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참설

圖讖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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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참설에 의해 이성계가 천도하여 터를 잡은 경복궁.

도참설에 의해 이성계가 천도하여 터를 잡은 경복궁.

미래의 길흉에 관하여 예언하는 술법, 또는 그러한 내 용이 적힌 책. '도참' 의 도는 그림 · 문자 등으로 앞일을 예언하는 것이고, 참은 은어 등의 상징적 표현으로 미래 를 예시하는 것이다. 도 · 참은 부(符) · 록(錄) · 서(書) · 후(候) · 위(緯) 등과 함께 이름만 다를 뿐이지 미래를 표 현한다는 면에서는 사실상 같은 의미이다. 그러나 일반 적으로 도참이라고 할 때에는 임금이 될 사람이나 왕조 의 운명과 관련된 예언적 표현을 지칭한다. 도참이라는 단어가 최초로 나타난 《후한서》(後漢書) <광무기>(光武 紀)의 기사를 보면 이러한 취지가 분명하다. 즉 "완(宛) 땅의 이통(李通) 등이 도참으로써 광무제(光武帝)께 아 뢰기를 '유(劉)씨가 다시 일어나고 이(李)씨가 재상이 됩니다' 라고 하였다"(宛人李通等 以圖識說光武日 劉氏 復起 李氏爲輔)는 내용이 그것이다. 주(注)에서는 도참 의 뜻을 "임금 될 사람이 천명을 받는 것에 대한 징표" (王者受命之徵驗)라고 풀이하였다. 이러한 도참은 형식 적인 면에서는 수수께끼식의 부호적인 간결하고 정제된 표현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이것이 도참설이 발생한 중 국에서의 도참의 본질이다. 도참의 이 같은 의미는 고대 한국에도 그대로 계승되었으나 고려 이후 풍수 지리설과 결합하여 중국의 본뜻과는 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 다. 우리 나라에서의 도참의 의미는 풍수 지리적 취지에 입각하여, 왕조의 운명과 관련지은 예언의 성격이 강하 다.
〔기원과 전개〕 도참설의 기원 및 역사적 전개에 대해 살펴보면, 중국의 경우 일찍이 《논어》(論語)〈자한〉(子 罕) 편에 "봉황새가 나타나지 않고 하수에서 그림이 나 오질 않으니 내 운명도 다하였나 보다!"(鳳凰不至 河不 出圖 吾已矣夫)라는 공자의 한탄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도참과 관련한 예언적 사고가 동주(東周) 시기부터 이미 유행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고가 보다 정교 한 주술적 논리를 갖추게 되는 것은 전국 시대에 음양 오 행설을 제창하고 그것에 의해 왕조의 교체와 순환을 설 명하였던 추연(騶衍) 및 그를 추종하는 방사(方士)들에 의해서이다. 이후 한대(漢代)에 들어와 유학이 이 영향 을 받아 천인 감응설(天人感應說) · 재이설(災異說) 등 을 바탕으로 한 참위 신학(讖緯神學)으로 변모하면서, 도참설은 본격적으로 유행하게 되었다. 한 고조(高祖) 유방(劉邦)의 개국, 광무제 유수(劉秀)의 부흥 운동 등 과 관련된 도참은 대표적인 것들로 모두 왕권 신수설적 인 입장에서 황제의 신권을 옹호할 목적에서 조작되었
다. 한대에 방사 혹은 방사 성향의 유자(儒者)에 의해 만 들어지고 유포되었던 도참은, 위진 남북조(魏晉南北朝) 이후 도교와 왕조 권력과의 긴밀한 결탁 속에서 주로 도 사(道士)의 손에 의해 이루어졌다. 《양서》(梁書) <도홍 경전〉(陶弘景傳)을 보면, 도사 도홍경이 "수축목(水丑 木)이 양자(梁字)가 된다" (水丑木爲梁字)라는 도참설로 써 양(梁) 무제(武帝) 소연(蕭衍)에게 천자 등극을 미리 알렸다는 기사가 있다. 도사 왕원지(王遠知)가 당 고조 (高祖) 이연(李淵)의, 진단(陳摶)이 송 태조(太祖) 조광 윤(趙匡胤)의 등극을 예언하였다는 일들이 모두 이러한 범주에 속한다.
〔한국에서의 도참 사상〕 역사상 최초의 도참은 《삼국 사기》 <백제 본기>(百濟本紀) 의자왕 조(義慈王條)에 실 려 있다. 그 기록에 따르면 "백제는 보름달과 같고 신라 는 초승달과 같다" (百濟同月輪 新羅如新月)는 참구(讖 句)가 새겨진 거북이 출현해서, 쇠망하는 백제와 흥기하 는 신라의 국운을 암시하였다고 한다. 《삼국사기》 <열 전>에는 최치원(崔致遠)이 지었다는 "계림은 누런 잎이 요, 곡령은 푸른 솔이다" (鷄林黃 鵠嶺青松)라는 참구 가 있다. 이것은 신라와 고려의 국운에 대한 앞의 것과 같은 대비적 예언이라 할 수 있다. 이어서 《고려사》(高麗 史) <태조세가>(太祖世家)에는 고려 태조 왕건(王建)의 창업과 관련한 도참이 등장한다. 