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행위를 최종 목적으로 이끌어 가도록 질서를 세워 주는 일종의 명령. 도덕률은 모든 법에 고유한 차원으로 있는 인간 행위의 객관적 규범으로 하느님의 의지 표현이며, 인간의 자유 행동을 규제한다.
도덕률은 크게 다음 세 가지로 분류된다. 즉 자연법(自然法), 계시법(啓示法), 인정법(人定法)이 그것이다. 자연 도덕률(自然道德律, lex naturalis)이라고도 하는 자연법은, 비성문율(非成文律)로서, 인간의 이성으로 알수 있는 모든 자연 사물의 본성(natura)에서 나오는 윤리 질서를 말한다. 이것을 신적(神的) 자연법(自然法)이라고도 하는데, 자연을 창조하고 거기에 법칙을 부여한 신의 의지에 그 기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신구약 성서의 계시법은 신적 실정법(實定法)이라고 한다. 신적 자연법과는 달리 계시를 통하여 인간에게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권위적 의지로부터 명령된 것이기에 어디까지나 실정법이다. 따라서 이 실정법은 하느님의 구원 의지에서 나오는 추가 명령의 의무들만을 말하는 것이기에 자연법의 의무들까지 포함하지는 않는다. 자연법은 실정법보다 더 보편적이면서 덜 가변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왜냐하면 창조의 질서를 표현하는 자연법은 불변성의 요소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실정법은 민법이든 종교법이든 그 사회의 역사적 환경과 구체적 발전 상태에 따라 많은 영향을 받는다. 그러므로 실정법은 시대와 장소에 따르는 여러 가지 다른 필요성에 새롭게 적응하기 위한 변경 가능성의 여지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
인정법(人定法)은 자연법과 계시법을 포함하는 신법(神法)과 구별된다. 인정법의 직접적인 기원은 인간의 권위이다. 예컨대, 인정법은 살인이나 절도 금지법처럼 자연법의 의무들을 재입법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 자연법의 직접적 요구가 아닌 다른 법률들을 입법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모든 인정법은 입법권자의 의지가 어느 정도 반영되고, 그 의지에 의하여 효력을 발생한다는 것이다. 인정법은 국가의 민법과 교회의 교회법으로 구분되는데, '유스 카노니쿰' (Ius Canonicum)이라고 불리는 교회법은 《교회법전》(Codex Iuris Canonici)에 수록되어 있다.
〔성서에 나타난 계시법〕 구약의 율법 : 하느님이 모세를 통해서 수여한 신법의 내용이 '토라' (Torah)이다. 모세가 저술하였다고 해서 모세 오경 또는 모세법이라고도 불린다. 본래 토라는 성전에서 종교, 법률 및 도덕 문제에 관해서 제관(祭官)들이 내리던 해답 또는 가르침을 지칭하는 전문 용어였다. 한편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계시 전체를 지칭할 때 '토라' 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호세4, 6 ; 8, 1 ; 아모 2, 4).
① 이스라엘의 율법과 윤리의 특성 : 이스라엘의 율법은 그 법을 운용하는 데 있어서 그 당시 다른 나라 법과는 구별되는 몇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모든 계급적 차별이 없다는 것과, 왕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모두 동등하게 법 질서에 종속된다는 점이다. 이처럼 율법은 인간의 존엄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나라들처럼 잔인한 형벌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하느님 자신이 이스라엘 율법의 입법자이기 때문이다. 이점에 대해 독일의 윤리 신학자 뵈클레(F. Böckle)는 "이스라엘 본래의 윤리적 관습은 그들의 부족, 씨족, 가족의 환경에서 생겨났다. 후대의 편집인들은 그들의 윤리 규정을 야훼께서 이스라엘을 보호하고 합법화하는 협정을 체결하신 그 계약에 종속시켰다" 고 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야훼가 율법의 저자이며 토라는 그분의 선물(신명 4, 5-8)이기에, 왕이나 통치자라 할지라도 이 율법을 개정하거나 자기 임의에 맞출 수 있는 권리가 없다고 믿었다. 이스라엘 율법의 또 하나의 특징은 법적 규범과 윤리적 의무의 밀접한 상호 관계이다. 토라는 단순한 법령집이 아니고 하느님의 정의와 책임의 정신을 교육하는 윤리적 원칙들이 보충되어 있다는 점이다.
