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니코 수도 가족의 제2회로서 관상 봉쇄 수도회이 다. 1206년에 도미니코 성인은 설교자들의 형제회를 설 립(1216)하기에 앞서 이 사업을 위한 도움과 기도와 영 적 수련의 장소로 먼저 프루이유(Prouille)에 여성들을 위 한 첫 도미니코 관상 수도원을 설립하였다. 현재 전세계 적으로 80여 개국에 235개 수녀원과 4,800여 명의 회 원들이 있다.
[한국 진출] 1983년 3월 관상 생활에 뜻을 둔 3명의 한국인 성소자들이 당시 한국에서 활동하던 유일한 도미 니코 수도회 회원인 독일인 레기날도 신부의 도움으로 대만에 있던 도미니코 천주의 모친 관상 수도원에 입회 하였다. 이들은 장차 한국 진출 가능성에 대비하여 모원 이 있는 스페인으로 가게 되었는데, 이후 한국인 성소자 들의 입회가 계속 이어지자 이를 한국 진출을 원하시는 하느님의 뜻으로 확신한 수도회는 그 실현 방법을 모색 하던 중, 원주교구장 지학순(池學淳, 다니엘) 주교의 초 청을 받게 되었다.
1987년 봄, 스페인 모원의 원장 수녀가 1명의 한국인 수녀와 함께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하였을 때, 지학순 주 교는 배론 성지 내의 부지 1만 평을 기증하기로 약속하 였다. 그러나 수도원 신축 기금의 부족으로 진출이 지연 되어 1989년 12월 제2차 방문이 이루어졌고, 1990년 7 월에 2명의 수녀들이 또다시 파견되어 같은 도미니코회 수족인 도미니코 선교 수녀원에 머무르게 되었다. 그리 고 같은 해 11월 29일 4명의 수녀들이 더 파견되면서 우선 작은 조립식 집에 임시 거처를 마련하였다. 1992 년에는 몇몇 교구 신부들의 도움으로 본당들을 방문, 모 금을 시작하였는데 기대 이상으로 교우들의 호응이 높아 수도원 신축에 많은 진척을 보게 되었다.
1993년 1월 13일, 4명의 회원들이 다시 증원되었고 1월 30일에는 처음으로 4명의 지원자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리고 2월 2일 수도원 축성식을 거행함으로써 수도회는 그 기틀을 다져가게 되었다. 형제적 일치의 공
동 생활과 전례 생활에 그 특색을 두고 있는 도미니코 관 상 생활에 더욱 깊이 몰입하여 현대 물질 문명의 소용돌 이 속에서 기도와 침묵, 고통의 절대 가치를 살아가면서 하느님의 현존을 소리 없이 선포하는 것이 이 수도회의 소명이다. 현재 종신 서원자 9명, 유기 서원자 1명, 수련 자 5명, 청원자 4명, 지원자 2명 총 21명의 회원이 있 다.
※ 참고문헌 수도자 양성위원회, 《오늘의 수도자들》, 분도출판 사, 1992, pp. 52~53/ J.B. Walker, 《NCE》4. 〔白仁實〕
도미니코 천주의 모친 관상 봉쇄 수도원
—天主—母親觀想封鎖修道院
[스]Monasterio Dominicano de Madre de Dios · [영]Congregation Monastery of the Mother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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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도미니코 천주의 모친 관상 봉쇄 수도원 전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