이른바 고경참(古鏡識) 이 그것으로 왕창근(王昌瑾)이라는 상인이 한 노인으로 부터 거울을 샀는데 거울에 새겨진 글씨를 해독하였더니 왕건이 등극하고 삼국 통일의 대업을 이룩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는 것이다. 이는 거울의 신비한 주술 역량을 소재로 한 중국의 지괴(志怪) 및 전기(傳奇) 소설적 구 성이 가미된 도참이라 할 것이다. 고려 시대에는 전 시기 를 통하여 도참설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신라 말 고려 초에 유행하였던 도선(道詵)의 지리 도참설에 따라 태조 의 <훈요십조>(訓要十條) 내용이 결정되었고, 제11대 문 종(丈宗)으로부터 16대 예종(睿宗)에 이르는 기간에는 송도(松都)의 기쇠설(氣衰說)과 연기 사상(延基思想)이 도참설의 주류를 이루었다. 다시 말해 송도의 지기(地
氣)가 쇠퇴하였으니 새로운 길지(吉地)를 택하여 이궁 (離宮) · 이경(離京)을 세워 왕이 순주(巡駐)함으로써 왕 업(王業)을 연장시키려 하였던 것이다. 인종(仁宗) 때에 는 도참과 상관된 정변이 연이어 일어났다. 권신 이자겸 (李資謙)은 "십팔자(十八子, 즉 李)가 왕이 된다"(十八子 爲王)는 도참에 현혹되어 일을 꾸미다가 귀양갔고, 승려 묘청(妙淸)은 지기가 왕성한 서경(西京)으로의 천도를 주장하다가 급기야는 반란을 일으키기까지 하였다. 이후 무인 정권 시기로부터 마지막 임금인 공양왕(恭讓王)에 이르기까지 도참과 관련한 논의는 끊임없이 일어났다.
고려 말 조선 초에는 '십팔자위왕' (十八子爲王) , '목 자득국' (木子得國) 등의 참언(讖言)이 유행하여 태조 이 성계(李成桂)의 창업을 고무하였으며, 태조는 즉위 후 하륜(河崙)의 헌책을 받아들여 《도선 비기》(道詵秘記)에 따라 한양으로의 천도를 단행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합 리주의를 추구하는 성리학의 영향으로, 도참설이 전반적 으로 고려조의 경우처럼 크게 유행하지는 못하였다. 중 종(中宗) 때의 "주초(走肖, 즉 趙)가 왕이 된다" (走肖爲 王)라는 참언에 따른 조광조(趙光祖)의 실각, 선조(宣 祖) 때의 "목자(木子, 즉 李)가 망하고 전읍(奠邑, 즉 鄭) 이 흥한다" (木子亡 奠邑興)는 참구에 의한 정여립(鄭汝 立)의 모반 같은 사건을 제외하고, 왕실 및 지배층은 도 참설에 별로 뚜렷한 관심을 보이질 않았다. 다만 조선 후 기에 이르러 왕권 통치의 모순이 드러나고 민심이 이반 되면서, 도참설은 오히려 민간의 불만 계층 사이에서 폭 넓게 유행되었다. 이 방면의 대표적인 책인 《정감록》(鄭 鑑錄)은 이씨 왕조의 멸망을 예언하고 난리를 피해 살기 좋은 땅을 도참의 형식으로 설명하여 임진왜란과 병자호 란을 겪은 혼란한 인심을 사로잡았다. 그 뒤 홍경래(洪 景來)는 '제세진인' (濟世眞人)이 반군을 돕는다는 참언 으로 서북인의 분발을 촉구하였고, 최제우(崔濟愚)는 동 학을 창립하고 도참 · 비기류(秘記類)를 종교적으로 승 화시켜 태평 시절의 도래를 예언했다. 또 고종(高宗) 연 간에는 이와 달리 왕권 옹호의 차원에서 경복궁 재건을 고무하는 참언이 새겨진 '동방 노인' (東方老人) 명의의 각석(刻石)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이것으로 보아 삼국 시대 이래 조선 말기에 이르기까지 도참설은 왕조의 흥 망 성쇠와 함께 끊임없이 존재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의 의〕 이제까지 도참설의 역사적 전개를 고찰해 보 았을 때, 도참설은 왕조의 교체기 혹은 혼란기의 산물로, 그것은 지배 권력을 합리화시키고자 하는 의도에서 이루 어진 상징 조작의 측면과 불만 계층의 동향이나 소망을 대변하는 볼온한 언론의 측면이 있다. 전자의 경우 도참 설은 중국 한대(漢代)의 참위설 이래 주로 왕권 신수 설 · 왕권 강화론적인 입장에서 전개되어 왔으며 관방 도 교(官方道敎)가 이의 유포와 관련되어 있다. 한국의 경 우는 풍수 지리설이 깊게 관련되어 있는 것이 한 특징이 다. 후자의 경우 도참설은 중국 한대의 황건적(黃巾賊) 의 난 이래 주로 민중 봉기 · 반란 사조를 조장하거나 그 배후의 이념적 요소로 작용해 왔으며 민간 도교를 위시 한 각종 민간 종교 및 비밀 결사(秘密結社)가 이의 발생
과 깊게 관련되어 있다.
※ 참고문헌  《後漢書》/ 《三國史記》/ 《高麗史》/ 《朝鮮王朝實錄》/ 李養正, 《道教概說》, 中華書局, 1989/ 安居香山, 《緯書の成立 と そ の 展開》, 國書刊行會, 1979/ 陳槃, 《讖緯釋名》, 歷史語言硏究所集刊, 1944/ 李丙燾, 《高麗時代의 圖讖思想》, 韓國思想叢書 5, 景仁文化 社, 1975. 〔鄭在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