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춘추 전국 시대의 노자(老子) · 장자(莊子)의 사상을 계승 · 발전시킨 학파. 무위(無爲)의 치술(治術)과 청정한 생활을 중요시하였다. 노자 · 장자 외에도 도가의 기원과 연관된 인물로 양주(楊朱)가 있으나 그에 관한 기록은 《맹자》, 《회남자》(淮南子) 등에 부분적으로 전해질 뿐이다.
[배 경] 춘추 전국 시대는 주(周) 왕조가 몰락하고 제후국간의 패권 다툼으로 정치 · 사회 · 문화 · 사상에 혼란이 일어났던 격변기였다. 시대적 혼란에 처한 제자 백가들은 여러 설을 주장하였는데, 그 가운데 주나라 문화를 회복하려는 유가(儒家)와 이를 부정하는 도가(道家)가 주요한 학파였다. 이것은 이후 중국 사상사의 큰 줄기를 이루었다. 도가는 다음과 같은 배경 속에서 성장하였다. 첫째, 도가는 중국 남방 문화의 영향을 받아 양자강 이남에서 성행하였다. 남방인은 비옥한 토지와 온난한 기후 등의 자연 혜택으로 안락한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따라서 남방인은 자연을 신뢰하고 부드럽고 너그러우며 자유를 숭상하는 문화를 형성하였다. 노장을 비롯한 후세 도가의 사상에는 이러한 남방 정신이 남아 있다. 둘째, 도가는 은자(隱者)와 깊은 관계가 있다. 특히 도가의 처세 면에서 은자의 영향은 두드러진다. 부정적인 현실관과 소극적인 처세관을 가진 은자는 남에게 알려지거나 명성을 원하지 않는다. 냉정하고 담백한 그들은 자유로운 생활을 숭상하며 혼란한 세속을 피해 은둔하여 청정한 생활로 일생을 보냈다. 이러한 기풍이 장자 이후의 도가들에게 면면히 흐르고 있다. 셋째, 노장은 주 왕조의 통치 방식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그들은 인위적인 예(禮)와 문물 제도가 생명의 참모습을 가려서 세상에 혼란을 가져왔다고 지적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평화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소박한 생명의 본 모습인 자연의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사 상] 인간 지식의 유한성 : 도가는 당시 사회 문제가 정치적 잘못에서 비롯되었지만, 인간 생명의 한계와 속박에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보았다. 인간은 시간과 공간 안에서 살아가는 유형 · 유한한 만물에 속한다. 시간은 시작 · 끝 · 과거 · 현재 · 미래 등으로, 공간은 상하 · 사방 등으로 구별된다. 그 안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시공의 구별에 따라 형형색색으로 나누어지며 또한 끊임없이 변한다. 그런데 인간은 다른 사물과는 달리 지적 활동을 한다는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모든 사물의 옳고 그름 · 선과 악 · 아름다움과 추함 등을 판단하고 그에 따라 가치를 부여한다. 그러나 도가는 현상계에 대한 인간의 지식은 상대적이고 유한한 것이라고 여겼다. 왜냐하면 현상계의 사물 자체가 유한하고 상대적인 존재이고, 그것을 인식하는 주체인 인간의 인식 작용 역시 유한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감각 기관은 한정적이며 감각 작용의 차이에 따라 지식도 차이가 난다.
또한 인간이 사물을 보는 관점은 교육 · 전통 · 환경 등의 영향에 의하여 형성된 주관에 따라 다르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도가는 자아 중심적 주관은 사물의 판단에 있어서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으며, 주관적 판단에 의해 형성된 지식은 상대적 지식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사물을 향한 지적 활동은 사물을 분별하고 그들의 상관 관계를 체계화 · 법칙화하며 또한 분별한 것에 가치를 부여하여 등급을 매긴다. 그러나 사물에 대한 가치 판단은 보는 사람이 취하는 입장에 따라 상대적으로 변한다. 인식의 대상인 사물은 시간과 공간 안에서 무한히 변화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한한 존재가 끝없이 넓은 세계를 지식으로 규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와 같이 도가는 사물을 분별하는 지적 추구의 한계성을 지적하였다.
