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교구 소속 본당. 강원도 삼척군 도계읍 도계 3리 306-1 소재. 1965년 12월 10일 북평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사도 성 요한. 관할 구역은 도계읍 전 지역이다. 〔교 세〕 1965년 155명, 1970년 448명, 1975년 304명, 1980년 445명, 1984년 591명, 1990년 632명, 1995년 6월 현재 585명. 〔역대 신부〕 초대 오브리언(A. O'Brien, 신) 안토니오(1965. 12~1966. 11), 2대 폴리(M. Foley, 허) 마우리시오(1966.11~1971. 1), 3대 바논(P. Bannon, 반) 파트리치오(1971. 1~4), 4대 조응환(曹應煥) 타데오(1971. 4~1976. 4), 5대 폴리(1976. 4~1977. 7), 6대 김성훈(金誠勳) 스테파노(197. 7~1979. 11), 7대 박무학(朴武學) 요한(1979. 11~1983. 5), 8대 조규정(曹奎正) 알렉산델(1983. 5~1985. 7), 9대 김창수(金昌洙) 안드레아(1985. 7~1989. 10), 10대 박호영(朴鎬永) 베네딕도(1989. 10~1991.4), 11대 신현만(申鉉萬) 시몬(1991. 4~1993. 9), 12대 김하수(金河秀) 미카엘(1993. 9~현재).
〔공소 시대〕 이 지역에 신앙 공동체가 형성된 것은 1947년 12월 도계 광업소에 취직한 권오진(權五震, 그레고리오)이 전입하면서부터였다. 이후 1952년 12월 10일 도계 3구 권오진의 집에서 삼척(현 성내리) 본당 버크(P. Burke, 裵 신부 집전으로 첫 미사가 봉헌되면서 이 집에 삼척 본당 소속 공소가 신설되었다. 이 공소는 도계 · 장성 지방을 관할하였으며, 권오진이 초대 공소 회장으로 임명되었다.
1958년 5월 교통상의 편의를 위해 삼척 본당에서 묵호 본당으로 소속이 변경되었고, 그 해 8월 권오진 회장이 도계 1구 도원동으로 이사함으로써 공소도 이전되었다. 1959년 5월 다시 북평(北坪) 본당으로 소속이 변경되었고, 1960년부터는 권 회장을 중심으로 성당 건축을 위한 대지 마련에 힘써 1964년 5월 북평 본당 주임 도슨(P. Dawson, 손) 신부 재임 당시 성당 부지 1,006평을 매입하였다. 이러한 준비와 함께 1965년 3월 원주교구 설정으로 춘천교구에서 분리되었으며, 같은 해 12월 10일에는 도계 지방의 석탄 산업 발전과 더불어 인구가 증가되자,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설립과 변모〕1966년 3월 22일 교구 설정 1주년 기념일을 맞이하여, 전 춘천교구장 퀸란(Quinlan, 구 토마)주교가 기부한 기금을 바탕으로 건평 150평의 2층 성당 및 사제관을 신축 · 봉헌하였다. 이외에도 1967년에는 인근 광업소 직원들을 위해 13평 규모의 종업원 숙소를, 이듬해 12월에는 본당 수녀원을 신축하였으며, 1972년에는 종업원 숙소를 헐고 8평의 부속 건물 1동을 지은데 이어, 1978년에는 8평 규모의 창고를 신축하였다.
1990년 현 성당 내부 개축 공사와 함께 사제관을 개축한 도계 본당은 1990년대 들어 성서 강좌, 부모 역할 교육 등 신자 재교육과 각 단체를 대상으로 피정을 실시하였으며, 관내를 10개 구역으로 나누어 소공동체 모임도 진행하고 있다.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 산하에는 레지오 마리애 3개 쁘레시디움 및 성모회, 아가페회, 주일학교, 중고등부 학생회, 교리 교사회, 청년회, 꾸르실료, 장주기 요셉회, 안나회 등이 구성되어 활동 중이고, 1995년 2월부터 선교사 2명이 수녀원에 상주하며 사목에 협력하고 있다. (→ 원주교구) 〔편찬실〕
도계 본당
道溪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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