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 순교자. 축일은 2월 6일. 디오클레시아누스 황제 (284~305) 박해 때에 순교하였다. 로마 순교자록에는 "가빠도기아의 가이사리아에서 그 지방 총독 치프리아누 스의 명령으로 체포되어 고문을 당하고 뺨을 맞고, 참수 형을 받아 순교하였다"라고만 전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 나 보다 풍부한 내용들이 구전(口傳)으로 전해지고 있 다. 이에 따르면 가이사리아 지방의 초대 그리스도교 신 자들 중 한 사람인 도로테아는 덕행이 뛰어나 가이사리 아 총독한테 구혼을 받았다. 그러나 이교인이고 방탕한 총독의 부도덕함을 못마땅하게 여긴 도로테아는 이 청혼 을 거절하였다. 그러자 총독은 품행이 좋지 못한 두 여자 그리스도교 신자를 보내어 도로테아를 배교하도록 하였 으나 오히려 도로테아의 열렬한 신앙에 감화되어 회개하 였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총독은 즉시 도로테아와 두 여신자를 체포하여 감옥에 가두었다. 도로테아는 심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모든 것을 하느님께 의탁하고 인내하 였는데, 이런 태도는 그녀의 변호자였던 이교인 테오필 로(Theophilus)를 감화시키게 되었다. 테오필로는 형장으 로 끌려 가는 도로테아에게 "천국에 가면 그곳의 장미꽃 을 보내 주지 않겠소" 하자 도로테아도 진심으로 "네, 반 드시 보내드리겠어요" 하고 약속하였다. 그 후 도로테아 는 곧 순교하였고 테오필로의 부탁도 이루어졌다. 도로 테아가 순교한 이튿날 아침, 뜻밖에도 한 천사가 테오필 로의 집 앞에 나타나 "이것은 도로테아가 보내서 가져온 것입니다" 라고 하면서 장미꽃과 과일 바구니를 전하고 즉시 사라졌다. 이와 같은 확실한 영적을 본 테오필로는 즉시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고 그 후 얼마 안되어 도로테 아의 뒤를 따라 순교하였다고 한다. 중세 시대에 많은 공 경을 받은 도로테아는 독일과 이탈리아 예술가들의 작품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데, 대부분 도로테아가 장미 세 송 이와 사과 세 개가 담긴 바구니를 들고 있고 곁에서 한 천사가 도로테아를 시중들고 있는 모습이다.
도로테아 성녀의 굳은 신앙과 착한 생활은 죄인을 개 종시키고 이교인을 교회로 인도하였다. 그러므로 그녀의 충실한 신앙 생활을 본받아 불신자들과 교회를 떠난 냉 담자들이 교회로 돌아올 수 있도록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겠다.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께 맞갖은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시오. 이것이 곧 여러분의 정신적 예배입니 다" (로마 12, 1).
※ 참고문헌 E.G. Ryan, 《 NCE》 4/ 김정진 편역, 《가톨릭 聖人傳》, 가톨릭출판사, 1987. 〔편찬실〕
도로테아 (?~303)
Doroth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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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발행된 순교자 도로테아의 우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