외재적 사물을 대상으로 성립된 상대적 지식은 인간의 욕망과 연결되어 명리(名利) 추구의 도구가 된다. 도가는 사회 혼란의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가 인간의 욕망이라고 보았다. 욕망이 추구하는 대상은 외재적 사물이다. 맹목적 본능인 욕망은, 일단 사물을 분별하는 지적 작용의 영향을 받으면 강력한 힘이 되고 그 요구 대상의 범위가 끝없이 확대된다. 또한 인간은 욕망의 성취나 실패에 따라 희로애락의 감정 변화를 일으킨다. 도가는 시시각각 변하는 사물에 대한 탐욕과 집착으로 마음의 복잡한 감정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야말로 생명을 죽이는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비판하였다. 도가는 도덕 규범으로서의 인위적인 인 · 의 · 예 · 지의 절대 가치를 부정하였다. 인간 관계를 인위적으로 분별하여 가치 등급을 정하고, 그에 따라 사회 질서와 생활 격식을 규정한 '예' 의 범람은 인간의 향외(向外) 발전의 욕망을 자극하는 난세의 원인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도가는 허식으로 생명의 진실을 가리는 번잡한 예문(禮文)을 인위적 정치의 드러난 병폐로 규정하고 부정하였다.
도가에 따르면, 인간이 지식을 이용하여 욕망의 대상인 외재적 사물을 추구하는 한 결국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게 될 뿐이라고 하였다. 상대적 지식에 매인 인간은 작은 울타리를 치고 자신의 정신을 그 안에 가두어 울타리 밖의 넓고 높은 세계로 날아갈 수가 없다. 생명은 본래 자연이다. 자연은 항상 자유롭게 변화한다. 그런데 인위적인 가치 기준은 생명 변화의 가능성을 제한하고 가치있는 변화의 방향만으로 향하도록 한다. 생명이 일단 그 가치 안에 머무르게 되면, 상대적 가치를 초월하는 절대적 존재는 가려져 드러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도가는 생명의 속박을 풀어서 그 참 모습을 회복하여 난세를 구제하기 위해서는 밖으로 향한 눈을 안으로, 현상만을 추구하는 발걸음을 생명의 근원인 절대 '' 로 향하게 해야한다고 주장하였다.
생명의 근원적 존재로서의 도 : 도가 사상의 중심 개념은 도' 이다. 도가의 도는 생명의 근원으로 우주와 인생 변화의 근거이다. 생명의 근원적 존재로서의 도의 특성은 만물과의 관계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노장은 도가 어떻게 존재하며 어떻게 만물을 생성하는가를 밝히고 인간 삶의 규범으로서의 도를 제시하였다. 그에 따르면, 도는 우주 만물의 본체로서 그 존재함은 시작도 끝도 없으며 만물의 크고 작음에 관계없이 어느 곳에나 존재한다. 이와 같이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초월한 도는 무한하고 무형한 존재이다. 노장은 무한하고 무형한 도를 유한한 인간의 감각이나 인식 작용을 통해서 알 수가 없으며 상대적 개념의 언어로 표현할 수도 없다고 하였다. 즉 '크다' 와 작다' : 등의 상대적 개념으로는 도를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도는 지극히 크기 때문에 우주라 할지라도 도를 떠나 존재할 수 없다. 또한 도는 지극히 작기 때문에 아무리 미세한 물체라도 도 없이는 형체가 이루어질 수 없다.
