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존재자는 감각적 사물이라기보다 관념(Idea) 이념(Idee), 정신(Geist)임을 주장하는 전통 독일 형이상 학의 대표적인 한 이론 형태. '독일 이상주의' (獨逸理想 主義)라고도 한다. 독일 철학 사상사에서 관념론자 (Idealist) 즉 이상주의자, 이념주의자라는 명칭은 18세기 부터 사용되기 시작하였으나, 처음에는 플라톤(Platon)과 관련하여 쓰였으며, 칸트(I. Kant)와 그의 철학 정신을 잇 는 사상가들에게서 적극적인 뜻을 갖게 되었는데, 이들 은 자신의 철학을 관념론이라고 자칭하였다. 관념론은 당초에는 유물론(Materialismus)과 대립하는 사상으로 후 에는 실재론(Realismus)과도 반대되는 것으로 이해되었 다.
라이프니츠(G.W. Leibniz)는 에피쿠로스(Epicuros)와 플 라톤을 각각 물질주의자와 이념주의자로 맞세웠다. 여기 서 플라톤의 이념주의, 즉 이데아론은 오로지 내적 경험 을 통해 확인되는 모든 것은, 마치 아무런 물체가 없는 듯이 영혼 속에서 생기한다는 주장을 펴는 반면, 물질주 의는 영혼이란 전혀 없는 듯이 물체에서 모든 것이 일어 난다고 본다. 라이프니츠는 이 상반된 주장을 그의 《단 자론》에서 '예정된 조화' 이론으로써 화해시키고자 하였 다.
관념론은 분명히 실재론과 대립된 생각임에도 불구하 고, '관념' 이 어떻게 이해되는가에 따라서는 심지어 어 떤 실재론은 관념론적일 수 있고, 어떤 관념론은 실재론 적일 수 있다. 관념론이라는 명칭의 원인이기도 한 플라 톤의 '이데아' (idea)는 인간이 순수한 이성의 힘에 의해 이르러야 할 '이상' 이라는 점에서, 인간 의식의 저편에 영원 불변하게, 이를테면 초월적으로 실재하는 것이다. 반면에 우리의 사물에 대한 인식은 그 자체로 실재하는 사물을 감각 경험을 통해서 있는 바 그대로 모사(模寫) 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로크(J.Loke)의 경험론은, 그 감 각 경험이라는 것이 의식의 표상 즉 의식에 의존하는 관 념이라 이해되는 한에서, 일종의 관념론이다. 그러므로 관념론은 여러 각도에서 이해되기도 하고, 이해 방식에 따라 많은 다른 사상들과 연관지어질 수 있다. '독일 관 념론' 의 경우도 그 안에 '존재란 인간 의식(이성)에 의해 규정된다' (칸트)는 주장에서부터 '존재는 (세계) 정신의 발현' (G.W.F.Heel)이라는 주장까지를 포함한다.
〔사상사적 의의〕 독일 관념론은 독일이라는 특정 지역 에서 특정 시기에-대략 칸트의 《순수 이성 비판》(Kritik der reinen Vernunft)이 출간된 1781년부터 쇼펜하우어(A. Schopenhauer)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Die Welt als
Wille und Vorstellung)가 완간된 1859년경까지-인류 역 사상 다른 예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밀도 있고 심도 있게 형성 · 전개되었던 특별한 사상 형태이다. 이 시기에 합 리 정신의 최고조와 더불어 비합리적 낭만 정신의 최고 조를 함께 볼 수 있다. 문학에서 레싱(G.E. Lessing), 빌란 트(C.M. Wieland), 괴테(J.W. Goethe), 실러(F. Schiller), 노 발리스(F. v. H. Novalis), 쉴레겔(F. Schlegel), 흴덜린(F. Holderlin), 하이네(H. Heine)를 읽고, 음악에서 모차르트 (W.A. Mozart), 베토벤(L. v. Beethoven), 슈베르트(F. Schubert), 멘델스존 바르톨디(F. Mendelssohn Barthold)를 들으면서, 사람들은 칸트, 피히테(J.G.Fichte), 헤겔, 슐라 이어마허(F.E.D. Schleiermacher), 셀링(F.W. Schelling), 쇼 펜하우어의 사상을 접할 수 있었다. 또한 사상의 흐름을 바꾸려는 마르크스(K. Marx)나 헬름홀츠(H. V. Helmholtz) 와 만날 수도 있었다. 이들의 활동 양상에서 사람들은 인 간 정신의 폭에 경탄하고 인간 정신의 깊이에 신비로움 을 느낄 수 있다. 거기에는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아름다 움과 승고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이른바 '질풍노도' (Sturm und Drang)의 영기(靈氣, Geist)가 서려 있기 때문 이다.
