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북송(北宋) 중엽에 발생하여 남송(南宋) 시대 에 정립된 유교 이념의 새로운 체계. 도학이라는 용어를 독자적인 학풍의 개념으로 분명하게 설명한 문헌은 《송 사》(宋史) <도학전>(道學傳)이다. 《송사》에서는 <유림 전>(儒林傳)과는 별도로 <도학전>(4권)을 수록하여 유학 자들 가운데 일반적인 유림과 도학자를 구별하고 있다.
〔<도학전>과 도통 의식] <도학전>에서는 '도학' 이라는 명칭이 고전에 없었음을 지적하면서, 유교 사상사 속에 서의 도학의 형성 과정과 성격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 다. 선진(先秦) 시대에 공자가 편찬한 6경(六經)에서 제 시된 도(道)를 증자(曾子)가 잇고 자사(子思)를 거쳐 다 시 맹자에게 전해졌다. 그러나 한(漢)대 이래로 유학자 들의 도에 관한 논의가 정밀하지 못하여 이단(異端)의 사설(邪說)이 일어나서 천 년 동안이나 도가 묻혀 있었 다. 북송 중엽에 이르러 주돈이(周敦頤)가 성현의 끊어 진 학문을 이었다. 그는 <태극도설)(太極圖說)과 《통서》 (通書)를 지어 천명(天命)과 인성(人性)의 관계를 밝혔 다. 장재(張載)는 <서명>(西銘)에서 이일분수(理一分殊) 의 이치를 밝힘으로써 도의 근원이 하늘에서 왔다고 하 였다. 주돈이에게 배운 정호(程顥)와 정이(程頤) 형제는 《대학》, 《중용》 두 편을 《논어》, 《맹자》와 더불어 드러내 어 옛 성왕(聖王)이 전해 준 깊은 심법(心法)과 초학자 가 덕(德)에 입문하는 방법을 밝혔고, 남송 시대에 주희 (朱熹)는 정씨 형제의 학풍을 계승하여 격물치지(格物致
知)와 명선성신(明善誠身)을 요체로 삼았다. 그는 공자 의 경전을 진(秦)대의 소각으로 인한 혼동과 착오, 한대 의 지리한 훈고학, 그리고 위진 남북조 시대의 아득한 현 학(玄學)에서 밝게 드러내어 제자리를 잡게 하였다. 그 에 이르러 송대 도학자들이 맹자의 학풍을 잇게 되었고, 도학도 송대에 융성하게 되었다. 이러한 도학적 유교 사 상사의 인식은 도학의 독특한 도통(道統) 의식과 도의 근원을 밝히려는 학풍의 성격을 보여 준다.
<도학전> 제1권에는 주돈이 · 정호 · 정이 · 장재 · 소 옹(邵雍)이, 제2권에 정호 · 정이 형제의 문인들, 제3권 에 주희와 식(張栻)을, 제4권에서는 주희의 문인들이 수록되어 있다. 당시의 석학 여조겸(呂祖謙) · 육구연(陸 九淵) · 채원정(蔡元定) · 섭적(葉適) · 호안국(胡安國) · 진량(陳亮) · 진덕수(眞德秀) 등은 명망과 비중에도 불 구하고 <유림전>에 실려 있다. 물론 이들 가운데는 도학 자들과 학풍이 다른 육구연 · 섭적 · 진량 등의 경우도 있 지만, 주희와 깊은 친교가 있고 도학의 학풍이 같아 후기 의 도학자들로부터 받들어지던 여조겸 · 채원정 · 호안 국 · 진덕수 등의 경우도 <도학전>에 들어 있지 않다. 이 것은 도학이 엄격한 도통을 기준으로 삼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정씨 형제와 주희의 경우, 그들의 문인들을 수록하여 도통의 계승을 보여 주고 있 는 것은 도학에서 정씨 형제와 주희의 비중을 엿볼 수 있 게 한다.
〔명 칭〕 도학이라는 명칭과 같거나 비슷한 의미를 지 닌 다양한 명칭들이 사용되어 왔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도 명칭의 혼동이 심한데, 이 명칭들 사이의 관계를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도학을 형성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하 였던 정(程)씨 형제와 주희의 이름을 따서 정주학(程朱 學)이라 하기도 하고, 도학의 집대성자인 주희의 이름을 따서 주자학(朱子學)이라 일컫기도 한다. 도학이 발생한 때가 송대라는 점에서 송학(宋學)이라 하며, 그 학문적 성격이 근원적 이치를 탐구하는 철학적 특징을 지녔다고 해서 이학(理學)이라고도 한다. 특히 천명과 인성의 이 치를 해명하는 문제를 핵심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성 리학(性理學)이라 일컬어지기도 한다. 나아가 송대에서
명대 사이에 융성하였던 이학이라는 점에서 송명 이학 (宋明理學)이라고도 한다. 또한 도학이 한대의 훈고학 (訓誥學)적 학풍이나 당대의 사장학(詞章學)적 학풍을 쇄신한 학풍으로 등장하였던 유학이라는 점에서 신유학 (新儒學)이라고 일컫기도 한다.