노장은 도를 무형 · 무명 · 무욕 · 무지 · 무위로 표현하는데 여기서 '무' 는 전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무' 로서 존재하는 도는 상대적으로 대립 관계를 형성하는 현상계의 모든 존재를 하나로 연결하여 화해와 통일을 이룬다. 도는 무욕 · 무형하기 때문에 각양각색의 우주 만상을 하나로 포용하고, 또한 서로 다른 그 모든 형상을 구분하여 각자가 제 모습대로 살아가게 한다. 노장은 이러한 도를 '일' (一)이라고 표현한다. '일' 은 전체의 의미로서 그 안에 '다'(多)의 의미를 내포한다. 즉 '일' 과 '다' 를 하나로 관통한다. 따라서 도의 입장에서 보면 현상계의 모든 사물은 일체(一體)이며, 상대적 가치 개념은 무의미한 것이다. 현상계의 모든 사물은 다른 존재와의 의존 관계 속에서 존재하고 변화한다. 그러나 도는 스스로 존재하고 스스로의 힘에 의해 변화하며 다른 힘에 의존하지 않는다. 또한 무형의 도는 유형의 만물을 생성하고 수렴한다. 도가 만물을 창조하고 주재하는 것은 자기의 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자연적인 변화 작용에 의한 것이다. 단지 도는 만물 안에 내재하여 만물과 함께 변화할 뿐으로, 이것을 '무위' 라고 한다. 무위의 도는 스스로 모든 것을 갖추고 충족한다. 그러므로 외물(外物)을 추구할 필요도 없고 좋아하고 싫어하는 감정이나 자기 중심적인 편견도 없다. 이와 같은 무욕 · 무지 ·무정의 도는 모든 만물이 자연 그대로의 본성을 실현하도록 만물과 함께 변화한다.
'도' 에 관한 노자와 장자의 견해는 도가 우주 만물의 근원이라는 점과 도의 존재 양식이 '무' 라는 점에서는 기본적으로 일치한다. 노자는 도와 만물의 관계에서 일치보다는 초월이라는 점에 보다 더 중점을 두었다. 노자는 생성과 복귀라는 도의 운행에서 만물이 도' 로 수렴하는 것인 복귀를 특히 중요시하여, 만물을 생성하지만 여전히 초연한 존재로서 만물을 무위로써 주재하는 도의 초월성을 강조하였다. 이와 달리 장자는 만물을 생성하고도 여전히 만물에 내재하는 도는 만물의 어느 곳에나 존재한다는 것, 곧 도의 무소부재성(無所不在性)을 중요시하였다. 이와 같은 도의 편재성을 근거로 장자는 도와 만물 사이에 분별을 없애고 그 일치를 강조하였다. 도는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만물의 종합이 도이고 도가 만물이라는 것이다.
무위의 실천 : 도가는 인간 세계와 도' 의 세계가 상반됨을 제시하면서 이 두 세계의 조화와 통일을 추구하였다. 또한 도가는 도는 만물을 생성하고 만물에 내재한다는 이론을 제시함으로써 도와 만물의 연결과 통일의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인간이 도와 만물의 일치 관계를 인식하고 도의 덕' 을 실현한다면 두 세계는 완전히 하나가 되는 것이다. 도의 세계는 무위로써 만물이 생성되고 변화를 이룬다. 따라서 인간이 도의 경지를 실현하는가 못하는가는 무위의 실천에 달려 있다. 도의 무위란 무심히 만물을 생성하고 또한 만물이 본성대로 살아가도록 인위적인 간섭을 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무위를 실천하려면 우선 무욕과 무지의 덕을 실현해야 한다.
