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신제

獨身制

〔라〕coelibatus · 〔영〕celiba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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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승려들 역시 독신을 자기 정화의 본질적 요소로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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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승려들 역시 독신을 자기 정화의 본질적 요소로 받아들였다.

I . 교회사에서의 독신제
결혼 적령기에 이르렀지만 결혼하지 않은 사람이나 결 혼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의 상태를 가리키며, 종교적인 경 우에는 결코 결혼하지 않겠다고 공적으로 서약한 사람의 상태를 가리킨다. 따라서 독신은 이성(異性)과 애정 관 계를 맺지 않겠다고 결정하고 그렇게 결정한 동기와 목 적의 정신으로 생활하는 신분이다. 독신, 동정(童貞), 정 절(貞節), 정결 사이에는 서로 공통적인 요소도 있지만 동시에 서로 다른 의미와 가치가 있다. 즉 육체적 동정은 성 관계를 배제하고, 완전한 정절은 모든 성행위를 자제 하는 것이며 정결은 이성(理性)의 규범과 그리스도교적 인 윤리에 따라 성(性)을 지배하고 이용하는 것이다. 독 신은 그 자체로 위의 3가지 요소 없이도 가능하지만, 그 리스도교적인 독신은 모든 사람과 똑같이 다른 사람과의 공동 생활에서 인간적인 사랑을 느끼고 자녀를 두고 가 족 공동체를 이루려는 인간적인 본능을 느끼며, 인간적 인 평범한 삶의 긍정적인 가치를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부부 관계의 포기와 함께 완전한 정절을 지향하는데, 이 는 하느님과 더욱 일치하기 위해 선택한 삶의 방식이다.
〔역 사〕 독신 생활의 역사는 정신 문화의 발전과 함께 시작되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보다 높은 정신적인 가치와 지혜를 추구하려는 자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독 신 생활을 스스로 선택하였다.
동양 : 불교에서도 중생을 제도하려고 출가하여 입산 수도하는 승려들은 모든 성 관계로부터 초탈하고 독신 생활을 자기 정화를 위한 본질적인 요소의 하나로 받아 들였다. 한국 · 인도 · 스리랑카 · 태국 등 불교 문화권에
속했던 동양의 여러 나라에서 높은 정신적 가치를 추구 하려는 수도자들에게는 독신 생활이 이미 널리 유포된 하나의 제도로 정착되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고대 그리스 · 로마 세계 : 드물기는 하지만 독신 생활 이 높은 정신적 가치의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제한 적으로 수용되었다. 고대 로마 제국에서 베스타 신전의 무녀(巫女)나 소아시아에서 동방 종교의 제관들, 또는 스토아 학파와 신(新) 피타고라스 철학자들의 경우처럼 종교 · 문화적인 동기나 지혜를 추구하는 삶에 전념하기 위해, 또 결혼 생활에 대한 염려로부터 해방되고 가족에 대한 의무로부터 도피하기 위해서도 어떤 이들은 결혼하 지 않았다. 이교 종교에서 아나트, 아르테미스, 아테나 등의 여신들을 처녀신으로 숭상한 것은 그 여신들의 영 원한 젊음과 발랄하고 생생한 생명력을 강조한 것이었 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독신 생활은 비정상적인 삶으로 간주되어 스파르타에서 독신자는 시민권을 상실하였고, 로마 제정 시대 이전 로마인들 가운데 독신자들에게는 특별한 세금(aes uxorum)을 부과하였으며, 제정 시대에는 어버이로부터의 상속권을 박탈하기도 하였다.
고대 유대 사회 : 일반적으로 구약성서에서 결혼은 영 예로운 축복이고 필수적인 대사(大事)로, 또 자녀를 많 이 두는 것을 하느님의 축복으로(창세 22, 17) 생각하였 다. 구약성서가 하느님만을 변함없이 충실하게 사랑한다 는 의미에서 처녀성, 동정성의 가치와 종교적 의의를 강 조하기는 하였지만, 예레미야 예언자 단 한 사람 이외에 는 이미 전제한 엄밀한 의미의 독신 생활에 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없다. 그리고 예레미야의 경우에도 하느님이 예레미야가 후손의 죽음으로 인한 고통을 피하게 하려고 결혼하지 말 것을 요구하였을 뿐이며, 이 상징적 행위를 통하여 이스라엘 부녀와 어린이들의 학살이라는 큰 벌이 목전에 도달하였음을 통보하기 위해서였다(예레 16, 1-4. 10-13). 필론, 요세푸스 플라비우스, 플리니우스의 증언 에 의하면, 구약 시대 후기에 사해(死海) 근처 쿰란 공동 체에서 생활하던 엣세니파 사람들이 오늘날 수도 생활과 비슷한 조직으로 금욕적인 독신 생활을 하였다.
