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틸라, 플라비아

Domitilla, Flavia

글자 크기
3
도미틸라 성녀의 묘지 발굴.
1 / 2

도미틸라 성녀의 묘지 발굴.

1세기 말경의 순교 성인. 축일은 5월 12일. 황제 티투 스(Titus, 79~81)와 도미시아누스(Domitianus, 81~96)의 질 녀이다. 성녀에 대해서는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 다.
① 95년 로마 집정관이었던 플라비우스 글레멘스의 부인. 도미시아누스 황제는 질녀인 도미틸라가 그리스도 교 신자임을 알고 가예타(Gaeta) 만에서 조금 떨어져 있 는 판다타리아(Pandataria) 섬으로 추방했다. 이교도 역사 학자인 수에토니우스(Suetonius)와 디온 카시우스(Dion Cassius)는 도미틸라가 로마 제국의 신들을 숭배하지 않 은 무신론자 또는 신성 모독자라는 죄명으로 고발당하여
순교했다고 전하고 있다.
② 역사가 에우세비오(Eusebius)는 도미틸라가 티투스 와 도미시아누스 황제의 질녀라고 전한다. 평생 동정을 지키기를 원했으나 신자임이 발각되어 판다타리아 섬에 서 북쪽으로 약 25마일 떨어진 폰시아(Pontia) 섬으로 추 방되었다. 도미틸라를 죽이라고 파견된 로마 황제의 친 위대 소속 군인 네레오(Nereus)와 아킬레오(Achilleus)는 오히려 그녀의 모범적 생활에 감동을 받아 자신들이 받 은 명령을 거부하고 도미틸라와 함께 추방되었다. 이후 도미틸라는 성 예로니모의 말처럼 순교와 마찬가지의 긴 유배 생활을 하였으며 마침내 테라치나(Terracina)에서 도미틸라는 화형에, 네레오와 아킬레오는 참수형을 받아 함께 순교하였다. 이들의 유해는 비아 아르데아티나(Via Ardeatina)에 있는 도미틸라의 묘에 안치되었고, 398년 시리치오 교황은 그들을 기념하여 이곳에 성당을 세웠 다. 800년에 교황 레오 3세는 새 성당을 지었으며, 이 성당은 16세기에 바로니오(Baronius) 추기경에 의해 재 건되었다.
수많은 초기 순교자들처럼 도미틸라 성녀에 대해서도 정확한 사실들이 전해 오지는 않는다. 그러나 긴 교회 전 통 속에서 도미틸라는 황제의 질녀로서 누릴 수 있는 모 든 명예와 부귀를 버리고 목숨으로 신앙을 지켰음을 전 해 주고 있다. 이런 용기 있는 삶은 신앙 생활을 위해 부 족함이 없는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신자로서의 생활을 소 홀히 하는 모든 이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고 있다. "마음 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 다" (마태 5, 1). (→ 네레오와 아킬레오)
※ 참고문헌  폴리, 이성배 역, 《매일의 성인》, 성바오로출판사, 1987/ Hugo Hoever, Lives of the Saints, Catholic Book Publishing Co., New York, 1954/ E.G. Ryan, 《NCE》4, pp. 994~995.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