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소속 본당. 서울시 도봉구 도봉1동 614- 29 소재. 1970년 11월 6일 수유동 본당으로부터 분 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가정. 관할 구역은 도봉1 · 2동, 방학1 · 2동. 〔교 세〕 1970년 674명, 1975년 1,537명, 1980년 2,205명, 1984년 3,959명, 1988년 7,084명, 1994년 5,882명. 〔역대 신부〕 초대 키어니(D. Kearney, 강대식) 디오니시오(1970. 10~1973. 4), 2대 힐리 (P. Healy, 현) 파트리치오(1973. 4~1976. 5), 3대 오코너(P. O’Conor, 권) 파트리치오(1976. 5~1977. 1), 4대 머피(J. Murphy, 전) 야고보(1977. 1~1980. 10), 5대 딜런(D. Dillon, 도) 다니엘(1980. 10~1981.2), 6대 케니(P. Kenny, 기) 바오 로(1981.2~1985.2), 7대 스미스(J. Smith, 천) 요한(1985. 2~ 1988. 2), 8대 맥카티(M. McCarthy, 마익현) 미카엘(1988. 2~8), 9대 스미스(1988. 8~1991. 12), 10대 힐리(1991. 12~ 1992. 12), 11대 나이한(J. Nyhan, 나) 요한(1992. 12~1995. 9), 12대 김윤태(金允泰) 요한(1995. 9~현재).
〔본당 승격〕 1963년 1월 도봉동 지역이 서울시로 편 입된 뒤 이곳으로 이주해 오는 수재민들이 늘어나면서
신자수 또한 증가하였다. 부근의 의정부 · 미아리 · 수유 리 본당 미사에 참례하던 신자들은 1968년 8월에 도봉 동 98번지 이학실(안나)의 집에서 수유리 본당 김몽은 (金蒙恩, 요한) 신부의 집전으로 미사를 봉헌하고 수유 리 본당 관할 공소로 발족하였다. 그 뒤 주일마다 김몽은 신부의 방문을 받고 미사 성제를 봉헌해 오다가 같은 해 12월부터는 골롬반 외방선교회의 힐리 신부가 공소 사 목을 위임받아 주일마다 방문해 주었다. 신자수가 날로 늘어나 집회 장소가 비좁아지자 명동 본당 연령회의 기 증으로 1969년 5월에 도봉동 89-136번지의 대지 250 평을 마련하게 되었다. 공소 신자들은 이에 용기를 얻어 성금을 각출하는 한편, 소속 본당 신자들의 도움을 얻어 160평의 성당을 짓고 같은 해 11월 9일 봉헌식을 가졌 다. 이듬해인 1970년에는 골롬반 외방선교회의 도움으 로 도봉동 89번지의 대지 293평을 구입하여 사제관과 사무실을 짓고 그 해 11월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설립과 발전〕 1974년 2월 도봉동 89-13번지의 대지 50평과 지상 건물 1동을 구입한 도봉동 본당은, 1977년 6월 현 소재지의 부지 340평을 매입하여 같은 해 9월 새 성당 건축 공사를 시작하고 옛 성당과 대지는 매각하 였다. 그 위치가 철로변이어서 소음이 컸기 때문이다. 1980년 6월 교리실과 수녀원 건물을 짓고, 영원한 도움 의 성모 수녀회 분원이 설치되었으며, 7월 27일에는 성 전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1983년 7월 도봉1동 614-30 번지의 부지 96평과 지상 가옥 1동을 매입하여 사제관 으로 보수하였다. 그러나 다시 신자수의 급증으로 새 성 전 건립을 계획하게 되었다. 1989년에는 새 성당 건립 기금 마련을 위한 작품 전시회를 개최하는 등 각고의 노 력으로 그 해 6월 기공식을 거행하였으며, 1991년 10월 새 수녀원을 준공하고, 12월 1일 연건평 600평에 지하
1층, 지상 3층의 새 성전을 축성하였다. 1989년 2월 4 일에 노원 본당, 1990년 9월 7일에 방학동 본당을 각각 분가시켰다. 그리고 1995년 9월 본당이 교구로 이관됨 에 따라 골롬반 외방선교회가 철수하고 서울대교구의 신 부가 부임함에 따라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활동과 전망〕 도봉동 본당은 1970년 12월 8일에 창 단된 하자 없으신 마리아 쁘레시디움을 비롯하여 여러 평신도 단체들을 두고 있다. 성모회에서는 교회 서적 대 출실을 상설 운영하며, 연령회에서는 회원들이 교우 사 망시 수세(水洗) 및 입관 등 모든 절차에 봉사하고 있다. 특히 묘지 300기를 마련하여 교우들에게 분양 혜택을 주고 있으며, 1993년에 영안실을 개관하여 냉동기, 주 방 시설 등을 갖추고 장례 예식을 치르도록 하고 있다. 경로회에서는 관내 환자 교우들의 봉성체, 노인 위로 잔 치, 봄 · 가을 성지 순례 등 활발한 활동을 펴고 있다. 특 히 청년 단체 활동 또한 활발하여 청소년 연극제, 레크리 에이션 강좌 등을 실시하였으며 이 밖에 영원한 도움의 성모 꾸리아, 자모회, 성소 후원회, 제대회, 성령 기도 회, 성가대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도봉동 본당은 신자 재교육을 위해 매년 사순 시기와 대림 시기에 특별 교리 강좌를 실시하였다. 1986년의 사목 지표 '성체와 가정의 해' 를 실천하기 위해 매월 첫 목요일 저녁 '성시간' 을 계속 가졌으며, 성체에 대한 신 심 생활화의 하나로 지속적인 성체 조배실을 마련하고 한 시간 단위로 조배와 묵상을 드릴 수 있도록 하였다. 1994년 본당 사목 목표는 '소공동체 정착화' 이다. 본당 에서는 2000년대를 향한 장기 사목 계획을 계속 추진하 기 위한 방안으로, 매월 마지막 주일을 가정의 날로 제정 하여 가족이 함께 미사를 봉헌할 수 있도록 주일학교와 기타 신심 단체의 회합을 금지하고 가정 중심의 사목을 유도하고 있다. 가족 구성원간에 대화와 기도의 만남이 뿌리내리게 하고, 공동체와 일치하여 사목 목표 달성에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것이다. 2개 성당을 신설 분가시 킨 본당이지만 도봉2동의 재개발로 아파트 촌이 형성됨 에 따라 본당 수용 능력 한계로 분가의 필요성이 또다시 대두되고 있다. (→ 서울대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 《서울대교구 교구 총람》, 가톨릭출 판사, 1984. 〔편찬실〕
도봉동 본당
道峰洞本堂
글자 크기
3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