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적 사랑의 실천과 복음 전파를 위한 방법의 하나로 가톨릭 교회가 교구나 수도회 등을 통해 시행하는 제반 의료 활동. 좁은 의미로는 주로 환자 진료를 위한 병 · 의원 운영을 말하지만 넓은 의미로는 노인 간호 시설이나 장애자 수용 및 재활 시설, 그리고 나환자 수용 및 치료 시설 등을 설립 · 운영하는 일도 여기 포함할 수가 있다.
〔사목적 의미〕 환자를 치료해 주는 일이 하느님 나라 복음 전파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 준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종종 치유의 능력을 베풀었으며, 이렇게 치유를 받은 사람들은 모두 그를 하느님의 아들로 믿고 따랐다. 나병 환자를 고쳐 주고(마태 8, 1-4), 소경의 눈을 뜨게 했으며(마태 9, 27-31), 중풍 환자를 걷게 하는(루가 5, 17-26) 등, "병자들을 모두 고쳐 줌으로써" (마태 8, 16) 질병이 죄의 형벌이 아니고 백성들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인 것을 증거해 보여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 것이다"요한 11, 25)라고 강조함으로써 자신이 주는 생명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삶이라는 것을 역설했다.
성서적 관점에서 볼 때 이렇듯 건강은 육체적으로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도 온전해야 하는 것임을 의미하며, 개인적으로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나 제도적으로도 온전한 것을 뜻한다. 예수는 이러한 의미의 건강을 회복시켜 주려고 온 천상적 치유자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육체적, 심리적 질병을 치유했을 뿐 아니라 사람들을 인간 존재의 뿌리에서부터 근본적으로 치유해 주었다. 그는 자신의 전생애를 통한 봉사로 이 세상에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했고 상처받은 인간성을 어루만지고 치유해 주었으며, 참다운 인간성을 회복해 줌으로써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의 존엄성을 구현하도록 도와주었다. 결국 이런 그의 인간에 대한 사랑을 구체적으로 치유 행위를 통해 보여 줌으로써 치유 행위가 하느님 나라 복음 전파에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일임을 보여 준 것이다.
이 같은 그리스도의 치유적 봉사직은 역사를 통하여 교회 안에 꾸준히 계승되어 내려왔다. 즉 초대 교회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치유의 봉사는 예수가 제자들에게 내려준 복음 전파의 사명 중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어떤 동네에 들어가든지 그 동네 병자들을 고쳐 주며 하느님 나라가 그들에게 다가왔다고 전하여라" (루가 10, 8-9)고 제자들에게 당부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구성원들이 사람들의 육체적 질병을 치료해 줌으로써 건강을 회복하고 인격적 온전성을 이룩하도록 해준다면 이는 곧 예수의 모범을 따르는 것이다. 이것이 곧 교회의 의료의 길이며 전통이다.
〔세계 가톨릭 의료 사업 현황〕 교회 선교 활동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어 온 가톨릭 의료 활동의 오랜 역사와 전통은 지금도 가톨릭 교회가 세계적으로 가장 큰 규모의 의료 제공자임을 입증해 주고 있다. 1989년 6월 현재 전세계에는 20,436개의 가톨릭 의료 기관이 있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 중 34.1%인 6,795개가 병원급 규모의 의료 기관이고 22.9%가 노인 간호 시설이며, 20%가 의원급 외래 진료소이고 13.9%가 결핵 환자 병동인 것으로 되어 있다. 지역별로 보면, 유럽 지역에 약 9,000개의 교회 의료 기관이 있으며, 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역에 각각 4,000개 정도, 그리고 북미 지역과 남미 지역, 중미 지역에 2,000개 정도씩의 교회 의료 기관이 있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집계는 사실상의 전세계 가톨릭 의료 기관을 모두 포함한다고 말할 수가 없다. 