갔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세상의 악은 어디서 오는가? 아펠레스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불[火)의 천사' (angelus igneus)를 도입하였다. 불의 천사' 는 원래 영적 세계의 천사였지만 타락한 다음, 사악한 물질을 가지고 지상의 음식을 만들어 영혼들을
유혹하였다. 이 음식을 받아먹은 영혼들은 영적 세계에서 지상 세계로 떨어져 '죄의 육신' 안에 감금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타락은 창조주의 본래 의도와는 전혀 다르기 때문에 창조주는 세상을 창조한 것 자체를 후회하게 되었고, 죄의 육신에 감금된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 상위 신에게 그리스도를 보내 주도록 간청하였다는 것이다. 아펠레스의 '불의 천사'와 마르치온의 '창조신' 과의 사이에는 상통하는 면도 있지만 차이점이 더 많다. 우선 둘 다 세상 악의 기원이 된다는 점에서는 상통한다. 한편 마르치온은 구약성서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았고, 다만 창조신의 사악함과 자기 피조물인 인간을 불의하게 박해하는 것을 부각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아펠레스의 창조주(고명한 천사, 데미우르고스)는 악한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불의 천사가 유혹과 거짓을 통해 타락시킨 인간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상위 신' 에게 그리스도를 보내달라고 간청한 것이다. (→ 그노시스)
※ 참고문헌 F.M. Cornford, Plato's Cosmology, London, 1937, pp.33~41/ V. Goldschmidt, La Religion de Platon, Paris, 1949/ F. Lakner, 《LThK》 3, pp. 218~220/ 이형우, 《떼르뚤리아누스, 그리스도의 육신론》, 분도출판사, 1994, pp. 36~41, 61~67. 〔李瀅禹〕
데미우르고스
〔그〕δημιουργος · 〔라〕Demiurg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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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그노시스주의에서는 창조주(데미우르고스)를 세상 악의 기원으로 생각하였다(살트르 주교좌 성당 스테인드 글라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