[그리스도교 독신제의 역사] 그리스도의 말씀과 바오
로 사도의 가르침에 따라 독신 생활이 결혼 생활보다 더 훌륭하며 하느님을 섬기고 교회에 봉사하는 데 훨씬 더 적합하다는 이유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발적으로 독 신 생활을 하였는데, 예를 들면 55년경 고린토에는 독신 생활을 하던 일군의 남녀들이 있었으며(1고린 7, 25-35) , 사도 행전은 필립보의 네 딸들에 대한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사도 21, 9). 그리고 바오로 사도가 모든 사람이 다 자기처럼 독신으로 살기를 바랐지만(1고린 7, 7), 그렇다 고 결혼을 과소 평가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욕정에 불 타는 것보다는 결혼하는 편이 낫다"(1고린 7, 9)고 충고 하며 독신 생활은 하느님의 은혜로 자발적인 선택에 따 라야 함을 암시하였다. 즉 어느 누구도 강요하지 않는 상 황에서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봉헌하고 교회를 위하여 봉사하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이 독신 생활을 자발적으로 선택하였다. 그래서 당시 독신 생활을 하던 사람들 중에 서 많은 성직자들이 선출되었다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었 다. 그리스도교의 독신 생활은 동정성을 결혼 생활보다 우월한 가치로 인정하고 있는 성서에 그 근거를 두고 있 는데 하늘 나라를 위하여 스스로 결혼하지 않는 그리스 도교적인 독신 생활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다만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사람만이 할 수 있다(마태 19, 11-12). 그래서 보다 높은 완덕의 삶을 추구하려는 성직 자들의 일부가 스스로 독신 생활을 선택하였는데, 이는 수도자들과 은수자들이 독신 생활을 하기 전부터 이미 시작하였으며 확실한 것은 서방 세계에서 독신 생활이 하나의 제도로서 널리 유포된 사실과 그리스도교의 출현 이 일치한다는 것이다.
순교자 유스티노(《호교론) 29, 2)와 아테나고라스(《호교 론》 33, 2 : W.R. Schoedel, Athenagoras, Oxford, 1972, p. 81)는 벌 써 2세기에 독신 생활이 널리 유포되었음을 증언하고 있 다. 그러나 이러한 독신 생활이 하나의 제도로서 그대로 존속되어 온 것은 아니었다. 이 독신 생활이 제도적인 형 태로 정착되기 시작한 것은 2세기 중엽부터로 보고 있 다. 제단에서 봉사하는 일부 성직자들은 이미 독신 생활 을 하고 있었는데, 예를 들면 몬타누스파 이단자들은 오 히려 아내가 있는 사제들의 성사 집행을 무효로 주장할 정도로 교회 일각에서는 성직자의 독신 생활을 당연한 형태로 받아들였다.
3세기에는 테르툴리아노, 알렉산드리아의 글레멘스, 치푸리아노의 증언처럼 그들은 이미 정착되어 있는 독신 생활을 지도하고 조직하는 데 염려하였다. 테르툴리아노 는 정절을 칭송하며 많은 독신자들의 전례 집전에 대해 언급하였다(De exortatione castitatis, 13 ; PL 2, 978). 또 꽤 일 찍부터 사제 독신제가 이미 법제화되었다는 의견도 있지 만(G. Bickell, Der Colibat eine apostolische Anordnung, in Zeitschrift fiir Cathol. Theologie, 2, 1878, 26ss.), , 일부 지역의 예외적인 경 우를 제외하고는 일반적으로 동 · 서방 교회를 막론하고 4세기까지 성직자의 혼인권은 인정된 것으로 보고 있다.
〔독신제와 수도 생활〕 그리스도교에서의 본격적인 독 신 생활은 하느님께 자신을 완전히 봉헌하려는 수도 생 활에서 비롯되었다. 따라서 독신제와 수도 생활과의 관
계를 먼저 살펴보고자 한다. 첫 3세기 동안 봉헌된 독신 자들은 그들의 가족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장소에서 은 수자 혹은 독수자로 생활하였다. 4세기의 공동체적인 수 도 생활의 출현과 함께 처음에는 남자들이, 후에는 점차 로 여성 독신자들도 특별한 공동체에서 함께 모여 생활 하기 시작하였다. 수도 생활 규정이 그리스도교 수덕 생 활의 일반적인 요소를 모두 수용하였지만 규칙에서 명백 하게 말하지 않더라도 독신 생활은 수도자들에게 기본적 인 요소의 하나로 전제되었다. 비록 수덕 생활을 하는 자 들이라도 기혼자는 이 수도 생활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 았다.
12세기에 성전 기사 수도회 등 여러 기사 수도회들이 창설되었고 그 주변에 "기혼자 형제회" (Fratres conjugati, J. Michaelensis, Regula templariorum 55 : PL 166, 869)의 등장으로 기혼자 수도자들이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겼지만 실 제로는 후원회 성격의 제3회 회원들로서 정식 수도회의 수도복을 입지 않고, 단지 수도 생활 양식에 따라 별도로 생활하였을 뿐이었다. 따라서 수도 생활의 오랜 역사에 서 독신제가 동 · 서방 교회를 막론하고 기본적인 요소였 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프로테스탄트 종교 개혁자들은 수도 생활 자체와 특별 한 서원을 통한 봉헌된 독신 생활을 하느님의 뜻에 어긋 나는 생활로 비판하였다. 그래서 당시 프로테스탄트 종 교 개혁 운동이 지배하였던 지역에서는 독신 생활 제도 도, 서원도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 지역에서도 19 세기부터는 독신제를 받아들인 여부제들이 출현하였다. 그 후 독신제를 받아들이는 수도 생활이 처음에는 영국 성공회에서, 1945년 이후에는 프로테스탄트에서도 등장 하였다.