실제로 1989년의 집계에는 거의 전대륙에서 많은 나라가 그들 나라 안의 가톨릭 의료 기관수를 정확히 보고하지 못하고 있어서 결코 적지 않은 수의 교회 의료 기관이 누락된 상태이다. 특히 아프리카나 아시아 외딴 지역들에서 전교 수도회들에 의해 운영되는 소규모 시약소나 치료 시설, 그리고 환자 방문 활동까지를 포함하면 그 수는 일일이 헤아릴 수도 없는 상태이다. 최근 들어 세계 여러 나라에서 점차 의료 활동에 대한 정부의 개입이 확대되면서 상대적으로 가톨릭 교회 의료 기관수가 감소해 온 것이 사실이긴 하나 아직도 가톨릭 교회의 의료 활동은 전세계 어디에서나 가장 활발하게 실천되고 있을 뿐 아니라 최근 동유럽 여러 나라가 자유화되면서 이들 나라에 다시 진출하게 될 가톨릭 교회 의료는 한동안 더욱더 확대될 것이 분명하다. 이처럼 전세계에 널려 있는 가톨릭 의료 기관들이 올바른 교회 의료를 실천하도록 이들을 사목적으로 지도하기 위해 1985년에는 로마에 '보건 사목위원회' (Pontifical Council for Pastoral Assistance to Health Care Workers)라는 교황청위원회가 설치된 바 있으며 이 위원회에서는 전문 잡지 《교회와 의료》(Dolentium Hominum)를 계간으로 발간하고 있다. 한편, 최근에는 이들 전세계 가톨릭 의료 기관을 회원으로 하는 국제 가톨릭 의료 기관협회(International Federation of Catholic Health Facilities)가 결성되어 두 차례 국제 회의를 가진 바도 있다. 교회 의료에 관한 이 위원회나 국제 가톨릭 의료 기관협회 등에서는 여러 가지 출판물이나 모임을 통해 일부 나라들에서 교회 의료 기관들이 점차 국유화해 가는 일과 의학이 탈인간화해 가는 일, 그리고 새로운 의학 기술, 특히 출산 관련 기술들이 발달하면서 생겨난 여러 가지 생명 윤리 문제 등을 교회 정신에 따라 올바르게 지도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 외에도, 세계 가톨릭 의사들의 모임인 국제 가톨릭 의사협회(International Federation of Catholic Medical Associations)나 국제 가톨릭 간호사협회(International Committee of Catholic Nurses and Medico-Social Assistants) 등이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지면서 가톨릭적 의료와 관련된 문제들을 논의하고 있으며 전세계 가톨릭 계통 의과대학들도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있다.
〔한국 가톨릭 의료 활동의 역사〕 서양 의학의 전래와 박해 시대(1784~1866) : 우리 나라에서의 가톨릭 의료 활동은 한국에 천주교가 자생적으로 발생한 1784년을 전후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중국을 통해 한국에 전래된 소위 서학의 영향을 받은 정약용이 종두법을 우리 나라에 처음 소개한 것은 한국 가톨릭 의료 역사에 큰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그 후 불행하게도 오랜 박해의 시절을 겪게 됨으로써 새로운 현대 문명과 의학의 전도를 받지 못하였으나 박해 시절에 있어서도 끊임없이 의료를 시혜한 기록을 볼 수 있다. 아직 선교사들이 입국하기 이전, 즉 한국 초기 교회에 있어 천주교인들 중에 약방을 경영하고 특히 중인 계급인 의원 중에는 교인들이 적지 않았다는 사실도 특기할 만하다. 약국을 경영한 대표적인 중인으로는 최필제(崔必悌)를 들 수 있는데 그는 서울 네거리에 약국을 설치하여 교인들의 집회소와 첨례 보는 장소로 이용하다가 신유박해(辛酉迫害, 1801) 때 잡혀 순교하였다. 초기 교회의 교인 중에 의원으로 김종교(金宗敎) 이중배(李仲培) 등도 있었다. 특히 이중배는 옥중에서 많은 병자들을 치료하였다고 한다. 옥중에서 치료로 병이 나았다는 이야기는 박해 시대의 교인들이 옥중에서 치료할 수 있는 응급 처치에 대비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선교사들이 입국한 후 시약소를 설치한 기록은 1857년에 나오고 있다. 당시 매스트르(Maistre) 신부가 프랑스 본부의 원조를 받아 영해회(嬰孩會) 사업으로서 기아나 고아들을 양육한 것은 우리 나라 최초의 사회 사업이기도 하다. 이것은 비록 조출한 시작이었지만 그나마도 1866년의 박해로 폐쇄된다.
