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철학자. 수학자(해석 기하학의 창시자)이자 물리학자. 1596년 프랑스의 라예(Lahaye)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데카르트는 18세까지 예수회 학원 라 풀레슈(La Fléche)에서 교육을 받았고, 1613년부터 1617년까지는 파리에서 공부하였다. 그 뒤 얼마 동안 파리 사교계에서 어울렸던 그는 1619년에 군 복무를 하게 되었는데, 군복무 중에도 연구 생활을 계속하였다. 이때 명석성의 추구와 진리 탐구의 싹이 움튼 것으로 보인다. 학문 연구를 위해 은둔 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그 당시 그와 접촉한 사람은 극히 소수였다. 그중에서 특기할 만한 인물은 메르센느(M. Mersenne) 신부와 오라토리오회의 베륄(Bérulle) 추기경이었다. 오라토리오회의 정신은 아우구스티노주의이다. 이런 정신은 데카르트의 사상에 쉽게 스며들었다. 1624년 파리로 돌아와 연구에 몰두하였고, 1628년 이후에는 조용한 네덜란드로 가서 자기의 철학 체계를 완성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던 데카르트는, 1649년에 스웨덴의 여왕 크리스티나의 초청을 받아 스톡홀름으로 갔다가 6개월 후에 그곳에서 사망하였다.
저서로는 《방법론 서설》(Discours de la méthode, 1637), 《성찰》 혹은 《제1 철학에 대한 명상》(Meditationes de prima philosophia, 1641), 《철학의 원리》(Principia philosophiae, 1644), , 《정념론》(情念論, Les passions de I'ame, 1649) 등이 있으며 전집으로는 아담(Ch. Adam · P.Tannery) 판이 유명하다.
[사 상] 데카르트 철학의 핵심은 새로운 차원에서의 확실성의 탐구이다. 인식론과 형이상학을 더 이상 회의의 여지가 없는 확실성 위에 성립시키는 것이었다. 이런 확실성에 도달하기 위해 데카르트는 회의(懷疑)라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방법적 회의 : 그에 의하면, 우리 지식이 의존하고 있는 감각은 절대로 확실한 것이 못 된다. 감각적 지식은 확실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가끔 우리를 속인다. 한 번이라도 우리를 속인 것을 우리는 전적으로 신뢰할 수가 없다. 또 깨어 있다는 것이 확실성의 근거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꿈을 꾸고 있을 때도 깨어 있을 때와 같은 확실성을 갖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연장(延長), 양(量), 수(數) , 장소, 시간, 더 나아가서는 '2+3=5' 와 같은 수학 등식과 사각형이 네 변을 갖고 있다는 것 등도 절대로 확실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아직 더 회의할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신(神)이 우리로 하여금 그렇게 지각하도록 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어떤 능력 있고 교활한 악령의 작용으로, 나는 나 자신의 손과 눈, 살과 피 그리고 감각 등을 갖고 있지 않는데도 마치 그런 것들을 갖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해 볼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인식과 존재 : 데카르트는, 나는 모든 것을 의심할 수 있다 할지라도 나는 내가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과 내가 생각하기 위해서는 내가 존재하여야 한다는 것만은 의심할 수 없다고 하였다. 이렇게 데카르트는 자기의 인식과 자기 존재의 확인으로써, 그의 유명한 명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Cogito ergo sum)에 도달한다. 이것은 절대로 확실한 진리이며 철학의 제1 원리이다. 이것을 데카르트는 '생각하는 내가 있다' (Cogitans sum) 라고도 표현한다. 이렇게 데카르트는 명석 판명한 인식에 도달하려 한다. 또 이런 명석 판명에 도달하는 확실성의 규칙에 대해서도 상세히 논하였다. 그는 진리의 규준을 명석 판명한 지각(perceptio clara et distincta)으로 보았다. 여기서 명석 판명이라는 라틴어를 부연 설명하면, 'clara' 는 밝은 것, 맑은 것이니 그 자체로 명백한 것이고 'distincta' 는 구별되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라는 명제는 아우구스티노의 '내가 속는다면 나는 존재한다' (Si fallor sum. 《De Civitate Dei》, XI,C. 26)라는 나의 인식과 존재를 확인하는 명제를 연상하게 한다. 더 나아가 '누가 회의한다면 그는 살고 있는 것이다. 또 누가 회의한다면 그는 왜 회의하는지를 기억하고, 알고 있는 것이다. 또 누가 회의한다면 그는 자기가 경솔하게 동의하여서는 안된다는 것을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Si dubitat, vivit si dubitat, unde dubitet, meminit ; si dubitat, certum esse vult si dubitat, cogitat ; si dubitat, dubitare se intelligit ; sidubitat, judicat, non se temere consentire oportere, 《De Trinitate》, X, 10)라는 아우구스티노의 회의적 방법에도 상조(相照)하게 된다. 그런데 위와 같은 데카르트의 명석 판명한 지각 뒤에는 명석 판명한 관념이 있으며 그것은 존재의 관조이다. 이런 관점은 플라톤에서 플로티노스 그리고 아우구스티노와 안셀모를 거쳐 데카르트에 이르는 사상의 흐름이다. 이런 사고는 기하학적 사고의 영향이기도 하다.
