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소속 본당. 서울시 성북구 동선동 2가 1-2
소재. 1955년 10월 18일 혜화동 본당에서 분리 · 설립 되었으며, 주보는 성 파트리치오. 관할 구역은 일부, 돈암2동, 동소문동 3~5가, 동선동 1~5가, 동 2가 일부와 3~5가, 보문동 1~7가, 안암동 지역이다. 〔교 세〕 1955년 900명, 1969년
돈암1동 삼선 1~5가 3,500명, 1974년 4,541명, 1979년 5,441명, 1983년 9,862명, 1985년 10,210명, 1988년 4,912명, 1994년 4,455 명. 〔역대 신부〕 초대 도슨(P. Dawson, 孫) 파트리치오 (1955. 10~1956. 3), 2대 매니언(F. Mannion, 明) 프란치스 코(1956. 3~1961. 1), 3대 쿠퍼(C.Cooper, 具) 가롤로(1961. 1~1963. 4), 4대 버클리(T. Buckley, 闕) 디모테오(1963. 4~ 1968. 6), 5대 오코너(M. O'Conor, 高) 마우리시오(1968. 6 ~1969. 4), 6대 김정수(金晶壽) 레오(1969. 4~1974. 5), 7대 송광섭(宋光燮) 베드로(1974. 5~1979. 6), 8대 황인국(黃 仁國) 마태오(1979. 6~1983. 3), 9대 백민관(白敏寬) 테오 도로(1983. 3~1985. 8), 10대 김희선(金喜善) 요셉(1985. 8~1988. 8) , 11대 박고빈(朴稿斌) 시메온(1988. 8~1993. 10), 12대 최창화(崔昌和) 토마스 아퀴나스(1993. 10~현 재).
〔설립과 발전〕 돈암동 지역에 최초의 영세자가 탄생한 것은 1929년경으로 그 후 1930년대로 접어들면서 매년 4~5명의 신자가 혜화동 본당에서 영세 입교하여 교세 를 확장해 나갔다. 그러나 돈암동이 관할 본당인 혜화동 과 가까운 거리에 있고, 거주 신자들도 많지 않았으므로 공소 개설이나 본당 분리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였다. 그러던 중 휴전과 더불어 교세가 급격히 신장되어 이 지 역 성당 건립이 불가피해지자 골롬반 외방선교회 한국 지부에서 불하한 적산 가옥 부지를 매입하여 1954년 12 월 26일 기공식을 거행하고 이듬해 10월 18일 본당 설
정과 함께 대지 438평, 연건평 255.41평의 웅장한 석조 성당을 완공 축성하였다.
1955년부터 15년 간 돈암동 본당 사목을 담당하기로 서울교구와 협약하고, 5명의 주임 신부와 9명의 보좌 신 부를 파견하였던 골롬반 외방선교회는 교구와의 약정 기 간을 1년 단축, 1969년 4월 서울대교구에 본당 사목 관 할권을 인계하였다.
창설 초기에는 가톨릭 구제회(N.C.W.C)의 구호 물품 으로 급식소를 운영하여 극빈자들을 돌보았고, 농아들을 위한 교리반 개설, 기술 학교와 농아 자활촌 설립, 청각 장애 어린이들을 위한 서울 애화학교 설립 등 빈민 구제 사업에 힘을 쏟았다. 1965년 2월에는 가톨릭 노동 청년 회가 발족되어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 환경에 처한 근로 자들을 복음으로 위로하였다. 특히 1969년 2월에는 교 리실을 이용, 노동하는 젊은이들의 배움터인 엘로우선 (YELOWSUN ; Young · Education · Labor · Organization · Work · Sun) 중학교를 정식 개교(1980년대 중반 이후 폐교)하여 불 우 근로 청소년을 위한 야학을 본격적으로 실시하기도 하였다.
