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 신학 특히 그리스도론적인 용어로서 그리스어 모 노게네스(μονογενής)를 옮긴 말. 우리말 성서나 사도 신 경에는 외아들로 번역되어 있다. 그러나 독생자와 외아 들은 의미상 약간의 차이가 있다. 모노게네스의 어원적 인 의미도 모호한 편인데, 모노(μονο)와 게네스(γενής) 로 이루어진 합성어 모노게네스에서 게네스의 어원을 무 엇으로 보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게네스를 '되다' 란 뜻을 지닌 동사 기노마이(γίνομαι) 에서 파생된 것으로 볼 경우, 모노게네스가 종류나 범주 를 우선적으로 가리켜 '유일한 (자)' 내지는 '유일무이 한 (자)' 라는 가치나 평가를 드러내는 뜻을 갖게 된다. 그러나 '출산하다' 나 '낳다' 라는 뜻을 지닌 동사 겐나오 (γεννάω)에서 파생된 것으로 볼 경우에는, '유일하게 태 어난 (자)' 내지는 '태어난 유일한 (자)' 또는 단 한 분 으로부터 태어난 (자)' 를 가리킨다. 그리고 종족이나 혈 족을 뜻하는 명사 게노스(γένος)에서 파생된 것으로 볼
경우에도, 기원이나 출처의 뜻은 배제되지 않고 '유래된 (자)' 내지는 '파생된 (자)' 라는 뜻에 역점이 있게 된다. 아무튼 모노게네스가 어린아이에게 적용되어 '외아들' 이나 '외동딸' 을 가리키는 경우, 부모로부터 유일하게 태어난 출생의 뜻뿐만 아니라 부모에게는 그 아이가 무 엇으로도 대치할 수 없는 아주 애지중지하다는 뜻까지도 내포되는 것이다. 문법적으로 볼 때, 특히 '유일하게 태 어난 (자)' 라는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모노겐네토스 (μονογεννητός)가 더 적절하다. 그런데 이런 표현은 사실 상 사전에도 없고, 다른 문헌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이 것은 모노게네스가 모노겐네토스의 뜻으로 사용하였다 는 가능성을 시사해 준다. 설령 모노겐네토스가 별도로 사용된 사례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모노게네스와 거의 동 일한 뜻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물론 독생자의 개념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런 어원적 인 고찰이 선행되어야 하고, 그 고찰 역시 매우 중요하 다. 하지만 이 용어가 어떤 맥락 속에서 어떻게 사용되었 는가를 살펴봄으로써 보다 더 정확하게 그 의미를 파악 할 수 있다. 따라서 고전 그리스 문헌 특히 헬레니즘 시 대의 문헌들도 살펴볼 만한 가치가 있다. 그러나 범위를 좁혀 성서 안에서만 그 개념을 살펴보기로 한다. 이는 이 용어가 성서 안에서 사용됨으로써 고유하고 독특한 신학 적인 의미를 갖게 되었기 때문이고, 우선 그 의미를 구체 적으로 파악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성서적인 의미〕 70인역 성서 : 70인역 성서에서는
단 하나밖에 없는' 내지는 '유일한' 이란 뜻을 지닌 히 브리어 야히드(יָחִיד)를 그리스어 모노게네스로 번역하 였다(판관 11, 34). 이런 의미로 사용된 모노게네스의 표 현을 70인역 성서에서 더러 볼 수 있다(시편 21, 20 : 24, 16 ; 34, 17 ; 토비 3, 10-15 ; 6, 10. 14 ; 8, 17). 그리고 야히드는 '사랑한' 이란 뜻을 지닌 그리스어 하가페토스 (ἀγαπητός)란 낱말로도 번역되었다(창세 22, 2. 12. 16 ; 예레 6, 26 ; 아모 8, 10 ; 즈가 12, 10). 따라서 모노게네스 란 표현이 적어도 70인역 성서에서는 '사랑한' 이란 가 치 평가의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는 없 다. 자식이라고는 아들이든 딸이든 단 하나밖에 없을 경 우, 그 자식은 부모로부터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 실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마르 12, 6). 그러므로 공관 복음서에서 언급되는 하느님의 '사랑하는(하가페토 스) 아들' (마르 1, 11 ; 9, 7)이란 표현은 요한 복음에서 언급되는 하느님의 '외(모노게네스)아들' (요한 1, 14. 18 ; 3, 16. 18 ; 1요한 4, 9), 곧 독생자란 말과 의미상 가장 가 깝고 밀접하다고 볼 수 있다. 즉 메시아로서 이 세상에 파견된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모노게 네스(하느님으로부터 유일하게 태어난 외아들, 유일무이한 독 생자)요, 하느님의 하가페토스(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 는, 가장 값지고 보배와 같은 사랑하는 외아들)인 것이다.