〔사제의 독신 생활〕 독신 생활의 결정이 수도 생활의 선택과 연결되어 제도적으로 등장하였다면, 사제의 독신 생활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다른 양상으로 진전되었 다. 이미 언급한 대로 "결혼을 안하는 남자는 어떻게 하 면 주님의 마음에 들까 하고 주님의 일을 걱정하기" 때 문에(1고린 7, 32) 제단에서 봉사하는 사제에게 독신 생 활이 편리할 뿐만 아니라 성무 집행에 많은 이점이 있다 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감독은 한 여자 만을 데리고 살아야 한다며(1디모 3, 2) 점차로 이보다는 조금 강화된 권고가 등장하였다. 사제 독신제에 관한 서 방 교회의 규정은 동방 교회보다 더 일찍 법제화되기 시 작하였다. 4세기에 와서 이 독신제를 공의회의 법으로 규정하려는 경향이 있었지만, 동 · 서방 교회가 이 점에 있어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발전하였다. 사실 독신 생활 은 4세기부터 서방 교회의 일부 지역에서만 부제 · 사 제 · 주교에게 부과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를 구별하여 독신제의 발전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동방 교회 : 동방 교회는 수도 생활의 독신제 이외에 는 독신 생활을 교구 사제들에게 의무적으로 요구하지는 않았다. 즉 사제 서품으로 독신 생활을 하는 사제들은 교 회법적으로 수도원에 입적된 수도자로 간주하였다. 동방
교회는 독신 생활을 하는 서방 성직자들을 수도자들로 간주하였으며 사제의 독신 생활을 서두르지 않고 서서히 확대시키면서 법적으로 규제하기 시작하였다. 동방 교회 는 사제의 독신 생활을 규율화하는 과정에서 <사도 규 정>(Constitutio apostolica, I, 6, 17) 등에 드러난 초기 교회 의 정신을 따랐다. 물론 동방 교회에서 486년 사제들에 게 결혼을 허용하였고 497년에는 주교들에게도 허용한 때가 있었지만, 이는 예외적인 경우였고 544년 다시 성 직자의 독신제를 확정하였다. 유스티니아누스 1세 황제 (Justinianus I 527~565)의 법전 영향으로 사제 독신 생활 에 관한 규정이 691년 10월에 열린 제2차 트룰라노 (Trullano, 혹은 퀴니섹스툼[Quinisextum〕) 공의회에서 법제 화되었고 이 법이 동방 교회에서는 아직도 그대로 유효 하다. 즉 사제와 부제들에게는 결혼 생활을 허용하였고 (can. 13), 기혼 성직자는 부인이나 가족을 내보낼 수 없 도록 하여 이 규정을 어기면 파면하도록 법제화하였다. 차부제품 이상자에 대해서 서품 이후에는 결혼이 금지되 었다(can. 6). 그리고 주교에게는 절대적 자제를 요구하 여 결혼 생활이 금지되었고 만일 주교로 선출된 자가 기 혼자이면 서로 동의하여 그의 부인은 주교좌로부터 과히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수도원에서 생활해야 하며, 부인 에게 필요한 물질적 후원을 하여야 한다. 그리고 부인이 원할 경우 여부제가 될 수 있었다(can. 12 ; 48). 그러나 네스토리우스 이단자들은 사제 독신제를 아주 완화하였 다.
서방 교회 : 서방 교회에서는 그리스도교가 서방 세계 에 전파된 1세기 이후부터 독신 생활이 지속적으로 실천 되었지만 4세기 초까지는 부제 · 원로 · 주교들에게 절제 라든가 독신을 전체 교회가 지켜야 할 교회법으로 규정 하지는 않았다. 바오로 사도의 권고의 정신이 <사도 규 정>에 반영되어 4세기 말에는 성직자의 절제에 대한 규 정이 하급 성직자들에게도 적용되도록 확대되었는데(F.S. Funk, Didasclia et Constitutiones apostolorum, Paderbonae, 1905, pp. 1, 8, 47, 18) , 일부일처제는 독신제에 이르는 첫걸음으로 간주될 수 있다. 테르툴리아노(De exhort. castit. 105 ; PG 66, 1485), 예루살렘의 치릴로(Cateches. 12, 25 ; PG 33, 757), 알렉산드리아의 글레멘스(Stomata Ⅲ, 13 ; PG 8, 1189), 예로니모(Adv. Vigilantium 2 ; PL 23, 341) 등 교부들에 의하 면 성직자들에게 자제의 덕목이 폭 넓게 권장되어 많은 성직자들이 독신 생활을 선택하여 동정성과 독신 생활이 이미 널리 퍼졌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독신제에 대한 가 르침들이 사도적 기원을 두고 있음도 암시하고 있다.
306년경 스페인 엘비라(Elvira) 교회 회의에서 성직자 의 독신제를 하나의 의무 조항처럼 권장하였지만 서방 교회 전체로 확산되지는 않았고 4세기 말까지도 많은 성 직자들이 결혼하였다. 즉 엘비라 교회 회의는 성직에 오 를 사람은 절대적 자제를 의무화하고 서품 전에 결혼했 던 성직자는 자기 부인과 가족을 내보낼 수 없으며 이를 어기면 파면되도록 하고 절제 생활을 권유하였다(can. 33). 비록 이 회의가 관구 공의회였기 때문에 위의 규정 이 한정된 지역에만 적용되었지만 사제 독신제를 법제화
하는 첫 시도였다는 점에서 교회사적으로 큰 의의가 있 다. 이 회의를 기점으로 그 후의 여러 지역 교회 회의에 서 그리고 결국 로마 교회에서도 사제 독신 생활에 대한 동일한 노선을 수용하는 데 영향을 끼쳤다. 예를 들면 314년에 열린 안치라(Ancira) 교회 회의는 독신 부제가 서품식 전에 결혼 의사를 밝히면 허락하도록 규정하였다 (can. 10). 제1차 니체아 공의회는 가능한 한 죄의 기회를 피할 뿐만 아니라 악표양을 없애기 위해 결혼하지 않은 성직자는 어머니 이외에는 자기 거처에 다른 여자를 둘 수 없다고 규정하였는데(can. 3) 이 규정을 다른 공의회 도 받아들이도록 하였다. 또 386년 로마 교회 회의에서 교황 시리치오(Sincius, 384~399)는 위와 같은 규정의 내 용을 모든 서방 교회에서 이행하도록 비슷한 법을 공포 하였으며(PL 56, 558~559. 562), 구약성서의 관례를 근 거로 자기들의 처지를 용서하여 받아들이도록 요청한 '무절제한 원로와 부제들을' 면직시키도록 명령하였다 (Ad episc. Tarracon. 8, 11 : PL 13, 1138~1141). 그리고 암 브로시오 성인(De offici. I, 1 : PL 16, 97~98), 아우구스티 노 성인(De conjugiis adulterinis, II , 22 : PL 40, 486), 예로니 모 성인 (Adv. Vigilantium ch. 2 ; PL 23, 341) 등 여러 교부들 이 교황들의 권고를 지지하며 저술로써 독신제를 옹호하 였다.