'독일 관념론' 이라기보다는 '독일 이상주의' 로 이해 되는 편이 더 좋을 이 사조를 관통하고 있는 것은, 세상 사를 보편적으로 이성화하는 정신이었고, 또 무한자를 동경하고 열망하는 정신이었다. 그것은 세계의 합리적 질서를 내세우는 정신이자 인간의, 더 나아가 개인의 자 유 속에서 자신을 구체화해 가는 정신이었다. 인류 정신 사의 이 대목에서 사람들은 합리주의 정신의 정점이 낭 만주의 정신의 태반임을 인식하게 된다. 수학적-기하학 적 그리고 형이상학적인 보편적 질서 · 체계 의식으로부 터 개성 · 재치 · 천재성의 우월성과 함께 희망 · 이상· 합목적성 · 신비감이 생겨남을 본다. 물리적 세계의 수학 적 법칙성과 도덕 세계의 실천적 자유 의지에 기초한 당 위성, 자연에 현재(顯在)하는 신성(神性)으로 이해되는 합목적성을 통찰하고 그것들을 통일하려고 기획한 독일 이상주의 정신은, 인간이 자연의 제약 안에서도 자신을 인격으로서 지켜 갈 힘을 가진 자이며, 그의 노고를 통해 자연이 완성될 수 있음을 정시(呈示)한다.
[출발점] 계몽주의적 두 세계' 론 : 독일 관념론은 계 몽주의 정신의 한 극단적 표현이자 그에 대한 반성이다. 이 사상은 여러 방면으로 전개되었지만, 그 씨앗은 이미 칸트의 냉정한 '순수 이성 비판' 과 그것을 넘어서는 자 연의 합목적성' 에 대한 열망에 있었다. 17세기 이래의 서양 계몽주의 사상은 종래의 그리스도교 신앙에 대한 비판적 검토와 함께 형성되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자 연 만물이 신의 창조물이요, 따라서 신은 자연 만물의 근 원이자 근거이고, 주인(主宰者)이며, 반면에 인간을 포 함한 만물은 신의 피조물로서 신의 맞은편에 자리를 얻 은 것, 즉 객(客)으로서 주(主)인 신에게 의존되어 있다 고 생각한다. 그리스도교 신앙에서는 그러므로 신은 만 물의 중심이고 세계의 질서 원리이며, 질서 자체이다. 이 런 의미에서 신은 도(道), 말씀(logos) 자체이며, 이성(理
性, ratio) 자체, 다시 말해 '순수 이성' (ratio pura)이다. 신 은 또한 자신의 생각대로 자신의 뜻에 따라 자연 만물을 기획하여 만들어 낸다는 의미에서는 의지 자체, 곧 자유 의지로 이해된다.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 란 문자 그대 로 '자신으로부터 유래함' 이다. 자연 만물이 그 존재 생 성 때부터 무엇인가로부터 비롯한 것(ens ab alio)이리면, 신은 그리고 오직 신만이 자신으로부터 비롯한 것(ens a se)이요, 비로소 그 신으로부터 만물이 생 겨난 것이니, 신은 있지 않던 것을 있도록 하고, 이미 있는 것을 달리 있도록 하고, 뿐만 아니라 있는 것을 없도록 할 수 있는 능동적 활동(actus purus)이며, 이런 까닭에 엄밀한 의미 에서 자유 의지는 신의 고유한 성격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계몽주의는 그 '순수 이성' 과 '자유 의지' 를 인 간에게서 찾았다.