물론 모노게네스와 하가페토스가 반드시 의미상 일치 를 이루는 것은 아니다. 달리 말하자면 모노게네스는 하 가페토스의 뜻으로 곧바로 대치될 수는 없다. 또한 모노 게네스는 '맏아들' 내지는 '첫 출산' 을 가리키는 그리스 어 프로토토코스(πρωτότοκος)란 표현(출애 4, 22 ; 민수 3, 12-13 ; 루가 2, 7)보다 더 깊은 뜻을 내포한다. 그리고 모노게네스는 비인칭적으로 사용되어 '유일한' (시편 21, 20 ; 34, 17) 이외에 '고독한' 내지는 '외로운' 이란 뜻도 가리킨다(시편 24, 16 : 바룩 4, 16).
신약성서 : 모노게네스는 신약성서에서 모두 아홉 번 언급되어 있다(루가 7, 12 : 8, 42 9, 38 ; 요한 1, 14. 18 : 3, 16. 18 : 히브 11, 17 ; 1요한 4, 9). 그것도 루가 복음 과 히브리 서간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언급이 아니다. 즉 그리스도론과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다. 부모 에게 단 하나밖에 없는 자식,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애지중지하는 자식이란 뜻으로서 '외아들' (루가 7, 12 ; 9, 38 ; 히브 11, 17) 또는 '외동딸' (루가 8, 42)을 가 리킨다. 특히 루가 복음에서 모노게네스는 위급한 상황 에 놓인 외아들이나 외동딸을 가리킴으로써 예수로 말미 암아 치유된 사건의 위대함과 그 위급한 상황에서 구출 한 예수의 사랑과 자비 그리고 예수를 전적으로 신뢰해 야만 하는 절박함 등을 드러내는 데에 사용되고 있다. 하 지만 히브리서의 모노게네스는 의미상 차이가 있는데 그 것은 사실상 아브라함이 이미 다른 자녀들을 갖고 있었 기 때문이다(창세 16, 3-4 ; 17, 22-25 ; 25, 1-2). 즉 이사 악이 아브라함의 외아들(모노게네스)로 언급되어 있는데, 그 의미는 약간 다르다. 여기서 모노게네스는 하느님의 약속으로 얻게 된 아브라함의 유일무이한 아들(창세 21, 12)이란 뜻으로 언급된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하느님
으로 말미암아 맺어진 아브라함과 이사악의 관계뿐 아니 라, 이사악 자신의 신원과 정체까지도 시사한 모노게네 스 개념이다. 또한 이 개념은 하느님께 대한 아브라함의 믿음, 신뢰, 충실을 시험해 보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하 였다(히브 11, 17-19).
모노게네스가 그리스도론적으로 언급된 대목은 오로 지 요한 복음(1, 14. 18 ; 3, 16. 18)과 요한 서간(1요한 4, 9)뿐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모노게네스라 칭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모노게네스라는 것이 다. 그런데 두 대목에서는 '아들'' 이란 명사 없이 모노게 네스만 단독으로 사용되어 있다(요한 1, 14. 18). 즉 형용 사 모노게네스가 명사적으로 언급되어 문맥상 아들이란 의미가 시사되었을 뿐이다. 아무튼 하느님과 예수 그리 스도와의 관계, 예수의 신원과 정체가 모노게네스 개념 으로 설명된 것은 분명하다. 이 개념은 하느님의 '사랑 하는 아들' (마르 1, 11 : 9, 7), 하느님의 '친아들' (로마 8, 3. 32) 내지는 '맏아들' (로마 8, 29 : 골로 1, 15. 18)이란 표현보다 더 깊고 폭 넓은 뜻을 갖고 있다. 모노게네스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버지 하느님으로부터 태어난 유일한 아들 곧 독생자(요한 1, 14)로서, 하느님과 동등한 관계 속에서 일치를 이루고(요한 5, 18 : 10, 30) 하느님이라 불리며(요한 1, 18 : 20, 28) 믿음의 대상으로서(요한 3, 18),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하느님의 유일무이한 아들 로서(요한 3, 16 : 1요한 4, 9) 명시되기 때문이다.