서양 의학의 도입과 진료소 시대(1886~1930) : 박해로 중단되었던 천주교회의 의료 활동은 1880년대에 들어서면서 마침내 구미 열강과 통상 조약을 맺고 문호가 개방됨으로써 다시 시작이 된다. 특히 천주교회는 한불수호조약(韓佛修好條約)을 계기로 신교 자유(信敎自由)가 허용되면서 재개하기 시작하였는데 처음에는 고아원이나 양로원에 부설된 시약소에서 그리고 다음에는 진료소로 시설이 확대되었다. 이러한 의료 사회 사업의 활동은 프랑스에 본부를 두고 있는 살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가 1888년 이땅에 진출함으로써 본격화되기 시작하였다.
현재 남아 있는 천주교 교세 통계에 의하면 1930년까지의 의료 활동에 있어 서울의 진료소는 1898년, 그리고 제물포의 진료소는 1900년에 환자를 진료하기 시작하고 있다. 이들 진료소가 1930년까지 환자를 진료한 실적은 한 해 평균 5천 명에 달하고 있다. 평양교구에서는 1926년 이 지방에 진출한 메리놀 수녀회에 의해 우선 의주(義州)에 소규모의 시약소가 설치되었고 같은 해에 메리놀 수녀회 한국 지부가 영유(永柔)로 이전함으로써 영유에도 시약소가 생겼으며 1928년부터는 비현(枇峴) 본당에서도 메리놀 신부에 의해 시약소가 운영되었다. 이것들은 모두 시약소 외에도 간이 진료소의 역할을 하였다.
원산교구에서는 이곳에 진출한 독일 베네딕도 선교사들에 의해 1926년 덕원(德源)에 시약소가 설치되었다. 이것은 그 지역 주민에게 중요한 포교와 자선 사업을 하였으며, 원장이었던 요셉 그라머(Grahmer) 수사는 1923년 서울에서 의사 자격증을 획득하여 활동하였다. 그리고 1925년 원산교구에 진출한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들에 의하여 또 하나의 시약소가 덕원에서 분리되어 "마리아의 도움"이라는 명칭으로 운영되었다.
대구교구에서도 1915년 바오로 수녀원 분원이 탄생하고 동시에 고아원이 운영되면서 시약소도 부설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것은 1930년까지 약국의 구실밖에 하지 못하였을 것으로 본다. 이렇게 한국 천주교회는 개국 이후 1930년까지 모두 7개 간이 진료소(서울, 제물포, 의주, 영유, 비현, 덕원, 원산)를 설치 운영하여 서울교구 2개 진료소에서 23,340명, 평양교구 3개 진료소에서 7,655명, 원산교구 2개 진료소에서 50,130명, 도합 81,125명의 환자를 진료하였는데, 전문직인 의료 기술을 가졌던 원산 베네딕도회 수사 · 수녀들의 시료 활동이 역시 현저한 업적을 올렸음을 볼 수 있다. 이 무렵까지 천주교회에서는 정식 의료 기관을 하나도 갖지 못하였었다.
의원 중심의 의료 사업 시대(1930~1950) : 교회 병원이 정식 의료 기관으로서 오늘날의 의원 규모로 진료 활동을 시작한 것은 1930년대로서, 1938년도 통계에 의하면 한국 교회에서 경영한 것은 서울, 대구, 원산, 평양, 연길의 5개소였다.
서울의 성모병원은 1931년 조선교구 설정 100주년을 맞아 서울교구 청년회 연합회에서 "제일 필요하고 적절한 사업은 곧 의료 기관의 시설"이라는 합의에 따라 5년의 세월을 거쳐 1936년 병원의 개원을 보게 되었고 초대 원장에는 박병래(朴秉來) 씨가 취임하였다. 성모병원은 처음에는 새 건물을 세우려 했으나 때마침 폐원하는이웃의 일본 병원을 매입하게 되었다. 성모병원은 수년 내에 비약적인 발전을 보여 시내의 우수한 병원의 하나가 되었다.
