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 본당

東門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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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대전교구 소속 본당. 충남 서산시 동문동 31통 665-3 소재. 1917년 10월 구합덕 본당에서 분리 · 설립 되었으며 주보는 수호 천사. 관할 구역은 동문동 · 읍내 동 · 온석동 · 성연면 전역과 잠홍동 · 음암면 일부 지역 이고, 관할 공소는 상홍리, 명천, 성연 등 3개소. 〔교 세〕 1917년 1,726명, 1924년 1,843명, 1949년 2,372명, 1955년 2,674명, 1960년 3,316명, 1970년 3,327명, 1980년 2,819명, 1989년 2,013명, 1994년 2,752명. [역대 신부] 초대 안학만(安學滿) 루가(1917. 10~1919. 10), 2대 폴리(D. Polly, 沈應榮) 데시데리오(1919. 10~ 1921. 3대 멜리장(P. Mélizan, 梅履霜) 베드로(1921. 7~
1932. 7), 4대 바로(P. Barraux, 范) 베드로(1932. 7~1946) 5대 한공렬(韓珙烈) 베드로(1946~1947), 6대 이삼복(李 三馥) 요한(1947~1948), 7대 콜랭(J. Colin, 高一郎) 요한 (1948~1950. 9), 8대 유봉운(俞鳳雲) 야고보(1950. 11~ 1951. 11), 9대 한도준(韓道俊) 마태오(1951. 11~1952. 9), 10대 신균식(申均植) 도미니코(1952. 9~1958. 5), 11대 올리비에(J. Olivier, 吳一馥 요한(1958. 6~1966. 3), 12대 유성숙(偸性淑) 루도비코(1966. 3~1972. 12), 13대 이규남 (李圭男) 요셉(1972. 12~1975. 8), 14대 블랑(J. Blanc, 白) 요한(1975. 9~1980. 8), 15대 구자오(具滋五) 베네딕도 (1980. 8~1984. 9), 16대 박상옥(朴商玉) 토마스(1984. 9~ 1985. 3), 17대 이인하(李寅夏) 베네딕도(1985. 3~1990. 8), 18대 이계창(李啓場) 아우구스티노(1990. 8~1994. 8) 19대 김종국(金鍾國) 바르나바(1994. 8~현재).
〔설립과 변모〕 서산 지역의 신앙 공동체는 충청도 지 역 최초의 본당인 구합덕 본당 산하 공소로 출발하였다. 1908년 이 지역을 이관받은 폴리 신부가 서산 지구 본 당을 홍성군 구항면 공리에 설립하여 운영하다가 1914 년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본국 프랑스로 돌아가게 되 자, 다시 구합덕 본당으로 합병되었다. 1917년 서산 본 당 설립과 함께 안학만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여 본당을 팔봉면 금학리로 옮겼다가 제1차 세계대전 종전 으로 본당에 복귀한 폴리 신부가 2대 주임으로 부임하였 다. 그 후 그는 1919년 10월경 현재의 상홍리 공소 자 리에 강당 및 사제관을 신축하였으나 얼마 후 서산 군 소 재지에 가까운 음암면으로 옮겼다.
금학리, 상홍리 등 두 차례에 걸친 본당 이전 후 1932 년 6월 13일 현 성당 부지를 매입하여 1937년 10월 5
일 성당을 신축 · 완공하였다. 1943년 일제(日帝)의 도 시 인구 소개(疏開) 방침의 일환으로 살트르 성 바오로 회 수녀원에서 경영하던 인천 보육원 아동 중 24명이 서 산 본당에 수용되자 이들을 돌보기 위해 수녀원 분원이 설치되었다. 1946년 시약소 개설과 1947년 4월 10일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순교 100주년 기념 사업의 일환 인 천사 유치원의 개원은 전교에 큰 기여를 하였다. 그러 나 6 · 25 동란이 발발하여 제7대 본당 주임인 콜랭 신 부가 성당을 지키다 공산군에게 체포되어, 9월 21일 대 전으로 압송 도중 폭격을 당해 행방 불명되는 비운을 겪 어야 했다. 전쟁과 9 · 28 서울 수복, 1 · 4 후퇴 등 혼란 기를 거친 서산 본당은 1950년대 들어 미군의 구호 물 자 등을 균등 분배하며 전교에 힘쓰기 시작하였고, 성 당 · 사제관 · 유치원 등을 증축하였으며, 1961년에는 수 녀원을 개축하는 등 본당 부대 시설 및 주위 환경을 정비 하였다.