얼마 후에 인노첸시오 1세 교황(402~417)도 사제의 독 신제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켰으며 아프리카, 스페인, 갈 리아 교회들도 톨레도(Toledo) 교회 회의(390, 400), 카르 타고 교회 회의(401), 토리노 교회 회의(401) 등을 열어 사제 독신제에 관한 교황의 권고를 지지하였다. 따라서 제단에서 봉사하고자 하는 자는 독신자들이든지 기혼자 들이든지 완전한 정절을 지키도록 의무화하였다. 5세기 까지는 차부제들에게 독신 생활을 아직 의무적으로 강요 하지는 않았다.
419년 카르타고 교회 회의에서는 차부제도 독신제 규 정을 지키도록 결정하였고(PL 56, 560), 레오 1세 교황 (440~461)과 그레고리오 1세 교황(590~604) 때도 그들에 게 독신 생활을 의무화하였지만(PL 44, 672) 아직 전체 교회에 보편화되지는 않았다.
비록 법적으로는 엄격하게 독신 생활을 요구하였지만 8세기에 들어와서 사제 독신제가 완전히 실천되지 않는 퇴폐기도 있었다(st. Bonifatius, Epist. 49, Zachariae papae ; PL 89, 745). 그러나 일부 성직자들이 공공연하게 축첩과 결혼 생활을 한 퇴폐기마다 보니파시오 성인 등 성직 생활의 쇄신을 열망하는 여러 성인들의 끊임없는 권유와 공동체 적인 생활 양식을 선택한 의전 사제(canonicus)의 쇄신 운 동, 여러 지역 교회 회의의 훌륭한 쇄신 활동 등으로 위 기를 넘기기도 하였다. 교회는 공의회와 교황들의 여러 구체적인 규정들을 통하여 개혁 작업을 계속하였지만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9세기에 들어와서 카알(Karl) 대제 시대처럼 세속 권 력의 개입으로 사제의 독신 생활에 관한 기존의 규정을 준수하도록 강력하게 촉구하여 한때 어느 정도 엄격하게 지켜진 경우도 있었지만, 그 세속 권력의 쇠퇴와 더불어
독신제 규정이 이완되기도 하였다. 이는 개개인의 쇄신 과 소명감에 의한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라면 지속적으로 지켜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11세기 전반기에도 사제 독신 생활이 더욱 악화되었 다. 즉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남자는 각각 자기 아내를 두도록 하고, 여자도 각각 제 남편을 두도록 하시오"(1고 린 7, 2)라는 바오로 사도의 가르침은 일반적인 규정이 고, 사제도 이 규정으로부터 예외일 수 없다는 논리로 성 직자의 혼인권을 주장하고 교회법을 궤변적으로 해석하 면서 실제 일상 생활에서 여자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조 건도 역설하며 사제 독신제를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자들 도 있었다. 그들의 주장이 현실적으로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제직을 보다 성실하게 헌신적으로 수행 하는 데 사제의 독신 생활이 더 많은 유익을 가져다 주기 에 적합하다는 것과 사제의 혼인으로 인한 신분의 남용 과 자기 자녀들을 위한 재산 축적의 폐단 등 패악이 더 많음이 지적되었다(s. Pier Damiani, Sermo ad sacerdotes, in Spici- legium romanum, IV, 319).
11세기 중엽 후반부터 신앙 쇄신을 열망하는 자들과 교황들의 노력으로 사제 독신제의 원래 규정에 충실하기 시작하였다. 즉 스테파노 9세 교황(1057~1058), 니콜라 오 2세 교황(1058~1061)은 후일 그레고리오 7세 교황으 로 즉위한 할데브란트(Hildebrand) 대부제의 협력을 받으 며 교회 회의를 열어 베드로 다미아노(P. Damianus, 1007~ 1072)의 쇄신 정신을 이어받아 사제 생활의 쇄신을 촉구 하였다. 특히 그레고리오 7세 교황(1073~1085) 때부터 교황권이 황제권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성직 매매, 속인에 의한 성직 임명권 등을 배제하면서 이러한 쇄신 운동은 더욱 강력하게 추진될 수 있었다. 즉 교부들은 성령의 도 우심으로 그러한 가르침을 주었으므로(PL 148, 417) 새 로운 법을 제정할 필요가 없으며 성직자의 결혼이 교부 들의 정신과 하느님의 뜻에 어긋난다고 주장하였다. 따 라서 그레고리오 7세가 교회를 정화하려는 뜻을 가졌을 때 새로운 법 제정보다는 이미 누구나 잘 알고 있는 기존 의 법을 그대로 준수하도록 힘썼다.
11세기 말 우르바노 2세 교황(1088~1099)은 성직자의 개혁을 수도회의 개혁보다 더 중요하고 긴급한 사안으로 생각하였다. 그래서 1089년 9월 10일 멜피(Melfi)에서 소집된 교회 회의에서 16개의 법을 제정하였는데, 그 가 운데는 그레고리오 개혁안의 3가지의 주요한 내용, 즉 성직 매매, 성직자의 축첩, 평신도의 성직 서임권 문제를 해결하려 하였다. 특히 12조는 차부제부터 결혼을 금지 하여 여자와 결별하든지 성직자 신분과 성직록을 포기하 든지 양자 택일을 하도록 규정하였다.
