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림동 본당

道林洞本堂

글자 크기
3
1 / 5
서울대교구 소속 본당. 서울시 영등포구 도림2동 161 소재. 1936년 5월 10일 약현(현 중림동) 본당에서 분 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 요한 보스코. 관할 구역은 대림3동, 도림1 · 2동, 영등포1동, 문래1 · 2동, 신길3동 지역이다. 〔교 세〕 1962년 5,259명, 1966년 4,030명, 1972년 5,569명, 1976년 8,060명, 1980년 7,144명, 1985년 8,538명, 1990년 4,574명, 1994년 5,560명. 〔역대 신부〕 초대 서기창(徐起昌) 프란치스코(1936. 5~ 1941.6), 2대 정원진(鄭元鎮) 루가(1941.6~1945. 11), 3대 박일규(朴一圭) 안드레아(1945. 11~1950. 11), 4대 이계선 (李啓先) 레오(1950. 11~1952. 7), 5대 김철규(金哲珪) 바 르나바(1952. 7~1954. 10), 6대 봉희만(奉喜萬) 안토니오 (1954. 10~1956. 7) 7대 박고안(朴槁安) 프란치스코(1956. 7~1957. 1), 8대 이삼복(李三馥) 요한(1957. 1~1958. 4), 9 대 정욱진(丁旭鎮) 토마스 아퀴나스(1958. 4~7), 10대 수 아레스(Joseph Suarez, 徐) 요셉(1958. 7~1964. 12), 11대 몰 레로(G. Molero, 모지웅) 예수(1964. 12~1966. 1) 12대 수 아레스(1966. 1~1969. 1), 13대 트리솔리니(J. Tisolini, 도) 요한(1969. 1~1970. 1) 14대 최광연(崔光淵) 모세(1970. 1~11), 15대 박성종(朴成鐘) 프란치스코(1970. 11~1974. 3), 16대 김형식(金亨植) 베드로(1974. 3~1978. 9), 17대 이용유(李庸儒) 베네딕도(1978. 9~1981. ), 주임 직무 대 리 드 브랑제(O. De Beranger, 오영진) 올리버(1981.3~9), 18대 박병윤(朴炳閏) 토마스(1981. 9~1986. 3), 19대 주 수욱(朱秀郁) 베드로(1986. 3~8), 20대 임상무(林常戊) 베네딕도(1986. 8~1988. 8), 21대 엘리스(G. Ellis, 엄) 제라 르도(1988. 9~1992. 10), 22대 장흥선(張弘善) 요셉(1992 10~현재 ) .
〔공소 시대〕 도림동 본당의 설립 과정은 1920~1930 년대 영등포 지역의 급속한 발전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당시 영등포 일대는 수도권 밖의 지역으로 서울 시 민에게 채소를 공급하는 조용한 근교 농업 지역이었다.
그러다 일제에 의한 토지 조사 사업으로 농토를 강탈당 한 농민들이 일자리를 찾아 대도시 주변으로 몰려드는 현상이 벌어졌고, 영등포 지역도 서울로 올라오는 이농 민들의 거주지가 되어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하였 다. 이와 함께 일본에서 건너온 자본가들은 실업자와 다 름없는 이농민들을 저임금으로 고용하고, 영등포 지역의 편리한 교통 · 풍부한 공업 용수 · 저평한 지형 등을 입지 조건으로 하여 이 일대를 근대적 공업 지역으로 변모시 켰다. 그 결과 1936년에는 수도권에 편입되었다.
한편 이 당시 서울에는 약현(현 중림동), 종현(현 명동) , 백동(현 혜화동) 성당이 있었는데, 영등포 지역의 신자들 은 급격한 증가에도 불구하고 평상시에는 공소 회장 집 에서 첨례 예절을 진행하는 한편, 대축일 때는 나룻배로 한강을 건너 약현 성당에 모여야만 했다. 1930년 6월 현 영등포 경찰서 뒤쪽에 8칸짜리 공소를 건립한 이 지 역 신앙 공동체는 곧 이어 영등포 지역의 발전 추세와 영 등포 수도권 편입 소문 등에 따른 인구와 교우수의 증가 예상 등을 토대로 빈궁한 생활 수준임에도 본당 승격 운 동을 전개하였다. 1935년 2월에는 예수 성심회가 조직 되어 이 승격 운동의 중심이 되었고, 드디어 1936년 5 월 10일 영등포 본당으로 승격하였다.
〔설립과 발전〕 본당 승격 운동과 함께 1937년 1월 31 일 현재의 당산동 2가 지역에 성당을 신축 축성한 영등 포 본당은 지역적 특성을 고려, 그 사목 방향을 분명히 하고자 요한 보스코 성인을 주보로 정하였다. 그러나 이
때 축성한 성당이 공소의 경당 건물로 설계 · 건축한 임 시 성당이었고, 교세 증가와 성당 위치가 공업 지대의 중 심부였을 뿐만 아니라 침수가 빈번한 저지대라는 점을 감안하여, 1940년 5월 26일 도림동 산 43번지(옛 애전학 교)로 이전을 확정하고, 1941년 7월 20일 신축 축성함 으로써 한강 이남 최초의 본당이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 다.