② 모세법의 취약점 : 모세법은 어디까지나 신약을 준비하는 것으로, 완전한 법이 아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장점들 외에 취약점도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사랑의 계명이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이웃 사랑은 어디까지나 그들의 형제 · 동족에 그치며, 원수들에 대한 사랑은 없다. 또한 일부 다처제, 이혼 등 윤리적 문제에도 심각한 결함들이 있었다.
신약의 윤리법 : 구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였다. 따라서 신약에 와서는 그 효력과 구속력을 상실하였으며 새 윤리하에 있게 된 사람은 더 이상 구약율법의 지배를 받지 않고 새 법(lex nova, 신약의 법, 그리스도의 법)을 필요로 하였다.
새 법이란 복음이나 기타 신약성서에 포함되어 있는 계명들의 법전에 근거한다. 그러나 이는 새 윤리의 이차적인 개념이다. 왜냐하면 새 법은 먼저 성문화(成文化)된 법이 아니고 내재적이고 생동적인 법이며, 바오로 사도가 말하였듯이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의 법(로마 8, 2)이기 때문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 새 법들의 원리가 성령의 은총이라고 하였다. 이들 계명이나 특히 성령의 은총은 그리스도로부터 오며 그리스도에 의해서 우리를 인도하기를 원한다. 성령과 전승도 우리의 총체적인법으로서 그리스도 자신을 제시하는 데 일치하고 있다. 즉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육화한 말씀인 것과 같이 육화한 하느님의 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마디로 성령을 통해서 우리 생명을 지도하는 새 법은 그리스도이다.
① 그리스도는 우리의 법 : 새 법의 특징은 예수의 산상 설교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마태오 복음 사가는 그리스도를 입법자로 제시하면서 산상 설교에서 그의 모든 윤리적 가르침을 총망라하였다. 여기서 그리스도는 구약의 율법을 염두에 두었지만 그것은 구약을 완성하기 위한것이었다. 공관 복음 사가들은 처음부터 그리스도의 윤리적 메시지(마태 7, 28-29 ; 마르 1, 21-27 ; 루가 4, 31-36)가 그의 새로운 관점과 권위 때문에 청중들을 놀라게 하였다는 데 일치하고 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새 법이 최종적으로 그리스도 자신에 중심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가 바로 새 법의 입법자라는 점이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입법자로서 다른 모든 이익과 사랑하는 사람과 생명까지도 포기하고 당신을 따르도록 요구한다(마태 8, 18-22). 최종적으로 그리스도 자신이 우리 윤리생활의 중심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요한 복음은 공관 복음보다 진일보된 사상과 가르침을 제시하고 있다. 즉 그리스도교 생활의 이념이 보다 풍성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리스도를 본받는 생활(요한 16, 29-30), 특히 사랑의 모범을 실천할 것을 당부한다(요한15, 10-20). 여기서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유일한 인도자임을 알 수 있으며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빛이요 길이요 생명이요 진리임을 알 수 있다(요한 8, 12 ; 9, 5 ; 12, 46). 요한 복음에서 그리스도는 새 법의 입법자로서만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인격자, 즉 법 자체로 당신을 받아들일것을 제시하고 있다.
② 사도들의 가르침 :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가장 충실하게 대변한 사람은 베드로 사도이다. 편지를 통해 풍부한 윤리적 권고를 하고 있는 베드로는, 그리스도인으로 부름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거룩한 모상을 따라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되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바오로 사도에게 있어서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생활하는 법은 바로 그리스도이다. 바오로는 구약의 율법과 그리스도를 명확히 구별하였다. 구약 율법의 목적은 그리스도를 준비하는 데 있으며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서 율법은 종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그리스도가 온 뒤 우리는 더 이상 율법에 예속되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에게 속한다(갈라 3, 24). 그분은 우리의 목적이다(로마 10, 4). 즉 그분이 오심으로써 우리는 해방된 것이다(갈라 5, 1 ; 로마 7, 1). 따라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법을 발견해야할 것이다(1고린 9, 21). 한마디로 신약에 와서는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새 법이다.