또한 데카르트는 생득 관념(生得觀念, ideae innatae)을 인정한다. 이런 관념은 무한 실체의 관념 즉 신과 유한 실체의 관념인 생각하는 것(res cogitans)과 연장되는 것(res extensa)이다. 그 외에도 밖에서부터 온 관념(ideae advenientiae)과 내 자신이 만든 관념(ideae a me ipso factae)이 있다. 데카르트는 우리 정신 안에는 만들어 질 수도 없고 외부적 대상 세계에서 올 수도 없는 것, 그러나 필연적인 것으로 우리 사고에 속하는 것, 즉 생득 관념이 있다고 하며 그런 생득 관념은 영원하고 필연적인 존재론적 진리라고 생각한다.
신의 존재와 세계의 존재 : 그에 의하면, 우리는 우리 안에 신의 관념, 즉 완전 유(完全有)와 무한 유(無限有)의 관념이 있음을 발견한다. 그런데 모든 관념은 그것에 상응하는 원인을 가져야 하기 때문에 완전 유, 무한 유의관념은 유한 존재인 나로부터 연유될 수가 없다. 이런 신의 관념, 즉 완전 유의 관념은 그 자체가 존재를 내포한다. 이런 인식은 사변적인 추론이기보다는 직관적인 것이다. 또한 이런 무한자의 관념은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 즉 내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으로서의 부정적 관념이 아니다. 이 관념은 최고로 적극적인 관념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최고로 적극적인 유(有), 존재의 관념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관념은 유한 관념보다 선재(先在)한다. 사실 최고 완전 유로서의 신의 관념은 그 자체로 존재를 내포하는 것이기 때문에 신이 존재한다는 것은 나에게 직접 알려지는 것이다. 물론 데카르트도 후험적 신 증명을 인정하나 위에서 말한 본체론적 혹은 존재론적 신 증명은 그의 신 존재 논증 중 진수이다. 신의 존재가 그 개념 혹은 그 본성에 필연적으로 속하는 것은, 마치 삼각형 내각의 크기의 합이 180˚로 일정하다는 삼각형의 본성에 속하는 것과도 같다. 또 그것은 산의 관념에 계곡의 관념이 속하는 것과도 같다. 최고로 완전한 것에 대해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그것에 대해 완전성을 거부하는 것이며 이것은 자기 모순이다.
또한 그에 의하면 세계가 존재하는 것도 확실하다. 신은 최고로 진실한(summe verax) 존재이니 계속적으로 속일 수 없다. 나는 나로부터 연유하지 않는 세계의 관념을 분명히 갖고 있다. 그런데 물체의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신은 나를 계속 속이는 것이 된다. 이것은 신의 진실성에 어긋난다. 그러므로 세계가 존재하는 것은 확실하다. 그렇다고 물체의 세계가, 우리 감각의 불완전성을 고려할 때, 우리가 감각하는 그대로 있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연장적인 세계가 있는 것은 확실하며 이런 관념은 명석 판명한 관념이다.
