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도미니코(St. Dominicus)가 1216년 설교를 통한 영 혼 구원을 목적으로 설립한 탁발 수도회. '설교자회' 라 고도 한다.
[창설과 발전] 성 도미니코는 1203년 외교 사절로서 덴마크 등 북부 유럽을 여행하면서 알비파(Albigenses) 이단의 위협에 직면한 교회의 현실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는 교회를 수호하기 위해서는 초대 교회 사도들과 같 이 청빈한 생활을 하면서 복음 전파에 주력하는 설교자 들의 수도회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고 마침내 수도회를 창설하게 되었다. 1216년 교황 호노리오 3세 에 의해 수도회가 공식 인정되면서 도미니코 생전에 이 미 급속한 발전을 이루게 되었고, 그 사후에도 도미니코 수도회는 수세기를 거치면서 수도회의 일치를 보존해 왔 으며 세계 곳곳에서 진리의 수호와 설교를 통해 교회를 위하여 크게 이바지하였다.
역대 교황들은 여러 가지 임무에서 도미니코 수도회에 협조를 청하였다. 그중에는 원정하는 십자군에 대한 격 려 설교와 교회 내의 도서 검열까지도 맡긴 적이 있었다. 이단 심문 재판(종교 재판)소의 재판관도 주로 도미니코 수도회 회원이 맡았으므로 그들을 '정통 신앙의 파수꾼' 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또 도미니코 수도회에서는 많
은 성인들이 배출되었는데, 대(大) 알베르토, 토마스 아 퀴나스, 신비가이며 교회의 일치를 위해 노력한 시에나 의 가타리나, 트리엔트 공의회 후 교회를 이끌어 간 교황 비오 2세 등이다. 이외에도 남아메리카 전역에서 복음을 전파하던 선교사들, 그 가운데 인디언의 수호자였던 바 르톨로메 데 카사스(Las Casas) 수사와 마르틴 데 포레스, 리마의 로사와 요한 마치아스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아 시아에서도 수많은 선교사들이 신앙을 증거하기 위해 순 교하였는데 일본에서 순교한 도미니코 회원 16명과 베 트남에서 순교한 60명이 각각 성인품에 올랐다.
[영성과 발전] 수도 생활의 본질적인 요소로서 초대 교회 사도들의 생활을 그 모범으로 삼고 관상 생활, 연구 생활, 공동체 생활, 복음 삼덕과 규칙 준수, 사도직을 강 조하였다. 이 요소들은 영혼 구원이라는 목적을 위해 서 로 조화를 이루고 활용되면서 수도회의 특성을 형성해 왔다.
수도회의 영성은 모토인 "관상하라, 그리고 관상한 것 을 전하라"에서 찾을 수 있다. 이는 관상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의 구원은 물론이고 세상 한가운데 살면서 적극적 으로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도미니코 수도회를 일명 설교자들의 수도회라고 하는 만큼 설교는 수도회의 목표와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다. 여기서 설교란 안정성 과 항구성을 보장해 주는 공동체 생활에서 비롯되는 설 교, 관상적 체험과 기도에서 비롯되는 설교, 그리스도교 의 교의적 성격을 보존하기 위한 진리 탐구에서 비롯되 는 설교, 믿음을 지켜 주는 개인적 · 공동체적 가난에서
비롯되는 설교로 정의할 수 있다. 또한 도미니코회 회원 들에게 연구는 의무로서 그 목적은 복음화에 있다.
도미니코회 수족으로서는 도미니코 수도회(제1회)와, 1206년에 도미니코 성인이 설교 사업을 위한 도움과 기 도와 영적 수련의 장소로 여성들을 위하여 설립한 관상 수도회(제2회)가 있다. 이외에도 도미니코 영성에 따라 생활하기 위하여 1280년 설립된 재속회(제3회), 사제 · 수녀들에 의해 설립된 많은 활동 수녀회들(수도 회칙을 지 키는 정규 제3회)이 있다. 오늘날 도미니코 수도 회원은 전세계적으로 82개국에 남자 회원 7,000여 명, 관상 수 녀 회원 4,800여 명, 활동 수녀 회원 4만여 명이 있다. 또한 각국에서 남자 재속회인 성 도미니코회 회원과 여 자 재속회인 로사리오회 회원 약 7만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
[한국 진출] 1587년 도미니코 수도회 최초로 선교를 목적으로 하는 성 로사리오 관구가 설립되었다. 관구 설 립 목적은 아직 복음을 접하지 못하였거나 교회가 뿌리 내리지 못한 지역의 복음화로서, 주요 활동지는 필리핀 과 동양으로 삼았다. 성 로사리오 관구는 우리 나라와 이 미 인연이 있었는데 복자 성 도미니코의 요한이 조선 선 교를 준비하며 일본에서 기다리던 중 순교의 영광을 받 았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오랜 후인 1971년 김인중(金 寅中, 베드로) 신부가 도미니코 수도회에서 서원을 함으 로써 도미니코 수도회는 다시 한국에 대하여 관심을 갖 게 되었다.
마침내 1982년에 열린 도미니코 수도회의 아시아 총
회에서 한국 진출이 논의되었는데, 이때 성 로사리오 관 구가 한국 진출에 관심을 표명하여, 1984년 로마 본부 에서 파견된 책임자가 3개월 동안 한국을 순방하였다. 1987년에 다시 열린 아시아 총회에서는 마침내 한국 선 교를 성 로사리오 관구에게 위임하였고 같은 해 11월 23일 로마 본부에서 총장이 공식적으로 이를 허락하였 다. 이를 계기로 한국 진출이 더욱 본격적으로 진행되어 1988년 성 로사리오 관구의 책임자들이 한국을 순방했 고 서울대교구의 초청을 받아 마침내 1990년 5월 25일, 일본에서 선교 중이던 스페인 신부 1명이 첫 번째로 한 국에 파견되었다. 1992년 12월부터 성소자 모임을 시작 하면서 한국인 지원자를 받게 되었고 1994년 11월 8일 에는 서울 미아리 소재의 수도원 축성식이 거행되었다.
사도직 활동으로는 서울대교구 소속 본당에서 미사 집 전, 강론 등을 담당하고 있으며 배론에 있는 도미니코 관 상 수녀회의 영성 지도, 기타 수녀회와 평신도 단체의 피 정, 성령 세미나 및 로사리오 신심회도 지도하고 있다. 앞으로는 이동 설교(순회 설교), 젊은이를 위한 영적 지 도, 기도 모임, 평신도 지도자들의 양성, 교회 내 소공동 체들의 조직과 활성화, 비그리스도교인들을 향한 복음 전파에 주력할 계획을 갖고 있으며, 특히 한국에서의 도 미니코 가족 형성과 로사리오 신심 보급을 주된 과제로 삼고 있다. 1995년 현재 3명의 스페인 신부와 1명의 지 원자가 있다. (→ 도미니코 ; 도미니코 선교 수녀회)
※ 참고문헌 수도자 양성위원회, 《오늘의 수도자들》, 분도출판 사, 1992, pp. 52~551《한국 천주교회 연감》,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4, p. 457. [白仁實]
도미니코 수도회
— 修道會
[라]Ordo Fratrum Praedicatorum(Domimicani) · [영]Order of Preachers(Dominicans)
글자 크기
3권

1 / 5
수련원 축성식(1987년 9월 8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