평양교구의 병원은 신의주의 성모병원으로, 이 병원은 메리놀회 소속 의사인 멜시(Meercy) 수녀에 의해 1936년 시작됐으며 우리 나라에서 최초로 설립된 한국인 수녀회인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수녀 3~4명이 파견되어 약국과 간호 업무를 도왔다. 원산교구의 병원은 1927년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가 설립한 "마리아의 도움" 시약소가 1933년 새 건물을 매입하고 시설을 확장하여 시작되었다.
연길교구에서는 1931년 "올리베따노 베네딕도 수녀회"가 이 지방에 진출함으로써 의료 사업이 활발해졌다. 당시 연길교구장 브레허(Theodor Breher, 白) 주교는 수녀들이 간호 교육을 수료하고 한국에 진출할 것을 본원에 요망하여 수녀들이 진출 즉시 의료 활동에 효율적으로 헌신할 수 있었다. 이 진료소는 1935년 독일에서 평신도 의사가 옴으로써 의원으로서 활동하게 되었다. 대구에서는 해방 후 설립된 해성병원의 전신인 시약소가 1936년 수녀원에 부설되어 시내 중앙병원의 분원으로 의원 구실을 하였다.
이들 5개 의원 이외에 1935년 안주의 성모병원, 1940년 진남포의 소화병원(입원실 7개), 재령(載寧)의 성심병원(입원실 9개), 청진의 성모병원, 1941년 함흥의 성심의원(입원실 9개) 등이 설립되었다. 이 시기에 시약소가 많이 설치되었다. 서울의 시약소는 성모병원에 병합되었고 안악(安岳) 매화동에 시약소가 신설되었으며 제물포의 시약소는 그대로 계속되었다. 대구에서는 성직자 전용 시약소(신부 휴양소)가 증설되었다. 평양교구에서는 평남의 마산과 진남포에 새로 시약소가 설치되었다. 원산교구에는 수녀원 분원이 생기는 곳에 동시에 시약소가 생겼으므로 신고산(新高山), 회령(會寧)에도 시약소가 등장하게 되었다. 또한 연길교구에서는 명월구(明月溝), 훈춘(琿春), 용정 (龍井), 팔도구(八道溝) 등이 연길병원 산하에 있으면서 시약소를 경영하였다. 교세 통계에 의하면 전국 9개의 시약소에서 설립 후 1938년까지 진료한 환자수는 202,944명에 달하였다.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자 1942년 일본 정부는 평양교구에서 활동하던 메리놀회 선교사들을 본국으로 추방함으로써 그들의 의료 활동은 영원한 도움의 성모회 수녀들에 의하여 지속되었으나 어려움을 면치 못하였다. 8 · 15 해방이 되자·북한 지역에서 활동하여 온 천주교회의 의료 사업은 1949년을 기해 북한에서의 모든 교회 활동이 강제 정지됨과 함께 완전히 그 활동이 중단되고 말았다.
병원 중심의 의료 사업 시대 (1950~현재) : 1950년을 기점으로 한국 가톨릭 교회의 의료 사업은 획기적인 전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 가장 큰 동기는 한국 동란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이재민이 발생하여 필연적으로 교회가 긴급 구호에 앞장서게 되었고 미국을 위시한 구미 각국의 가톨릭 교회에서 그리스도적 형제애를 발휘하여 도와줌에 큰 힘이 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고, 둘째로는 일제 하에서 미약하였던 우리의 의료가 해방과 더불어 구미의 선진 의학의 학문과 기술이 도입됨에 따라 과거 개인의 개업 형태로서 이루어져 왔던 의원 규모의 의료로부터 새로운 의료 시설과 각 분야의 전문화된 인력을 갖춘 병원으로 발전 · 운영됨으로써 많은 환자들에게 좋은 의료 혜택을 줄 수 있게 된 것이다.