도가는 마음을 비우는 수양을 통하여 무욕의 경지에 도달하고 무욕을 통해 무지로 나갈 수 있다고 보았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욕망과 감정, 만물에 대한 상대적 지식과 편견을 버리고, 외부를 향해 작용하는 눈과 귀를 내면으로 향하게 하여 마음을 성찰하는 것이다. 이것은 현실 부정이며 세상의 가치관에 역행하는 길이다. 도가는 이러한 부정의 길을 통하여 생명의 화해, 곧 몸과 마음의 화합과 일치를 이룬다고 보았다. 무욕의 경지에서 마음의 가리움을 제거하면, 그 빈 마음에 사물은 있는 모습 그대로 비쳐진다. 바로 그것이 도 의 현현(顯現)이다. 사물을 인식하는 방법으로는 도를 인식할 수 없다고 본 도가는 수양의 길과 지적 탐구의 길을 하나로 관통하고, 오직 그러한 길만이 유한지(有限知)의 한계를 뛰어넘어 무지, 곧 무한지(無限知)로 도약할 수 있는 길이라고 하였다. 도를 터득한 인간은 도의 관점에서 사물을 본다. 현상을 보면서도 그 근원을 보고, 그 근원을 통해서 상대적인 현상계의 천차 만별한 사물을 하나로 통일하여 본다. 도 안에서는 만물의 차이 선인과 악인의 차별 · 시비의 분쟁 · 가치의 차등 · 삶과 죽음의 구별도 없다. 도는 그 모든 분별을 하나로 연결하고 동시에 다양하게 자기 모습을 드러나게 하며 각자의 소리를 내도록 한다.
도가는 도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가 본래 하나이기 때문에 도와의 일치는 바로 세상과의 일치라고 간파하였다. 또한, 무위의 삶이란 세상 밖이 아닌 세상 안에서 인위적인 분별과 속박을 풀어 버리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세상의 가치관에 구애되지 않으며, 자기에 대한 집착 · 공을 세우려는 야심 · 명예를 탐하는 망상 · 생사의 번뇌까지도 초탈하여 유유히 변화하는 세상에서의 자유로운 삶의 경지를 터득한 성왕(聖王)만이 모든 인간과 사물을 하나로 포용하고 그들이 본성대로 자유롭게 살아가도록 무위 정치를 펼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노장은 사회적 혼란과 정치적 문제의 원인을 인간의 마음에서 찾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길 역시 마음의 변화에서 찾았다. 노장은 난세를 구하는 길과 참 인간으로서 자기 완성에 이르는길을 하나로 보았던 것이다.
〔발전과 영향〕 발전 : 도가는 노장 이래 이렇다 할 뚜렷한 학파를 이루지 못하고 그 사상도 발전하지 못하였다. 한대(漢代)의 회남자(淮南子) · 왕충(王充) . 양웅(揚雄) 등의 사상에 도가의 자연주의 경향이 두드러지지만 그들을 도가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위진(魏晋) 시대의 '현학' (玄學)을 논한 이른바 청담(淸談)학파들은 노장 사상을 중심 사상으로 삼고 새로운 해석을 하였기 때문에 이들을 신도가(新道家)라고 일컫는다. 이들 저술 중에서는 왕필(王弼)의 《노자주》(老子註)와 향수(向秀) · 곽상(郭象)의 《장자주》(莊子註)가 널리 알려져 있다.
왕필은 <노자주>에서 '도' 와 '무' 를 동일한 것으로 보았으며 무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특히 그는 '무' 와 '유' 의 관계를 본말(本末) · 체용(體用)의 관계로 보았다. 천지 만물과 그 변화인 유는 말(末), 용(用)으로 오직 표상이며 작용일 뿐이고, 무야말로 유의 근본이며 공동 원칙이라고 하였다. 유의 존재와 작용은 무에 의지하며 무로 귀결된다. 따라서 천지 만물이 아무리 광대하고 다양하게 변화해도 그 근본은 오직 고요한 무일 뿐이다. 이와 같이 왕필은 도와 무를 만물의 기원이나 생성이 아니라 만물 존재의 근본 원칙 또는 다양성의 공동적인 근거라고 보아, 형이상학적인 방면에서 그 이론을 발전시켰다. 한편 향수와 곽상은 《장자주》에서 도는 무라고 주해하면서 무는 변화하여 유가 될 수 없으며 유도 변화하여 무가 될 수 없다고 하였다. 또한 도에 의해 만물이 생성되었다는 말은, 도가 진실로 무이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만물은 스스로 생겨났으며 독자적으로 존재하고 변화하는 것을 뜻한다고 해석하였다. 노장은 형이상학적 '도' 를 논하면서도, 핵심은 어디까지나 새로운 가치관의 제시와 구세(救世)의 정신에 두었다. 그러나 현학적 담론을 즐겼던 청담파는 도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해석의 발전을 이루기는 하였으나, 풍류 생활에 탐닉하여 가치관 문제나 인생의 지고한 경지, 구세의 정신 등에 있어서 선진 시대 도가의 경지에 이르지는 못하였다.