1955년 3월 대구에 본원을 둔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 회에서 전교 수녀를 파견하고 분원을 설치하여 이후 예 비자 교리, 빈민 구제, 서울 애화학교 설립 등에 협조하 고, 유치원 교육에도 힘을 쏟았다. 1968년 9월에는 본 당 주보가 처음 발간되었고, 이를 계기로 평신도 사도직 활동이 더욱 내실 있게 이루어져 본당 발전의 초석이 되 었다.
〔성장과 변모〕 1969년 4월 본당 관할권이 서울대교구 로 귀속되고, 교구 신부들이 부임하면서 돈암동 본당은 사목상의 일대 전기를 맞게 되었다. 우선 본당 내의 신심 단체들을 정비하고 반상회를 활성화하는 계기를 마련하 였으며, 이를 원동력으로 1971년 4월에는 강당을 겸한 회관을 기공, 불과 5개월 만에 완공하여 지역 사회 내에 명실 상부한 문화 센터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1970 년대 중반부터는 본당의 역량을 외부로 펼치기 시작, 1974년 10월 30일 한국 가톨릭 군종 후원회 지회를 발 족시켰으며, 1978년 9월에는 파주군에 있는 금촌 본당 건물과 사제관을 돈암동 본당 단독의 힘으로 건립하여 봉헌하기도 하였다. 이 밖에도 1970년 9월 헌혈 운동, 1973년 2월 극빈자 결혼식을 위한 강당 개방과 3월 돈 암 어린이 집' 개원, 그리고 1976년에는 중학생 독서실 로 성당을 개방하고 '전국 공소 책 보내기회' 를 발족시 키는 등 지역 사회와 타교구 돕기에 앞장섰다.
1980년 설립 25주년을 맞은 돈암동 본당은 1981년 교구 설정 150주년 행사에 적극 참여하여 지구 신앙 대 회에 무려 2,000여 명의 신자가 참석하기도 하였다. 특 히 1985년에 본당 창설 30주년을 맞이하면서 《돈암동 본당 30년사》를 발간하였는데 이를 통해 골롬반 외방선 교회 사목 활동 15년과 교구로의 관할권 이양 이후 15 년을 총정리하여 본당 사목 30년 역사와 그 모습을 진단 하고 평가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본당 창설 30주년을 계기로 사목 관리 체계를 정비한 돈암동 본당은 행불자
및 이중 교적자, 타지역 거주자 교적 정리를 명한 교구 방침에 따라 1988년도부터의 실제 거주 신자 현황 파악 및 교적 정리 작업을 실시, 행불자를 교구청 이향 신자 사목부에 보고하고 실제 본당 신자수를 집계하였다.
한편 본당 창설 40주년을 맞은 돈암동 본당은 본당 중 심 구역이 상업 지역으로 지정되어 급격한 발전을 이루 어 가고 있을 뿐 아니라 돈암동 재개발 아파트에 입주하 는 300여 세대가 본당 구역에 해당하여 이를 수용하기 위한 노후 시설 정비, 교육 회관 확충 등에 힘쓰면서 이 를 새로운 도약의 계기로 생각하고 있다. 이에 따라 1995년에는 15개 구역 전체 신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전신자 구역 피정' 을 실시하였으며, 같은 해 3월 12일 에는 본당 소식지인 《성 패트릭 광장》을 월간으로 창간 하였다. 또 '본당 신자들의 노령화 현상' 과 '본당 중심 구역의 상업화 추세' 를 감안, 지역 사회의 새 복음화와 본당 소공동체의 활성화를 위한 장기 계획을 마련하는 등 재도약을 다짐하고 있다. (→ 서울대교구 ; 골롬반 외 방선교회 ; 서울 애화학교)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천주교 돈암동 교회, 《돈암동 본당 30년사》, 1985/ -, 《성 패트릭 광장》 창간호, 1995. [편찬실]
돈암동 본당
敦岩洞本堂
글자 크기
3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