〔요한 복음 사가의 그리스도론적 의미〕 용법 및 문맥 과 개념 : 요한 복음에서 모노게네스는 서로 다른 두 곳 에 언급되어 있다. 즉 로고스 찬미가가 보도된 서문(1, 14. 18)과 요한 복음 사가가 복음으로 선포한 이른바 케 리그마(3, 16. 18) 대목이다. 그리고 요한 서간에서 언급 된 대목(1요한 4, 9)은 사실상 요한 복음 3장 16절과 같 은 맥락이다. 즉 요한 1서 4장 9-10절의 내용은 요한 복 음 3장 16절의 내용을 설명한 일종의 주해이다.
서문에서는 모노게네스가 단독으로 언급되어 있다. 즉 형용사 모노게네스가 명사적으로 사용된 것이다. 그러나 케리그마 대목에서는 모노게네스가 '아들' 이란 명사와 함께 사용되어 아들을 수식해 주는 역할을 한다. 달리 말 하자면 하느님의 아들이 형용사 모노게네스로 인해 보충 설명된 셈이다. 그리고 모노게네스가 서문에는 아버지와 의 관계 속에서 언급되어 있고, 하느님의 아들로서 시사 되며 하느님으로 칭해지기도 한다(1, 8). 그러나 케리그 마 대목에서는 모노게네스가 하느님과의 관계 속에서 언 급되어 있고, 하느님의 아들로서 명시되며 하느님께 소 속되어 있다. 또한 문맥상 모노게네스가 시사한 의미를 비교해 볼 수도 있다. 즉 서문에서는 모노게네스가 로고 스의 육화 사상의 맥락 가운데 아버지로부터 유래한 사 실 곧 출처나 탄생 그 자체에 역점을 두는 듯하다. 이에 반해서 케리그마 대목에서는 모노게네스가 하느님의 구 원 계획의 맥락에서 세상으로 파견된 하느님의 아들의 유일무이한 품위와 그 가치에 역점을 두는 듯하다. 이와 같이 모노게네스는 그리스도론적이요 구원론적인 맥락 가운데서 독특한 방식으로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모노게네스의 개념에 대해서는 사실상 예나 지 금이나 논쟁이 아직도 그치지 않고 있다. 그 쟁점은 크게 두 가지로 맞서 있다. 하나는 '하느님으로부터 태어난 유일한 아들' 내지는 '하느님으로부터 유일하게 파생된 아들' 을 가리키는 뜻으로서 탄생이나 출처에 역점을 두 는 견해이다. 라틴어 우니제니투스(unigenitus)나 우리말 '독생자' 는 여기에 해당하는 표현이다. 사도 신경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아버지 하느님으로부터 태어난 외아들 곧 하느님의 독생자로 고백한다. 그러나 우리말 사도 신 경에는 '외아들' 로만 번역되어 있다. 다른 하나는 '하느 님의 유일한 아들' 내지는 '하느님의 유일무이한 아들' 을 가리키는 뜻으로서 가치 평가나 특성 및 자질에 역점 을 두는 견해이다. 라틴어 우니쿠스(unicus)나 우리말 '외아들' 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견해가 원래 성서적인 의미이며 더 원천적인 전승의 의미라고 말한다면, 전자 의 견해는 복음 선포에 따라 신학적으로 발전된 그리스 도론적인 의미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이 말 자체도 전 자의 견해만을 내세우는 자들에게는 인정되지 않고 있 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70인역 성서가 히브리어 야히드 를 그리스어 모노게네스나 하가페토스로 번역한 것을 고 려한다면, 모노게네스를 반드시 탄생이나 출처의 뜻으로 만 고정시킬 수는 없다. 어원적인 의미에서도 역시 마찬 가지이다. 즉 그 무엇으로도 대치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특성을 강조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가능성 을 전제로 하고서 텍스트의 문맥에 따라서 그 개념을 파 악할 수밖에 없다.
