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대교구 소속 본당. 경북 을릉군 을릉읍 도동 270 소재. 1960년 3월 17일 본당으로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 관할 구역은 울릉읍과 서면 남양리. 〔교 세〕 1968년 1,402명, 1975년 1,581 명, 1980년 1,569명, 1985년 1,710명, 1990년 1,297 명, 1994년 1,010명. 〔역대 신부〕 초대 이길준(李吉俊) 바오로(1960. 3~1966. 1), 2대 이상호(李相浩) 베드로 (1966. 1~1968. 9), 3대 유승렬(劉承烈) 바르톨로메오 (1968. 9~1970. 1), 4대 박병기(朴炳琦) 베네딕도(1970. 1~ 1974. 12), 5대 이강언(李康彥) 바오로(1974. 12~1975. 10) , 6대 강택규(姜澤圭) 예로니모(1975. 10~1979. 11), 7대 윤 임규(尹任圭) 토마(1979. 11~1983. 1), 8대 원유술(元裕 術) 야고보(1983. 1~1986. 1), 9대 우제진(禹珍) 마르철 리노(1986. 1~1988. 6) 10대 박상호(朴相昊) 요한(1988. 6~1990. 6), 11대 김상렬(金祥烈) 토마스 아퀴나스(1990. 6~1991. 3), 12대 김영기(金永基) 안드레아(1991. 3~1993. 10), 13대 최환욱(崔桓旭) 베다(1993. 10~현재). .
〔전 사〕 1882년 개척령 반포 이후 본격적으로 울릉도 에 이주민이 유입되기 시작하였는데, 이때 박해로 불안 에 떨던 천주교인들도 함께 유입되면서 울릉도 지역의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함경도의 남단에 위치한 안 변(내평) 본당 6대 주임인 투르니에(F.Tounier, 杜啓昌) 신부가 위텔 주교에게 보낸 1905년 서한에 보면 울릉도 사람들이 몇 해 전부터 교리를 배우고 있다는 내용이 있 고, 김원영(金元永, 아우구스티노) 신부의 1906년 서한 에도 장마와 산사태로 어려움을 당한 울릉도 예비 교우 들의 소식이 담겨 있다. 그러나 이후 전교 신부나 선교사 와의 내왕이 끊겨 침묵기에 접어들었다.
개인적인 기도 생활 등으로 신앙의 명맥을 유지하여 오던 울릉도에 다시 복음의 꽃이 피게 된 것은 1956년 12월 평남 강서군 성태면 성치리 태생의 현재룡(비오)
이 서정길 주교에게 울릉도 전교를 자원하면서부터이다. 현재룡은 그의 동료 김상윤(요한), 이윤옥(요한 보스코) 과 함께 울릉도에 들어와, 한진호, 최홍, 손태수, 박일동 등 지방 청년들을 주축으로 울릉 중앙 교회 창립위원회 를 구성하고, 농협 건견장(乾繭場)을 빌려 그 해 성탄 준 비와 함께 본격적인 전교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후 예비 자가 급증하자 학교나 군청이 관리하던 넓은 건물을 빌 려서 주일 전례를 거행하였다.
기성회 조직에 이어 수산고등학교의 홍필열 선생의 협 력으로 성가대를 창립하였는데, 이는 지방의 유능한 청 소년과 지식층 젊은이, 부인들을 모으는 계기가 되어 전 교에 큰 기여를 하였다. 1957년 4월에는 현재룡과 한진 호가 울릉도 전교의 첫 보고차 서정길 주교를 만났으며, N.C.W.C.에 구호품을 청하여 빈민 구호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같은 해 5월 서정길 주교는 현상현(로고)을 을릉도 전교 총회장으로 임명하고, 교리를 가르치는 한 편 교회 설립을 준비하게 하였다.
1957년 7월 28일 울릉도 지역 순시차 교구에서 파견 된 전석재(全碩在, 이냐시오) 신부 집전으로 천부국민학 교에서 첫 미사를 봉헌하였다. 이어 포항 예수 성심 시녀 회 수녀가 나환자 치료차 들어왔고, 1958년 5월에는 신 상도(辛尚道, 아우구스티노), 김규태(金圭泰, 디모테오) 신부가 들어와 15개 공소 1,400여 명에게 영세를 주었 다. 같은 해 8월에는 인보 성체회의 윤을수(尹乙洙, 라 우렌시오) 신부가, 9월에는 메리놀회의 포스피칼(H. Pospichal, 배) 신부가 들어가 세례 및 고해성사를 집전하 였고, 1959년 5월에는 이창호(李昌鎬, 안드레아) , 박용 상(가브리엘) 신부가 활동을 전개하였다.
〔설립과 발전〕 1960년 3월 본당 설정과 함께 이길준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였고, 그 해 12월 현 성당 부지 451평을 매입, 이듬해 5월 오스트리아 어린이 전 교회의 모금에 힘입어 성당 신축 기공식을 거행하였다. 1963년 8월 4일 건평 158평 규모의 성당이 서정길 대 주교 주례로 축성 · 봉헌되었으며, 이듬해 예수 성심 시 녀회 분원이 설치되어 사목에 협력하기 시작하였다. 꾸 준한 성장을 이룬 도동 본당은 1963년 7월에 개원하였 던 본당 부설 유치원을 1974년에 재개원하였고, 1978
년 8월에는 사제관을 신축하였다. 1983년 8월에는 성당 축성 20주년 기념 행사를 거행하였고, 1985년에는 도동 수녀원 및 청소년 교육관을 건립하였다. 1985년 청소년 의 해를 맞아 학생 사목과 연수차 들리는 수많은 젊은이 들을 위해 건립된 이 교육관은 1985년 5월 기공한 이래 매일 부역 봉사를 한 신자들의 땀의 결정체였다. 그 후 1995년에는 유치원을 신축하였다.
한편 천부 공소를 울릉도 제2의 본당으로 승격시킬 준 비를 하던 도봉 본당은 1965년 6월 천부 성당 신축 공 사에 착수하여, 1966년에 자본당으로 분가시켰다. 그러 나 천부 본당은 1975년 사제 부족과 지리상의 이유로 다시 도동 본당 관할 공소가 되었다가 1990년 사제관을 건립하고, 1992년 7월 최환욱 신부가 부임함으로써 본 당으로 재설정되었다. (→ 대구대교구 ; 김원영)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천주교 대구대교구, 《대구대교구 총 람》 2, 1986/ 울릉군지 편집위원회, 《울릉군지》, 1988/ 《함경도 선교 사서한집》 II, 한국교회사연구소, 1995. 〔편찬실〕
도동 본당
道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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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