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오 점수

頓悟漸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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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 깨달음을 성취하는 방법의 하나. 불교의 궁 극적인 목적은 깨달음[悟]의 성취와 불국 정토(佛國淨 土)의 건설이다. 전통적 인식에 따르면, 깨달음을 성취 하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은 선(禪)이다. 돈오 점수는 이 선불교(禪佛敎)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논쟁 거리가 되 어 오고 있는 주제이다.
돈오는 깨달음이 갑자기 단박에 이루어짐을 뜻하는 말 이다. 따라서 깨달음을 위한 오랫동안의 준비 단계를 거 쳤다 하더라도 깨달음과 그것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 반 면에 점수는 깨달음이 오랜 기간의 수행을 거쳐 천천히 차츰차츰 이루어짐을 뜻한다. 따라서 깨달음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오랜 동안 점차적인 수행 과정을 거쳐 야만 하는 것이다. 돈오를 주장하는 이들은 중국 선종 (禪宗)의 여러 조사(祖師)들이 단박에 깨달음을 얻은 예 를 들고, 점수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은 석가모니 부 처가 3천억 겁(劫)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의 수행을 거쳐 서 비로소 깨달음을 성취하였다는 점을 상기시키려고 한 다.
〔논쟁의 형성과 그 전개〕 불교가 중국에 전래된 지 100여 년이 지난 2세기 중반부터 선 수행(禪修行)에 관 한 경전들이 중국어로 번역되기 시작하였다. 그 뒤 4세 기 동안에 걸친 준비와 적응의 단계를 지나 선불교는 6 세기 초반 보리달마(菩提達磨, ?~532)에 이르러 하나의 본격적인 종파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보리달마의 5 대 제자인 혜능(慧能, 638~713)에 이르러 선불교는 독창 적인 전개를 보이면서 눈부시게 발전하였다. 이를 계기 로 선종(禪宗)은 중국 불교의 주류를 형성하였다. 선종 이 혜능에 이르러 독창적인 전개와 눈부신 발전을 이루 게 되는 계기가 바로 돈오와 점수의 논쟁이었다.
돈오와 점수의 논쟁 : 중국에 본격적인 선불교를 심은 보리달마의 4대 제자인 홍인(弘忍, 601~674)의 문하에 서로 쌍벽을 이루는 걸출한 선 수행자가 나타났다. 신수 (神秀, 605?~706)와 혜능이 바로 그들이다. 이 두 사람을 중심으로 일어난 돈오와 점수의 논쟁은 선불교의 중심 주제가 되었다. 이 두 수행자는 모든 면에서 대조적이었 다. 신수는 훤출한 인물과 뛰어난 언변(言辯)에다 불교 교리 전반에 통달하여 만년(晩年)에는 궁중으로 초청되 어 측천무후(則天武后)와 중종(中宗)의 두터운 예우를 받았고 많은 제자들을 배출하면서 교화 활동을 펼쳤다고 한다. 한마디로 그는 당대의 최고 지성인이며 사상계의 지도자였다. 이와는 달리 혜능은 일자무식의 가난한 나 무꾼 출신으로 홍인의 문하에서 노동에 종사하면서 선을 수행하였다고 한다. 두 사람의 이러한 배경은 그들의 사 상적 특성을 형성하는 데에 결정적 영향을 주었을 것이 라고 믿어진다.
