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문헌학자. 인도 철학사가. 1845년 1월 17일, 프로테스탄트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독일 라인 지방의 포르타에서 학교를 다녔다. 그의 일생의 친구인 니체 (Nietzsche)와의 교분도 그곳에서 시작되었다. 1864년 본 대학을 시작으로 튀빙겐과 베를린 등지에서 철학 수 업을 계속하였다. 그의 주된 관심 분야는 신학과 철학이 었지만, 문헌학과 산스크리트어 그리고 인도 철학에도 깊은 관심을 쏟았다. 1869년부터 그는 러시아 귀족의 개인 교수로 생활하면서 틈틈이 연구해 오다가 1880년 베를린 대학의 강사를 거쳐 1887년 교수로 임명되었다. 1889년 다시 킬(Kiel) 대학의 철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1919년 6월 7일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여생을 보냈다.
〔주요 사상 및 저서〕 그가 남긴 의미 있는 업적은 무엇 보다도 인도 철학을 일반 철학사 속에 포함시킨 일이다. 그의 주요 저작인 《일반 철학사》(Allgemeine Geschichte der Philosophy)는 6부로 구성된 2권의 철학사인데, 1권을 전
적으로 인도 철학에 할애할 정도였다. 이러한 그의 태도 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우파니샤드나 신약도 그들 나름대로 형이상학을 다루고 있다고 보았던 것이 다. 또 다른 업적은 비교 철학의 모범적인 전형을 보여 주었다는 점이다. 사실 당시의 고전학자들이나 인도학자 들도 도이센만큼 체계적인 비교를 보여 주었던 것은 아 니다. 물론 그의 보편 철학사에서 보여 준 인도 철학사에 대한 전체적인 구상은 14세기에 마드바카르야(Madhva- charya)가 쓴 《전철학 강의》(全哲學講義, Sarvadarsana- Samgraha)를 기초로 한 것이었지만, 그는 나름대로 인도 철학 안에서 체계적인 사상의 맥을 찾고자 노력하였다. 그러한 일련의 노력은 《우파니샤드 60선(選)》(Sechzig Upanishads des Veda)이나 《베단타의 사상 체계》(Das System des Vedanta)의 번역을 통해서 엿볼 수 있다. 또 다 른 그의 역할은 쇼펜하우어(Schopenhauer)의 사상을 집대 성한 데 있다. 니체가 표현한 대로 도이센은 진정한 의미 의 쇼펜하우어 계승자였다. 물론 도이센은 쇼펜하우어를 단순히 염세주의자로만 취급한 것이 아니었다. 도이센이 그를 두고 가장 뛰어난 그리스도교 철학자라고 하였던 것은 삶의 의지야말로 인간적 이기주의(egoism)의 표현 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삶의 의지의 부정은 공 정한 정의의 실현이며 인간적 사랑의 시발점으로 이해하 였던 것이었다. 도이센이 번역한 《우파니샤드의 철학》 (The Philosophy of the Upanishad)이나 《우파니샤드 60선》 은 모두 쇼펜하우어에게 바친 것이었고 그만큼 인도 철 학에 대한 연구의 출발점도 사실 그의 영향 때문이었다. 쇼펜하우어 학회를 세운 것도 도이센이었고 학회의 연감 편집도 그가 직접 맡아 하였다.
따라서 그의 학문적 경향을 뒷받침해 주었던 것은 쇼 펜하우어이며, 당시 모든 지식인들이 빚을 지고 있었던 칸트-헤겔의 관념론이었다. 특히 그가 벵골 왕립 아시아 학회지에 기고하였던 <베단타 철학과 서양 형이상학과의 관계>는 힌두 텍스트 속에서 칸트의 관념적 형태를 모색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비교는 주로 우파니샤드와 베단 타 철학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는데 이때도 칸트나 헤겔의 용어를 빌려 주석을 다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가 받아
들인 선험적 관념론 속에서 브라만(brahman)은 물 자체 (ding-an-sich)에 지나지 않으며 아트만(atman)은 오성에 대하여 인식을 가능케 하는 선험적 주관이었다. 인도의 니야야(Nyaya) 학파가 서양의 과학적 경험주의와 비교될 수 있다면, 일원론적 형이상학인 베단타 사상은 독일의 관념론과 비교될 소지가 다분하였다. 도이센은 심지어 모든 위대한 종교 사상가들은 무의식적으로나마 모두 칸 트주의자라고까지 하였다.
