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의 경전을 모아서 엮은 책. 수운(水雲) 최제우(崔 濟愚, 1824~1863)가 1860년에 동학을 세운 뒤에 한문체 로 틈틈이 지은 것이다. 또한 그는 같은 시기에 우리 가 사체로 글을 많이 썼는데 이를 모아 엮은 책이 《용담유 사》(龍潭遺詞)이다. 《동경대전》의 가장 오래된 판본은 1883년에 간행된 것이다. 27×18cm 크기의 이 목판본 은 한지 28장(張)에 인쇄되어 있으나 수운 자신이 지은 본문은 18장밖에 안된다.
〔간행과 체제〕 《동경대전》이 처음 간행된 것은 1880 년이다. 1863년에 최제우는 자신의 뒤를 이을 해월(海 月) 최시형(崔時亨, 1827~1898)에게 자신이 지은 글들을 모아서 간행하게 하였다(《東經大全》 慶州版, 後記). 그러나 그것은 간행되지 못하였다. 그 해 12월에 체포된 최제우 는 이듬해에 극형을 받았다. 그 후 최시형을 비롯한 동학 신도들은 지하에 숨어서 활동하였는데,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신도가 크게 늘어났다. 이에 따라 강원도 인제 군 갑둔리(麟蹄郡 甲遁里)에서 《동경대전》을 간행하게 되었는데 이때 간행된 부수나 책의 체제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 뒤 1882년에 충청도 목천군 내리(木川郡 內里) 에서 두 번째로 1천여 부 정도 간행하였으나 이 판본도 알려져 있지 않다. 이듬해인 1883년에 경주에서 세 번 째로 간행한 《동경대전》은 그 부수는 알 수 없으나 판본 이 근래에 발견되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동경대전》의 체제는 1883년 경주판 이후의 것은 확
정되어 있지만 그 이전의 체제는 알 수 없다. 1863년에 경주에서 최제우와 그 신도들을 잡은 암행어사 정운구 (鄭雲龜)의 보고서에 "논학 1책" '(論學-冊)이라는 말이 나오고, 최제우를 신문한 경상 감사 서헌순(徐憲淳)의 보고서에 <포덕문>(布德文) · <수덕문>(修德文) 말이 보인다. "논학 1책"이 <논학문>(論學文)을 가리키 는 것이라고 본다면, <포덕문> · <논학문> · <수덕문> 등 뒷날의 《동경대전》을 이루는 주요 내용이 이 시기에 만 들어졌고, 그때 체제가 어느 정도 마련되었음을 알 수 있 다. 이 책의 목차는 포덕문 · 논학문 · 수덕문 · 불연기연 (不然其然) · 주문(呪文) ·입춘시(立春詩) · 강시 (降 詩) · 좌잠(座箴) · 화결시(和訣詩) · 탄도유심급(歎道儒 心急) · 결(訣) · 우음(偶吟) · 팔절(八節) · 제서(題書) · 영소(詠宵) · 필법(筆法) · 통문(通文)이다.
〔내 용〕 목차에 나타나는 글 가운데서 어느 정도 체계 적인 내용을 갖추고 있는 것은 <포덕문> · <논학문> · <수 덕문>이다. 이 가운데 가장 먼저 지어진 <포덕문>은 소박 한 내용으로 이른바 영부(靈符)가 주로 강조되었다. '영 부' 는 신비스러운 부적이라는 말로 하느님이 가르치는 대로 최제우가 백지에 그려낸 부적이다. 하느님이 이 부 적으로써 세상 사람을 질병으로부터 건져내라고 가르쳤 다는 것이다. 이 신비스러운 부적은 하느님에게 정성과 공경을 다하는 사람에게만 그 효력이 나타난다고 한다. 그런데, 하느님에게 정성을 다할 수 있는 신비스러운 글 귀가 바로 주문(呪文)이다. 하느님이 이 주문으로써 "사 람들을 가르쳐 나를 위하게 하면 너도 장생하여 덕(德) 을 천하에 펼 것이다" 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 <포덕문>에
는 '주문' 은 조금밖에 언급되어 있지 않고, '영부' 가 주 로 강조되어 있다. 그러나 하느님에 대한 '정성과 공경' 〔誠敬〕을 강조하여 주문이 중요하다는 것을 암시하고 동 학이 서학(西學, 天主敎)과 다르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이것은 초기의 민간 신앙(民間信仰) 요소가 반성 · 극복 되었음을 뜻한다. 따라서 이 <포덕문>은 최제우가 서학 을 한다는 소문이 나돌게 된 1861년 6월 이후에 지은 글이라 할 수 있다.