〔그리스도교 윤리의 특성〕 구약의 율법들은 이스라엘 주변 국가들의 법들과 유사한 점이 많은데, 이는 구약의 율법이나 외교인들의 법이 다 같이 인간 본성과 관계되기 때문이다. 신약의 법들도 인간의 본성을 통해 알 수 있는 자연법의 윤리 규범에 속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그리스도교의 많은 법들이 자연법에서 유래한다고 할 때, 그리스도교의 윤리와 비그리스도인들의 윤리와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살펴보면 그리스도교 윤리의 특성이 드러날 것이다. 그리스도교 윤리의 특수성을 인정하는 것이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이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교 도덕률의 대부분은 인간의 이성에 의해서 계발된 것들이고 따라서 누구든 접근하기 쉬운 것들이지만, 다른 한편 그리스도교만이 갖고 있는 윤리적 가치와 규범들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윤리 규범과 자연 윤리규범을 구분하게 된 것은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과 인간의 구원 조건에 관한 윤리 문제가 제기되면서부터이다. 그리스도 구원 이전의 인간은 '순수 자연' (natura pura)의 상태, 즉 은총의 신적 생명이 없는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창세 3장). 이 상태에 상응하는 윤리 규범들은 이성의 통찰에 의해서 파악되어 모든 인간에게 의무를 지우는 자연 윤리 규범들이다. 한편 구원 이후의 인간은 자연적 생명에 부가해서 은총의 신적 생명을 얻게 된다. 이 새로운 상태에 상응하는 규범들은 은총의 생명을 지닌 사람들만이 접근하기 쉽고, 그들에게만 의무를 지우는 부가적 규범들이다. 이 새로운 규범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세례를 통해서 그리스도로부터 받는 새 생명, 은총의 생명이다. 이 생명을 받음으로써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새로운 행동 방식이 요구되는데, 이것이 바로 새 규범인 것이다. 그리고 이 규범들의 주요 원천은 신구약 성서에 나타난 하느님의 실증적 계시들이다.
그러나 현대의 몇몇 학자들은 그리스도교만이 갖는 윤리의 특수성을 부인하고 있다. 17세기의 수아레즈(F. Suárez, +1617)나, 현대에 들어와서 잘스망(G. Salsmans), 고페르트(Gopfert), 베르메르쉬(Vemeersch)
잘바(R. Zalba) 등이 그리스도교 윤리의 특수성을 부인하는 견해를 나타냈다. 아벨람(H. Abellam)은 다음과 같은 견해를 표명하였다. "새 법의 모든 윤리 규정들은 자연법의 규정들이기도 하다. 그리스도는 자연법에다 순전한 실정법 종류의 윤리 규정을 더 이상 첨가하지 않았다… 사랑의 규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하느님 사랑과 하느님을 위한 이웃 사랑의 의무도 자연법에서 나오는 의무이다." 그러나 위의 학자들은 새 법 중에 전례 규정과 윤리 규정을 구별하고 있지만, 그들은 그리스도가 자연법에다 새로운 전례 규정 즉 성사들을 첨가하였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들 규정들은 엄격한 의미에서 도덕률의 범주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법, 즉 새 법은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고상한 법이다. 이 새 법은 영원법을 나타내 주는것이고 영원법으로의 가장 완전한 참여이다. 또한 자유로운 피조물들을 그들의 목적으로 인도하는 하느님의 영원한 계획에 대한 가장 적합하고 현실적인 표현이다. 계시는 다른 법들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는데 이들 중 어떤 것은 새 법을 준비하는 것이고 또 어떤 것은 새 법을 적용하고 발전시켜 주는 것이다. 