서문 : 모노게네스가 언급된 요한 복음 1장 14절은 로 고스의 육화에 관한 내용으로서 로고스 찬미가에 있어서 절정에 이르는 대목이다. 즉 하느님과 함께한 로고스가 육을 취해 인간과 함께 거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 은 참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성과요, 새롭고 일회적이며 유일무이한 사건이다. 로고스는 이미 영적인 방식으로는 세상에 내재하며 활동하였으나(1, 10-11), 이제 신비로 운 사건이 이루어진 것이다. 즉 로고스가 육화하여 직접 인간 세계로 온 것이다. 이와 같이 로고스의 육화에 대한 언급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 육화는 로고스의 존재 방 식에 있어서 하나의 변화를 뜻한다. 전에 아버지와 함께 영광 가운데 있었던 로고스가 이제 지상적-인간적 실존 의 비천함을 받아들인 셈이다. 참으로 한 사람으로서 사 람들과 함께 거처하게 된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육화한 로고스는 아버지께로 되돌아가서 천상적인 실존의 영광 을 다시 얻기 위하여(17, 5) 육의 완전한 실재 속에서 살 아가게 된 것이다. 이런 육화의 목적은 지상 인간에게 천 상적인 계시와 신적인 삶(영원한 생명)을 주기 위한 것이 다(3, 31-36). 그러므로 로고스의 육화는 구원 역사에 있 어서 하나의 대전환점이다. 인간을 위해서 종말론적인 마지막 구원의 가능성이 열리게 된 것이다.
모든 사람을 비추고 있는 빛, 로고스(1, 9)가 육화하여 이제 모든 사람에게로 왔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육화한 로고스의 '영광' , 곧 영원한 신적인 영광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영광은 바로 '아버지로부터 (오는) 모노게 네스의 영광' 으로 언급되어 있다(1, 14). 모노게네스가 '하느님' 으로부터가 아니라 '아버지' 로부터 온 것으로 표현됨으로써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도 시사되어 있다. 즉 '아들' 이란 명사 없이 단독으로 표현된 형용사 모노 게네스는 '아들' 의 뜻을 내포하게 된 것이다. 바로 이 대 목에서 '아버지' 란 표현이 갑자기 언급된 것은 결코 우 연이 아니다. 모노게네스는 하느님의 아들로서 육화한 로고스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게 된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예수 그리스도는 모노게네스로서 설명된 셈이 다. 이 설명은 아버지로부터 왔다는 예수 자신의 말(8, 42 ; 13, 3 : 16, 27-28 ; 17, 8)과 맥락을 같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모노게네스는 아버지로부터 온 아 들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모노게네스는 하느 님의 유일무이한 아들, 하느님으로부터 유일하게 태어난 (파생된) 아들, 유일하게 사랑받는 하느님의 아들을 가리 킬 수 있다. 여기서 공통된 점은 하느님과 예수 자신의 유일무이한 관계, 예수 자신의 유일무이한 신원과 정체 에 있다. 예수의 이런 독특한 인격은 사실상 하느님으로 부터 이루어진 탄생이나 출처도 포함한다. 천상적인 영 광을 모노게네스의 영광으로 표현함으로써 그 영광 자체 도 독특하게 강조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 모노게네스는 탄생과 출처의 의미를 배제하지 않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로고스의 육화와 맥락을 같이한 독생자 개념 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개념은 1장 18절에서 좀더 명확해진다. 즉 모노게 네스는 '아버지의 품안에 계시는 분' , 곧 아버지 하느님
과 본질적으로 일치를 이루는 분으로서 볼 수 없는 하느 님을 알려 주었다는 것이다. 이 모노게네스의 신적인 품 위와 계시 능력은 '모노게네스의 영광' (1, 14)과 함께 하 느님으로부터 유일하게 태어난 아들, 곧 독생자로서의 모습을 시사해 준다. 즉 이 모노게네스는 아버지 하느님 안에 실존의 근거를 둔 아들로서 언급된 것이다(6, 46 ; 7, 29). 하느님으로부터 유일하게 태어난 아들, 곧 독생 자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하느님과 같다고 명시된 것이 다. 사실상 신약성서에서도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으로 언급된 대목은 통틀어 몇 군데뿐이다(요한 1, 1. 18 ; 20, 28 : 1요한 5, 20 ; 로마 9, 5 : 히브 1, 8-9 ; 디도 2, 13 ; 2 베드 1, 1).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이런 독생자이기 때문 에,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하게 천상적인 계시를 할 수 있고(3, 31-32), 그 계시는 최종적이고 결정적인 것이다 (히브 1, 1-4). 또한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구원 행위(은총 과 진리)도 이 독생자를 통해서 비롯된다(1, 17). 그것은 '은총과 진리로 충만한' 독생자이기 때문이다(1, 14). 따 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품안에 계시는 유일한 아들' 곧 독생자로서, 또한 본질적으로 하느님과 같은 분으로서 고백되고 찬양을 받는다(1, 18).