<논학문>은 <동경대전> 가운데서 가장 길고 체계적인 글이다. 그러므로 <동학론>(東學論)이라고 불리기도 하 는데, 최제우도 "무릇 천지의 무궁한 이치와 가르침의 무한한 원리가 모두 이 글에 실려 있다" 고 말하였다. 이 글에서는 '영부' 에 관한 언급은 나타나 있지 않고 "지극 히 하느님을 위하는 글" (至爲天主之字)인 '주문' 이 종교 적으로 풀이되어 있다. 따라서 오직 하나이신 하느님만 을 믿는 동학의 종교적인 성격이 잘 드러나 있다. 이것은 최제우가 서학으로 몰려 신변의 위험을 느끼게 되자 1861년 11월에 전라도 남원(南原)으로 피신하여 지은 글이다. 몸을 피해 숨어 있으면서 지금까지의 자신의 가 르침을 깊이 반성하고 새로 다듬어서 정성껏 쓴 글이 <논학문>이다. 따라서 이것은 1862년 초 늦어도 3월 이 전에 지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이 <논학문>에 나타난 '주문' 은 모두 21자로, 8자(至 氣今至 願爲大降)로 된 앞 구절과 13자(侍天主 造化定 永世 不忘 萬事知)로 된 뒷 구절로 되어 있다. 21자로 된 주문 전체를 "하느님의 놀라운 기운을 몸에 내리게 하는 글" (降靈之文)이라고 부른다. 이 주문을 정성껏 외우면 하 느님의 놀라운 기운이 몸에 내려 하느님과 한 몸이 되는 데, 이러한 경지에서 하느님의 조화(造化)를 부릴 수 있 다고 한다. 우리말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지극한 기운 (하느님의 기운)이 지금 이 몸에 크게 내리기를 바랍니다. 하느님을 모시면 그 조화를 부릴 수 있고 하느님을 길이 잊지 않으면 만사가 저절로 깨달아집니다."
최제우는 이러한 자신의 종교를 동학이라고 불렀다. 이것은 서학과 다르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서이다. <논학 문>에서는 최제우가 동학을 내세우게 된 동기를 대체로 다음과 같이 들고 있다. 첫째는 온 세상이 그 동안 어수 선하여 사람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불안에 잠겨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서양 사람들이 공격하는 무기 앞에 맞 설 사람이 없으므로 이 무력 앞에 중국이 망한다면 우리 나라도 같은 운명에 빠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는 서양 무력 뒤에 서양 종교(天主敎)가 있는데 이것에 대항 하기 위해서이다.
<수덕문>에서는 동학이 지난날의 유교(儒敎)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밝히려 하였다. "이제야 비로소 옛 선비들이 천명(天命)에 잘 따르고 있었음을 알게 되고, 후대 학자들이 이것을 까맣게 잊고 있음을 슬퍼하게 되 었다." 유교를 받드는 옛 선비들은 천명에 잘 따랐는데, 최제우의 가르침이 바로 하느님의 뜻에 따르라는 것이 니, 깨닫고 보면 동학의 가르침과 공자의 가르침은 같은 이치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다 같이 하느님을 공경
하고 하느님의 뜻에 잘 따르라고 가르친다는 것이다. 그 러나 꼭 같다고는 할 수 없다. 최제우가 "내가 받은 가르 침에 대해 그 특성을 말한다면 공자의 가르침과 대체로 같으나 조금은 다르다" (大同而小異也)라고 하였기 때문 이다.
<수덕문>은 1862년 6월에 지었다(《崔先生文集道源記書) 辛酉 六月條). 이 무렵 동학을 믿는 사람이 많아지자 동학 은 더욱더 세상에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그 당시의 지배적인 가르침인 유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게 되었다. 최제우는 동학을 유교와 대체로 같다는 쪽으로 풀이하였다. 사실 최제우는 세상의 지목을 걱정하였다. 최제우가 "가까이에서 정다운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나 세상의 지목을 받을 염려가 없지 않다" 라고 한 데서 이 를 알 수 있다. <수덕문>에서 최제우는 믿음의 목표를 '수심 · 정기' (修心正氣)라고 하였다. "인의예지(仁義禮 智)는 옛 성인이 가르친 것이고 수심 · 정기는 내가 새로 마련한 것이다." 요컨대, 유교에서 최고의 덕목(德目)인 인의예지에 맞먹는 것이 동학에서는 수심 · 정기라는 것 이다. 수심은 '마음을 닦는 것' 이고 정기는 '기운을 바로 잡는 것' 이다. 인의예지는 모두 마음을 닦는 것에 속하 는데, 동학에서는 기운을 바로잡는 것이 하나 더 포함되 어 있다. 동학에서 '마음을 닦는 것' 은 하느님의 마음과 서로 통하는 종교적인 경지이고, '기운을 바로잡는 것' 은 하느님의 기운과 하나가 되는 종교적인 경지인 것이 다. 이와 같은 사실로 미루어 볼 때, 동학과 공자의 가르 침은 '대체로 같으나 조금은 다르다' 고 말하기 어렵다.
〔의 의〕 <포덕문> · <논학문> · <수덕문>에서 동학의 종 교적인 특성을 대체로 알 수 있다. <동경대전》에 있는 그 밖의 다른 글들도 동학을 이해하는 데 다소 도움을 준다. 따라서 《동경대전》은 그 이름이 나타내듯이 그야말로 '동학의 경전' 으로서 존중되어 왔다. 또한 우리말 가사 체로 되어 있는 《용담유사》에 비하여 내용이 빈약하지만 동학의 특성이 잘 간추려져 있고 짜임새가 있다는 점에 서 그 나름의 매력을 갖추고 있다. 동학은 우리 겨레의 전통적인 종교 의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가사체로써만 그 미묘한 내용을 제대로 나타낼 수 있다. 특히 지난날 우리 나라에서는 유교적인 한자 표현을 사 용해 왔기 때문에 <동경대전》에만 따르면 동학을 유교적 으로 풀이하기 십상이다. 따라서 《동경대전》은 어디까지 나 《용담유사》를 바탕으로 해석해야 한다. (→ 동학 ; 서 학)
※ 참고문헌 《東經大全》/ 《용담유사》/ 《崔先生文集道源記書》, 동 학 사상 자료집 1, 亞細亞文化社, 1979, pp. 159~293. 〔崔東熙〕
《동경대전》
東經大全
글자 크기
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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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대전》 초간본의 <포덕문> 부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