이 여러 명칭들 사이에는 도학 개념과 범주가 다른 경 우가 많다. '정주학' 과 '주자학' 은 도학의 대표적인 인 물을 중심으로 붙인 호칭이다. 이러한 인물 중심의 호칭 은 학설이 다양해지고 사상이 발전함에 따라 적합성이 점점 약해지는 한계가 있다. 또 '송학' 의 경우는 발생 시 대를 가리키는 명칭인데 송학 안에는 도학 이외의 학풍 도 있을 수 있고, 한국의 도학은 송학이라는 중국 학풍과 구별될 수 있다는 점에서 호칭의 한계가 있다. '이학' 에 는 도학뿐만 아니라 육상산 · 왕양명의 학풍인 심학(心 學)도 포함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도학보다 외연이 넓은 호칭이라 할 수 있다. '송명 이학' 이라는 호칭은 송 · 명 이라는 시대의 호칭과 이학이라는 학문 주제의 호칭에 모두 문제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성리학' 은 도학의 핵심적인 영역이기는 하지만 도학의 전체를 가리키기에 는 너무 좁은 범주라 할 수 있다. '신유학' 은 송대 이후 의 신학풍이라는 점에서 가장 광범한 명칭으로서 도학과 심학의 이학파뿐만 아니라 사공파(事功派)의 학풍까지 도 포함할 수 있는 데 문제가 있다.
〔내 용〕 도학의 기본 정신인 정통론(正統論)에는 엄격 한 도통론(道統論)과 이단 배척의 벽이단론(闢異端論) 을 포함하고 있다. 주희는 <중용 장구서>의 첫머리에서 《중용》을 저술한 동기를 "자사(子思)께서 도학이 전해지 지 못할까 근심하여 지은 것이다. 무릇 상고 시대로부터 성신(聖神)이 천명을 이어서 인극(人極)을 세우니 도통 의 전승이 이로부터 시작하여 내려왔다" 고 설명하였다. 여기서 주희는 도학과 도통을 연관시켜 제시하면서, 도 통' 의 두 글자가 <중용> 서문의 강령이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도학의 정통론은 한 줄기의 계열로 계승되어 내려 가는 엄격한 도통 체계를 확립하면서 도통에 어긋난 사 상에 대한 비판 의식을 발휘하여 왔다. 불교나 도가 사상 은 도통론적 의식에서는 이단으로 규정되어 배척을 받았
다. 벽이단론의 관철은 사실상 도학이 당시의 불교와 도가 사상을 비 롯한 여러 사상적 유파 와 구별하여 자신을 확 인하는 기본 방법이었 다. 심지어는 유학 사상 가운데서도 도학의 정 통성에 어긋나는 입장 들을 무통(無統) 또는 잡통(雜統)으로 규정하 거나 이단으로 비판하 는 경우도 있다.
정통론의 기초적 관 심은 도학 체계 속에서
다양한 영역으로 확산되었다. 도학의 사상 체계에서는 도통을 비롯하여 경학(經學) · 출처(出處) ·도체(道體) · 위학(爲學) · 예악(禮樂) · 치도(治道) 등의 기본 문제들을 논의해 왔다. 이러한 문제들은 주석을 통한 경전 해석 체 계로서의 '경학' , 정당성을 요구하는 행위의 근본 원리 로서 '의리론' (義理論), , 의리의 근거가 되는 우주론적 근원과 인간의 심성적 내면을 파악하려는 '성리학' , 인 격의 연마와 배양을 위한 방법을 제시하는 '수양론' (修 養論) , 정당성의 원리에 따라 구체적인 행위의 절차와 형식을 확인하여 사회적으로 실천하는 '예학' (禮學), 그 리고 사회 제도와 정치를 통하여 도학 이념의 실현을 추 구하는 경세론' (經世論) 등이 있다. 여기서 보면 성리 학도 도학의 여러 문제 영역 가운데 하나임을 알 수 있 다.
도학은 경학에 학문적 기초를 두고 있다. 정씨 형제와 주희가 확립한 사서(四書)의 주석을 통하여 사서 중심의 경학이 제시되었다. 《대학》의 해석에서 주희의 도학과 왕양명의 심학이 기초하는 경학적 입장이 선명하게 구별 되고 있다. 여기에 주희가 편찬한 《소학》(小學)이 사서 의 기초로 중시되고 있다. 또한 도학의 전통에서는 의리 론이 핵심을 이루고 있다. 도학자로서 선비가 살아가는 구체적 행동 원리는 강상론(綱常論)의 규범적 의리와 화 이론(華夷論)의 춘추 대의이다. 도학이 발생한 송대에는 금(金)나라의 압박을 받아 의리 정신에 따른 저항 의식 이 강하게 일어났으며, 조선 말기에도 도학자들은 민족 적 위기에 강인한 저항 정신을 발휘하면서 의리 정신과 절의를 내세웠다.