신수는 북쪽 지역에서 점수에 의한 깨달음을 주장하는 선을 가르쳤고, 혜능은 남쪽 지역에서 돈오를 주장하는 선을 가르쳤다. 그래서 이들을 지역에 따른 분류로서 북 종(北宗) 또는 북점(北漸), 그리고 남종(南宗) 또는 남 돈(南頓)이라고 부른다. 처음에는 북종이 번성하였으나 나중에는 남종 계통에서 하택(荷澤) 신회(神會, 670~ 762)와 같은 빼어난 후계자들이 많이 배출되면서 남종이 단연 우세하였다. 그 뒤 당(唐) 중기부터 선종은 곧바로 남돈종(南頓宗)을 가리킬 정도가 되었다. 돈 · 점(頓漸) 의 사상 논쟁을 돈오파의 승리로 이끄는 데는 신회가 결 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돈오와 점수의 뚜렷한 대비는 스승에게 바쳤던 신수와 혜능의 깨달음의 시인 오도송(悟道頌)에서 극명하게 드 러난다. "내 몸은 깨달음의 나무, 내 마음은 맑은 거울의 대(臺), 언제나 부지런히 닦아 내어, 결코 티끌이 묻지 않게 해야 하리"(身是菩提樹 心如明鏡臺 時時勤拂拭 勿 使惹塵矣) . 당시 선불교의 최고 지도자인 홍인의 수제자 신수가 스승에게 바친 깨달음의 시이다. 이 시는 인간 성 품의 맑음을 가리고 있는 번뇌의 티끌을 하나하나 차근 차근 닦아 내어 점차로 깨달음의 경지에 다가가려는 수 행의 태도이다. 그것은 논리적이며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비하여 혜능의 깨달음의 시 는 다분히 파격적인 데가 있다. 글을 읽거나 쓸 줄 모르 는 그는 게시(揭示)된 신수의 시를 먼저 듣고 난 뒤 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대신 쓰게 한다. "깨달음에는 나무 라 할 것이 본래 없으며, 맑은 거울 역시 대(臺)가 아니 다. 자신의 성품은 본래 맑고 깨끗한데, 어디에 티끌이 묻을 수 있으리" (菩提本無樹 明鏡亦非臺 自性本清淨 何 處惹塵矣) .
이 오도송과 그에 얽힌 이야기들은 혜능의 돈오 사상 을 추종하는 자들이 만든 《육조 단경》(六祖檀經)에 실려 있기 때문에 다분히 자신들의 사상만을 치우치게 옹호하 는 입장에 있다는 비판이 있다. 그러나 그 동안의 역사적 사실들은 제쳐 두고라도 이 책이 돈오와 점수의 사상적 입장을 대비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내 용〕 돈오를 주장하는 혜능은 인간 본성이 본래 청 정함을 강조한다. 물듦이 있어야 닦을 것이 있다. 물듦이 없이 본래부터 청정한 것이라면 닦을 필요가 없다. 본래 부터 청정한 것은 물들지 않는다. 본래부터 물들어 있다 면 닦아서 깨끗하게 만들 수도 없다. 물듦이 실재라면 없 어질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허상일 뿐이다. 물듦이 실 재가 아니라 허상이기 때문에 간단하고 쉽게 극복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문제는 중생(衆生)들이 본래 청정하 여 물듦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모르고 허상을 실재로서 잘못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결국 돈오주의자들에게 번 뇌와 고통은 하나의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 환상일 뿐 이다. 그런 것은 실재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중생들 의 번뇌와 고통이란 단지 이 본래의 청정함을 모르는 데 서 비롯되는 것이다. 따라서 깨달음이란 본래의 청정함 을 투철하게 깨달아 아는 것뿐이다. 그것은 인식의 전환 을 통해서 순식간에 초래될 수 있다. 그래서 돈오가 가능 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점수를 주장하는 쪽에서 본다면, 본래 깨끗하 여 물들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참된 성품이라고 한다면 현 재의 중생들의 모습인 번뇌와 고통을 설명할 길이 없다. 현재의 번뇌와 고통이 인식의 잘못에서 비롯되는 환상이 라고 하기에는 중생들에게는 너무나 절실한 것이다. 배 고픔을 비롯해서 인간들이 일상에서 겪는 헤아릴 수 없 고 견디기 힘든 그 아픔들이 모두 실재가 아니라 환상이 라는 것을 수긍할 수 없다. 그래서 점수주의자들은 중생 들이 겪는 번뇌와 고통을 환상이 아니라 실재로 본다. 그 렇다면 그것은 하나하나 없애 나가야 한다. 이 물듦을 차 근차근 맑게 닦아 내는 데에는 점차적인 단계와 시간이 필요하다. 그것은 본래의 청정함을 아는 인식만으로 갑 자기 단박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 두 주장이 갖는 지성적 · 합리적 설득력에 관계없이 중국 선불교의 역사는 돈오주의자들의 승리 쪽으로 흘렀 다. 중국 선불교의 중심 사상이 된 돈오 사상의 핵심적 기치는 "문자를 내세우지 않고, 가르침 이외에 따로 전 하며, 곧장 사람의 마음을 가리켜서, 본래의 성품을 봄으 로써 깨달음을 이룬다" (不立文字 教外別傳 直指人心 見 性成佛)라고 하는 유명한 네 구절이다.
