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니코 (1170~1221)

Domimic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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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도미니코(안젤리코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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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도미니코(안젤리코 작)

성인. 도미니코 수도회, 일명 설교자 수도회(Ordo Prae- dicatorum) 창설자. 축일은 8월 4일. 스페인 북부 칼라루 에가(Calaruega)에서 태어나 수석 사제인 삼촌에게 일찍 이 성직 교육을 받은 후, 1186년부터 10년 동안 팔렌치 아(Palencia)에서 문학과 신학을 공부하였다. 유년 시절 흉년이 계속되었는데, 심한 기근 때문에 아사(餓死)하는 사람들을 많이 목격한 도미니코는, "내가 어떻게 공부를 계속할 수 있겠는가" 하며 가지고 있던 소중한 책들을 모두 처분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도왔다고 한다. 1196/ 1197년 오스마 대성당의 참사회 회원이 되어 1198년경 부터 공동 생활을 시작하였다. 1203년 디에고 주교와 함께 외교 사절로서 덴마크 등 북부 유럽을 여행하면서 이단, 특히 알비파 이단의 위협에 직면한 교회의 현실을 목격하고 자신의 관상 생활로부터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 을 절감하게 되었다.
도미니코는 덴마크에서의 외교 사절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스페인으로 귀국하던 도중 교황청을 방문하고, 인노첸시오 3세(1198~1216) 교황을 알현하였다. 교황은 알비파 이단에 대응하기 위하여 시토회 수사들로 구성된 설교 선교회에 그를 합류시켰다. 1206년 도미니코는 프 루이유에 수도원을 설립하였는데 회원은 알비 이단에서 개종한 여성들이었다. 9년 간(1206~1215) 시토회에서 활 동한 도미니코는 알비파 이단의 위협에 직면한 교회를 수호하기 위해서는 사도들과 같은 청빈한 생활을 하면서
복음을 전파하는 설교자회 창설이 절실하다는 것을 깨닫 게 되었다.
1215년 도미니코는 툴루즈(Toulouse)에서 첫 회원을 모집하고 풀크(Fulk) 주교의 허락을 받은 후 교구 내에서 수도 생활을 하며 설교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한 교구에 서만 활동할 생각이 아니었기 때문에 풀크 주교와 동행 하여 그 해 개최된 제4차 라테란 공의회에 참석, 교황을 알현하고 세계적 차원에서 설교자들의 수도회 창립이 필 요함을 설명하고 교황의 허가를 요청하였다. 교황 인노 천시오 3세는 도미니코의 생각에 동의는 하였으나 그 공 의회가 새로운 수도회의 창설을 금하기로 결정한 직후였 기 때문에 인가를 유보하였다.
교황 인노첸시오 3세의 뒤를 이은 호노리오 3세(1216 ~1227)는 1216년에 도미니코의 세계적인 설교자들의 수 도회 설립을 공식으로 승인하였다. 로마에서 돌아온 그 는 툴루즈에 모인 16명의 수사들을 처음으로 유럽 각지 로 파견하고, 그중 7명은 파리 대학에서 설교사 수도원 을 설립하도록 하였다. 파리 대학에서의 수도원 설립은 도미니코 수도회가 대학의 신학 연구에서 크게 활약하는 기틀을 닦은 것이었다. 또한 도미니코는 보다 큰 도시, 특히 교육의 중심 도시에 수도원을 설립함으로써 수도회 의 효율적 목적 달성을 기하였다. 1217~1220에 그는 이단의 오류와 올바른 교의에 대한 설교 · 그가 파견한 수사들의 방문 · 회원 모집 · 수도원 건립, 그리고 수도회 에 대한 교황의 지속적인 지원 모색 등을 위해 분주하게 활동하였다. 그 결과 그가 사망하던 1221년에는 서유럽 8관구에 500여 명의 수사들과 60여 개의 수도원이 건립 되었으며, 1300년경에는 500여 수도원에 1만여 명의 수도 회원으로 증가하였다. 그는 1234년 교황 그레고리 오 9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사 상〕 도미니코는 프란치스코 성인과 함께 12~13 세기에 교회를 쇄신시키는 데 많은 업적을 남겼다. 다감 한 성품을 지녔던 프란치스코 성인과는 달리 도미니코 성인은 의지가 강하고 통솔력이 뛰어났다. 그의 신학적 사상은 당시 교회를 위협하던 알비파 이단의 오류를 지 적하고 정통 교리를 전파하고, 교회를 수호하기 위하여 설교자들의 수도회를 창립하는 과정에서 엿볼 수 있다. 알비파 이단은 이원적인 절대 존재 즉 선과 악이 영과 물 질을 각각 지배한다는 페르시아 마니교의 가르침에 기초 를 두고 발전시킨 것이다. 이에 따르면 먹고 마시는 것, 결혼과 출산, 세상적인 물질의 소유 등 육체와 관계된 모 든 것들은 본질적으로 악한 것이며, 이런 물질적인 것을 포기하고 매우 검소한 생활을 해야 '완전한 자' 가 되며, 그렇지 않은 일반 사람들은 하느님에게 버림받게 된다는 것이다. 알비파 이단의 이러한 주장은 제도적인 교회에 싫증이 난 남부 프랑스의 많은 사람들에게 종교적인 하 나의 대안(對案)으로서 소위 '완전한 자' 라고 하는 알비 파 성직자들의 금욕적인 생활은 일부 로마 가톨릭 성직 자들의 부유하고 비도덕적인 처신과 대조가 되었다.
도미니코는 이러한 이단을 대적하는 유일한 방법은 초 대 교회에서처럼 청빈한 삶 속에서 정통 교리를 적극적
으로 전파하는 설교 수도회의 창립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따라서 그는 아우구스티노 수도회의 회칙과 프 레몽트레(Prémontré) 수도회의 규칙을 토대로 절대 청빈 에 바탕을 두는 한편, 수도자처럼 세속을 떠나 극기와 고 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세속 가운데 살면서 사람들의 회 개와 개종을 촉구하기 위해 필요한 지역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가는 적극적인 수도회를 창립하게 되었다. (→ 도미 니코 수도회)
※ 참고문헌  B. Blumenkranz, 《EJ》 6, 1972, pp. 161~164/ M.H. Vicaire, 《NCE》4, 1967, pp. 964~965/ T. McGonigle, 《ER》 4, 1987, pp. 418~420. 〔李官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