일차적으로 계몽주의는 여타의 피조물과 더불어 객체 로 물러나 있는 '인간' 에게 주체의 지위를 부여해 주어 야만 한다는 주장이라 볼 수 있다. 그래서 초기 계몽주의 자들은 이전 사람들이 신의 몫으로 돌렸던 모든 일들을 인간의 관할 내에 배당하고자 하였다. 그들에게 있어서 신을 오로지 한 분의 주(主)로 받드는 것은 몽매한 것이 었다. 계몽 사상가 대부분이 이신론(理神論)자이거나 심 지어 무신론(無神論)자였음이 그것을 잘 말해 준다. 독 일 관념론은 이러한 계몽주의 정신을 이으면서도, 인간 이 모든 면에서 결코 신을 대신할 수는 없음을 분명히 한 다. 독일 관념론은 중세 그리스도교 사상과 근대 초 계몽 주의 사상의 종합 내지는 화해 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 화해는 인간 이성의 자기 비판 위에서 가능하 였다. 전통적인 그리스도교 신앙 체계에 발을 닫고서 새 로이 자연 과학적 경험을 쌓은 데카르트(R. Descartes)는 '나의 존재와 본질' 에 대한 성찰을 거듭한 결과 '나' 는 정신(mens)적인 면과 물체(corpus)적인 면을 가지고 있음 을 밝혀 낸다. 그리고 이것은 정신의 세계와 물질의 세계 라는 본질적으로 구별되는 '두 세계' 이론으로 일반화된 다. 이런 생각의 연장선상에서 독일 관념론의 첫발이 칸 트에 의해 내디더졌다. 칸트도 전혀 공통점이 없는 두 세 계, 곧 자연의 세계와 자유의 세계를 눈앞에 그렸다. 두 세계가 구별되는 것은 두 세계가 속성상 다를 뿐만 아니 라 두 세계의 질서 즉 법칙이 다르기 때문이다.
〔칸트의 비판 철학〕 형식적 관념론 : 자연 세계의 질서 는 어떤 모습을 띠고 있는가? 계몽주의 시대의 자연 과 학자들은 그것이 수학적-역학적 법칙 체계임을 들추어내 보여 주었다. 수학의 체계, 역학의 체계 그것은 어디에서 연유하는가? 그것은 인간인 '나' 로부터 유래한다. 내가 수학적-역학적 사고를 하는 것이다. 그것은 나의 사고의 질서가 자연 세계의 질서임을 말한다. 자연 세계의 원리 곧 이성이란 나의 사고의 원리 즉 인간의 이성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자연 세계의 주체인 것은 인간의 이성 인 것이다. 그러나 자연은 수학적 · 논리적 형식에 알맞 게 운행한다는 점에서 인간의 이성과 궤도를 같이할 뿐, 인간이 자연을 질료적으로 만들어 내지 않았음은 분명하 다. 자연은 인간에게 주어진 것이고, 인간이 오히려 자연
안에서 산다. 그래서 칸트는 인간의 이성은 '부분적으 로; 만 자연 '현상(現象)의 창조자' (Gesammelte Schriften, XV, 단편 254)라고 규정한다.
현상이란 도대체 무엇이고, 인간은 어떤 의미에서 자 연 현상의 창조자인가? 계몽주의적 이성의 입장은 이 물 음과 관련해 참으로 존재하는 것, 곧 실재란 종래 많은 사람이 생각한 것처럼 신의 계시 혹은 그 비슷한 방식으 로 우리에게 알려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알려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른바 '그 자 체로 존재하는 사물' , '실재' 란 우리 인간이 그 자체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그 자체로 존 재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인간의 활동 방식이 자연 과학이다. 자연 과학을 통해 모든 존재자는 자기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런데 자연 과학은 인간의 인 식 양태이며, 인간 이성의 산물이다. 무엇이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인가를 가장 권위 있게 밝혀 낼 수 있는 것은 자연 과학인데, 이 자연 과학은 인간의 인식 방식인 것이 다. 그러므로 무엇이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인가는 인간 의 인식 방식에 의존되어 있으며, 적극적으로 말하면 인 간의 인식 방식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 을 규정하는 것이다. 인간이 모든 실재하는 것을 인식하며, 이 인식을 통해 실재하는 것은 실재하는 것으로 정(定)해지고 위치 지어진다. 인간이야말로 모든 실재하는 것의 중심이며, 그런 의미에서 주체이다. 이것은 인간의 인식이란 인간 의 독립적인 사물로의 동화(assimilatio ad rem)라는 종전의 생각과는 달리 실재의 중심이 인식 주관에 있음을 말한 다. 칸트에게서 이런 실재 · 인식의 중심 전환은 천체 운 동의 중심을 달리 파악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에 비유 된다(《순수 이성 비판》, B 16 참조).
자연 과학의 성과에 자신을 얻은 인간의 이성은 무엇 이 존재하는 것이고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를 가려내는 판관(判官)임을 자부하고, 모든 존재하는 것을 자신에게 의존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므로 '실재' 하는 것은 다름 아니라 인간의 이성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것, 곧 '현상' 이다. 현상의 배후에 또 다른 어떤 것으로
실재가 있는 것이 아 니라 바로 '현상이 실 재' 이다. 그리고 이 현상은 우리 인간에 대하여 나타난 것, 즉 우리 인간에 대하여 존재하는 것이라는 의 미에서 '대상' (對象, Gegenstand)이다. '실 재로 존재하는 것' 은 '주체' 맞은편에 서 있는 '객체' 로 자리 매김된 것이다. 이제 실재하는 것을 객체로 인정하는 주체인 인간 의 이성은 주관(主觀)
이다. 이 주관에 객(客)으로 보여진 것은 객관(客觀)이 다. 따라서 인식된 대상은 객관인 것이다.