이 법들은 그리스도인을 그의 목적으로 인도하는 객관적 규범을 완성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새 법 자체를 알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새 법을 준비하는 법들은 자연법과 구약의 법 둘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새 법의 형이상학적인 면으로서 전제 조건을 구성하는 것이다. 즉 전자는 자연법이다. 자연법 없이 새 법은, 마치 은총이 자연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존재할 수 없다. 두 번째는 역사적 준비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즉 구약의 법이다. 이 구약의 법은 하느님이 인간성을 새 법에 준비시키는 기묘하고 섭리적인 교육학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자연법〕 정의 : 신약의 새 법은 완성된 법이지만 결코 자연법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며, 그리스도인의 윤리가 존재하는 한 자연법은 그 자체로 효력을 지닌다. 창조된 피조물의 세계에는 자연 질서가 골고루 내포되어 있다. 또 각 창조물에는 어떤 목적론적 성향이 처음부터 부여되어 있다. 이 자연 질서와 목적론적 성향이 자연법의 존재론적 토대가 되고 전제가 된다. 그렇지만 자연 질서가 곧 자연법은 아니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말하는 자연법은 이성의 법이다. 인간이 이성적 존재인 이상 본능에 따라서 자기 목적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인식과 자유로운 책임하에 자기의 목적을 향해서 가야 한다. 또한 인간은 인간 본성에 새겨진 영원법에 의해서 수동적으로만 이끌려 가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지향하고 계획을 세우면서 능동적으로 영원법에 참여한다. 인간에게는 자유가 부여되어 있다. 그런데 자유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 그런 연유에서 인간은 자기 생애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 바로 이 같은 이유에서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이라 할 수 있다. 자기 자신과 타인들을 돌봄으로써 하느님의 섭리, 즉 자연법에 참여하는 것이다.
자연법은 인간에게 "자기 본성에 부합하게 행동하라"는 의무를 부과한다. 인간에게는 자유의 법이 있다. 이 말은 인간 이성의 목적론적 성향과 이에 상응한 원의가 있어 그 법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두 가지를 수단으로 이용하여 인간은 현세계에서 자유 행위의 법을 이끌어낸다. 이차적이고 파생적인 자연 도덕률은 성문율(成文律)이다. 모든 인간에게 구속력을 가하는 어떤 존재론적 구조에 입각해서 인간은 개별적 당위들을 이끌어 내고, 이것을 보편 타당한 것으로 성문화할 수가 있다. 이렇게해서 생긴 계율(戒律)들의 총체를 자연 도덕률 또는 일반적으로 자연법이라고 부른다.
자연법은 그 본질상 철학적 영역의 일부이다. 자연법은 무엇보다도 인간이 이성적 형상으로부터 목적을 지향하는 역동성의 표현이다. 이성적 형상은 자연법의 규범들을 통하여 자연적 인간을 필수적으로 고유한 그의 목적으로 인도한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전통적 가르침에 의하면 이러한 자연법은 '인식 방법을 통해서' 그리고 '동기적 원리 방법을 통해서' 나타난다( I. II. Q. 91. a. 2). 여기서 인식 방법을 통해서라 함은 이성적 형식을 통해서이며, 동기적 원리의 방법을 통해서라 함은 인간 의지가 그의 목적으로서의 선을 향하는 본체론적 성향을 의미한다.