도교에 끼친 영향 : 도가는 자파의 계통적 발전은 미약하지만 다른 학파의 사상이나 종교의 변화에는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중국의 전통 종교인 도교의 창립과 중국 불교의 변화에 있어서 도가 사상의 영향은 지대하다. 한(漢) 말에 창립된 도교는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오던 민속 신앙과 신선(神仙) 사상이 중심 내용이다. 도교는 창립과 발전 과정에서 신선술의 이론적 근거로 노장 사상을 도입하였고, 노자를 교조(敎祖)로 모셨다. 위진 시대의 위백양(魏伯陽)과 갈홍(葛洪)은 노장 사상을 기초로 도교 교리와 사상을 체계화하였다. 특히 갈홍은 《포박자》(抱朴子)에서, 고대로부터 전해 오던 양생술(養生術)을 종합하여 거기에 도가 사상을 도입하고 신선학의 이론과 실천의 기초를 정립하였다. 그는 '도' 와 현' (玄)으로 신선학의 이론 근거를 삼고 유 · 무 · 형(形) · 신(神) .기(氣) 등의 관념을 빌려 신선학의 이론을 전개하였다. 또한 도가의 무위 청정 정신을 신선술에 응용하여 도교도의 실천적 양생술을 체계화하였다. 이와 같이 신선을 인생 목표로 삼고 장생을 추구하는 도교는 생과 사를 하나로 알고 정신적으로 만물의 근원인 도' 와의 일치를 추구하는 도가 사상과는 거리가 있다. 따라서 도교의 교리와 신선술에 입각하여 도교도들이 해석하는 《노자》와 《장자》는 본래의 노장 사상과는 상당한 차이가 난다.
불교에 끼친 영향 : 중국의 불교는 그 유입 때부터 도가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특히 위진 시대에는 도가와 함께 불교가 성행하였으며 당시 청담파 명사들과 불교 승려들은 서로 교분을 맺고 자주 왕래하였다. 승려들은 도가 사상과 불교 사상이 서로 통하는 점이 많이 있음에 착안하여 노장의 사상과 언어를 빌려 불교 교의를 설파하고 불교 경전을 번역하였다. 이와 같이 도가 사상과 용어를 빌려 불교 사상을 해석한 것을 '격의' (格義)라고 한다. 불교가 중국에 전래된 때부터 약 400년 간(漢, 魏, 晋)을 격의 불교 시대라고 한다. 당시 격의 불교의 성행을 일으킨 중심 인물은 축법아(竺法雅)와 지도림(支道林)이다. 위진 시대의 불교계에서 '반야학' (般若學)이 가장 성행한 것은 노장 사상의 성행과도 관계가 깊다. 격의 불교는 삼라 만상 일체의 법이 모두 공(空)이라고 하는 반야학의 '공' 개념을 노장의 '무' 로, 열반(涅槃)의 경지를 노장의 '무위' 로 해석하였다. 격의 불교는 도안(道安)이 도가와 불교가 서로 다름을 규명하여 배척하기 시작한 이래 5세기경 인도의 구마라집(鳩摩羅什)이 입국하여 불경 번역과 저술 활동을 활발하게 벌이면서 종식되었다. 비록 격의 불교 시대는 종식되었지만 도가의 영향은 오늘날까지도 중국 불교의 저류에 면면히 흐르고 있다. 특히 불교와 도가의 결합으로 중국 불교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선종' (禪宗)이 탄생하였다. 한편 불교의 고승 구마라집, 승조(僧肇), 감산(憨山) 등은 불가의 사상과 언어로 노장을 해석하였다. 이들 주해서는 성인의 지고한 정신적 경지와 수양 공부에 대한 탁월한 이해로 오늘날까지 노장의 명주(名注)로 꼽히고 있다.