본당이 이전한 1941년부터 1958년 이전까지는 본당 의 시련기로, 일제 말기의 탄압과 6 · 25 동란, 전쟁 복 구 사업 등 민족과 교회의 시련을 함께하였다. 민족사의 이러한 시련은 신설 본당인 도림동 본당의 순조로운 발 전을 제약하였지만, 그 속에서도 역대 성직자 · 수도자· 교우들의 노력으로 교세나 신심 활동 면에서 두드러지지 는 않았으나 지속적인 발전을 이룩하였다.
광복 후 행정 구역 명칭이 변경됨에 따라 1946년 10 월 본당명을 도림동 본당으로 개명하였다. 6 · 25 동란 중에는 이현종(李顯鍾, 야고보) 보좌 신부와 서봉구(마 리노) 복사가 피살, 순교하는 비운을 겪기도 하였다. 전 쟁의 와중에도 노기남 주교의 특명을 받은 김창문(요셉) 신부가 2년 간 이 일대 사목을 담당하며 폐허가 된 도림 동 본당의 복구 기반을 마련하였다. 1947년 본당에 진 출한 서울 성가 소비녀회의 지도를 받아 성심회, 안나회, 데레사회 등의 신심 단체들이 활성화되어 이후 전쟁 복 구에도 협력하였다.
〔성장과 변모〕 1958년부터 본당은 교구와 살레시오회
의 협의에 따라 살레시오회에 위임 · 관리되었다. 이 위 임 결정에 따라 1957년 4월 살레시오 수녀회가 본당에 진출하였고, 이듬해 7월에는 수아레스 신부가 10대 주 임으로 부임하였다. 이후 본당은 '미국 가톨릭 복지 협 회' (N.C.W.C.)의 구호 물자를 통한 구호 사업에 주력하 는 한편 교육 사업에도 힘써, 1964년에 개원한 샛별유 치원(현 돈 보스코 유치원)은 일반 유치원 교육과 함께 종 교 교육을 실시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또 1968년에 문을 연 애전고등공민학교(1976년 폐교)는 중학교에 진 학하지 못한 청소년들에게 중학교 과정을 가르쳤다.
잇따른 자(子) 본당 분리에도 불구하고 신자수가 계속 증가함에 따라 1960년에 새 성당을 신축하기로 결정하 고, 이듬해 8월 15일 착공하여 1963년 9월 12일 봉헌 식을 가졌다. 한편 1968년 4월 살레시오 수녀회의 철수 에 이어 1970년 1월에는 살레시오회의 위임 관리를 마 치고 교구로 이관되었다. 살레시오회의 재정 지원에 의 존하던 도림동 본당은 1960년대 들어와 경제 개발에 따 른 한국 교회의 자립 추세에 발맞추어 1968년부터 서서 히 재정 자립을 이룩하였으며, 1973년 도림천 범람 때 수재민에게 성당을 숙소로 제공하는 한편 각종 구호 물 품을 제공하는 것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봉사 활동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이와 함께 1971년 5월 도림 신용 협 동 조합을 발족하였고, 1974년 8월과 1979년 4월에 성 당 및 축대 보수 공사, 1981년 9월에는 사제관 · 교육 관 · 사무실 보수 공사를 실시하였다. 1982년 11월 수녀 원을 사제관 3층으로 신축 이전하였으며, 1984년 1월에 는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 종합 교육관인 돈 보스 코 교육관을 완공하는 등 재정 자립을 바탕으로 부대 시 설 및 주변 환경을 정리해 나갔다.
1986년에는 본당 창설 50주년을 맞아 본당 50년사인 《모랫말 반세기》를 간행하였고, 1988년 7월에는 본당 사목 중 공산군에 의해 순교한 이현종 신부의 뜻을 기리 며 추모 미사와 함께 장학 사업회를 발족, 불우 학생들에 게 학자금을 지급하고 있다. 1990년에는 대대적인 교적 정리 작업을 통해 5,000여 명의 행불자를 교구 이향 사 목부에 보고하고 실제 신자수를 파악하였다.
한강 이남 최초의 본당이며, 주위에 큰 공장들이 밀집 한 공업 지대로 주민과 신자들의 대부분이 공장 근로 자 · 일용 근로자 · 영세 상인인 도림동 본당은, 최근 관 내에 고급 아파트 단지가 급속히 들어섬에 따라 신자들 의 직업이 보다 다양해지고 경제적으로도 부유해지는 편 이다. 그러나 아직은 영세민의 비중이 더 높기 때문에 가 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라는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함과 동시에, 소공동체 기반 조성 · 가정 공동체의 복음화 · 나 눔의 공동체 실현이라는 1995년의 사목 목표에 따라 본 당의 재도약을 다짐하고 있다. 그 동안 분리된 자 본당으 로는 1948년 김포, 1954년 명수대와 대방동, 1957년 당산동, 1963년 구로3동, 1976년 대림동 본당 등이 있 다. (⇦ 영등포 본당 ; → 서울대교구 ; 살레시오회)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천주교 도림동 교회, 《모랫말 반세 기》, 1986/⸺, 《노랫말의 순교자》, 1989.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