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1866년 병인(丙寅)박해 때 순교한 파리 외방전 교회 소속 한국 선교사.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은 베 드로. 한국 성은 김(金). 1839년 9월 23일 프랑스 뤼송 (Luçon) 교구 내에 있는 생 틸레르 드 탈몽(St. Hilaire de Talmont)의 한 농가에서 8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나 1852년 10월 소신학교에 입학하여 8년 동안 수학한 후, 1860년 뤼송의 대신학교에 들어갔다. 대신학교 재학 중 인 1861년 12월 21일에 삭발례를 받았고, 이듬해 6월 14일에는 소품(小品)을 받았다. 같은 해 8월 23일 파리 외방전교회 신학교에 입학하여, 1864년 5월 21일 사제
서품을 받았다.
서품되자마자 한국 선교사로 임명된 도리 신부는, 그 해 7월 15일 동료인 브르트니에르(Breturimes, 白), 볼리 외(Beaulieu, 徐沒禮), 위앵(Huin, 闕) 신부 등과 함께 파 리를 출발하여 9월 중순경 홍콩에 도착하였다. 이어 다 시 상해를 거쳐 11월에 만주의 차쿠(岔溝)에 도착, 그곳 에서 입국 기회를 기다리다가 이듬해 4월 17일 만주를 출발해서 5월 27일에 충청도 내포(內浦) 지역으로 잠입 하였다. 입국 후 경기도 용인(龍仁)의 손골〔孫谷里〕 지 역에서 전교 활동을 전개하였으나, 그러나 곧 박해를 맞 이하게 되었다. 결국 베르뇌(Berneux, 張敬一) 주교의 사 환으로 있다가 배교한 이선이(李先伊)의 밀고로 1866년 2월 27일 관헌에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다. 베르뇌 주교, 브르트니에르 신부, 볼리외 신부 등과 함께 투옥된 도리 신부는, 3월 7일 새남터에서 그들과 함께 군문 효 수(軍門梟首)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한국에 입국한 지 10개월 만에 27세라는 젊은 나이에 순교한 도리 신부는, 그 후 1968년 10월 6일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한국에서 박해로 순교한 23명과 함 께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 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현재 그의 유해는 절두산 순교 기념관에 안치되어 있다.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도리 신부의 생애>, 《교회와 역사》
121호(1985. 7), pp. 2~3/ 김옥희, 《한국 천주교회 103위 성인》 Ⅲ, 계성 출판사, 1986/ <달레 교회사》 下/ 《서울대교구 교구 총람》 부록, 가톨 릭 출판사, 1984. 〔李裕林〕
도리, 피에르 앙리 (1839~1866)
Dorie, Pieme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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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도리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