실체(實體) : 실체의 개념은 데카르트의 형이상학의 핵심 개념이다. 사실 데카르트는 방법적 회의와 새로운 실체 개념으로 근세 철학의 창시자가 되었다. 그의 실체(substantia)는 '존재하기 위해 다른 어떤 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 것' (Aliquid nullo alio indigens ad existendum)이다. 이런 개념은 신에게만 해당되는 개념이다. 전통적 실체 개념은 모든 사물이 그것으로서 있는 것, 즉 다른 사물을 주체로 하여 그것(그런 주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 자체 안에 있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모든 피조물은 나름대로의 실체를 갖고 있다. 실체 개념은 사물의 성질과 작용에서 파악된다. 이런 성질과 작용들 가운데 어떤 것은 우연적(偶然的)인 것이고 어떤 것은 기체적(基體的)인 것이다. 전자는 후자 없이 사고될 수 없으나 후자는 전자 없이도 사고될 수 있다. 예컨대 물체에 있어 위치, 형상, 운동 등은 우연적인 것이지만 공간적 연장은 기체적인 것이다. 심리적 세계에 있어서도 데카르트는 사랑하는 것, 미워하는 것, 의지(意志)하는 것, 판단하는 것 등은 우연적인 것으로 보나 의식은 기체적인 것으로 본다. 그러므로 데카르트는 기체적 성질을 속성(屬性, attributa)라 하고 우연적 성질을 양태(樣態, modi)라고 한다.
우주론(물체의 세계) : 데카르트는 물체의 세계를 연장의 세계로 본다. 그리고 연장은 그 자체로 동질적인 것이기 때문에 모든 물체는 결국 같은 본성의 분자로 구성되어 있다. 물체 세계의 다양성은 장소적 운동에 기인한다. 신은 질료(materia)에 일정한 양의 운동을 부여하였다. 따라서 이런 운동의 양은 증가되지도 감소되지도 않는다. 데카르트의 물체는 수학적으로 파악되는 연장이다. 그리고 그의 물체 세계는 기하학적 기계론으로 설명된다. 동물의 세계도 기계의 세계이며 신이 만든 우수한 자동 기계이다. 동물의 운동은 결국 우주적 운동의 연장에 불과하다.
심리학 : 물체는 연장적인 것(res extensiva)이며 타성적인 데 반해 정신, 즉 혼(魂)은 사고적인 것(res cogitans)이다. 그러므로 혼은 작용적인 것이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인정하는 바와 같이, 실체적 합치(unio substantialis)를 이루는 것이 아니다. 영혼은 순 영적인 것이고 불멸한 것이다. 영혼은 육체(신체)의 형상(形相)이 아니다. 영혼과 육체는 각기 다른 실체이며 원리상 상호 작용할 수 없다. 그런데도 데카르트는 영혼이 송과선(松果腺)에서 육체에 지도적 역할을 한다고 설명한다. 이런 난점은 후에 기회 원인론을 발생시킨다. 사실 데카르트는 영혼과 육체의 밀접한 상호 작용을 인정한다. 그것은 배와 사공의 상호 작용보다 더 긴밀하다. 영혼이 육체에 작용할 뿐만 아니라 감각이나 정념(passions)으로 말미암아 육체로부터 작용을 받게 된다.
영혼은 전(全)육체와 결합되어 있는데 특히 뇌에서 그것도 송과선에서 결합한다. 감각은 영혼의 작용이다. 이런 감각은 외부적인 사물에서 감관에 어떤 자극이 일어나 그것이 신경을 거쳐 뇌에 전달될 때 생긴다. 그러므로 감각의 유적(類的), 종적(種的) 다양성은 신경 자극의 다양성에 근거한다. 이런 다양성에서 정념의 다양성도 생겨난다. 근본적 정념은 경이, 사랑, 미움, 욕망, 기쁨, 슬픔 등 여섯이다. 영혼을 의식으로 이해함으로써 데카르트는 근대 심리학의 개념을 형성한다. 반면, 의지는 자유롭다. 판단은 의지에 속한다. 즉 긍정도 부정도 의지의 작용이다. 모든 오류는 의지에 기인한다. 즉 지성이 충분한 빛, 인식을 갖기까지 의지가 기다리지 않고 동의하는 데에 오류가 성립된다.