요한 복음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진리가 계시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계시로서 진리 자체 이다(14, 6-11).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는 하 느님의 모상이다(골로 1, 15). 즉 예수 그리스도를 본 사 람은 이미 아버지를 본 것이다(12, 45 ; 14, 9). 또한 예 수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곧 아버지를 안다는 것을 뜻 한다(14, 7). 그뿐만 아니라, 아들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아들 안에 있으며(13, 32 : 14, 10-11 : 16, 23 ; 17, 21), 아들과 아버지는 하나이다(8, 19 ; 10, 30 ; 14, 9 : 15, 23 : 16, 3).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런 정체와 독특한 역할은 하느님의 독생자로서의 모습을 시사해 준 다고 볼 수 있다. 하느님은 당신의 독생자 이외에 어느 누구에게도 그런 일치의 친교를 나누지 않았으며(10, 38 ; 14, 10-11 : 17, 23), 바로 그 아들에게만 모든 것을 준 다(3, 35 ; 5, 20).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의 독생자로서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이 가질 수 없는 것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과 함께한 목격 증인 으로서 아버지 하느님을 가장 완전하고 풍요롭게 알려 준다(1, 18). 그래서 사람들은 독생자의 '영광' 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1, 14). 이 영광은 '오직 한 분이신 하느 님으로부터 오는 영광' (5, 44)으로서 바로 예수 자신의 영광인 것이다(17, 4-5). 따라서 독생자로서의 예수 그리 스도는 하느님의 유일무이한 계시자요(14, 6), 참된 '하 느님' 으로 불리게 된다(1, 18 ; 20, 28 ; 1요한 5, 20). 그 러므로 독생자라는 개념은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 런 유일무이한 친교 관계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자신이 곧 한 분인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하느님의 유 일한 아들이요, 동시에 아버지 하느님과 본질적으로 같 은 아들로서의 신원과 정체까지도 가리킨다.
이와 같이 하느님의 독생자 내지는 외아들이란 표현은 하느님의 아들이란 표현보다 더욱 심오하고 명백한 신학
적인 의미를 지닌다. 달리 말하자면, 요한 복음 사가의 모노게네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원과 정체를 가장 짤막 하게 표현한 그리스도론적인 개념으로서 예수를 신앙하 고 고백한 일종의 존칭으로도 볼 수 있다. 특히 '하느님 의 외아들 이름을 믿는다' (3, 18)라는 표현은 이 점을 강 하게 시사해 준다.
케리그마 : 앞서 이미 언급하였듯이, 모노게네스가 케 리그마 대목에서만 '아들' (휘오스, υἱός)이란 명사와 함께 사용되어 어떤 아들인지를 보충 설명해 준다. 그리고 아 버지가 아니라 하느님과의 관계 속에서 언급되어 있다. 즉 모노게네스란 표현은 하느님께서 이 세상에 파견한 당신 아들의 특성을 설명해 주고, 동시에 세상에 대한 하 느님의 사랑과 구원 의지를 강조하는 데에도 기여한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을 이토록 사랑하시어 외아들 (모노게네스 휘오스)을 주시기까지 하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이마다 모두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 려는 것이었습니다" (3, 16). 이 구절의 내용은 복음 선포 적인 양식에 따라 엮어진 그리스도교의 핵심적인 구원 복음이다. 이 복음에 대한 설명은 요한 1서 4장 9-10절
