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대교구 소속 본당. 경북 칠곡군 동명면 금암동 171 소재. 칠곡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 야고보. 관할 구역은 칠곡군 금암1~4동, 가천1 · 2 동, 송산1~3동, 봉암동, 구덕동, 학명동이고, 관할 공소 는 남원 · 금화 공소. 〔교 세〕1979년 272명, 1982년 327명, 1985년 394명, 1988년 472명, 1992년 483 명, 1994년 609명. 〔역대 신부〕 초대 정성우(鄭聖羽) 바오로(1979. 12~1980. 5), 2대 정춘석(鄭春錫) 아우구스 티노(1980. 5~1982. 1), 3대 허용(許龍) 요셉(1982. 1~1984. 7), 4대 조정헌(曺正憲) 파트리치오(1984. 7~1988. 6), 임 시 장효원(張曉元) 요셉(1988. 6~1989. 6), 5대 강찬형(姜 贊亨) 파스칼(1989. 6~1993. 10), 6대 윤광제(尹光濟) 다 윗(1993. 10~현재).
〔설립과 발전〕 19세기 초 상주와 점촌 등지의 신자들 이 박해를 피해 한티(현 칠곡군 동명면 득명동)로 이주하면 서 교우촌이 형성되었다. 한티를 중심으로 학명동, 상하 동(동명면 송산3동), 흑가리골(가산면 다부동과 금화동 부근) 등에도 교우촌이 형성되었는데 병인박해(1866~1873)로 인해 한티를 위시한 교우촌들은 거의 괴멸되었다. 그 뒤 1893년 대구(현 계산동) 본당 소속으로 발족한 남원 공소 가 1949년 날뫼(현 비산동) 본당 관할로 이관되었고, 이
무렵 삼산 공소도 개설되었으나 6 25 한국 전쟁으로 인해 1954년 폐쇄되고 말았다. 뒤이어 박옥(학명) 공소 가 생겼으나 이 또한 1959년에 폐쇄되었다. 하지만 같 은 해 현 본당 소재지의 부지를 매입하여 1960년에 동 명 공소로 발족할 수 있었다. 또한 이해에 가산면 내에 다부동 공소와 금화동 공소가 각각 생겼는데 모체가 된 것은 동명 공소였다. 1970년 왜관 감목 대리구의 보조 금으로 공소 건물을 신축하였으며, 그 해 11월 은퇴한 이기수(李基守, 야고보) 신부가 이곳에 거주하면서 성사 를 집행하였다. 1976년 5월에는 자치 공소로 인정받았 지만 다시 칠곡 관할이 되자 이에 자극을 받은 공소 회장 김업(베드로)을 비롯한 신자들이 1978년 3월 유치원을 개원하고, 전주에 있는 성체 수녀회에 분원 설립을 요청 하였다. 신자 배가 운동 등으로 같은 해 7월 준본당으로 발돋움하였으며, 1979년 12월 마침내 본당으로 승격하 면서 발전의 기틀을 다져가기 시작하였다.
한편 1984년에 4대 주임으로 부임한 조정헌 신부는 이미 담당하고 있던 부랑인 임시 수용 보호 시설인 희망 원과 함께 본당 사목을 겸임해야 했으므로 여러 가지 애 로 사항이 많았다. 이에 서정길 대주교의 도움으로 같은 해 살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에서 2명이 정식으로 파견되 어 현재까지 전교를 담당하고 있다.
1984년 이기수 몬시놀이 기증한 1천만 원으로 대지 일부를 마련한 동명 본당은, 김영민(金榮敏, 베드로)이 성전 신축 기금으로 희사한 2억 7천만 원으로 1987년 7 월 기공식을 갖고 이듬해 5월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대 지 1,908평, 연건평 329평에 지하 1층 지상 2층 건물로 성당 · 사제관 · 수녀원 · 회합실 · 지하 강당 등이 마련된 이날 봉헌식에는 성전 신축을 위해 견인차 역할을 한 이 기수 몬시놀의 축하식도 함께 마련되었다. 이에 앞서 1983년 6월에는 이기수 몬시놀의 사저(동명면 기성동 소 재)를 증여받아 한티 순례자의 집을 개원하기도 하였다.
동명 본당은 대구 시내에서 좀 떨어진 변두리에 위치 하고 있는 곳으로 초창기에는 농촌 본당들과 마찬가지로 농번기가 되면 신자가 급격히 줄어들어 주일 헌금과 교 무금만으로는 본당 운영이 어려워 교구의 보조를 받아야 만 하였다. 그러나 역대 주임 신부들의 다양한 사목과 선 교 활동으로 꾸준한 발전을 이루어 나가고 있다. 초대 주 임 정성우 신부는 기존의 성모회를 토대로 하면서 갈란 투스 청년회를 조직하여 사도직 활동을 활성화하였고 성 모당 신축 등 환경 정비에 노력하였으며, 2대 주임 정춘 석 신부는 청장년 단체를 조직하여 청소년들의 전교에 힘써 10~30대의 신자가 전 신자의 40%를 차지하는 성 과를 거두었다. 이를 바탕으로 3대 주임 허용 신부는 레 지오 마리애를 중심으로 본당 단체들을 재편성하고 꾸르 실료 교육 · 성령 기도회 · 성지 순례 · 피정 등으로 신자 재교육과 신심 증진에 힘쓰는 한편, 1983년 2월에는 교 리 교사회를 발족하여 교구에서 실시하는 교리 교사 학 교를 수료한 교리 교사로 주일학교를 개교하였다. 이어 4대 주임 조정헌 신부는 각종 교육과 연수회, 성지 순례 를 비롯한 신심 행위 등으로 신앙의 내실을 다지는 동시
에 양적인 교세 확장과 자립 기반 조성에 주력하였다. 또 한 1993년 구안 국도 1~2차 확장 공사로 금화 공소가 완전히 철거되면서 그 보상금으로 가산면에 부지를 매입 하고 총 27평의 가산 공소를 신축하여, 1995년 4월 23 일 서정덕(徐貞德, 알렉산델) 주교의 집전으로 축복식을 거행하였다.
본당 운영은 사목 협의회와 평신도 단체들로 운영되고 있는데 평신도 단체로는 주일학교, 청년 단체(대건회), 부녀 단체(성모회, 데레사회, 연령회), 장년 단체(성심회, 야 고보회), 신심 단체(레지오 마리애의 쁘레시디움 7개, 꾸르실 리스타회), 후원회(제대회, 사제 양성 후원회, 미바회) 등이 있다. 현재 동명 본당은 신속한 교세 확장 등 외형적인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지만 전 신자들이 한마음이 되어 신앙으로 다져진 본당 공동체 형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 다. → 대구대교구) 〔白仁實〕
동명 본당
東明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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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