객관이란 오로지 주관에 마주해 있는 것이며, 주관이 없는 곳에서는 얘기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거울의 구조 에 따라 비쳐진 사물의 모습이 정해지듯, 주관의 성격에 따라 객관은 정해지기 마련이다. 사물이 관조하는 이성 에 '있는 그대로' 인식된다 하지만, 그것은 관조하는 이 성의 구조가 수용하고 규정해 주는 한에서 있는 그대 로' 인 것이다. 사물을 인식하는 이론 이성은 사물의 있 음(existentia)과 무엇임(essentia)을 규정하는 주관이다. 그 래서 칸트는 이 주관을 '초월적 주관' (transzendentales Subjekt)이라고 부른다(《순수 이성 비판》, A 346, B 404 참 조). '초월적' 이란 칸트에게서 '모든 대상에 선행(선험적) 하면서도 대상 인식을 가능하게 한다' (《형이상학 서론》, 학 술원판 전집 4, p. 373 참조)는 뜻을 갖고 있다. 즉 초월적 주관이란 어떤 선험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는 바, 이 선험 적 구조로 인하여 주관은 사물을 인식할 수 있고, 이 인 식 작용은 대상으로서의 사물을 사물이도록 규정하는 작 용으로 이해된다.
칸트가 파악한 초월적 주관의 선험적 구조란, 근대의 수학적 자연 과학을, 즉 존재자를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인식 체계를 가능하게 한 인식의 형식을 말한다. 인간 이 성은 사물을 시간 · 공간 질서 위에서 양(量) · 질(質) · 관계(關係) · 양태(樣態)의 개념에 맞추어 인식한다. 우 리가 자연 세계를 수학적-역학적 질서 체계로 인식하는 것은 우리의 인식 방식이 시간 · 공간 표상 위에서 감각 하고, 그 내용을 수량과 힘의 관계로 정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무엇인가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초시간적 이고 초공간적이며, 감각될 수 없고 수량으로 파악될 수 없으며, 힘의 영향 관계로 포착할 수 없는 것이라면, 즉 그것을 우리가 인식할 수 없고 그것이 우리에게 결코 인 식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 없는 것이다. 이런 뜻에서 우리가 무엇인가를 인식한다 함은 그것의 존재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고, 우리에 의해 존재 의미를 부여받은 것만이 '우리에 대해서 있는 것' 곧 대상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주관이 존재자에게 의 미를 부여한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형식의 면에서 그러한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존재자가 주관에 의존되어 있다 해도 그것은 존재자의 존재 형식, 나아가서 존재자들의 총체인 자연의 법칙 체계의 관점에서만 그러한 것이다. 그래서 칸트는 자신의 이런 주장에 '형식적 관념론' (《형 이상학 서론》, 49절 참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절대적 자유 의지론과 자연의 합목적성 이론 : 인간의 이론 이성이 비록 존재자의 존재를 규정하는 초월적 기 능을 가지고 있다 하나, 그것은 우리에게 감각적으로 주 어지는 것에 대해서만 그러하다. 인간 이성의 초월적 기 능이 자신에게 갖춰져 있는 양식에 따라 다양하게 주어 지는 것을 하나의 존재자로 통일 인식한다는 점에서, 그 것은 자발적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인간의 이성이 인 식에 있어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존재자의 본질과 존 재 양태를 자기 규칙에 따라 규정한다는 것이 존재자를
창출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실천' (praxis) 행위는 존재자를 바꾸거나 없던 것을 있도록 할 수 있다. 더구나 자기가 세운 법칙에 따라 행위를 규정하 는 순수한 실천 이성은 무엇이 존재해야만 하며 생겨나 야만 하는가를 규정하는 것이기에 그것은 자유롭다고 말 할 수 있다.