1123년 제1차 라테란 공의회에서는 사제 독신 생활에 대한 성문화된 기존의 규정을 명백하게 언급하면서도 새 롭게 법을 개정하지는 않았지만 서방 교회에서 대품을 받는 모든 사람들에게 독신제 규정을 적용하고 기혼자가 성직에 오르는 것을 무효화하였다.
1139년에 열린 제2차 라테란 공의회는 처음으로 대품 받은 자의 결혼 장애를 강제 규정으로 하여 사제 독신 생
활에 대한 규정을 성문법으로 전세계 교회가 준수하도록 선포하였는데, 이 법은 1563년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그 대로 수용되었다. 그리고 카말돌리회 수도자요 볼로냐 대학의 교수인 그라시아노(Graianus, ?~1158)에 의해 사 제 독신제 법을 독신 서약과 연관시켜 서품 순간 정결 서 원을 의무화하는 교회법이 삽입되었다. 사제 독신제와 관련된 서약에 대한 이론이 알렉산델 3세 교황(1159~ 1181), 인노첸시오 3세 교황(1198~1216) 특히 보니파시 오 8세 교황(1294~1303) 때에 더욱 강화되었는데 서품 장애의 근거를 서품의 장엄 서약에 두었다. 그러나 서품 순간 서약을 진심으로 동의하지 않았다면 그 후에 하는 결혼의 유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도 하였지만(cf. G. Oesterle, Lex sacri caelibatus juxta Gratianum, in Studia Gratiana, Ⅱ, Bologna, 1954, p. 427), 이제는 차부제로부터 주교에 이르기 까지 사제 독신제는 결정적인 법으로 정착되었다. 트리 엔트 공의회 이전에 또 한 차례 사제 독신제에 대한 혼란 이 야기되었다. 즉 13세기 말부터 제반 사회 상황이 바 뀌면서 전체적으로 도덕심이 최하위로 떨어지는 소용돌 이에 성직자의 독신 생활도 휘말리게 되었다.
14세기 말에는 영국인 위클리프(Wiclif, 1320~1384)가 사제의 독신 생활은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인 선택에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특히 루터의 《수도 서원에 대하여》(1521/1522)라는 저서를 필두로 프로테스 탄트 종교 개혁자들이 가톨릭의 성직자 독신제를 신랄하 게 비난하였다. 그들은 정결과 독신은 복음과 바오로 사 도의 순수한 권고이지 계명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1563 년 트리엔트 공의회의 제3 회기 24차 회의에서 혼인의 성사성 조건 등에 관한 토의와 함께 사제 독신제에 대한 기존의 규정을 논의하여 사제의 독신 생활이 사도직 활 동에 있어서 하느님께 봉사하는 이상적인 조건임을 인정 하고 종교 개혁자들의 기혼 성직 제도를 불가한 것으로 선언한 공의회의 결의가 후에 교회법으로 확정되었다(교 회법 132, 133, 213, 214, 1072, 2172~2181, 2358, 2359, 2388조). 1920년 베네딕도 15세 교황(1914~1922)은 성 직자의 독신 제도를 폐기하려는 보헤미아 단체의 주장을 단죄하고 종래의 결정을 재확인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도 "자기 전례 의식의 교회가 거룩하고 확고하게 지켜 오는 법규 에 따라, 사제적 독신 생활의 귀중한 전통을 이어받는 신 학생들은 이 신분에 알맞도록 양성되어야" 하며 "독신 생활은 교회법의 명령일 뿐 아니라, 겸손되이 청해야 할 하느님의 고귀한 선물"로 재천명하였다(사제 양성 10항) 그리고 "사제들에게 처음에는 권장되던 이 독신제가 후 에는 '라틴' 교회에 있어서 법에 의한 의무로서 거룩한 신품을 받는 모든 사람에게 부과"되었는데, 공의회가 다 시 "이 법을 승인하고 확인"하였다(사제 16항). 마지막으 로 1983년 1월 25일 반포된 현행 교회법전 277조 1항 에서 "성직자들은 하늘 나라를 위하여 평생 완전한 정절 을 지킬 의무가 있고, 따라서 하느님의 특별한 은혜인 독 신 생활을 하여야 한다" 고 규정하였다.