유교 · 법가에 끼친 영향 : 유가에 대한 도가의 영향은 이미 순자(荀子)의 천관(天觀)과 인식론, 그리고 동중서(董仲舒)의 우주론 등에 나타난다. 특히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문제를 중심 과제로 다루는 유가 사상은 형이상학적 이론 기초가 빈약하였는데, 도가의 형이상학적 사유는 유가의 이런 취약점을 보완해 주었다. 도가 사상은 《중용》과 《대학》을 비롯하여 송 · 명(宋明)대의 주돈이(周敦頤), 소옹(邵雍), 장재(張載), 육상산(陸象山), 왕양명(王陽明) 등의 사상에 흡수되어 유가 사상의 변화와 발전에 영향을 주었다.
도가와 법가(法家)의 관계는 한비자(韓非子)에게서 두드러진다. 그는 <해로>(解老)와 <유로>(喩老) 두 편의 노자 주해를 쓰고 무위 정치를 논하였다. 그러나 인간의 자유로운 삶을 승상하여 정치적 간섭을 배제한 도가와 극단적인 사회 통제를 주장하는 법가의 무위 정치론은 근본적으로 상반된 내용이라 하겠다. 무위 치술은 오히려 한대(漢代) 초기에 노자의 무위 청정 정신을 정치술로 발전시킨 '황노 사상' (黃老思想)에 의하여 실제로 정치에 응용되어 정치적 효과를 거두었다.
〔우리 나라의 도가 전래〕 우리 나라에 도가 사상이 전래된 것은 삼국 시대이며 도교의 신선 사상과 함께 수용되었다. 그러나 도가 사상이 처음으로 학문으로 연구된 것은 여말 선초의 정도전(鄭道傳)에 의해서였다. <심기리편>(心氣理篇)에서 정도전은 도가 사상의 핵심은 형이상의 '이' 보다 한 차원 아래인 형이하의 '기' 라고 규정함으로써 성리학을 옹호하고 도가를 이단으로 규정하였다. 도가에 대한 이와 같은 견해는 조선 시대를 통해 계속되었기 때문에, 우리 나라에서는 도가 사상의 긍정적 영향이나 올바른 평가가 거의 없었다. 다만 서경덕(徐敬德)은 '기' 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보임으로써, 이이(李珥)는 노자 주석인 《순언》(醇言)을 통해, 그리고 박세당(朴世堂)은 《도덕경》과 《장자》 주석을 통하여 도가 사상에 대해 '비교적' 객관적인 이해와 평가를 보였다.
〔의 의〕 도가가 관찰한 인간 세계의 문제는 상대적 가치관에 얽매인 인간이 절대의 도' 를 가린 데에서 출발한다. 도의 가리움이 난세와 인생의 질곡의 원인이라고 본 도가는 절대의 도로 인간이 회귀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상대적 현상계와 절대의 도는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연결된 하나의 세계이다. 인간은 유한한 안목과 욕망의 집착에서 벗어남으로써 도와 일치할 수 있다. 그러한 일치를 통하여 인간은 생명의 질곡을 풀어 버리고 무한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춘추 전국 시대와 현대와는 오랜 시간의 차이가 있지만, 생명의 구속이라는 문제는 오랜 시간의 차이를 넘어 인간에게 여전히 문제로 남아 있다. 상대적 가치관, 분석적 지식, 물질 만능주의는 여전히 인간 생명의 자유로운 변화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도가 사상은 모든 시대를 초월하여 생명의 자유라는 문제를 제시한다. 또한 도가 사상은 그 문제를 푸는 것은 오직 인간이 절대자에게로 들어감(歸根)으로써만 가능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 《도덕경》 ; 도교)
※ 참고문헌 《老子道德經註》/ 《莊子註》/ 《莊子集釋》. [任金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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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에는 세속을 피해 은둔하며 청정한 생활을 하는 경향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