인간의 자유로운 실천 이성은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을 창출할 행위 곧 당위(當爲)의 규칙을 제시한다. 그것이 이른바 도덕 규범이다. 도덕 규범은 인간의 인간다움의 이상(理想, idea)에 근거한 선(善)의 표현인데, 감성적 욕구에 싸여 있는 자연 존재자로서 인간이 그것을 실현 하기 위해서는 동시에 그에게 자연적 경향성을 물리칠 수 있는 자유로운 의지의 힘이 있어야만 한다. 그런 전제 아래서만 인간은 이해 관계를 떠나 자연적인 경향성을 벗어나서 도덕 규범이 이상적으로 제시하는 바를 수행할 수 있고, 그러할 때 인간은 인격(人格, persona)으로 납득 된다. 칸트는 인격으로서의 인간은 도덕적 당위를 그것 이 당위인 만큼 의당 행해야만 하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행할 힘을 가지고 있음은 당연하다고 생각하였는 데, 칸트의 이런 논리 구조를 실러는 "너는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너는 해야만 하니까!" (Du kannst, denn du sollst!) 라는 간명한 시구(詩句)로 표현하였다.
선의 이상에 따른 도덕적 행위의 주체는 자유로운 의 지이다. 자유로운 의지에 의해 수행되는 도덕적 실천 행 위는 아직 없지만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을 실현하는 당위 적 활동이다. 그리고 그 실현은 자연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여기서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자연과 인간 의지의 실현 활동으로서 실천이 부딪힌다. 자유로운 의지의 활 동이 자연에서 무엇인가를 실현시킨다 함은 있는 그대로 의 자연을 다르게 변화시킨다는 뜻이고, 의지가 자유롭 다 함은 그것은 자연으로부터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 다는 말이다. 이 말은 물리적-생리적 법칙에 따르는 자 연 세계에 자연적 인과성과는 다른 의지의 지향 목적에 따라서도 사태가 발생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이 어떻 게 가능할까? 칸트가 말하듯이, '그것은 오로지 자연의 합법칙성이 적어도 자유의 법칙들에 따라 자연에서 실현 되어야 할 목적들의 가능성과 합치할 때' (《판단력 비판》 5, p. 180)뿐이다. 자연의 합목적성이라는 개념은 자연의 다양한 법칙들이 마치 '하나의 체계' 를 이루고 있는 것 처럼 생각할 수 있도록 해주는 표상이다. 이 개념으로써 "우리는 자연이 보편적으로 합치하는 두 가지 법칙-물 리적 법칙과 목적인(目的因)의 법칙-에 따라 가능하다 고 상정할 수 있는" (같은 책, 5, p.415) 것이다. 자연은 보 편적인 목적 법칙에 따라 운행하되, 경험적인 기계적 자 연 법칙은 이 보편적인 법칙의 특수한 경우들이라고 생 각할 수 있는 것이다.
칸트에 따르면, 합목적적인 자연 세계, 곧 일정한 목적 에 부합하는 사물들의 현존을 위해서는 예지적이고도 도 덕적인 존재자로서의 세계 창시자, 즉 신이 상정되어야 만 한다. "우리는 우리의 이성 능력의 성질상 도덕 법칙 과 그 대상에 관계하는, 그리고 이러한 궁극 목적 안에
있는, 그러한 합목적성의 가능성을 세계 창시자이자 통 치자요 또한 동시에 도덕 법칙의 수립자인 하나의 존재 자를 염두에 두지 않고서는 전혀 이해할 수가 없다. ··· 그러므로 최고의 도덕적 · 법칙 수립적 창시자가 실재함 은, 그러한 자의 현존을 이론적으로 규정함 없이도 순전 히 우리 이성의 선험적 사용에 대해서는 충분히 정시(呈 示)된다"(같은 책, 5, p. 456). 합목적적인 자연 세계에서 는 일체의 개별적 존재자가 각기 개별성과 함께 하나의 궁극 목적에 부합해야 한다. 합목적적으로 운행한다고 생각된 자연은, 그러니까 신성(神性)에 의해 규제되는 것으로 볼 수 있고, 일체의 개별자가 나름의 정당성을 가 지는 만큼 어떤 한 부분, 어떤 한 단계에서만 보면 불합 리하고 무질서해 보일지라도, 자연은 그런 단계를 통해 서 자연의 완성을 의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떤 사물 에게는 본능을 심어 주어, 또 어떤 사물에게는 계획할 수 있는 이성 능력과 실천 의지를 심어 주어 전체적으로 보 면 자연은 자신의 의도를 실현해 간다고 볼 수 있는 것이 다(《보편사의 이념》 8, p. 18).
〔절대자 이론〕 세계 구조 설명을 위한 칸트의 새롭고 도 거대한 철학 구상을 좇는 일단의 독일 철학자들에 의 해 독일 관념론은 더욱더 '독일적' 관념론의 형태를 갖 게 된다. 피히테와 셀링은 인간 이성을 세계에 보편적인 주체의 힘으로 이해하였고, 헤겔에 이르러서는 칸트가 단지 생각해 볼 수 있고 희망해 볼 수 있는 것으로 규정 한 이념(이상)을 스스로 실현해 가는 주체인 세계 정신으 로 파악하게 된다.
