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중고등학교

東星中高等學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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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중고등학교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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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중고등학교 전경.

1907년 9월에 설립된 소의학교(昭義學校)에 기원을 두고 있는, 재단 법인 가톨릭 학원 소속의 사립 중등 교 육 기관. 서울시 종로구 혜화동 90-7번지 소재. 1922년 4월 남대문상업학교(南大門商業學校)로 개편되었고, 1946년에 동성중학교로, 1950년에 동성중고등학교로 발전하였다. 초기의 교명인 '소의' 는 시대를 앞서가는 밝음과 의로움을 상징하며, '동성' 은 동녘의 샛별로서 세상을 일깨우고 광명으로 인도함을 뜻한다. '참되자, 부지런하자, 책임을 다하자' 는 교훈 아래 가톨릭의 가르 침에 따라 진리와 사랑을 교육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역대 교장〕 초대 방규환(方奎煥, 1918. 3~1924. 5) 2대
박준호(朴準鎬, 1924. 5~1936. 10), 3대 장면(張勉, 1936. 11~1947. 11), 4대 전창기(全昌基, 1947. 12~1960. 11), 5대 황인영(黃仁永, 1960. 12~1968. 7), 6대 이문원(李文垣, 1968. 7~1969. 2). 이후 중 · 고등학교 분리. 중학교 : 교장 서리 함완식(咸完植, 1969. 2~9), 7대 이용흡(李容翕, 1969. 9~1981. 2), 8대 박순재(朴順宰, 라파엘) 신부(1981. 3~1985. 7), 9대 최승룡(崔承龍, 테오필로) 신부(1985. 8~ 현재). 고등학교 : 6대 이문원(1968. 7~1977. 1), 7대 박순 재(라파엘) 신부(1977. 2~1985. 7), 8대 최승룡(테오필로) 신부(1985. 8~1988. 7) 신부, 9대 곽성민(郭星敏, 베네딕 도) 신부(1988. 8~1995.8), 10대 김운회(金雲會, 루가) 신 부(1995. 8~현재) .
〔설립과 발전] 근대식 초등 교육 기관인 소의학교는 박태윤(朴台胤), 장경관(張敬寬), 손상태(孫相泰), 지송 욱(池松旭), 나지학(羅知學) 등이 뜻을 모아 1907년 9 월, 서울 서소문 밖 조개골〔蛤洞〕에 있던 전 외부 대신 이하영(李夏榮)의 별장에서 설립하였다. 그 설립 목적은 인재 양성을 통한 국권 회복에 있었으며, 초대 교장은 이 하영이 맡았다. 당시의 수업 연한은 4년이었는데, 7~ 20세 전후의 학생 90여 명이 재학하면서 국어 · 한문 · 일어 · 산술 · 지리 · 역사 · 수신 · 이과 · 체육 · 창가 등 의 교과 과정을 이수하였다. 그 후 이 학교는 13년 동안 10회의 졸업생을 배출하게 되었다.
1920년 소의학교는 봉래동(蓬萊洞, 지금의 만리동)으 로 신축 이전하면서 3년제 을종 상업 학교로 승격됨과 동시에 교명도 소의상업학교(昭義商業學校)로 개칭하였 다. 또 1922년 4월에는 새 학교령에 따라 수업 연한 5 년의 갑종 상업 학교로 개편되고, 천주교회에서 실질적 인 운영을 맡게 되었다. 아울러 교명도 남대문상업학교 (南大門商業學校)로 다시 개칭되었는데, 처음에는 파리 외방전교회의 크렘프(Kremff, 慶) 신부가 학교 운영을 맡 았다. 이 학교가 천주교의 신학생 교육과 관련을 맺게 된 것은 1928년이었다. 그때까지 소신학교와 대신학교의 교육은 모두 용산의 예수성심신학교에서 맡고 있었다. 그러다가 남대문상업학교에서 예수성심신학교의 중등과 를 흡수하여 1928년 4월부터 신학교를 병설하게 됨에 따라 기존의 학제가 변경되면서 용산 신학교에서 온 신 학과 학생들만으로 을조(乙組)가 편성되었다. 이때부터 남대문상업학교의 을조는 소신학교가 되었으며, 용산 신
학교는 대신학교가 되었다. 소신학교(을조) 학생들은 일 반 학생들과 동일한 교과 과정을 적용받는 외에 수업 후 신학교 교육에 필요한 라틴어 교리 및 지도 신부의 영성 지도를 받았다. 학제 개편과 동시에 봉래동에 있던 상업 학교는 백동(柏洞, 지금의 惠化洞)의 새 교사로 이전되었 다. 그곳에 있던 오틸리엔 성 베네딕도회의 서울 수도원 이 1927년 말에 함경남도 덕원(德源)으로 이전되면서 그 부지와 건물들을 서울교구에 인수하였기 때문이다.