윤리학 : 데카르트는 윤리학에 대해 깊이 논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윤리학의 경향은 스토아적이다. 최고선(最高善)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무엇이 선인지 명백하게 인식해야 하며 또 그것을 강력히 원망(願望)해야 한다. 모든 정념(情念)은 그것을 적당한 한계 안에서 절제할 수 있는 한 유익한 것일 수 있다. 우리는 즐거움을 인식 안에서 찾아야 하며, 특히 신의 탁월성의 인식과 우리 영혼의 품위의 인식 안에서 그리고 세계의 광대 무변성의 인식 안에서 찾아야 한다. 이런 인식은 우리를 이기주의에서 해방시킨다. 진실한 사람은 자기 능력을 인식하며 자기 능력의 한계를 안다. 이런 사람은 섭리에 자기를 종속시킨다. 이렇게 하여 그는 정념을 정화하고 자기를 신의 지성적 사랑에로 질서짓는다.
〔비판과 영향〕 비판 : 데카르트는 비범한 재능을 소유하였고 그의 철학적 사고는 근대 철학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재질을 과신하여 인류의 오랜 지적 유산에 대한 깊은 성찰없이 피상적이고 부정확한 지식으로 선인(先人)들의 철학을 비판하여, 취약한 철학 체계를 성립시켰다.
인식과 존재에 있어서 우리가 명증성이 있는 것만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한 것은 옳은 것이다. 그러나 그는 수학적 원리들과 형이상학적 원리들을 회의함으로써 학문적인 취약성을 드러낸다. 그는 이런 기초에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라는 명제를 성립시킨다. 즉 사고에서 존재를 이끌어 낸다. 이런 사고와 존재 명제는 비논리적이며 비약이라는 반론을 야기시켰다. 후대에 특히 칸트에 있어서는 '나는 생각한다' 는 있으나, '그러므로 존재한다' 라는 구절은 제거되었다. 또한 데카르트가 정신 밖의 실재와의 직접적인 접촉 없이 외부 세계의 실재성을 인정하려 한 데에도 큰 문제가 내재해 있었다. 이런 학설은 경험적 인간 삶과 동떨어진 것이다. 이런 데카르트의 잘못된 설에서 근세의 관념론이 발생하였다. 신의 진실성에 근거하여 물체 세계를 인정하는 논법은 원리(原理)의 선결 요구(先決要求, petitio principi)를 내포한다. 신의 완전 유(完全有) 관념에서 신의 존재를 도출하는 것은 잘못이다. 왜냐하면 관념과 존재의 실재성은 다른 차원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논증 과정에서 데카르트는 처음에 회의해야 할 것으로 보았던 인과율을 사용하는 것이다.
형이상학적인 문제에 있어 그의 실체 개념은 신에게만 해당되는 것이기 때문에 세계 존재 즉 피조물들에 대해서는 고유의 의미로 쓸 수 없게 된다. 그러나 그는 피조물들에 대해서도 실체 개념을 적용하는 무리를 감행하였다. 이 때문에 스피노자(B.de Spinoza)는 유일 실체론, 범신론을 주장하게 되었다. 데카르트는 깊은 연구를 하지 않고 실체와 실재적으로 구별되는 우유(偶有)를 부정하여 큰 혼란을 야기시켰다. 그는 애매 모호한 개념인 '양태' 개념을 우유 개념으로 대치시켰다. 이 점에 있어 데카르트는 중세의 유명론(唯名論)을 답습한다. 우주론(물체의 세계)에 있어 데카르트는 물체를 연장성에 환원시키며 이런 연장성설은 물체의 모든 다양성과 작용을 장소적 운동에 귀속시킨다. 데카르트의 이런 기계론은 근세 철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심리학(이성 심리학)에 있어 영혼의 완전한 실체를 인정한 것도 큰 오류였다. 이렇게 그는 영혼과 육체를 완전히 이분화(二分化)시켰다. 데카르트가 감각의 원리를 영혼으로 본 것도 납득할 수 없는 난점이다. 그뿐만 아니라 판단 작용을 의지에 귀속시킨 것도 올바른 설로 인정할 수 없다. 철학의 자율성을 인정한 것은 좋으나 그렇다고 인류가 오랜 삶에서 축적한 지혜와 전통, 권위 등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데는 큰 문제가 따르기 때문이다.