에 잘 요약되어 있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 가운데에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외아들 (모노게네스 휘오스)을 세상에 보내 주셨으니, 그것은 우 리가 그분으로 말미암아 살도록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랑이란 이것입니다. 곧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했다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당신 의 아들을 우리 죄 때문에 속죄의 제물로 보내셨다는 것 입니다." 이 복음 선포 내용에서 모노게네스는 하느님의 유일한 아들(외아들), 단 하나밖에 없고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점을 강조해 준다 (마르 12, 6 ; 히브 11, 17). 바로 이런 아들을 하느님은 세 상으로 파견하고 '속죄의 제물' 로 내놓기까지 하였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신비스러운 사 랑도 가장 명백하게 드러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 이 모노게네스는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무조건적이고 절 대적인 사랑 곧 구원 계획과 행위가 이루어지는 구세사 적인 맥락에서 언급되어 있다. 따라서 모노게네스 개념 은 더욱 풍요로워진 셈이다. 즉 모노게네스는 세상에 파 견된 하느님의 유일한 아들이라는 정체뿐만 아니라, 세 상을 구원할 수 있는 하느님의 아들로서의 유일무이한 사명까지도 가리킨다(5, 26-27 ; 14, 6). 그리고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느님의 아들을 믿어야만 한다는 강조에도 기여한다(3, 36). 물론, 여기서의 모노게네스는 하느님 아들의 출처 개념인 우니제니투스보다는 고유성 내지 특성을 강조하는 개념인 우니쿠스에 더 역점이 있 다. 아무튼 모노게네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전 인격을 가 리키는 존칭으로서 그리스도론적, 구원론적인 의미로 이 해될 수 있는 개념인 것은 분명하다. 이런 개념은 "하느 님의 외아들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심판을 받았다 는 말(3, 18)에서도 재확인된다.
또한 모노게네스는 하느님의 유일한 아들, 또는 하느 님으로부터 유일하게 태어난 아들뿐만 아니라, '오직 한 분인 하느님' 으로부터 태어난 아들이라는 것도 시사한 다. 왜냐하면 앞서 살펴보았듯이 어원적인 의미에서도 가능하고, 요한 복음에는 하느님이 '모노스' (μόνος)란 표현과 함께 오직 한 분인 하느님으로 강조되고(5, 44 ; 17, 3), 이 모노스는 모노게네스의 접두어 '모노' 와 동일 한 어휘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견해는 예 수가 하느님의 아들이요, 하느님과 본질적으로 같다고 고백한 그리스도인들의 삼위 일체적인 신관과 유대인들 의 유일신관과 조화를 이루고자 하는 요한 복음 사가의 신학 사상적인 맥락에서만 추정 가능하다(5, 18-19).
〔영향과 의의〕 요한 복음 사가는 하느님의 아들에 관 해서 언급할 경우에 우선적으로 지상의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한다. 하지만 반드시 지상의 예수 그리스도만을 염 두에 두지는 않았다. 동시에 부활하고 또한 선재(先在) 한 그리스도를 생각하였다. 그리고 하느님과 선재한 그 리스도의 관계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언급한다. 달 리 말하자면,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자신이 세상 창조 이 전부터 아버지 하느님과 함께 있었고 사랑을 받았으며 영광을 누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어 있
다(17, 5. 24).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런 관계는 곧 하느님과 위격적으로 친교를 나누는 유일무이한 관계로 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영원 속에 하느님의 아들이었 음도 시사한 것이다. 물론 요한 복음 사가는 선재한 분을 위해서 구태여 '아들' 이란 표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느님께 대한 선재한 분의 위치를 드러내기 위 해서 아들로 묘사한 것이다(3, 17 ; 1요한 4, 9-10). 즉 요 한 복음 사가에 있어서 선재한 분은 영원 속에 언제나 아 들인 셈이다. 오로지 선재한 분만이 세상 창조 이전부터 하느님의 아들이었으며, 아버지 하느님의 사랑을 온전히 받았고, 아버지 하느님과 언제나 일치를 이루며 또한 하 느님으로 불리기 때문에(1, 1-2. 18), 세상에 파견된 하 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느님의 독생자 또는 외아들로서, 또한 "나와 아버지는 하나입니다"(10, 30) 라고 권위 있게 말할 수 있는 하느님의 아들로서, 그리고 '하느님' (20, 28)으로서도 선포된 것이다.