자연법의 존재는 다음과 같은 사항으로 명백하게 증명할 수 있다. 첫째, 성서상의 증명으로서 사도 바오로의 유명한 말을 제시할 수 있다(로마 1, 8-32 ; 2, 14-15). 바오로는 계시된 법을 갖고 있지 않는 자는 자연의 계명을 통해서 알 수 있다고 하였다. 복음은 자연법에 관해서 명백하게 말하지는 않지만 신약에 있어서 법이 명하는 것은 완전하게 지킬 것을 가르치는 주의 말씀 즉 "혁파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습니다"(마태 5, 17)에서 함축적으로 인정된다. 둘째, 교회의 전승과 교도권 안에서도 자연법의 존재가 나타나는데, 교부들은 자연법이 사람들의 마음에 내재하는 것, 생득적인 것, 삽입된 것, 마음에 쓰여진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토마스 아퀴나스와 스콜라학에서도 자연법의 존재와 중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교회 교도권에서도 자연법의 존재와 중요성에 대한 많은 문헌이 반포되었다(DS 160, 1198, 1292, 1767). 교황 비오 12세의 회칙 <인류>(Humani Generis)와 교황 요한 23세의 회칙 <지상의 평화>, 요한 바오로 2세의 최근의 많은 회칙들에서 도덕에 관한 가톨릭의 가르침을 제시하면서 자연법을 상기시키고 있다. 셋째, 자연법의 존재는 인간 이성으로도 증명된다. 자연적 최후 목적은 인간에게 앞서 형성된 것으로서 인간에게 실천적 필요성을 부과한다. 자연적 최후 목적은 인간적 방법 즉 명령이라는 형태로 인간 안에 미리 형성된 것이다. 인간은 이 명령에 의해서 자연적 최후 목적에 실천적으로 필요한 것을 필연적으로 자신에게 부과한다. 따라서 이 명령은 인간 이성으로 하여금 자연적 최후 목적으로 지향하게 하는 것이며, 자연적 최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선을행하고 악을 피해야 한다" 고 가르친다.
특성 : 자연법의 특성은 다음과 같다. ① 보편성 : 자연법은 자연의 개념에서 직접 도출된다. 먼저 자연법은 전 인간에게 필연적으로 확대되며, 전 인간의 완성에 있어 본질적인 원인이 된다. 이러한 자연법은 모든 인간 본성의 내면에 공포된 법으로서 보편성을 가지며, 모든 인간은 자연법에 종속되어 있고 이러한 자연법은 인간 공동체에서 모든 법의 근거가 된다. ② 불변성 : 인간 본성으로부터 직접 유출되는 자연법은 시간상으로도 보편성을 갖는다. 이와 같이 자연법은 그 본질상 불변적이며 어떤 입법권자도 자연법으로부터 면제될 수 없다. 그러나 적용상의 외적인 형식에 있어서는 부수적인 변경이 있을수 있다. 로탱(Lottin)이 말하듯이 행위의 내적인 도덕성은, 구체적일 경우, 그것을 구성하는 환경들이 실재하는 모든 시간을 통해서 불변적이다. ③ 인식 가능성 : 바오로 사도가 이교도들의 자연법 인식 가능성을 서술한 이후(로마 2, 14-15) 제1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모든 것의 원리인 하느님을 자연적 이성으로써 인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정의했다(Ds 1785). 한편 회칙 <정결한 혼인>(Casti connubii)과 <인류>에서는 간접적으로 자연법의 근본 원리를 인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언급하였다. 그리고 이것을 윤리적 자연법의 인식에까지 연장하면서 직무상의 주해를 가하기도 하였다. 모든 사람은 자연법의 근본적인 원리들을 자신의 능력으로 인식할 수 있는 물리적 가능성을 갖고 있으며 타락한 본성의 상태에서는 도덕적으로 하느님 계시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고 하였다.
내용 :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하면, 모든 인정법은 자연법으로부터 온다. 만민법(萬民法, ius genitium)은 연역에 의해서 자연법에서 파생된 인정법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국법(ius civile)은 자연법의 보다 구체적이고 명시적인 규정이다. 만민법이 이성적 연역으로서 자연법에서 파생된 것이라면, 그것은 보다 유적(類的), 인간적, 이성적인 자연법이다. 이렇게 볼 때, 자연법은 덜 규정지어진법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에 의하면, 자연법은 연역적인 추리가 아닌 직관에 의해서 획득된 어떤 기초적인 판단에 근거한다. 이들 자연법은 그 자체로 자명한 원리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은 추리 과정이 아닌 자연적인 경향을 통해서 자연법의 제1 원리들을 배운다. 토마스는 이것을 그 자체로 명백한 윤리 정언의 제1 원리들이라 하며, 이를 추상적 정언의 제1 원리들과 비교한다. 윤리 정언의 제1 원리들에서 인간은 윤리적 행위의 기타 규범들을 이끌어 낸다.