후기에 미친 영향 : 데카르트의 사상은 근대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그의 철학 사상은 두 흐름으로 발전하였다. 어떤 철학자들은 감각과 경험을 불신(不信)하고 이성과 선험적인 방법에 의거하여 과장된 지성주의, 즉 합리주의로 발전하였다. 이런 철학자들은 기회 원인론을 주장한 겔링크스(A. Geulincx), 기회론과 본체론을 주장한 말브랑슈(N. Malebranche), 유일 실체를 주장하여 범신론으로 흐른 스피노자, 그리고 단자론을 주장한 라이프니츠(G.W. Leibniz)와 라이프니츠의 설을 따르면서 데카르트의 연장적 실체와 사고적 실체 사이의 구별을 중시한 볼프(C. Wolff) 등이다. 이들과는 반대로 어떤 철학자들은 경험론을 형성하였다. 이런 경험론자들은 감각 경험을 지식의 유일한 원천으로 삼았는데, 록크(J. Locke), 버클리(G. Berkeley), 흄(D. Hume) 등이다. 전자들이든 후자들이든 다 같이 외부 세계와 정신의 직접적인 접촉을 거부하게 되며 정신을 점차로 자체 안에 밀폐하여 간다. 더 나아가 물질계를 정신의 순수 조작물 혹은 소산물로 돌리게 된다. 마침내 이렇게 해서 회의론의 길을 열어 간다. 이런 회의론을 극복하기 위하여 칸트(I. Kant)는 새로운 해결을 시도하였다. 즉 인간 인식이 사물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오성이 구성적으로 인식한다는 주장을 하여 비판적 관념론을 형성하였다. 이와 같은 흐름은 결국 헤겔(G.W.F.Hegel)의 절대 관념론으로 발전하였다.
달리 말하면 중세의 초월적 세계관은 데카르트에 의해 내재(內在)로 전화했다. 그 후 모든 것은 내재 원리에 의해 설명된다. 그것은 대상에서 주체로, 세계에서 자아로, 외부적인 것에서 내부적인 것으로의 다양한 전환이었다. 데카르트에서 출발한 근대의 내재 원리는 근대와 현대 사상의 핵이며 추진 원동력이었다. 데카르트에서 우리 시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형태의 합리주의와 경험론, 칸트의 비판주의, 또 여러 형태의 형이상학적 관념론에 이르기까지, 더 나아가서 마르크스주의 , 실존주의(existentialism) , 현상학(phenomenology), 실용주의(pragmatism), 어떤 의미로는 분석 철학(analysis philosophy), 구조주의, 후기 근대주의(postmoderimism), 해체론 등 현대 철학 사조 전반에 걸쳐 내재적 의식 혹은 세계 내적 의식은 그 발전의 직 · 간접적인 원동력이 되었다. 이런 내재 원리의 진전은 지난 4세기 동안의 긴 여정을 걸어왔으며 오늘에 이르러서는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단적으로 말해 인간의 사유는 이제 본연의 존재론으로의 전환을 필요로 하는 시점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데카르트주의] 데카르트의 사상은 격렬한 찬반의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중 반대파들 중에 먼저 유물론자이며 유명론자인 흡스(Hobbes)와 가쌍디(Gasenndi)를 들 수 있다. 가쌍디는 《반(反)데카르트 탐구》(Disquisitiones anticartesianae, 1694)를 저술했고, 우에(Huet)는 《데카르트 철학의 검열》(Censura philosophiae cartesianae, 1689)을 저술하였다. 프로테스탄트 신학자였던 보에시우스(G. Voetius) 도 데카르트를 반대하였다. 커드워드(R. Cudworth)는 데카르트의 신 존재 논증과 우주론적 체계를 반박하였으며 영혼의 육체(신체)와의 결합을 어떤 조형적 중재를 통해 설명하려 하였다. 또한 모어(H. More)는 《형이상학 제요(提要), 윤리학 제요》(Enchindion metaphysicum, Enchiridion ethicum, 1679)를 썼다. 예수회는 일반적으로 데카르트 사상에 반대 입장을 취하였으며 1656년 개혁론자들의 시노드(Synod, 대표자 회의)도 데카르트 사상을 금지시켰다. 프랑스 국왕은 1671년에 데카르트의 학설을 파리 대학에서 금지시켰다. 1663년에는 데카르트의 저서들이 로마의 금서 목록에 들었다.