〔성장과 변모〕 기존의 공소 외에 많은 공소를 개설한 서산 본당은 1964년과 1965년에 30평 규모의 금학리 공소와 명천리 공소 강당을 각각 신축하였고, 1966년에 는 60평 규모의 운산 공소 강당을 신축하였으며, 1967 년에는 대산 공소를 설립하였다. 이외에도 해미 공소 강 당을 개축하고, 양대리 공소 강당을 신축하기도 하였다. 공소의 물질적인 여건 마련 외에 공소 사목의 활성화를 위해 각 공소에 본당 사목 위원을 파견하여 공소 예절에 참여시키고, 강론 자료를 배부하는 한편, 교리도 담당하 게 하는 등 전교 활동에 역점을 두었다. 이에 힘입어 1964년 태안 본당을 시작으로 1973년 운산 본당, 1984 년 해미 본당, 1987년 서산 석림 본당을 분리시켰으며 1989년 8월에는 1967년부터 전교 수녀가 파견되어 있 던 대산 공소를 대산 본당으로 각각 분리시켰다.
1970년 7월 서산 신용 협동 조합을 창설하기도 했던 서산 본당은 1982년 9월 9일 사제관(50평)과 교육 회관 (65평)을 완공 축성하였으며, 이듬해 5월에는 수녀원 개 축 및 유치원 증축 공사를 기공, 그 해 7월 완공하였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성령 세미나, 사순절 특강 등 신자 재교육 등을 실시하여 본당 내실화를 꾀하였으며, 신자 배가 운동을 지속적으로 실시하기도 하였다. 1987 년 11월에는 본당 설립 70주년을 맞아 각종 기념 행사 를 개최하였는데, 지역 사회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짐 하는 한편, 대전교구 최초로 《서산 동문 본당 70년사》라 는 본당사를 발간, 70년 역사와 전통을 지닌 본당의 역 량을 과시하였다. 이에 앞서 1987년 8월에는 석림동 본 당의 설정으로 본당명을 서산 본당에서 동문 본당으로 개명하고, 10월 28일에는 본당 설립 70주년 기념 사업 의 일환으로 49평의 조립식 교육 회관을 증축하였다.
박해를 무릅쓰고 신앙을 증거한 순교자들의 후손이란 자부심을 갖고 있는 동문 본당은 일찍부터 순교 성지 성 역화에도 관심을 쏟아 왔다. 1935년 4월 해미면 조산리 해미 하천변(현 순교탑 터)에 생매장되어 있던 병인박해 순교자들의 유해를 증인들의 고증에 따라 발굴하고, 유 해 및 묵주 등을 다수 발견 수습하여 상홍리에 있는 순교
자 묘지에 안장하였으며, 1955년 4월에는 천묘(遷墓) 20주년을 기념하여 순교탑을 건립하였다. 1956년에는 병인박해 때 형구로 사용된 해미 자리개 돌을 해미 서문 밖에서 본당으로 옮겨 세웠고(1986년 9월 11일 원위치로 귀환), 1975년에는 해미 순교탑 건립 공사를 시작하여 그 해 10월 24일 완공하기도 하였다. 해미 본당 창설 이 후 발족된 해미 순교 선열 현양회 등의 노력으로 1935 년 상홍리에 임시 안장된 해미 순교자 유해는 1995년 9 월 20일 해미 성지로 귀환되었다. (⇦ 서산 본당 ; → 대 전교구 ; 구합덕 본당 ; 해미 본당 )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천주교 대전교구 서산 동문 교회, 《서산 동문 본당 70년사》, 1987/ 천주교 대전교구 홍보국, 《대전교구 30년》, 1988/ 천주교 대전교구 홍보국, 《천주교 대전교구 통계 자료 집》, 1990/ 천주교 구합덕 교회, 《구합덕 본당 100년사 자료집》, 1990/ 살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한국 살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100년사》, 1991. [편찬실]