피히테 : "칸트의 정신을 넘어선 어느 곳에도 새로운 연구 대상이란 없다" (Botingen에게 보낸 피히테의 편지, 1794. 4.2)고 천명한 피히테는 칸트의 '초월적 주관' 과 '도덕적 실천 주체' 를 '절대적 자아' 로 통합하고자 하였다. 인식 주관이 대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대상을 대상이게 함은 자명하지만, 그럼에도 그 대상 규정에서 주관은 일차적 으로 감각적이고, 감각은 수용성인 한에서 주관 아닌 것 에 의해 제한받는다. 주관은 행위 주체로서 활동함으로 써 비로소 이 제한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피히테는 이 사태를 두 명제로 요약했다. "나는 나 아닌 것에 의해 규정되는 것으로서 나 자신을 정립한다"(《전 지식학의 기 초》 1, p. 127). "나는 나 아닌 것을 규정하는 것으로서 나 자신을 정립한다"(같은 책, p. 246). 이 두 정립에서 정립 주체는 어디까지나 동일한 '나' 이고, 따라서 나의 영역 이든 나 아닌 것의 영역이든 궁극적으로는 이 정립 주체 인 '나' 에 근거한다. 이런 뜻에서 이 '나' 는 '절대적 자 아 라고 할 수 있다.
셀링 : 이 '나' 가 절대적이라는 것은 나는 오로지 나 자신에 의해서만 정립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셀링은 이 절대적 자아란 다름 아닌 '절대자' 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본다(《철학의 원리로서 나에 관하여》 1, p. 177). "나는 모든 사고와 표상에 선행하는 존재" 이기 때문이다. "나는 생 각됨으로 해서 있으며, 있기 때문에 생각된다. 나는 스스 로가 스스로를 생각하는 한에서 있으며 그리고 또한 그 런 한에서 생각되어진다. 그러므로 나는 나 자신이 자신
을 생각하기 때문에 있으며, 있기 때문에 자신이 자신을 생각한다. 나는 나의 생각을 통해서 스스로를 낳는다"(같 은 책, p. 167). 이 '나' , 자아의 자기 산출이 뜻하는 것은 "자아의 본질은 자유" (같은 책, p. 179)라는 점이다. 자유 를 본질적으로 갖는 한에서 자아는 정신이며, 이 정신은 절대적인 자기 힘에 의해 자기 자신 안에서 모든 실질적 내용을 무제약적으로 정립한다. 무제약적으로 실질 내용 을 정립함으로써 정신은 스스로 자신을 실현시키며, 그 것은 "정신이 단적으로 행위하지 않고서는 일어날 수 없 는 일이다. 정신이 단적으로 행위한다 함은 스스로 의지 를 가짐을 말한다" (《지식학의 관념론 해명》 1, p. 395). 그러 므로 "정신은 오로지 의지를 가짐으로써만 자기 행위를 직접적으로 의식하며, 그러니까 이 의지를 갖는다는 작 용은 자기 의식의 최고 조건이다" (같은 책). 물론 이 의지 는 자유로운 것이다. 의지는 자유 없이는 공허한 것이고, 자유 또한 의지로써 비로소 현실적이다. 절대적 자아, 절 대자, 정신은 그것이 자유로운 의지인 한에서 자기를 구 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다.
〔헤겔의 합리적 이상주의〕 헤겔에 있어서, 정신은 의 지인 한에서 자기를 실현하는, 따라서 살아서 움직이는 실체이며, 실현이란 목적의 구체화이다. 그러므로 정신 이란 자기 목적을 가지고서 그 목적 달성을 위해 애쓰는 활동 주체를 말한다. 이 정신 운동의 목적, 곧 정신이 지 향하는 것은 정신이 생각하는 바(사고, 개념)의 실재화이 다. 즉 정신은 스스로 운동함으로써 자신의 개념과 실재 (존재)의 결합을 지향한다. 그러나 우리가 정신의 중심 매체인 인간의 역사에서 보듯, 정신의 이 목표는 단번에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긴 도정을 지나면서 한 단계씩 성 취된다. 그런데 정신이 거쳐가는 그 단계마다 자신을 진 상(眞相)으로 정립하므로, 정신의 진보란-그것은 현 단계를 벗어남을 뜻하니까-다름아닌 과거의 자신의 진 상을 가상(假像)으로 폐기하는 일, 즉 자기 부정이 된다.