단박에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돈오주의의 선불교는 일단 언어나 문자에 의한 가르침을 중시하지 않는다. 언어 문자에 의한 논리적 추구는 오히려 선 수행 의 궁극적 목표인 깨달음의 체험에 장애가 된다고 여긴 다. 이것은 종래까지의 인도 선이나 혜능 이전의 중국 전 통의 선이 경전의 가르침에 의지하던 것에 비하면 대단 한 파격적 입장이다. 돈오 선은 언어 문자가 갖는 논리의 유용성을 거부하고 체험의 직접성과 초월성을 중시한다. 돈오 선은 언어 문자에 의한 논리적인 교리나 단계를 밟 아 올라가는 인도식 명상 수행인 좌선(坐禪)을 통해서 깨달음에 도달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心], 즉 각자가 지니고 있는 불성을 직접적으로 파악하여 체험함 으로써 단박에 깨달음에 도달할 수가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돈오를 주장하는 선종에서는 마음을 맑고 깨끗하
게 한다거나 마음을 고요하게 유지한다거나 하는 선적인 수행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돈오주의는 다만 자신의 성품을 직접 보는 것, 즉 견성 (見性)을 중시한다. 자신의 성품은 불성(佛性)으로서 본 래 완벽하게 깨끗하고 원만한 상태이기 때문에 맑고 깨 끗하게 닦을 필요가 없다. 자신의 성품이 본래 불성인 줄 을 깨달으면 되는 것이다. 자신의 본래 성품이 완벽하고 원만하기 때문에 이것을 깨닫는 데 단계적인 수행이나 점진적인 과정은 필요 없으며 이것을 보는 순간 갑자기 단박에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돈오 선에서는 경전도 필요 없을 뿐만 아니라 장기간 의 수행 단계도 필요 없다. 다시 말하면 선의 핵심적 요 체인 깨달음은 어느 누구도 어떤 방법으로도 가르쳐 줄 수 있는 무엇이 아니라는 것이며, 깨달음은 오로지 자신 의 마음의 본성을 스스로 체험함으로써만 가능하다는 것 이다. 또한 불성을 깨닫는 데는 반드시 좌선을 해야만 하 는 것도 아니다. 다니고 머무르고 앉고 눕고 말하고 침묵 하고 움직이고 고요한 일상의 모든 생활 속에서 언제 어 디에서든 불성을 깨달을 수가 있다. 일상 생활의 언제 어 디서든 자신의 불성을 깨닫기만 하면 그 순간 순식간에 깨달음의 경지, 즉 부처를 이루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불성을 파악하여 체험함으로써 갑자기 순식간에 깨달음을 이루는 돈오 선에서는 윤리적 덕목인 계율이나 선행(善行) 같은 것은 필요 없다. 돈오 선의 극치로 여겨 지는 임제(臨濟) 의현(義玄, ?~866)에 이르면 아무런 인 위적인 수행 없이 그저 배고프면 밥 먹고 목마르면 물 마 시고 졸리면 잠자는 것과 같은 자연스러운 인간의 모든 행위들이 그대로 이미 불성의 구현이라고 간주되기에 이 른다.
혜능 이후 갑자기 단박에 깨닫는 돈오 선의 수행 방법 은 조사 선(祖師禪)이라고 불리면서 동북 아시아 선불교 의 중심 전통이 되었다. 조사 선은 자신들 이외의 것을 여래 선(如來禪)이라고 하여 자신들과 구분하고자 한다. 조사 선에서 실천하는 깨달음을 위한 선 수행의 방법 또 한 여래 선의 그것과는 전혀 달라진다. 인도 불교식의 단 순한 좌선 대신에 옛 선사(禪師)들이 제시한 공안(公 案), 즉 화두(話頭)를 참구(參究)하는 간화 선(看話禪) 을 주된 수행 방법으로 삼게 되는 것이다. 공안은 조사 선이 인도로부터 전래된 경전보다도 조사들의 언행을 오 히려 더 중시함으로써 생겨난 것이다. 공안은 본래 관공 서의 공식 문서로서 관리들이 따라야 할 모든 행위의 준 거가 되는 것이다. 조사 선은 이것을 선 수행자들이 따라 야 할 준칙이라는 의미로 사용한 것이다. 공안은 조사들 의 깨달음과 관련된 짤막한 이야기들로서 선 수행을 인 도하고 가늠하는 일종의 준칙이 된다. 조사 선에 입각하 여 깨달음을 추구하는 수행자들은 공안을 깨달음을 위한 선 수행의 도구이자 준칙으로 삼게 된 것이다.