1950년 4월, 부산에 메리놀 수녀 병원이 개설된 이후 1951년 역시 부산의 성 분도 자선병원이 개원되었고, 이어서 1955년 목포 성 골롬반병원과 부평 성모병원, 1956년 대구 파티마병원, 1957년 의정부 성모병원, 1957년 성 바오로병원, 1959년 전주 성모병원 등이 계속 개원되면서 병원 중심의 가톨릭 의료 사업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게 되었다. 특히 1954년에 설립된 가톨릭대학 의학부와 여기 병설된 성 요셉 간호학교는 이후로 명실공히 우리 나라 가톨릭 의료 활동의 중심적 역할을 하게 되는데, 실제로 1962년에는 서울에 있는 성모 병원을 위시해서 성 요셉병원, 성 바오로병원, 성가병원, 의정부 성모병원, 흑석동 성모병원, 부평 성모병원, 자애병원 등이 그 부속 병원이 되면서 가톨릭 중앙 의료원이 탄생하게 된다. 이후로 수원 성 빈센트병원과 대전 성모병원이 역시 가톨릭 중앙 의료원 부속 병원이 되는 등 가톨릭 중앙 의료원을 중심으로 한 가톨릭 의료 사업은 국내 최대, 최고의 의료 기관으로 급성장을 하게 된다.
현재 전국에는 25개의 병원급 및 16개의 의원급 등 총 41개 가톨릭 의료 기관이 있으며 이들 중 38개 기관이 1967년에 창립된 한국 가톨릭 병원협회 회원으로 가입되어 매년 두 차례씩 모여 교회 의료에 관련된 세미나를 갖고 있는데, 이들 가톨릭 의료 기관들이 보유하고 있는 병상수는 전국 병원 병상의 약 10%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들 병원을 이용하는 환자수도 연간 수백만 명에 이르고 있다.
한편, 1968년에 설립된 한국 가톨릭 의사협회와 1979년에 설립된 한국 가톨릭 간호협회 또한 무료 진료나 상담 활동 등 직접 간접으로 우리 나라 가톨릭 의료 활동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 특히 한국 가톨릭 의사협회는 가톨릭 병원협회 및 가톨릭 간호협회와 공동으로 1980년 아시아 가톨릭 의학 총회를 서울에 유치하여 성대히 치른 일이 있고 최근에는 남미 에콰도르와 아프리카 등지에 의약품 및 의료 기자재를 지원하는 한편, 방학 동안에는 의사를 파견하여 진료도 실시하는 등 점차 해외 의료 선교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가톨릭 의료 사업에 대한 도전〕 비교적 최근까지도 가톨릭 의료 사업은 질병으로 고통받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자선적 활동으로 전개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가톨릭 의료 사업의 내용 또한 무료에 가까운 자선 진료였으며 특수 전문 질병 치료보다는 기본적 건강 유지를 돕는 전인적 진료에 가까웠다고 할 수가 있다. 그러나 이제는 점차 건강에 대한 국민들의 권리 의식 고조와 정부의 적극적인 의료 보건 활동 참여로 일단 가톨릭 의료의 이 같은 자선적 진료 성격은 크게 퇴색되고 있으며 따라서 일부에서는 가톨릭 교회의 의료 활동의 필요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이런 과정에서 가톨릭 의료 기관들은 전통적 교회 의료 방법으로는 더 이상 견더 내기 어려운 새로운 도전들에 직면하고 있다.
첫째, 도전은 의료 기관의 대형화와 이에 따른 교회 의료 기관으로서의 정체성 확립 문제이다. 물론 교회 의료 기간이 첨단 시설 장비를 갖추고 대형화해 가는 것 자체가 문제일 수는 없다. 의료 활동에 있어서 정확한 진단과 치료는 필수 불가결한 일이므로 치료 기술의 우월성을 유지하기 위한 교회 의료 기관의 현대화 그 자체는 오히려 바람직한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과정에서 자칫 환자를 전인적으로 치료하지 못하게 되는 일이라든지, 아직도 의료 소외 지역인 농 · 어촌에서의 의료 활동을 소홀히 하게 된다든지 그 동안 가톨릭 의료 기관 운영에 큰 비중을 차지했던 성직자, 수도자들의 상대적 역할 감소와 이로 인한 가톨릭 의료 기관의 정체성을 어떻게 유지 발전시키느냐에 있다고 할 것이다.