헤겔에게 있어서, 정신이 부단히 '전진하는 운동' (《정 신 현상학》, 전집, 권9, p. 250) 중에 있다는 것은 정신이 끊 임없이 자신을 부정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기에 정신 은 결코 안정 중에 있는 일이 없다. 정신은 '순수한 자기
움직임의 무한성 내지 는 절대적 불안정' (같 은 책, p. 100)이며 절대 적 부정성이며, 이 때 문에 '순수한 활동성' (《철학 백과》, p. 378, 追 記)이다. 어떤 한 단계, 한 계기에서 '진상' 으 로 현상하는 정신은 다 음 단계, 다른 계기에 서 현상하는 정신에 의 해 부정되고 가상으로 전락한다. 그것이 진정 한 진상이 아니었기에, 새로운 현상이 등장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에서 이 부정은 필연적이고, 이 부정 은 그러나 바로 정신, 자신의 '힘' 이라는 점에서 또한 자 유 자체이다. 자유로서의 "정신의 힘은 그것이 표출되는 꼭 그만큼 큰 것이며, 정신의 깊이는 그의 펼쳐 냄 중에 서 자신을 확장하고 자신을 상실해 갈 수 있는 그만큼의 깊이를 갖는다" (같은 책, p. 14). 정신에 의한 정신 자신의 이 부정을 통해서만, 즉 '변증법적' 인 확장 운동 과정이 '정신의 생(生)' 이며, 정신은 이 끊임없는 자기와 자기의 '분열' 중에서 완성되어 가는 자신을 발견함으로써만, 자신의 진상을 마침내 획득한다(같은 책 p. 27).
헤겔에 의하면, 정신은 불안정 중에 있기에 변화 운동 을 통해서 자신을 드러낸다-안정 , 그것은 더 이상 아무 런 변화도, 따라서 발전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그러나 이 변화 운동 중에서도 정신은 항상 자기 동일성을 유지 하며, 이른바 비동일성의 동일성인 이 자기 동일성을 유 지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불변의 절대자이자 실체이다. 또한 이 '절대자는 주체' , 바꾸어 표현해서 '주어' 이다 (같은 책 p. 18). 전개되는 모든 계기들, 단계들은 이 주체 에 속하는 것이며, 주어에 속하는 술어(述語)들이다. 속 성들은 언제나 주체 내지 기체(基體)인 실체에 속하며, 술어들은 언제나 주어에 속해 있다. 그러나 실체 내지 주 체는 속성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며, 술어 없이 주어는 결 코 표현될 수 없다. 이 속성들이 바로 그 실체는 아니지 만, 그러나 속성들 즉 전개되는 계기들을 통해서 실체는 자신의 참모습을 드러낸다. 정신의 한 단계 한 단계, 한 계기 한 계기는 정신을 현실에서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 서 그 각각 진상이라 할 수도 있지만 , 그러나 진정한 '진상은 전체' (같은 책, p. 19)뿐이다. 물론 이 "전체는 그 것의 전개를 통해서 완성되어지는 것이다" (같은 책 : 《논 리의 학》 I, 전집, 권11, p. 355). 정신은 이렇게 다수이면서 하나인 유기체적 전체(《논리의 학》 I, p. 356 참조)로서만 참 다운 진상이며, 하나〔一者〕이며, '보편자' (《정신 현상학》, p. 19)이며, 절대자이고 '살아 있는 실체' (같은 책, p. 18)이 다. 살아 있음의 증거는 바로 스스로 끊임없이 자기 자신 을 부정하는 운동이며, 이 운동의 주체라는 점에서 자유 인 정신은 '달리 되어감' (같은 책, p. 19)에서 자신임을 유 지하고, '달리 있음' 에서 '자기와 같음(동일성)을 재생 산' (같은 책, p. 19)해 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신은 오직 매개적으로만 현상하며, 따라서 실체 내지 주체로서, 절 대자로서 정신이 진정으로 무엇인가는 이 부정의 부정 운동의 '종점' 에서 비로소 드러난다(같은 책, p. 19). 이 '종점' 은 정신이 자기 부정 운동을 막 '시작' 할 무렵부 터 '목표' 로 가진 '이념' 이자 긴 도정을 매개로 한 '결 실' (《논리의 학》 I, p.376)이다.
〔종교 철학적 의의] 정신의 자기 완성의 긴 도정이 세 계사이며, 그런 점에서 세계사의 주체인 이 정신은 '세 계 정신' 또는 '세계 이성' 이라 부를 수 있다(《정신 현상 학》, p. 25 참조). 세계란 이를테면 세계 정신의 자기 기투 (企投)인 노역(勞役)의 역사이다. 그리고 이 세계 정신 의 대표적인 매체가 인간이며, 세계 정신은 인간을 통하 여, 인간의 노역을 통하여 발현된다.