성리학에서는 태극론을 비롯한 이기론(理氣論)과 심 성정론(心性情論) 등의 철학적 문제가 논의되어 왔지만 주리론(主理論)이 정통으로 인정되어 왔다. 수양론은 격 물 치지론 등 지식론과 성경론(誠敬論), 지행론(知行論) 의 문제들을 포함하며, 특히 거경(居敬)과 궁리(窮理)를 중심으로 하는 수양 방법이 강조되고 있다. 예학은 이익 (李濯)이 "유교는 예학이 반이요, 이학이 반이라" 할 만 큼 큰 비중을 지닌 영역이다. 특히 조선 후기의 도학에서 는 예송(禮訟)의 논쟁을 불러일으킬 만큼 중요한 과제였 고, 《가례》(家禮)의 비중이 매우 높아졌다. 도학이 발생 한 송대에는 귀족들이 몰락하고 중앙 집권 체제가 성립 되었다. 경세론은 이와 같은 배경 속에서 사대부가 정치 를 담당하면서 탐색되었다. 도학의 경세론은 왕권을 강 화하고 민생을 안정시키려는 관심에서 출발하여 의리의 정치적 구현을 도모하는 도덕적 경세론이다. 이와는 달 리 실학의 경세론은 청대 초기나 조선 시대 후기에 제도 의 효율성과 민생의 향상을 도모하는 실용적 경세론으로 서 등장하였다.
〔한국의 도학 전래와 발전〕 고려 말엽에 주희의 경전 주석을 수용하면서 도학이 형성되었다. 고려 말의 정몽 주는 이색(李穡)으로부터 '동방 이학의 시조' 라 일컬어 질 만큼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다. 그는 친명 정책을 추진 하여 화이론적 의리론을 확립하고 고려 왕조에 충절을 지켜 순절의 의리를 밝혔다. 또한 그는 가묘(家廟) 제도
를 도입하고 주자 가례를 시행하여 예학을 실천함으로써 도학적 성격을 분명하게 드러내었다. 조선 시대에 정도 전(鄭道傳) 등은 불교 비판의 벽이단론을 강력하게 제기 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도학적 의리론에서는 절의를 존 중하고 선비 정신을 실현하여 엄격한 출처의 의리를 형 성하였다. 조광조(趙光祖)는 도학적 경세론의 이상으로 서 지치(至治)의 실현을 추구하여 '동방 도학의 시조' 라 는 호칭을 받기도 하였다. 그 뒤 이황(李滉)과 이이(李 珥)를 중심으로 한 성리학적 논변이 활발히 일어났으며, 17세기에는 김장생(金長生)과 김집(金集)의 예설과 윤 휴(尹鐫)와 송시열(宋時烈) 등의 예송에서 보는 것처럼 예학의 융성기를 맞이하였다. 정통주의적 벽이단론과 화 이론적 의리론은 만주족의 청에 대한 저항을 표방하는 배청(排淸) 의리론, 서학(西學)에 대한 배척으로서의 척 사론(斥邪論), 그리고 서양과 일본의 침략 세력에 대한 저항 정신의 척사 위정론(衛正斥邪論)과 의병(義兵) 운 동 등으로 나타났다.
〔의 의〕 도학은 확고한 이념적 체계와 강한 신념을 통 해 송대 이후 중국 사회와 조선 사회에서 사회 이념의 주 도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것은 사회를 굳게 결속시켜 안정의 원동력이 되었고, 또한 외세의 침략 앞에서는 강 인한 수호 의지로 나타났다. 그러나 도학의 정통주의적 신념은 포용성이 적어 시대의 변화에 보수적 성격을 띠 는 한계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도학적 신 념은 조선 시대의 정통 이념으로서 풍부한 사상적 문화 적 유산을 남겨 주고 있음에 주목하여야 한다. 비록 도학 전통의 제도와 형식이 오늘날 타당성을 잃은 부분이 크 다 하더라도, 그 근원의 이념과 원리에 대해서는 깊은 관 심과 이해가 요구되고 있다. (→ 성리학)
※ 참고문헌 《宋史》 《近思錄》 《性理大全》 금장태, 《한국 유교 의 이해》, 민족문화사, 1989. 〔琴章泰〕
도학
道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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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 이학의 시조라 불린 정몽주(왼쪽)와, 동방 도학의 시조 조광조를 모신 심곡 서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