둘째, 교회 의료 기관에 대한 도전은 사회 보장 시대에 알맞는 교회 의료 기관의 자세 정립이다. 의료 보험 및 의료 보호 제도 도입과 함께 일단 전국민에 대한 기본적 의료 서비스가 이론적으로 가능해진 오늘에 있어서 교회 의료 기관의 전통적 자선 진료 기능을 어떻게 유지해 나가느냐와 의료 전반에 대한 정부의 정책과 법규, 그리고 의료 체제 등이 일률적으로 모든 의료 기관에 적용되는 시기에 있어서 역시 어떻게 가톨릭 의료 기관이 그 정체성을 유지하느냐 하는 것은 여간 중대한 과제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셋째, 오늘날 교회 의료 기관이 직면하게 되는 또 하나의 중대한 도전은 일부 첨단 의학 기술을 의료에 적용하는 데 있어서 발생되는 윤리 문제와 이에 대한 대응이다. 성의 문란과 인간 생명 경시 풍조를 부추기는 갖가지 인공적 피임 방법의 보급과 시술은 물론 인공 유산이나 체외 수정 같은 비윤리적이고 비그리스도교적인 의학 기술들이 영리 추구와 함께 성행하는 현실에서 가톨릭 의료 기관들이 이들의 부당성을 주장하고 생명적 대체 기술들을 개발 보급해야 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날 교회 의료가 겪게 되는 도전은 비단 이런 것만이 아니다. 과거에 경험하지 못했던 교회 의료 기관 내의 노조 결성 문제를 비롯해서 병원의 대형화에 밀려 상대적인 열악성을 면치 못하는 농 · 어촌 의료 선교 활동의 문제 등도 장차는 우리 교회가 예언적 자세로 지혜롭게 대처해 해결해 나가지 않으면 안되는 것들이다. 그러나 바로 이런 도전이야말로 바로 가톨릭 의료 기관이 어느 시대, 어디에서고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확고한 이유를 제시해 주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이런 도전들에 대해 가톨릭 의료 기관들이 현명하게 대처해 갈 때 가톨릭 의료의 정체성이 더욱더 확연히 드러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목적 방향〕 가톨릭 의료 사업은 이런 도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보 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이다. 첫째, 전인적 환자 진료에 충실하는 일이다. 의학 기술의 전문화와 의료 시설의 대형화가 초래한 현대 진료의 가장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인 비인간화 내지는 탈인간화 현상에서 비롯된 전인적 진료의 결핍이기 때문이다.
인간화(humanization)란 "인간과 인간 생명의 존엄성과 신성성을 그 육체와 정신 그리고 문화적 상황 전반에 걸쳐 천명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전인적 진료란 환자를 단지 직업적, 기술적 관점에서 국한해서 진료하지 않고 그 사람의 인간적 모든 요소를 고르게 살피어 진료하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병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친절과 인격적 관심으로 대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치유 행적이야말로 전인적 진료의 모범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가톨릭 의료 기관에서는 환자의 인격을 존중하고 질병의 원인을 단지 육체적이고 의학적인 것에만 국한하는 진료 행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것은 그리스도교적 입장에서 볼 때 건강이 육체적, 심리적, 정신적, 영신적, 그리고 사회적 온전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같은 전인적 진료를 위해서는 병원 내 종사자들을 끊임없이 교육해야 하며, 병원 종사자나 환자들에게 직접적인 상담과 도움을 줄 수 있는 원목실 운영도 강화해야 한다. 물론 이때 원목 활동은 병원 내 수도자들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이는 병원의 대형화에 따른 의료 선교 수도자들의 상대적 수적 감소와 이로 인한 역할 감소를 보상하는 매우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둘째, 가톨릭 의료가 사회 보장 시대에 알맞는 자선 의료를 계속해 가는 일이다. 어떤 형태의 사회 보장이든 그 근본 정신은 국민 누구나가 최소한의 생존을 유지하도록 해주어야 한다는 근대 국가 정치의 기본 명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의료 보장은 이런 사회 보장 중에서 특히 국민의 건강을 위한 최소한의 의료 혜택을 보장하는 제도이다.