세계 정신은 개개인들의 이해 관심과 욕구와 정열을 도구 삼아 자신을 전개해 간다. 그러기에 개인들의 욕구 가 다양하고 열정이 뜨거울수록 그리고 상상력의 폭이 넓고 깊을수록 세계 정신, 세계에 편만한 영기(靈氣)의 풍부함이 돋보인다. 또한 이해 관심에 매인 개별자로서 개인들은 '이성의 책략 (헤겔, 《역사 철학 강의》, 보급판 전 집, 권12, p. 49)에 따라 서로 제한하고 대립하고 투쟁하지 만, 그것을 통해 보편자인 이성은 자신을 구체화하고 현 실화한다. 그럼에도 개인들을 전적으로 수단만으로 볼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은 그들 안에서 발견되는 '어떤 그 자체로 영원하고 신(神)적인 것' 즉 '도덕성, 윤리성, 종 교성' 이다(같은 책). 이런 성격들은 한낱 무엇을 위한 수 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으로 보아져야 한다. 그러므 로 개개인이 윤리적 전체의 성원이 될 때 보편적 이성과 하나가 되고, 그가 원해서 하는 일이 동시에 세계의 목적 에 부합될 때 신성이 그와 함께하는 것이며, 그런 만큼 그의 개성 하나하나도 존엄하고 신성하다. 아니 인간이 신성에 참여함은 필연적이고 또 그로써 인간은 고양된 다. 그래서 헤겔에게 있어서 신은 초월적이라기보다는 자연 내재적이고 인간에게 임재(臨在)적이다. 칸트의 비 판적 이성에서 그 존재가 유보되었던 신은 이로써 헤겔 에 이르러 정신으로서의 보편 이성으로 현현한다. (⇦ 관념론 ; → 칸트 ; 신칸트주의)
※ 참고문헌 Thomas Aquinas, Quaestiones disputatae- De veritate, R. Spiazzt ed., Roma, 1953/ R. Descartes, Meditationes de prima philosopia, L. Gabe ed., Hamburg, 19771 J. Locke, An 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A.C. Fraser ed., New York, 1959/ G.W. Leibniz, Die philosophischen Schriften von Gottfried Wilhelm Leibniz, I, Gehardt ed., Berlin, 1875~1890, Hildesheim, 1961~1962/ I. Kant, Gesammelte Schriften I-XXIX, Preußische Akademie der Wissenschaft . Deutsche Akademie der Wissenschaft zu Berlin ed., Berlin, 1902~1983/ J.G. Fichte, Nachgelassene Werke, vol. 3, Scimtiche Werke, vol. 8, I.H. Fichte ed., Bonn, Berlin, 1934, 1935, 1845, 1846/ F.W.J. Schelling, Sämtliche Werke, K.F.A. Schelling ed., 1부, vol. 10, Stuttgart, 1856~1861/ G.W.F. Hegel, Werke, vol. 20, E. Moldenhauer · K.M. Michel eds., Frankfurt a.M., 1971/ -, Pänome- nologie des Geistes, Gesammelte Werke, vol. 9, W. Bonsiepen · R. Heede eds., Hamburg, 1980/ 一, Wissenschaft der Logik 1, vol. 11, F. Hoge- mann · W. Jaeschke eds., Hamburg, 1978/ A. Schopenhauer, Saimtiche Werke, vol. 5, W. v. Löhneysen ed., Stuttgart · Frankfurt a.M., 1968/ R. Kroner, Von Kant bis Hegel, vol. 2, Tubingen, 1921, 1924/ N. Hartmann, Die Philosophie des Deutschen Idealismus, Berlin, 1923, 1929/ N. 하르트 만, 이강조 역, <독일 관념론 철학》, 서광사, 1989/ F. 카울바하, 백종 현 역, 《칸트 비판 철학의 형성 과제와 체계》, 서광사, 1992/ 백종현, <칸트에서 인간과 자연>, 《철학과 현상학 연구》 6집, 한국현상학회, 1992/ 一, <개인과 인간 주체 개념의 형성>, 《철학 연구》 35집, 철학 연구회, 1994/ 一, 《칸트 '실천 이성 비판' 논고》, 성천문화재단, 1995. 〔白琮〕
독일 관념론
獨逸觀念論
〔독〕Deutscher Idealismus · 〔영〕German ide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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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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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관념론의 시초인 칸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