주요 데카르트주의자들 : 데카르트의 철학 사상은 유럽 전역으로 급속히 전파되었다. 요약하여 말하면 데카르트주의자들로부터 두 문제가 제기되었다. 하나는 영혼의 신체에 대한 관계가 어떤 것인가의 존재론적 문제였고, 또 다른 하나는 신에 대한 영혼의 관계가 어떤 것인가의 존재론적 문제였다. 이 문제는 윤리학과 연결되었다. 첫째 문제에 있어서는 영혼과 신체 사이의 대당(對當) 관계를 과장하여, 철학 사조가 기회 원인론(occasion-alismus)과 관념론(idealismus)으로 기울어졌고, 둘째 문제에 있어서는 신에 대한 인간의 종속성을 과장하여 범신론(panteismus)으로 기울어졌다.
① 네덜란드 : 데카르트의 제2의 고향이라 할 수 있고 그가 오랜 세월을 살았던 네덜란드에서 먼저 데카르트의 사상이 널리 전파되었다. 비티히(C. Vittich)는 데카르트 사상과 정통 그리스도교 사상 사이에 합치성을 주장하며 스피노자의 설을 공격하였다. 또한 데카르트의 제자였으며 유트레히트에서 강의한 레니에(H. Regnier)와 레지우스(H. Regius), 그리고 르 르와(H. Le Roy)가 데카르트주의자였으며, 라이덴(Leyden)에는 《자연 철학의 열쇠》(Clavis philosophiae naturalis, 1643)의 저자인 드 레(J. de Raey)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데카르트 철학의 병행론》(Parallelismus aristotelicae et cartesianae philosophiae, 1643)의 저자인 헤레보어드(A. Heereboord)가 있었으며 유명한 겔링크스도 라이덴 대학에서 강의하였다.
처음에 벨기에의 루뱅 대학에서 강의하였던 겔링크스는 《근본적으로 개조된 논리학》(Logica fundamentis suis restituta, 1660), 《소요학파의 정신에 따른 참된 형이상학》(Metaphysica vera et ad mentem peripateticorum, 1695), 《윤리학》(Eithica, 1665) 《참된 자연학》(Physica vera, 1698) 등을 저술하였다. 그는 여기서 더 나아간다. 즉 그에 따르면 외부적 사물은 우리 신체에 작용할 수는 있지만 우리 영혼에는 작용할 수 없다. 신만이 우리 안에 직접적으로 외부적 사물들의 표상을 일으킨다. 영혼도 물론 신체나 물체에 작용할 수 없다. 다만 신이 우리 원의(願意)에 상응하는 운동을 신체 즉 물체에 일으킨다. 단적으로 말해 우리는 '정신의 양태' (modi mentis) 즉 '신의 양태' (modi Dei)이다(Met., p. 56). 내 의지의 행위는 기회적 원인이다. 다시 말해 의지의 움직임은 신이 내 신체에 변화나 운동을 일으키는 기회일 뿐이다. 내 신체 안에 일어나는 물리적 사건도 신이 내 의식 안에 심리적 사건을 일으키는 기회일 뿐이다. 신체와 영혼은 두 시계와 같다. 두 시계는 그 하나가 다른 것에 작용하지 않지만 같은 시간을 유지한다. 그것은 신이 계속해서 그것들의 움직임을 동시적으로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런 기회 원인론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이런 기회 원인론은 영혼과 신체의 관계뿐만 아니라 인간 자아들 사이의 관계 또 신체들 사이, 즉 물체들 사이의 관계에 전반적으로 해당되는 원리가 된다. 따라서 인과 관계는 규칙적으로 일어나는 결과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게 된다. 이런 겔링크스의 설은 신만이 유일한 실재적 원인이라고 주장한 드 라 포즈(L. de la Forge)의 학설을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② 독일 : 쇼뱅(St. Chauvin) 이외에도 클라우스베르크(J. Clausberg)와 베커(B. Bekker) 등이 데카르트주의자들이다. 클라우스베르크는 기회 원인론에 기울어졌으며 더 나아가서는 범신론에 기울어졌다. 그에 의하면 피조물은, 마치 사고가 지성으로 향하는 것처럼, 신에게 향한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은 《철학자의 출발-데카르트의 회의》(Initiatio philosophi, 1665), 《구 논리학과 신 논리학》(Logica vetus et nova, 1656), 《존재 예지론-신과 우리의 인식론》(Ontosophia, seu de cognitione Dei et nostri, 1656) 등이다. 베커는 《데카르트 철학에 대한 진솔하고 성실한 회상》(De philosophia cartesiana admonitio candida et sincera, 1668)을 저술하였다.
