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교구 소속 본당. 부산시 동래구 수안동 465-1 소 재. 1951년 9월 부산진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모 성심. 관할 구역은 부산시 수안동, 복산동, 낙민동(한양아파트 제외), 명륜1 · 2동, 칠산동, 거제1동 · 연산동 · 부곡동 · 온천동 일부 지역이다. 〔교 세〕 1976 년 2,177명, 1983년 4,953명, 1988년 4,414명, 1993 년 5,524명. 〔역대 신부〕 초대 김충무(金忠務) 글레멘스 (1951. 9~1957. 7) 2대 이태준(李泰俊) 야고보(1957. 7~ 1961.5), 3대 김준필(金俊弼) 아우구스티노(1961. 5~1969. 3), 4대 정환국(鄭桓國) 알로이시오(1969. 3~11), 5대 유 창호(劉昌鎬) 토마(1969. 11~1971. 10), 6대 김준필(1971. 10~1972. 11), 7대 김태호(金兌浩) 알로이시오(1972. 11~ 1976. 11), 8대 이돈우(李敦雨) 레오(1976. 11~1978. 6), 9 대 최영관(崔永寬) 마카리오(1978.6~7), 10대 정재석(鄭 在石) 요셉(1978. 7~1979. 2) 11대 허성(許城) 야고보 (1979. 2~1983. 7) 12대 황태웅(黃太雄) 요셉(1983. 7~ 1984. 1), 13대 신윤우(申允雨) 갈리스도(1984. 1~1985.8 14대 이옥군(李玉君) 타대오(1985. 8~1990.2 15대 한영 일(韓永日) 니콜라오(1990. 2~현재) .
〔전 사〕 동래 지방은 1866년 병인박해 직전까지만 해 도 경상남도 지역의 천주교 중심지로 다블뤼(A. Daveluy, 安敦伊) 부주교, 최양업 신부, 리델(F.C. Ridel, 李福明) 신부 등이 모두 이곳을 중심으로 경남 동북부 지역에 전 교를 해왔다. 그러나 병인박해 때 이정식(李廷植, 요한) 회장 등 7명이 수영 장대에서 순교한 뒤로는 신자들이 이 지방에서 자취를 감추어 1890년경 초대 경남 교회 주임 죠조(Jozeau, 趙得夏) 신부가 영도에 부임했을 때와
그 후의 신부들이 전교 활동을 펴는 동안에도 이 동래 지 역에는 공소조차 설립되지 못하였다.
〔공소 시대〕 병인박해 이후 신앙의 불모지가 되었던 동래 지역에 다시 복음이 전파된 것은 1916년 5월경 최 막달레나가 이곳으로 이주하면서부터였다. 기름 장사를 하였던 최 할머니의 열심한 노력으로 50여 명이 입교하 였고, 이들이 정 베네딕도 회장을 중심으로 1925년 부 산진 본당 관할 동래 공소를 발족시켰다. 여러 차례 공소 를 이전하였으나 신자수는 계속 증가하였다. 드디어 1951년 9월 황해도 사창(社倉) 본당 주임으로 재직하다 월남, 부산진 본당에 피난와 있던 김충무 신부가 초대 주 임으로 부임하면서 본당으로 승격 분리되었다.
〔설립과 변모〕 동래 본당은 특히 6 · 25 동란으로 인 한 피난민 유입에 따라 신자수가 급증하자 성당 건축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미군 군종 신부의 건축 자재 원조와 이주황 소령의 중장비 지원, 그리고 김충무 신부의 사목 적 배려 등으로 복천동의 공소 자리(현 복천동 151번지 천 주교 아파트)에 건평 70평의 목조 성당을 건립하고 1954 년 10월 24일 축성하였다. 목조 성당 완공 후에도 교세 확장과 향후 발전을 예상, 1965년 1월 수안동 464번지 에 420평의 성당 부지를 매입, 그 해 7월 20일 신축 성 당 기공식을 거행하였다. 교구 지원과 본당 신자들의 노 력의 결과로 1966년 11월 5일 380평 규모의 성당, 사 무실, 수녀원 등을 갖춘 건물을 완공하고 복천동 옛 성당 에서 이곳으로 이전하였다. 1977년 8월 28일에는 인근 부지 56평에 사제관, 수녀원, 교리실 등을 갖춘 110평 규모의 3층 건물을 완공하였다.
본당 사목 활동으로는 여러 평신도 사도직 단체 중 특 히 레지오 마리애의 발전이 두드러져 1982년 1월 본당
단독의 꾸리아를 창단하였고, 9월에는 이를 2개의 꾸리 아로 분리하였으며, 1993년 1월에는 2개의 꾸리아가 동 시에 증설되어 1995년 현재 1개 꼬미시움과 4개의 꾸리 아로 성장하게 되었다. 한편 1980년 1월에는 천주교와 프로테스탄트의 교회 일치를 염원하며 장로교 수안 교회 에서 기도회를 개최하였고, 이듬해 9월에는 본당 설정 30주년을 맞아 《동래 선교 30년》을 발간하였다. 특히 피 정, 강의 등을 통한 신자들의 신앙 증진에 주력하고 있는 데 1980년부터 매년 2~3회 단체별 피정을 실시하고 있 으며, 1980년 6월 신앙 쇄신 대강연회, 1984년 사순절 특강, 1985년 11월 본당 전례 회원의 왜관 베네딕도 수 도원 파견 교육을 실시하였다.
1990년부터는 모든 신자를 대상으로 매년 1회의 성지 순례와 2회의 피정을 실시하고 있으며, 신자 및 지역 주 민들의 건강과 친교 및 선교를 위해 매년 의학 강좌를 개 최하는 한편, 봄 · 가을로 헌혈 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한 마음 한 몸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특히 1993년 9월에 는 본당 선교 분과위원회 주관으로 '가서 복음을 전합시 다' 라는 주제 아래 선교 세미나를 개최하여 본당 선교 둔화 요인을 분석하고 이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 본당 신 자들에게 선교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켜 선교 활동에 적 극적으로 참여케 하는 시발점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나 아가 본당 선교 사목의 활성화를 위한 방향과 지침을 제 시하는 데 기여하였다.
동래 본당에서 분리된 본당으로는 1957년 온천 본당 과 양정 본당, 1968년 양산 본당, 1972년 반송 본당, 1977년 반여 본당, 1985년 안락 본당, 1981년 공소로 설립되었다가 1988년 승격 분리된 장산 본당 등이 있 다. 특히 안락 본당에 1억 3천여 만 원을 비롯하여 장산 본당 · 부곡 본당 등 인근 본당의 성당 건립 기금을 조성, 전달하기도 하여 나눔의 실천에도 앞장서고 있다. (→ 부산교구 ; 김충무)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천주교 부산교구 동래 교회, 《동래 선교 30년》, 1981/ 부산교구사 편찬위원회 · 한국교회사연구소, 《부 산교구 30년사》, 1990. [편찬실]
동래 본당
東萊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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