토마스 아퀴나스에 따르면, 창조된 모든 피조물은 영원법에 종속되어 있다. 그러한 이유에서 모든 피조물에는 영원법에 상응한 방법으로 행동할 수 있는 생득적인 성향이 있다. 결국 영원법은 피조물의 본성 속에 내포되어 있어 존재의 본성과 동일한 것이다. 이와 같은 이유에서 존재의 전 질서에 영원법이 새겨져 있다고 말한다. 적용 : 인간 본성의 기본 구조에서 윤리 정언을 연역해 낼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전제되어야만 불변적이고 영구 타당한 윤리 명령을 논할 수 있게 된다.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하면 이 명령들은 자명한 제1 원리이다. 가톨릭 교회가 가르치는 보편 타당한 자연법의 명령은 이 제1 원리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다음에 보다 구체적이고 세밀한 윤리 정언들은 모두가 이 제1 원리들을 해석하거나 적용하는 데서 생긴다. 다시 말해서 불변의 본성과 가변적인 역사적 조건에 비추어 언제나 새로 적용해야 할때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성과 같은 일반적인 존재 구조들이 개개인의 자유 의지에 구속력을 부과하는 윤리적 당위를 제시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일반적인 규정들이 구체적 명령을 내리는데, 그것은 극히 일반적인 방식으로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타인을 존중하라"는 윤리 정언이 내려질 수있다. 따라서 이런 명령들은 인간의 존재 구조에 관해서 초보적인 고찰로 쉽게 알 수 있지만, 반면에 개별적 경우에 구체적 명령을 내리는 데는 모호할 때가 많은 것이다. 따라서 불변적인 윤리 정언들을 일정한 역사적 상황과 연관시켜 구체적인 행동 지침을 만들기 위해서 학자들은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새 법을 발전시키는 법들〕 이 법들을 한마디로 인정법이라 하는데, 입법자의 이유상 교회법과 민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 법의 범위에 대해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새 법에 근거하는 내적 은총에 반드시 반대되고 부합하지 않는 행위들이 있다. 이러한 행위들을 새 법이 그의 첫 제정에서 단죄하지도 금하지도 않았지만, 입법자 즉 예수 그리스도는 이들을 각자의 능력과 책임하에 둔 것이다." 이와 같이 이런 행위에 관한 한 각자가 자유롭게 결정하도록 허락한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행위에 대해서 무엇을 해야 하고 피해야 하는지는 각자의 권한 밑에 있는 것이다.
인정법은 무엇보다도 사회적 동기에서부터 그 필요성이 부각된다. 즉 인간의 사회적 소명에서 오는 것이다. 물론 개인의 유익성도 고려되지만 이는 부차적인 것이다. 인간은 잠정적 사회(국가)와 종교 사회(교회)의 일원으로 부름을 받음으로써 그것에서부터 자기 목적에 보다 쉽게 도달하기 위한 방편들을 받는 것이다. 여기서 개인의 차원을 넘어서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회(교회와 국가)의 문제와도 관계를 맺게 된다. 여기에는 각 개인의 행위, 행위의 규범 문제, 따라서 법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교회법 : 교회법(lex ecclesiastica)은 자연법을 규정하고 완성하는 것으로 교회와 그의 구성 기구에 의해서 정해진다. 지상에서 그리스도교적인 생활, 다시 말해서 교회에 속하는 인간 생활에 관한 것이다. 교회법의 기초는 성서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교회법의 입법권은 그리스도가 사도 베드로에게 위촉한 관할권에 함축적으로 포함되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요한 21, 17). 이 같은 내용은 마태오 복음에도 정확하게 수록되어 있다(16, 15-19). 또한 몇몇 문헌에서 사도들이 이러한 권한을 행사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예루살렘 사도회의(사도 15, 19)와 사도 바오로의 편지(1고린 5, 5 ; 6, 1; 2고린 11, 34 ; 2데살 4, 3-14 ; 1디모 5, 9)에서 발견할수 있고, 그리스도의 다음의 말씀에서 교황과 주교의 관할권이 정당화된다. "그대가 땅에서 매는 것은 하늘에서도 매여 있을 것이요, 그대가 땅에서 푸는 것은 하늘에서도 풀려 있을 것입니다"(마태 16, 19).