③ 영국 : 프란치스코회 회원인 르 그랑(A.leGrand)이 데카르트주의를 전파하였다. 그는 《르네 데카르트의 정신에서 본 옛 철학》(Philosophia veterana mente Renati Descartes, 1671), 《르네 데카르트의 원리에 따른 철학의 설정》(Instiutiones philosophiae secundum principia Renati Descartes, nova methodo adornatae, 1672) 등을 저술하였다.
④ 이탈리아 : 나폴리에는 데카르트회가 형성되었다. 이탈리아에서의 데카르트주의자들은 다음과 같다. 코르넬리오(T.Corneio)는 물리학에 대해 저술하였다. 보렐리(G.A. Borelli는 저서 《동물들의 운동론》(De motu animalium, 1680)에서 생명 현상을 기계론적으로 설명하였다. 파르델라(M.A. Ferdella)는 여러 해 동안 파리에서 살았는데, 그때 말브랑슈와 친교를 맺었으며, 후에는 로마와 나폴리에서 강의하였다. 《아우구스티노에 의해 발견된 인간 영혼의 본성론 : 영혼의 분량론 해설》(Animae humanae Natura ab Augustino detecta in Ⅱ. de quantitate animae, 1688), 《보편적 철학의 체계》(Universae philosophiae Systema, I, I., 1691) 등을 저술하였다. 이 밖에도 제르딜레(C. Gerdile, +1802)도 데카르트주의자였다. 파르델라와 제르딜레는 대중적으로 이탈리아에서 데카르트주의를 전파한 것으로 분류되지만 사실은 말브랑슈의 영향을 더 많이 받은 사람들이다.
⑤ 프랑스 : 미니모회 소속의 메르센느 신부는 데카르트의 절친한 친구였다. 그는 《회의론과 피론회의주의자들에 반대한 과학의 진리》(La verité des sciences contre le sceptique et les pyrroniens, 1630)를 저술하였고, 바이에(A. Baillet)는 《데카르트의 생애》(Vitam Cartesii, 1691)를 저술하였다. 드 클레르셀리에(C. de Clerselier)는 데카르트의 유고를 출판하였다. 드 라 포즈는 《데카르트의 원리에 의한, 인간혼과 그 기관의 기능론과, 인간혼의 육체와의 결합론》(Traité de I'ame humaine, de ses facultés et fonctions et de son union avec le corps suivant les principes de R. Descartes, 1666)을 저술하였다. 또한 같은 해에 드 코르드므와(G. de Cordmoy)는 《영혼과 육체의 식별》(Descernement de l'ame et du corps)을 저술하였다. 레지스(S. Régis)는 <철학의 전(全)과정》(Cours entier de la philosophie, 1690) 등을 저술했으며 파리를 위시하여 여러 곳에서의 강의를 통해 데카르트 사상을 일반화하는 데 힘썼다. Rohault)는 물리학자로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자연학)을 데카르트의 정신에 따른 과학으로 대체하려고 힘썼다. 그의 《물리학론》(Traité de physique)은 뉴톤의 《원리》(Principia)에 의해 불신(不信)되기 전까지 캠브리지 대학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오라토리오회 회원들은 데카르트 사상에 아우구스티노와 가까운 영성적 요인들이 있다고 보아 데카르트주의에 호의적이었다. 오라토리오회의 창립자 베륄 추기경도 데카르트주의의 옹호자였다.