※ 참고문헌  한국 주교 회의 교회법위원회 역, 《교회법전》, 한국
천주교중앙협의회, 1989/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한국천주교 중앙협의회, 1983/ C. Kirch, S.J., Enchiridion Fontium Historiae Eccle- siasticae antiquae, Herder, 1965/ M.J. Ronët . Journel, S.J., Enchiridion Patristicum, Herder, 1956/ P. Brezzi, Fonti e studi di storia della Chiesa I~II, Milano, 1962/ C. Cochini, Origines apostoliques du célibat sacerdotal, Paris, 1981(trans. by N. Marans, The Apostolic Origins ofPriesty Celibacy, Ignatius Press, 1990)/ -, Celibato del clero, Dizionario patristico e di antichitá cristitina I, Marietti, 1983, pp. 640~641/H. Crouzel, Le célibat et la continence dans I'Eglise primitive : leurs motivations, in J. Coppens, Sacerdoce et Célibat, Gembloux, 1971, pp. 333~371/P. Delhaye, 《NCE》 3/ R. Gryson, Les origines du célibat ecclésiastique, Gembloux, 1970/ E. Jombart, Célibat des clercs, Dictionnaire de Droit Canonique Ⅲ, Paris, 1942, pp. 132~156/ V. Monachino, La cura pastorale a Milano, Milano, 1973/ P. Palazzini, Celibato ecclesiastico, Dizionario storico religioso, ed. Studium, 1966, pp. 103~111/ M. Scaduto, 《EC》 3, pp. 1261~1265/ E. Vacandard, Célibat ecclésiastique, 《DTC》 2, pp. 2068~2088. 〔金喜中〕
II . 영성 신학에서의 독신제
사제는 특별한 방식으로 교회의 머리(caput ecclesiae)인 그리스도에 종속되며,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서(m persona Christi) 성체성사를 집전할 권한을 부여받는다. 그러면서 사제는 혈연적인 가족을 포기하고 성체성사가 미리 보여 주는 하느님 나라를 토대 삼아 자신의 삶을 건설해 나가 기로 동의한다. 사제는 서품 때 아내와 가족에게 쏟을 시 간과 사랑과 관심을 하느님 백성을 섬기는 데 쏟기로 준 엄하게 서약한다. 라틴 교회는 이러한 독신을 사제 생활 양식의 본질적인 요소로 간주해 왔다. 사제는 새로운 창 조를 이룩하는 성사를 집행한다. 즉 사제는 교회가 새로 운 창조를 이룩하는 데 필요하고 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하느님의 도구이다. 따라서 사제의 독신 제도는 성령의 생명을 건네는 하느님의 산 도구로서 요구되는 가장 탁 월한 생활 양식이다.
〔특징과 소명〕 특징 : 사제의 독신제가 갖는 특징은 다 음과 같다. 첫째, 하늘 나라를 위하여 결혼을 포기하고 (마태 19, 12) 오로지 주님께만 종속되기 위하여 몸과 마 음을 모으고 주님의 부활을 증거한다(루가 20, 36) 독신 을 통하여 사제는 주님을 따르고, 파스카의 기쁨 안에서 십자가의 길을 취하면서, 성체성사의 희생에 자신을 바 친다. 둘째, 독신은 서품의 축성을 통해 그리스도와 교회 에 사랑을 드리며 사제직을 기쁜 마음으로 수행한다. 사 제는 독신을 지킴으로써 동정이 갖고 있는 복음적 가치 를 증거하고, 교회를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충실히 실 천하고 전한다. "하늘 나라를 위하여 지키는 동정 혹은 독신 때문에 사제는 새롭고 승고한 이유로써 그리스도께 헌신하며, 갈림 없는 마음으로 보다 쉽게 주님과 일치하 여, 주님 안에서 주님을 통하여 보다 자유스럽게 하느님 과 사람들에게 대한 봉사에 몸을 바친다"( 16항). 사 제는 사목적 효율의 풍성한 원천이기도 한 독신의 의무 로써 그리스도의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다. 사제의 독신 은 사랑에 폐쇄적일 수 없다. 독신은 사제로 하여금 하느 님 안에서 발견되는 사랑의 삶을 살게 한다. 사제는 그리 스도를 닮는 가운데 사랑의 생활을 실천해야 한다. 이 사 랑은 예외 없이 모든 사람에게 뻗어 나가며, 책임감을 가 지고 실천되는데, 이것은 바로 성숙한 인격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셋째, 예수가 하늘 나라를 위한 독신은 "누구나 이해 하지는 못하고 오직 (은혜를) 받은 사람들만이 이해합니 다"(마태 19, 11)라고 하였듯이, 사제의 독신은 하느님의 크나큰 은총이며 특별한 선물이다. 이 선물은 정결의 준 수, 하늘 나라를 위한 완전하고도 영구적인 절제이다. 이 절제는 그리스도에게 전념하고 하느님과 인간에게 보다 자유롭게 헌신 · 봉사하게 한다.
소명 : 사제의 소명 중 독신의 소명은 하느님의 계획 에 따라 다른 인격에게 스스로를 남김없이 바치라는 초 대이며, 그 근본은 마음과 정신을 다하여 주 하느님을 사 랑하라는 부르심(신명 6, 4-5 : 루가 10, 27)이다. 독신의 소명은 몇 가지 각오를 요구한다. 첫째, 하늘 나라를 위 한 희생과 포기를 기쁨 가운데 실현하려고 노력해야 한 다.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비슷합니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발견하자 숨겨 두고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그 밭을 삽니다"(마태 13, 44)라는 말씀처럼 독신의 뜻을 바르게 인식해야 한다. 왜냐하면 독신의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할 때 사제는 독신의 봉헌에 기쁨을 느끼지 못하고 자신의 소명에도 기쁨이 없기 때 문이다. 둘째, 독신의 삶이 비록 영웅적인 성덕과는 거리 가 있다 하더라도 자신은 주님께 사로잡혀 있다는 성소 의 깊은 뜻을 느껴야 한다. "여러분은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으시오"(마태 6, 33). 하느님 의 사랑에 몰두함으로써 몸과 마음이 갈라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하느님 사랑에 깊이 빠질 수 있을 때 사 제는 비로소 독신의 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독신의 소명에 충실하기 위해 자유를 찾아야 한다. 이 자 유는 독신의 봉헌에서 오는 보상 심리와 타협하지 않는 중요한 열쇠이다. 넷째, 소명의 충실성에 대한 뿌리는 기 도에 대한 열정이다. 뜨거운 기도 없이 독신의 삶에서 마 음을 열고 복음을 전할 수 없을 것이다.