〔의 의〕 돈오 선에서 발전한 조사 선은 공안을 참구하 는 방법을 통해서 인간이 본래 지니고 있는 불성(佛性) 을 자각케 하려고 하는 수행 방법으로서, 명상에 의한 좌 선의 수행법을 경시함으로써 선 본래의 존재 방식으로부
터 벗어났다는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이후 조사 선은 돈 오 점수에 대한 다양한 해석에 따라 오가(五家) 또는 칠 종(七宗)의 여러 분파로 갈리면서 종파에 따라서 여러 가지 이론이 제기되었다.
문화사적인 면에서 본다면 돈오 점수의 논쟁은 인도 문화가 중국 문화와 만나 토착화되어 가는 과정을 극명 하게 보여 주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관념적이고 점수 적 성격의 인도 불교의 선은 중국으로 들어와 이식(移 植)되는 과정에서 현실주의적 · 자연주의적 · 실용주의적 인 중국 문화를 만나 조사 선으로 변모하게 된 것이다.
중국인들은 현실과는 거리가 먼 수억 겁 이후의 내생 (來生)을 논하지 않는다. 그들은 지금 당장 현실의 금생 (今生)을 논한다. 금생의 현실이 아니면 그것은 관념에 불과할 뿐이다. 중국인들은 인위적인 작위(作爲)가 가해 지지 않은 본래 생긴 그대로의 것을 좋아한다. 자연 그대 로〔卽〕의 것이 진리이다. 중국인에게서 자연을 떠난 진 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중국인들은 3천억 겁 이후에나 소용이 있을 여래 선을 거부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지금 즉시 여기서 소용이 있는 것이라야 한다. 중국인들은 실 제의 현실에서 소용이 없는 것은 절대로 추종하지 않는 다. 돈오적 성격의 조사 선은 바로 이런 중국인들의 심성 과 문화에 고스란히 부합한다. 그것은 조사 선이 인도 불 교의 선이 아니라 중국인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중국의 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돈오적 조사 선은 점수적 인도 선의 중국적 변용이다.
한국 선불교의 고유한 전통이 된 보조(普照) 지눌(知 訥, 1158~1210)은 중국인들과 달리 돈오와 점수 양쪽의 주장과 가치를 모두 인정하였다. 그는 돈오를 성취한 뒤 다시 점수를 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돈오로써 자신의 본 성이 곧 부처임을 깨닫고 난 뒤 점수로써 점차적으로 닦 아 나아가 결국 완전한 경지의 깨달음에 도달한다는 것 이다. 돈오를 하고 난 뒤에도 오랫동안 익혀 온 나쁜 습 관들은 하루아침에 없어지지 않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을 위한 이타행(利他行)을 계속해서 실천함으로써 이것들 을 극복해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 선 ; 불교)
※ 참고문헌  Heinrich Dumoulin, trans. by James W. Heisig · Paul Knitter, Zen Buddhism : A History, vol. 1, New York, 1988/ Hu Shih, Zen Buddhism in China : Its History and Method, Philosohy East and West, vol. 3, 1953/ Suzuki Daisetz, An Introduction to Zen Buddhism, New York, 1964/ -, Essays in Zen Buddhism, London, 1970/ 關口真大, 《禪宗思 想史》, 山喜房佛書林, 1964/ 鈴木大拙, 《禪の思想》, 鈴木大拙全集 13, 岩波書店, 1969/ 柳田聖山, 《初期の禪史》, 禪の語錄 2, 筑摩書房, 1971/ 中天孝, 《六祖檀經》, 禪の語錄 4, 筑摩書房, 1976/ 忽滑谷快天, 《禪學思想史》 上· 下, 名著刊行會, 1969/ 姜健基 · 金浩星 편, 《깨달 음, 돈오 점수인가 돈오 돈수인가》, 민족사 학술 총서 23, 민족사, 1992. 〔尹泳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