우리 나라의 경우 1979년 7월 1일을 계기로 전국민이 의료 보험이나 의료 보호의 대상이 됨으로써 이론적으로는 누구나 최소한의 의료 혜택을 받는 상태가 된 것이다. 의료 활동을 통한 복음 전파를 목적으로 한 교회 의료의 내용이 사회 제도나 의료비 지불 방식의 변천에 따라 근본적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주로 가난한 사람을 무료로 치료해 주던 자선 진료 성격의 교회 의료가 의료 보장 제도의 도입과 함께 크게 바뀌게 된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는 일이다. 실제로 모든 가톨릭 의료 기관에서는 예전만큼 전액 무료로 치료해 주어야 하는 환자가 크게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 때문에 교회 의료 기관의 자선적 진료가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며 또 그래서도 안될 것이다. 고가의 의료비를 다 지불하지 못하는 환자는 오히려 전에보다 더 많아진 상태이며, 따라서 교회 의료 기관 입장에서 보면 일부 자선 환자 진료를 위한 재정적 부담이 예전보다 더 커진 것도 사실이다. 낮은 의료 보험 수가에 의존해서 병원을 운영해야 하는 가톨릭 의료 기관의 경영 압박을 해소하고 여전히 자선 진료를 충실히 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제 자선 진료가 교회 의료 기관만의 몫이어서는 안된다. 지역 교회가 함께 참여하여 교회 의료를 활성화하도록 하는 자선 노력이 다른 어느때보다 필요한 것이다.
셋째, 의료 윤리의 실천이다. 사회 변천과 의학 기술의 발달에 따라 비윤리적 의료의 성행이 현재도 크게 증가하고 있거니와 장차는 더욱더 그 빈도와 내용이 확대 될 가능성이 많다. 생명의 존엄성을 해치는 인공 유산이나 생명 파괴적 피임 기술의 보급, 그리고 선택적 유산을 유도하는 태아 성 감별 기술과 가정 및 결혼의 신성성에 도전하는 각종 인공 수태 기술 등이 우리 나라에서도 이미 의료화가 된 상태이고 머지않아 생명 창조에 도전하는 유전 공학 기술이나 적극적 안락사, 그리고 인간의 심성과 행동까지 변화시키는 새로운 약제의 개발 등 반생명적이고 비윤리적인 생명 과학 기술들이 의료 기관에서 사용될 가능성이 높아진 상태이다.
이런 비윤리적 의학 기술들에 대해 교회 의료 기관이 해야 하는 일은 이들 기술들에 대항할 만한 대체 기술의 개발과 보급이다. 예컨대, 불임 부부를 위한 더욱 윤리적이고 과학적인 임신 기술들을 개발하고 인공적 피임 방법들에 대항한 자연적 가족 계획 방법의 개발과 보급에 앞장서야 하는 것은 물론 태아의 불구 교정이나 각종 신체적, 정신적 불구에 대한 교정 및 재활 등을 위한 첨단 의학 기술들을 발전시키는 일이다.
그리고 호스피스(hospice)와 같은 적극적 말기 임종 환자에 대한 치료를 통해 죽음까지 극복하도록 하는 기적적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안락사의 유혹에 대항하는 일도 가톨릭 의료 기관들이 해야 할 일이다. 이들 의료 윤리 문제와 관련된 몇 가지 의학 기술과 의료 행위에 대해서는 이미 교회가 문헌을 통해 그리스도교적 원칙을 밝힌 바 있다. 예컨대, 올바른 산아 조절 기술로서의 자연적 가족 계획에 대한 연구와 보급의 중요성을 강조한 1968년 교황 바오로 6세의 회칙 <인간 생명>을 포함해서, 1974년 신앙 교리성의 <인공 유산 반대 선언문>과 1980년 <안락사에 관한 선언>, 그리고 1987년 인공 수태에 관련된 <인간 생명의 기원과 출산의 존엄성에 관한 훈령> 등이 바로 그것이다. 최근 중앙 의료원이 이런 교회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한 <의학 윤리 지침> 10가지를 만들어 기관 내 모든 의료인들로 하여금 이를 준수하도록 하는 한편 의학 윤리위원회를 설치하여 지도 감독하고 있는 것은 이런 일과 관련하여 매우 주목할 만한 일이다.