그러나 요한 복음 사가의 모노게네스 (특히 독생자로 서의) 개념이 하느님으로부터 실제로 이루어진 출생 내 지는 탄생(동정 잉태)까지 뜻하는지에 대해서는 사실상 명확하지가 않다. 하지만 그 가능성은 전혀 배제되지 않 는다. 우선 모노게네스의 어원적인 의미와 그 사용 범례 가 앞서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실제적인 탄생도 뜻하기 때문이다. 또한 요한 서간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 에게서 태어나신 분' (1요한 5, 18)으로도 칭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모노게 네스로 표현한 대목은 모두 한결같이 사람들이 영적으로 태어난다는 내용의 문맥이기 때문이기도 하다(1, 13-18 : 3, 3-18 ; 1요한 4, 7-9). 따라서 모노게네스가 하느님의 '유일한' (unicus) 아들 곧 외아들만을 가리킨다고 고정시 킬 수는 없다. 은유적인 표현이지만 하느님으로부터 유 일하게 태어난 아들 곧 독생자를 가리킨다고도 볼 수 있 는 것이다. 그러므로 독생자란 개념은 외아들이란 개념 보다 신학적으로 더욱 깊고 신비스러운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불가타 성서도 그런 맥락 속에서 요 한 복음의 모노게네스를 우니쿠스보다 우니제니투스로 번역한 것으로 여겨진다. 사도 신경에도 후자의 개념으 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이 조문화되어 있다(니체아 신경의 filium Dei, natum ex patre unigenitum, hoc est de substantia patris 니체아 콘스탄티노플 신경의 filium Dei unigenitum et ex patre natum ante omnia saecula) .
사실상 모노게네스 개념은 특히 아리우스파와 니체아 교부들의 논쟁 때부터 신학적인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 고, 오늘날에도 의미상 · 번역상의 문제점을 여전히 안고 있다. 아버지 하느님(성부)과 아들 예수 그리스도(성자) 의 관계를 모노게네스 개념으로 설명한 요한 복음 사가 자신도 '영원 속에 성부로부터 나온 성자' 의 심오한 신 비를 사실상 밝혀 내지는 못한 셈이다. 그렇다고 요한 복 음 사가가 그 신비를 전혀 알지 못했었다고 말할 수는 없 다. 요한 복음 사가의 복음 선포나 가르침(신학적인 해설) 은 하나의 체계적인 완전한 지식을 전달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불러일으켜
그 믿음으로 인해 구원을 얻도록 하는 데 그 의도와 목적 이 있기 때문이다(20, 30-31). 따라서 모노게네스 개념도 그런 맥락 속에서 받아들이고 그 의미를 파악하도록 노 력하는 자세가 요청된다고 하겠다. 요한 복음 사가의 모 노게네스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으로부터 유일하게 태어난 아들, 하느님의 유일한 아들, 오직 한 분인 하느 님과 본질적으로 같고 친교의 일치를 이루는 하느님의 유일무이한 아들임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고 있고, 또한 그리스도론적인 개념으로서 구세사 안에서 체험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하나의 신앙 고백적인 존칭으로도 볼 수 있다. (→ 예수 그리스도)
※ 참고문헌 F. Büchsel, 《ThWNT》, 4, pp. 745~750/ J.A. Fitzmyer, 《EWNT》 2, pp. 1081~1083/ P. Winter, 《ZRGG》 5, pp. 335~365/ D. Moody, (JBL》 72, pp. 213~219/ Th. C. de Kruijf, The Glory of the Only Son(John 1, 14) : Studies in John(=Supplements to NT, vol. 24), Leiden, 1970, pp. 111~123/J. du Plessis, Christ as the Only Begotten, 《Neot》 2, pp. 22~31/ F. Hahn, Beobachtungen zu John 1, 18. 34 : J.K. Elliot Hrsg., Studies in NT, Language and Text, Leiden, 1976, pp. 239~245/ D.A. Fennema, John 1, 18 : God the Only Son, 《NTS》 31, pp. 124~135/ I. de la Potterie, La Vérité dans S. Jean, 《AnBib》 73, Roma, 1977, pp. 176~241/P. Hofrichter, Nicht aus Blut sondern monogen aus Gott geboren, 《FzB》 31, Würzburg, 1978, pp. 139~ 154/ J.V. Dahms, The Johannine Use of Monogenès Reconsidered, 《NTS》 29, pp. 222~232/ M. Theobald, Die Fleischwerdung des Logos, Miinster, 1988, pp. 238~263. 〔李永憲〕
독생자
獨生子
〔그〕μονογενής · 〔라〕Unigenitus · 〔영〕Only 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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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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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생자를 그리스도론적으로 언급한 요한 복음 사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