〔의 미〕 그리스도론적 의미 : 그리스도는 모든 사제의 모범이다. 예수의 독신 생활은 당신이 하느님이라는 사 실에서 유래하는 선택이 아니라, 절대적 가치인 하늘 나 라의 실현을 위해 헌신한 자유로운 삶 자체였다. 인간으 로서 예수는 독신 생활의 모범을 통해서 인간들의 독신 생활의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따라서 사제들의 독신도 역시 그리스도의 모범에 근거해야 한다. 독신은 그리스 도의 신비요, 그리스도가 누구이며 어떤 분인가를 설명 해 주는 복음과 하늘 나라의 신비를 말한다. 또 독신 생 활은 구세주의 부활의 신비에서 흘러 나오는 은총의 특 별한 표현이다. 독신은 언제나 그리스도를 닮는 사랑의 징표이고 사랑의 자극제이다(교회 42항). 자신을 하느님 과 이웃을 위해 바치는 독신 생활은 언제 어디서나 그리 스도의 인간 구원 사업에 충실할 수 있게 한다. 사제의 독신은 그리스도에 대한 심오한 사랑의 표현이며 그분을 닮기 위해 자유 의지로 선택(마태 8, 20 ; 마르 3, 21. 31- 35)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신비를 관리하는 그리스도의 협조자는 그리스도를 직접 본받을 모범으로 삼고 그리스 도를 자기 생활의 완전한 이상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사
제 독신 생활에 관한 회칙 19항). 바오로 사도는 독신을 선 택한 사람에게 온전히 하느님께만 집착하고 하느님에 관 한 사정만을 걱정(1고린 7, 33-35)하며 살도록 요구하였 다. 사제는 '그리스도에게 사로잡혔으므로' (필립 3, 12) 그리스도에게 이끌리어 몸과 마음 모두를 그리스도에게 바치며, 중재자의 임무에 보다 충실하기 위해 독신 상태 로 머물렀던 그리스도를 닮아야 한다. 사제가 혈육의 인 연에서 자유로우면 자유로울수록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완전히 참여하게 된다. 또한 예수는 하늘 나라를 위하여 집과 가정과 아내와 자녀를 떠난 모든 이에게 풍부한 상 금을 약속하였다(루가 18, 29-30).
교회론적 의미 : 교회가 그리스도의 성사이고 그분에 의해 형성되고 그분을 드러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제는 독신 생활을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처럼 차별 없이 하느님의 모든 자녀에게 전해 준다. 즉 사제는 독신 생활을 통해 교회 안에 생기를 불 어넣는다. 독신은 사제의 마음을 열어 그리스도를 위한, 말씀을 위한, 복음을 위한 사람이 되게 한다(마르 10, 29). 그래서 독신 생활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음과 희생 의 구원적 특성을 지닌 살아 있는 표지가 된다. 사제의 독신은 그리스도가 교회를 당신의 영광스럽고 거룩하고 티없이 깨끗한 아내로 삼은(에페 5, 25-27) 사랑을 본받 게 한다.
교회는 사제직에 임하고자 하는 이들이 독신의 선택을 은사로 알아듣고 이 의무를 자유로이 받아들이는 사실을 법적으로 인준한다. 교회론적 독신의 사명은 하늘 나라 를 위하여 또 복음을 위하여라는 교회의 두 가지 요소와 같다. 즉 하느님의 나라를 위하여 봉사함이 곧 교회를 위 하여 봉사하는 것이다.
종말론적 의미 : 사제의 독신은 형제들에게 그리스도 의 사랑을 통하여 이미 이 세상에서 미리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증거한다. 하느님 안에서 갖는 믿음과 희망의 표명이다. 축성되고 봉헌되는 독신 생활은, 모든 사람이 성령에 의해 예수와 하나 되어 성부에게 영광을 드리며 살게 될 미래의 실재를 보여 주는, 예언자적 표지가 된다 (독신 생활 양성 지침 11항). 사제의 독신 생활은 사제직의 종말론적 성격과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사제로 하여금
부활한 그리스도의 완전한 사랑에 온전히 몰두하게 한 다.
〔영성적 가치〕 봉헌 : ① 하느님을 위해서 : 독신은 사 제로 하여금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봉헌하게 하고 또 그 봉헌을 완성시킨다. "결혼하지 않은 남자는 어떻게 하면 주님의 마음에 들까 하고 주님의 일을 걱정합니다 ··· 나는 여러분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이런 말을 합니다. 여러분에게 올가미를 뒤집어씌우려는 것이 아니라 품위 있게 살며 딴생각 없이 오직 주님만을 섬기게 하려는 것 입니다"(1고린 7, 32-35). 사제 직분이 요구하는 가장 중 요하고 조화 있는 것으로 사제 독신은 매우 중요한 선택 이다. "모든 대제관은 사람들 가운데서 뽑혀 사람들을 위하여 하느님께 관한 일을 맡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예물과 속죄의 제사를 바치기 위함입니다"(히브 5, 1). 독 신은 그리스도에 대한 최상의 사랑과 하느님께 대한 예 배 및 교회에 대한 봉사에 헌신하기로, 확고하고 전인적 인 선택으로 자유로이 택한 것을 교회가 인정하는 봉헌 의 삶이다(사제 양성 1항). 독신 생활을 통해 드러나는 사 제의 모든 사목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서 봉헌된 중재 자로서의 영성적 가치가 매우 크다. 특히 제단에서의 사 목은 매우 구체적이고 중요하다. 그래서 독신 생활은 하 늘 나라를 위한 봉헌이며 실제적인 희생이다.