넷째, 가톨릭 의료가 단지 질병 치료의 영역을 넘어 총체적 인간 개발에 기여해야 한다. 오랜 전통으로 이어 온 가톨릭 교회 의료의 진정한 목표는 단지 환자들의 질병만을 치료해 주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육체적 고통과 질병을 고쳐 줌으로써 온전히 인간성을 회복하도록 하자는 것이며 나아가 총체적 인력 개발을 이룩하게 하자는 것이다. 그것은 모든 인간이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되었으며, 따라서 최대한의 존경을 받아야 할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존엄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의료는 단지 인간의 존엄성을 보호하고 인간의 생명을 유지 성장시키는 데 있어서 중요하고도 필요한 일인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교회 의료는 결국 개인이 속한 지역 사회 속에서 그들의 건강과 생명을 해치는 모든 문제들, 예컨대,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문제들과 불가분의 관련을 맺어야 하며, 필요한 경우 이들 인간 생명 및 건강 관련 환경들을 개선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아직도 의료 혜택의 손길이 먼 농어촌 지역 주민들을 위한 분원 내지 이동 진료소를 설치 운영한다든지, 지역 사회 내 고아, 걸인, 장애자, 그리고 노인들을 위한 특수 시설들의 의료 문제를 돕는다든지 하는 비교적 직접적 의료 관련 지역 사회 보건 활동 이외에도 지역 주민들을 위한 각종 건강 교육 프로그램의 설치, 운영 등에 교회가 특별한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것도 바로 그것이다.
다섯째, 복음적 경영과 정의로운 직원 관리에 모범을 보여야 한다. 가톨릭 교회의 의료 기관 운영이 그리스도의 치유 사업을 본받아 복음 전파와 질병 치유의 의료 사목적 교회 전통을 유지 발전시키는 데 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가톨릭 의료 기관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교회가 왜, 무엇을 위해서, 어떻게 병원을 운영해야 할지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은 바로 그런 교회 병원의 이념 구현 문제가 이윤 추구나 조직의 효율적 관리라는 세속적 의미의 병원 운영 목표와 끊임없이 충돌할 수밖에 없는 현실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런 충돌에서 교회 병원은 언제나 이념 구현을 위한 복음적 경영이 세속적 병원 경영 목표를 앞서도록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교회 병원이 이윤 추구나 효율적 조직 관리보다 이념 구현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앞서 언급한 여러 가지 도전을 극복하는 방법들이 모두 이 일에 필요한 일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이 일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교회 의료 기관 전체가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특성을 발휘하도록 하는 일이다. 말하자면 가톨릭 의료 기관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이 함께 가톨릭 의료 사도직에 참여하도록 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가톨릭 의료 기관 종사자 모두가 가톨릭 신자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이 기관에 종사하는 사람 모두가 봉사하는 그리스도교 공동체 모습이 될 수 있도록 함께 뭉쳐 병원을 운영해 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병원 종사자들이 가톨릭적 원칙에 입각한 진료 활동을 하도록 교육하고 실천적 제도를 만들어 운영하는 일이 중요하다. 한편, 이런 그리스도교적 공동체 형성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경영자와 종사자들 간의 인격적 대우와 서로의 책임감이 전제되어야 한다. 예컨대, 교회 병원 운영자들은 항상 그들 병원 종사자들에게 정당한 물질적 대우를 해주도록 해야 하며, 교회 병원 종사자들 또한 그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필요한 단체 활동을 할 수는 있으나, 이 경우에도 공동체의 본질적 봉사 활동이 장애 받는 일이 발생되지 않도록 하는 일이 중요하다.
※ 참고문헌 J. Redrado, Church and Health in the World, Dolentium Hominum 15(3), 1990, pp. 65~69/ 김창렬, <한국 가톨릭 의료 기관의 사목적 역할과 방향>, 《한국 가톨릭 병원협회지》 24(1), 1993, pp. 5~11/ 미국 가톨릭 주교단, <건강과 의료에 관한 사목 교서>, 《신학 전망》 80호, 1988, pp. 138~155/ 가톨릭 중앙 의료원, 《가톨릭 중앙 의료원 50년사》, 가톨릭 중앙 의료원, 1986. 〔孟光鎬〕
가톨릭 의료 사업
醫療事業
〔영〕 Catholic health care activ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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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치유상(최봉자 수녀 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