② 제주교구 소속 본당. 제주시 일도2동 1029-25 소 재. 1968년 4월 21일 제주 중앙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 었으며, 주보는 성 안셀모. 관할 구역은 일도2동 · 건입 동 일부, 화북동, 삼양동, 봉개동, 도련, 회천동, 조천읍. 관할 공소는 조천 1개소. 〔교 세〕 1968년 996명, 1970 년 1,484명, 1973년 1,466명, 1976년 1,687명, 1983 년 2,340명, 1988년 3,221명, 1995년 3,236명. 〔역대 신부〕 초대 컨(E. Quinn, 변) 에드워드(1968. 4~11), 2대 오고르맨(D.O'Gorman, 은) 다니엘(1968. 11~1969.5), 3대 고승욱(高昇郁) 아우구스티노(1969. 5~1970. 9), 4대 이천 수(李淺水) 라자로(1970. 9~1971. 8), 5대 김창훈(金昌勳) 다니엘(1971. 8~1973. 8), 6대 이태수(李泰壽) 미카엘 (1973. 8~1976. 4), 7대 허승조(許勝照) 바오로(1976. 4~ 1977. 7), 8대 고승헌(高昇憲) 마르코(1977. 7~1983. 2), 9 대 세비즈(J. Savage, 원) 요한(1983. 2~1987.6), 10대 양영 수(梁榮秀) 베드로(1987. 7~1991. 2) 11대 김병준(金丙 準) 요한(1991. 2~1995. 8), 12대 양명현(梁明絃) 토마 (1995. 8~현재)
〔설립과 발전〕 동문 본당 설정은 교구의 사목 계획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1966년 광주대교구장 헨리(Harold
Henry, 현 하롤드) 대주교는 제주(현 제주 중앙) 본당의 자 (子) 본당으로 동문 본당을 설정하기로 계획하였다. 이 에 제주 본당 주임 세비즈(S. Savage, 원) 신부는 교구 보 조금과 헨리 대주교의 친구인 미국인 크리스머 부처(夫 妻)의 헌금 등으로 현 소재지의 대지 1,045평을 매입하 였다. 이 대지는 도시 계획 사업으로 인하여 946평으로 축소되고 말았다. 이곳에 1967년 9월 성당과 사제관 건 축을 시작하여 이듬해 4월에 축성함으로써 본당의 설정 을 보게 되었고, 그 해 11월에는 수녀원 건물(20평)을 신 축하였다. 1995년 4월 30일 동광 본당을 분리 · 신설하 였는데, 이로 인해 약해진 교세를 확장하려고 선교 활동 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또 1995년 5월에는 공소 확장 을 위하여 교구 보조와 본당 및 공소가 합심하여 공소 부 지 1천여 평을 구입하여 강당 신축을 계획 중이다.
〔활 동〕 동문 본당은 역대 주임 신부의 지도로 신심 단 체를 조직하는 등 사목 · 선교 활동을 수행하여 왔다. 1968년 11월에 까리따스 수녀회 분원이 설치되었다가, 1981년 2월부터 인보 성체 수녀회로 교체되었다. 1972 년 사목 협의회와 평신도 단체들을 조직하였는데 평신 도 단체로는 초창기에 레지오 마리애 8개 쁘레시디움, 아가페, 빈천시오회, 학생회 등이 있었으나, 교세 확장에 따라 신심 단체를 재편 또는 확장하여 현재 레지오 마리 애 31개 팀을 비롯 대건회, 반석회, 안셀모회, 요셉회, 글라라회, 젬마회, 모니카회, 마리아회, 안나회 등이 있 다.
동문 본당은 예수 성심에 대한 신심 행위로 매월 첫 목 요일 저녁때 성시간을 갖는 등 신자들의 신심 생활을 증 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선교 활동에도 적극적이 어서 빈천시오회, 성모 기사회, 연도회, 자모회, 울뜨레 아가 활발한 활동을 펴고 있다. 특히 빈천시오회는 가출 청소년 지도, 장애자 · 정신 질환자 · 도시 빈민가 방문 등을 연중 활동 사항으로 삼고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본당간의 나눔을 실천하기 위해 1980년 6월 서귀 포 복자 성당 건립 기금을 보냈으며, 북제주군 한경면의 신창 본당 보조비로 매년 150만 원씩을 지출하여 왔다. 1993년 여름부터는 유명 피서지인 함덕 해수욕장에 '천 주교 여름 교회' 를 개설하여 환경 보호 운동과 겸하여 선교 활동을 겸하여 실시하고 있다. (→ 제주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천주교 제주교구 평신도 사도직 협 의회, 《제주교구 100년사 출간을 위 한 자료집》 1, 1991.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