② 이웃을 위해서 : 독신은 사제에게 모든 사람들이 완덕으로 나아가도록 전적으로 봉사하게 한다. 독신은 사제로 하여금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게 하며 한 사람 이라도 더 구원되도록 노력하게 한다(1고린 9, 22). 독신 사제는 고유한 자기의 가정이 없고, 대신 모든 신앙인이 사제의 가족이 된다. "만일 독신 생활이 복음 정신, 기 도, 깨어 있음, 가난, 기쁨, 형제애 안에서 이루어진다 면, 그것은 더 이상 감취질 수 없는 표징이 될 것이요, 오늘날에도 인류에게 그리스도를 효과적으로 선포하게 될 것이다"(직무 사제직, 제2부 I . 4항 가). 독신 생활은 자 연 질서를 초월하는 것으로 전인적 투신을 내포한다. 그 리고 하느님의 은총 없이는 완성될 수 없다. 봉헌된 사제 독신은 날마다 하느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을 따라 살며, 말씀을 신앙인들에게 전하게 한다.
포기 : 독신은 금욕적인 이탈과 끊임없는 자기 포기로 서 사제가 자신의 직무와, 특히 이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서 자신에게 맡겨진 사람들에게 헌신할 수 있도록 보다 완전한 사랑을 실천하게 하는 포기이다. 이 포기는 사제 를 자유롭게 하는데 이것은 은총에 의해 가능하다. 자유 의지에 의해 선택된 사제의 독신을 위한 포기는, 하느님 이 이로 인해 텅 빈 곳을 채워 줄 때만 하느님 앞에 가치 로울 수 있고, 사랑 안에서의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사제는 기도 생활을 통해 하느님 안에서 독신의 선택에 확신을 갖도록 해야 한다. 겸허하고 끈기 있게 독신 생활 에 충실할 수 있도록 은총을 청하고 노력해야 한다.
포기의 영성은 세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첫 째, 포기는 육체적인 존재의 포기가 아니라, 육체적 표현 과 실현 수단의 포기이다. 즉 육체적 친밀과 성적(性的) 즐거움 등 어떤 성적 상징적 행위들을 포기한다는 것이
다. 성적 표현의 거부나 포기는 결코 성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마음의 섬세함, 부드러움, 따스함, 유연 함과 같은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데, 즉 인격 적 사랑에 있어서 필요한 요소이다. 둘째, 포기는 이성적 (異性的)인 것이다. 이성(異性)과 가정의 포기는 오히려 보다 오롯이 하느님과 이웃을 보편적으로 사랑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앙과 사랑의 체험만이 독신의 긍정 적 가치와 포기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셋째, 포기는 정신적 차원에서 오는 모든 인간적이고 세 속적인 것들을 예수의 마음 안에서 성화시킨다. 삶에서 오는 위안, 관심, 만족이나 원의 또는 욕구들을 포기하며 주님의 마음 안에 머물도록 노력한다. 이 포기는 사제로 하여금 하느님 안에서 진정한 신앙의 눈을 뜨게 한다.
〔의 의〕 독신의 은사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영성 생활 을 심화시킨다. ① 주님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파스카의 신비 속에 몰입한다..②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실천을 가 시적으로 표현한다. ③ 자기 자신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 이 아니라 하느님을 찬미하는 존재로 변화된다. ④ 하느 님 안에 잠심(潛心)하는 것을 우선적으로 중요하게 여긴 다. ⑤ 그리스도의 복음적 덕행들을 철저히 본받으려 노 력한다. ⑥ 기도와 참회의 표양을 교회 신비체 안에 건설 한다. ⑦ 교회의 사명과 성화에 충실한다. ⑧ 지복 직관 과 부활한 삶을 통해 종말론적 완성을 예지한다.
독신을 선택한 사제의 사랑은 자유와 진리에 근거한 다. 이 사랑은 어디까지나 인성(人性)적 사랑이 아닌 인 격(人格)적 사랑을 뜻한다. 성(性)은 육체 안에서 시작 할 수 있으나 사랑은 마음 안에서 시작된다. 그러기에 사 제 독신은 창조주 하느님을 존경하고 흠숭하며 모든 피 조물을 차별 없이 사랑하게 한다. 독신은 기꺼이 자유롭 게 선택되어야 하고 주님을 위하여 끊임없이 자신을 내 어 주는 기쁨에 찬 삶이어야 한다. 독신은 하느님과 사제 사이에 이루어지는 사랑과 내적 유대, 그리고 일치의 표 현으로 영성 생활 안에 생기 있게 표현되어야 한다. 독신 의 은사가 삶 안에 살아 있기 위하여 사제는 정숙, 절제, 정의, 진리, 충실성과 같은 덕에 나아가도록 노력해야 한 다. 사제는 독신 생활을 통해 교회 공동체의 머리이고 지 도자인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지체인 이웃에게 충실해 야 한다. 독신제는 사제직의 고유한 특성으로서 하느님 께 봉헌되고 그리스도께 동화되며 교회에 전적인 투신을 갖게 한다.
※ 참고문헌  Célibat Eccléiastique, 《Dsp》, Beauchesne, Paris, 1953/ Célibat et Virginité, 《DVS》, Cerf, Paris, 1983/ <동정 · 정결>, 《성서 신학 사전》, 광주 가톨릭대학 출판부, 1984/ <독신 생활 양성 지침>, 한국 천주교중앙협의회, 1993/ 바오로 6세, <사제 독신 생활에 관한 회 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67/ 교황청 성직자성, <사제의 직무 와 생활에 관한 교령>,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4/ J. 리딕, 박래창 역, 《질그릇에 담긴 보물》, 성바오로출판사, 1993/ H.P. 블라이크너 외, 성찬성 역, 《하늘 나라를 위한 독신》, 성바오로출판사, 1993/ T. 더베이, 성찬성 역, 《그리고 그대는 그리스도의 것》, 성바오로출판 사, 1993. 〔鄭大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