남대문상업학교는 2년 뒤인 1931년에 동성상업학교 (東星商業學校로 개칭함과 동시에 5학급을 편성하였으 며, 이어 1936년 11월에 장면 박사가 교장으로 취임하 였다. 1938년 11월에는 재단 법인 경성교구 천주교회 유지 재단에서 학교의 운영을 맡게 되었다. 그러다가 1941년 태평양전쟁이 발발하면서 1942년부터 수업 연 한이 4년으로 일시 변경되었다. 이때 용산의 대신학교가 총독부의 강요로 폐쇄됨에 따라 학생들은 모두 덕원 신 학교로 편입되어 학업을 계속해야만 했다. 반면에 소신 학교인 을조는 1944년까지 계속되다가 일제의 탄압으로 모두 96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뒤 폐지되었고, 해방 후 기존의 대신학교가 경성천주공교신학교(京城天主公教神 學校)로 개칭 인가되면서 그 '예과' (豫科)로 부활되었으 며, 1951년 다시 성신고등학교(聖信高等學校)로 분리 설립되었다가 1983년에 폐교되었다.
〔동성중학교〕 해방과 함께 동성상업학교는 인문계 학 교로 개편되었고, 1946년 6년제 동성중학교로 개칭되었 다. 이듬해 12월 제4대 교장으로 취임한 전창기 교장은 의욕적으로 학교를 운영하면서 면학에 정진하는 교풍을 수립하려고 노력하였으며, 정예 교육을 실시하는 등 양 보다 질을 중시하였다. 그러던 중 1950년 5월, 새 교육 법에 따라 3년제 동성고등학교와 동성중학교가 분리되 었다. 그러나 곧 이어 6 · 25 동란이 발발하면서 1951년 2월에는 부산에서 노천 학교를, 같은 해 7월 4일에는 보 수동과 충무동에서 계성여자중고등학교(啓星女子中高等 學校)와 통합 학교를 개설하기도 하였다. 이 통합 학교 는 1953년 1월의 화재로 일시 중단되었다가 휴전 후 각 각 서울로 복귀하였다.
이후 동성중고등학교는 전화로 소실된 교사를 신축하 고, 다시 이를 증축하는 한편 성장의 기틀을 마련해 나갔 다. 또 1960년대에 들어서서는 4 · 19 의거를 기해 독재
정권에 항거하는 시위를 전개하였으 며, 같은 해 5월 18일에는 이를 기 념하는 기념 문학의 밤을 개최하기 도 하였다. 이 무렵인 1960년 12월 에 취임한 5대 황인영 교장은 전임 교장이 다져 놓은 중흥의 토대 위에 동성의 면모를 더욱 발전시켜 나갔 다. 1962년 7월에는 다시 신축 교사 를 완공하고, 1965년 3월 1일에는 중학교를 학년당 6학급씩 18학급으 로, 고등학교를 학년당 4학급씩 12 학급으로 증설하였고, 1967년 9월
에는 중학교를 24학급으로, 고등학교를 21학급으로 다 시 증설하였다.