그리고 포르 르와얄(Port Royal) 수도원 중심의 주요 안센주의자들도 데카르트 사상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이런 것은 파스칼(B. Pascal)의 저서들에 잘 나타난다. 데카르트주의와 아우구스티노주의의 결합, 명석 판명한 관념과 마음의 길, 신앙의 길과의 결합 등은 파스칼에서 잘 나타나며 서구 사상에 있어 거듭 반복된다. 아르노(A. Arnauld)는 얀센주의에 속한다. 그는 데카르트의 《명상》(Meditationes)을 반대하는 제4의 시리즈를 썼지만 그의 방법과 관념들은 역시 데카르트의 것이라 하겠다. 그는 《논리학의 기술》(Logique ou I'art de penser, 1662)을 저술하였다. 이 저서는 흔히 '포르 르와얄의 논리학' (Logiquede Port-Rya)이라고 불린다. 니콜(P. Nicole)도 저서 《윤리학 논구》(Essais de Morale, 1671~1674)에서 비슷한 것을 말한다.
신을 나타내 주는 영원한 진리에 근접하게 한다고 보아, 데카르트의 학설을 옹호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보쉬에(J.B. Bossuet) 주교와 페늘롱(F. Fénelon) 주교가 바로 그들 이었다. 보쉬에는 《하느님과 자기 자신의 인식》(De la connaissance de Dieu et de soi-meme, 1702)을, 페늘롱은 《하느님의 존재론》(Traité de I'existence de Dieu, 1713)을 저술하였다. 데카르트주의자는 아니지만 데카르트의 사상과 겔링크스의 기회 원인론에서 영향을 받고 근대 사상의 새로운 단초를 열어간 사람으로서 스피노자와 말브랑슈를 들 수 있다. (→ 말브랑슈 ; 스피노자)
※ 참고문헌 Ch. Adam · P. Tannery, Oeuwres de Descartes, Paris, 1897~1913/ F. Copleston, A history of Philosophy 4, London, 1960/ L.J. Beck, The Metaphysics of Descartes, Oxford, 1965/ A. Del Noce, 《EF》 2, Roma, 1979/ C. Fabro, (cura di), Storia della Filosofica 2, Roma, 1959/ H. Gouhier, La pensée métaphysique de Descartes, Paris, 1962/ J. Hirschberger, Geschichte der Philosophie 2, Freibrug-Basel-Wien 1969(강성위 역, 대구, 1987)/ J.V. Larrain, La metafisica carteziana, Santiago, 1971/ J. Morris, Descartes Dictionary, New York, 1971/ A. Klement, Descartes und Moral, Menseneim a Glam, 1971/ S.V. Keeling, 《EB》 7, Chicago · London etc, 1971/ P. Zeny, Brevis Conspectus Historiae Philosophiae, 4판, Roma, 1962/ Richar. B, Carter, Descartes Medical Plilosophy ; The organic solution to the mind body problem, Baltimore, 1983/ John Foster, The immaterial Self a defenee ofthe Cartesian dualist conception ofthe mind, London, 1991/ Gareth. B, Matthews, Ithaca, 1992/ 최명관, 《방법 서설 · 성 찰 · 데카르트 연구》, 서울, 1983/ 鄭義采, 《存在의 根據問題》, ,성바오로출판사, 1987. [鄭義采]
데카르트, 르네 (1596~1650)
〔프〕Descartes, Ren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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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