당시 이와 같이 인도 사상에 칸트식의 해설을 덧붙인 것은 비단 도이센만이 아니었다. 순수 이성 비판을 번역 했던 막스 뮐러(Max Müller)도 《인도 육파(六派) 철학의 체계》(The Six System of Indian Philosophy)를 번역하였고, 러시아 학자 체르바스키(Stcherbatsky)도 칸트의 소양 속 에서 다르마키르티(Dharmakirti)를 해석하였던 것이다. 또한 니체가 불교에 대해 가졌던 관심도 도이센과 같이 '쇼펜하우어 체험' 을 통한 것이었다. 이와 같이 인도 철 학 연구의 선구자들이 대부분 독일 관념론 속에서 자신 들의 해석을 가했던 것은 사실이다. 도이센에 따르면 "모든 종교와 철학은 칸트의 표현대로 이 세계는 단지 물 자체가 아닌 표면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으며, 시공간 속에서 무한히 왜곡된 형태로 나타나는 이 세계는, 그것 이 우리의 이성에 이르러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를 말 해 주고 있을 뿐이다. 주지하다시피 철학사를 통해서 이 러한 경향의 철학적 사변을 발전시켜 온 경우는 첫 번째 로 인도의 우파니샤드이고, 두 번째로 그리스의 파르메 니데스(Parmenides)와 플라톤, 그리고 세 번째로 칸트와 쇼펜하우어를 통해서였다" 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칸트를 중심으로 한 관념론적 평가를 못마땅하 게 여겼던 또 다른 인도학자는 키드(A.B. Keith)였다. 그 는 아마도 도이센이 우파니샤드에 당대에 풍미했던 관념 론적 해석을 가하게 됨으로써 이루어진 '대등 비교 가 못마땅하였던 것 같다. 그가 볼 때 우파니샤드는 철학적 문제에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거의 찾아볼 수 없을 뿐 더러 우파니샤드의 절대 정신이 주는 바는 헤겔의 경우 와는 전혀 달리, 도덕이나 정치적인 삶과는 어떠한 연계 성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평가 및 의의〕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도이센이 인도 철학의 체계화에 거의 절대적인 역할을 한 것은 사 실이다. 부분적으로나마 인도의 사상 체계를 독일의 관 념 철학으로 해독함으로써 사실상 비교 철학의 길을 열 어 놓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의 많은 번역서나 해 설서는 아직도 많은 부분 유효하고 가치 있는 것이다.
그의 주요 저작 《일반 철학사》 1권의 2부에는 <우파니 샤드의 철학>이 영역되어 있다. 도이센은 서양 철학사에 과학적인 식견을 통해 동양 사상을 유입한 최초의 서양 철학자였다. 앞서 언급한 책 외에도 《베단타 수트라》 (Die Sutra des Vedanta)를 산스크리트어로 번역했고, 《Vier Gesang des Heiligen》, 《Die Geheimenlehere des Mahabha- ratam》, 《Bhagavadgita》, 《Der Gesang des Heiligen》, 《Die Geheimenlehre des Veda》 등의 저서를 남겼다. 또 많은 책 들이 영역되었는데, 《형이상학 개요》(Die Elemente de
Metaphysik)는 산스크리트어로 옮겨지기도 하였다. 그의 생애에 관한 책으로는 자서전적인 저서 《Mein Leben》이 적당할 것이나, 국내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인 도 철학에 관한 그의 기본서들은 국내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 참고문헌 P. Deussen, The Philosophy of the Upanishads, NewYork ; Dover, 1921/ -, The System of the Vedantal -, The Sixty Upanishas of the Veda/ Wilhelm Halbfass, Indien und Europa : Perspektiven ihrer geistigen Begegnung, Basel ; Schwabe, 1981/ Inden Ronald Imaging India, Basil Blackwell, 1990/ Valentina-Stache, Rogen, German Indologistsl Andrew Tuck, Compative Philosophy and Philosophy of Scholashipl Heinrich Dumoulin S.J. Buddhism and Nineteenth-Century German Philosophy, Journal ofthe History ofldeas 3, 1981. 〔吳將均〕
도이센, 파울 (1845~1919)
Deussen, Paul
글자 크기
3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