그러나 당시까지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병설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다가 1969년 3월 1일자로 중 · 고등 학교의 운영을 분리하여 현재의 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이후 학교는 커다란 변모없이 꾸준히 성장을 계속해 왔 고, 1981년 6월에 옛 건물을 철거하면서 그 자리에 지 하 2층, 지하 4층의 교사(연건평 1,163평)를 신축하였다. 그리고 9대 최승룡(테오필로) 신부 재임기인 1987년 11월에 신축 대강당(연건평 2,281평)을 낙성한 데 이어 12월에는 학교의 성장과 발전을 담은 《동성 80년사》를 간행하였다. 또 학교 재단 법인의 개편에 따라 1994년 9월 10일 설립자명을 재단 법인 가톨릭 학원으로 개칭 하였다. 1995년까지의 졸업생은 모두 16,752명에 이르 고 있으며, 현재 39명의 교직원이 1,024명의 학생들을 교육하고 있다.
〔동성고등학교〕 1969년 3월 1일 동성중학교와 분리 운영되기 시작할 당시 동성고등학교의 학급수는 학년당 7학급씩 모두 21학급이었다. 1970년 5월 창간호를 시 작으로 1977년 제8집까지 발행된 《동성 논총》은 본교의 교육 이념을 재정립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믿음과 사랑으로 봉사하는 인간, 민주 국가 발전에 기여하는 인 간, 인류 공영의 이상 실현에 헌신하는 인간으로 동성인 을 키우고 기른다는 교육 이념이 이를 통해 확정되었다. 1972년에는 개교 65주년을 맞이하여, 장면 박사를 기념 하는 운석(雲石) 기념관이 건립되었고, 같은 해 10월에 는 오랜 염원이던 도서관과 체육관을 준공 개관하였다.
1977년 7대 교장으로 취임한 박순재 신부는 학교 발 전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기 위해 여러 가지로 노력하 였다. 그는 실력 있는 학교, 개성 있는 학교로 운영함과 동시에 그리스도교적 덕성에서 우러나오는 진리와 사랑 의 학풍을 실현하려는 목표를 내세웠으며, 1977년부터 태권도를 동성학교의 교기(校技)로 선정하면서 국가 대 표급 선수들을 양성하기도 하였다. 또 8대 교장 최승룡 신부는 전인 교육의 목표 아래 1986년에 180여 평의 특 별 활동 교실을 완공하였고, 1987년 11월에는 중학교와 공동으로 사용할 대강당을 신축하였다. 1988년에 취임
한 9대 교장 곽성민 신부는 1990년 7월에 정원 공사를 하였고, 1991년 5월 23일 교비(校碑) '진리와 사랑' 을 건립하였으며, 1992년 7월 도시 가스 난방 시설을 마련 하였다. 뿐만 아니라 1993년 9월 16일에는 성가정상 및 14처 제막식을 가졌고, 1994년 9월 28일에는 TV 방송 실 및 스튜디오를 개설하였다. 그 결과 1982년 창의적 학교 경영으로 문교부 장관 표창을 받았으며, 1994년에 는 서울시 교육청으로부터 학교 경영 우수 학교로 선정 되기도 하였다.
동성고등학교의 교육에서는 인성 교육이 큰 비중을 차 지하고 있다. 이를 위해 1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주 당 1시간씩의 종교 철학 시간을 비롯하여 매일의 명상 시간, 상설 교리반 등이 마련되어 있다. 특히 40여 명의 레지오 마리애 소속 교사들은 상담실을 운영하여 고민이 나 문제가 있는 학생들을 직접 찾아가 상담하는 일을 하 고 있다. 또 산악 · 롤링 · 민속 연구반 등 34개의 특활반 이 마련되어 있으며, 지속적으로 태권도 교육을 실시하 고, 컴퓨터 전산실 등을 운영해 오고 있다. 현재까지 본 교에서는 모두 17 982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 참고문헌  《서울대교구 교구 총람》, 가톨릭출판사, 1984/ 《가 톨릭 사전》/ 《한국 민족 문화 대백과 사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9/ 오양, <사랑과 진리의 동산 '東星' >, 《사학 연금》, 1989. 10/ 동 성중고등학교 편,《동성 80년사》, 1987.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