① 국법과의 관계 : 교회법은 하느님의 뜻만이 아니고 국법도 전달해 준다. 두 법은 다 같은 조건하에서 하느님의 뜻을 전달하는 것이다. 물론 국가 권위와 교회 권위는 그 대상이나 제정상 질료적으로 구분되는 것은 사실이다. 대상으로 볼 때 교회의 권위는 그의 고유한 목적과 방편으로 즉 하느님의 말씀과 구원의 성사로써 상위적 질서의 사회를 통치한다. 그의 목적은 초자연적인 것이다. 형상적으로 고찰할 때 두 권위는 구분되지 않지만 하느님의 권위를 같은 모양으로 포함하고 있다.
② 복음과의 관계 : 어떤 인정법이든 매사에 있어서 행위의 최종 규범을 구성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 이와 같은 점에서 볼 때 교회법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법이 개인에게 하느님의 올바른 뜻을 전달한다는 말은 타당하다. 그러나 각개인은 교회법이 윤리적 행동에 있어 호위의 역할을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사람에게보다는 하느님께 더욱 복종해야한다"는 베드로 사도의 말은 모든 인정법에 해당되는 것이다. 따라서 복음과 교회법이 상치되지 않아도 복음이 교회법보다 상위에 있다는 것은 논의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복음과 교회법이 다 같이 완성의 임무를 갖고 있는것이다. 그러나 복음이 결코 낡은 법조문만을 항상 주장하지는 않는다. 낡은 법조문은 죽음을 가져오고 성령만이 새 생명을 주기 때문이다(로마 7. 6 ; 2고린 3, 6). 성령은 의화하는 내적 법이다. 쓰여진 법은 부차적인 것이고 의화시키지는 못한다. 복음 또한 쓰여진 법이다. 복음의 역할은 인간이 은총을 받을 준비를 시켜 주고 은총을 올바로 사용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③ 법문 관해(法文寬解)의 덕(virtus epikeiae) : 일명 형평(衡平)의 원리라고도 하는 이것을 토마스 아퀴나스는 "법의 자구(字句)를 따지지 않고 정의의 이념과 공동선이 요구하는 바를 수행하도록 이끌어 주는 덕"이라고 정의하였다. 실정법의 경우에는 이 형평의 덕이야말로 최선의 법 해석자이며, 법만을 본위로 하는 형식주의를 극복하고 보다 심원한 형태로 정의를 구현하게 된다. 형평의 유일한 임무는 입법자 측에서 예측할 수 없는 특수한 경우에 있어서 실정법의 의무로부터 예속자를 자유롭게 해주는 일이다.
국법 : 국법(lex civilis)은 자연법을 규정하고 완성하는 것으로 인간 사회와 그 사회를 구성하는 기구에 의해서 정해진다. 국법은 지상에서 인간 공동체 안에서 생활하는 인간 생활에 관한 법이다.
① 국법의 양심상 준수 의무 : 법은 공동체를 책임진 사람이 공동선을 위해서 만들어 낸 이성의 명령이다. 따라서 입법자 편에서는 일정한 권한과 자격을 요하고, 준법자 편에서는 그 법이 윤리적으로 이론(異論)이 없어야하고(신법에 위배되지 않아야 함), 목적에 부합해야 하고(공동선에 분명히 기여해야 함),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준수 가능해야 한다(보통 인간의 능력으로 준수 가능해야 함)는 세 가지 조건이 따른다. 이 세 가지 조건이 갖추어질 때 정당한 법이 되고 효력을 발생시킬 수 있다.
② 성서상 근거 : 구약성서에서 이미 정의에 대한 입법 현상과 올바른 통치를 지적하였다. "나의 도움으로 임금들이 다스리고 고관들이 정의를 관리한다" (잠언 8, 15)는 성서 구절은 이를 대표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신약에서는 국가 권위와 국가의 명령에 대해서 보다 명백하게 제시하고 있다. 새 계약의 입법자인 예수는 올바른 규범의 정확한 준수를 요구한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 주시오. 그러나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돌려 드리시오"(마태 22, 21). 베드로 사도도 이 문제에 대해서 "주님 때문에 모든 인간적 권위에 순종하시오. 권세를 누리는 임금에게도, 악인들을 징벌하고 선인들을 표창하도록 임금에게서 파견된 총독들에게도 순종하시오…" (1베드 2, 13-15)라고 하였다.
③ 교회의 전승과 교도권 :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의 《신학 대전》에서 다음과 같이 자문자답하였다. "인정법이 양심 법정에서 인간에게 필요성을 부과하는가" 라는 문제에서 "만일 그것이 정당한 것이라면 양심에 의무를 지우는 힘을 갖는다" 고 하였다. 교도권은 국법에 대한 순명의 의무를 강조하고 있다. 이에 대한 교황 레오 13세는 <그리스도교적 민주주의>(Graves de Communi Re, 1901)에서 "자연법이든 교회법이든 국가의 권력과 그의 정당한 명령에 존경과 순명을 할 것을 의무로 부과한다" 라고 하였고, 비오 12세는 <현대 세계에서의 국가의 기능>(Summi Pontificatus, 1939)에서 "교회는 지상 권력에 대한 순명과 존경을 설교하고 가르치는 바이다. 지상 권력은 하느님으로부터 위임받은 그의 고상한 사명을 이행하고, 스승께서 말씀하신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라'는 가르침을 두둔하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 (→ 자연법)
※ 참고문헌 유봉준, 《기초 윤리 신학》, 가톨릭출판사, 1978/ F.Böckle, 성염 역, 《기초 윤리 신학》, 신학 총서 2, 분도출판사, 1975/K.H. Peschke, 김창훈 역, 《그리스도교 윤리학》 1, 분도출판사, 1991/Enrico Chiavacci, Teologia Morale generale, Cittadella, Assisi, 1976/Johannes Stelzenberger, Lehrbuch der Moraltheologie, Verlag F.Schoningh, Paderborn, 1965/ I. Aertnys · C. Damen · I. Visser C. SS. R., Theologia Moralis I, Marietti, Roma, 1967/ Josephus Fuchs S.J, Theologia Moralis Generalis, ed. Univ. Gregoriana, Roma, 1963/ Alphonsus Van Kol S.J., Theologia Moralis Tom I, Herder, Roma, 1968/ Bernhard Hairing, Das Gesetz Christi-Moraltheologie I, Eich Wewel Verlag, Freibung, 1961/ -, Free and Faithful in Christi I, St. Paul Publications, London, 1978/ Herbert Waddams, A New Introduction to Moral Theology, SCM, London, 1972/JosefFuchs S.J. Human Values and Christian Morality, Gilland Macmillan, Dublin, 1973/ Tullo Goffi . Giannino Piana, Corso di morale I, Oueriniana, Brescia, 1983/ Willem Van der Marck O.P., Toward a Christian Ethic Renewal in Moral Theology, Ecclesia Press Shannon Ireland, 1969/ Dizionario Theologico Iterdisciplinare, vol. 2, Marietti, Roma, 1977/ 《NCE》/ Dizionario Eniclopedico di Teologia Morale, ed. Paoline, Roma,
1973. 〔兪鳳俊〕
도덕률
道德律
〔라〕lex moralis · 〔영〕moral la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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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법은 신약을 준비한 것(샤갈 작, 독일 성 스테파노 성당 스테인드 글라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