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녀 잉태

童貞女孕胎

〔라〕conceptio virginalis · 〔영〕virgin conce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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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예수 탄생 예고(프랑스 샤르트르 성당 스테인드 글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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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예수 탄생 예고(프랑스 샤르트르 성당 스테인드 글라스).

성모 마리아가 성령의 은총을 받아 동정녀의 몸으로 예수를 잉태하였음을 말함.
〔성서 전승〕 마리아가 처녀로서 예수를 잉태하였다는 이야기는 신약성서 전체를 통틀어 마태오 복음 1장 18- 25절과 루가 복음 1장 34-35절에만 있다. "그러므로 동 정녀 잉태 신앙은 일부 지역 교회에서, 그것도 비교적 늦 게 생긴 셈이다"(정양모, 《루가 복음》 33). 바오로, 마르코, 요한은 이 문제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는다. 바오로는 예 수가 다른 사람들과 같은 조건에서 태어났음을 말하기 위해 "그 이는 한 여인에게서 태어났다" (갈라 4, 4)고 할 뿐 동정녀 출산이라는 예수의 유일성은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또한 바오로는 동정 생활을 바람직한 것으로 권 유하지만, 마리아의 동정으로 자기 의견을 뒷받침하지는 않는다(1고린 7, 25).
마태오 복음 1-2장과 루가 복음 1-2장, 이른바 예수 의 유년기(幼年期) 사화(史話)는 전기적(傳記的) 저술이 아니라, 예수가 구약의 완성임을 보여 주기 위해 기록된 신학적(神學的) 저술이다. 따라서 이 유년기 사화는 구 약성서의 언어에 깊이 젖어 있다.
① 마태오 복음 1장 18-25절 : '다윗의 후손 요셉' 은 마리아와 정혼한 사이인데 동거하기 전에 마리아가 임신 한 사실을 알게 된다. 요셉은 유대인 율법에 따라 그녀를 소박하려 하였지만 하느님의 특별한 계시로 그녀를 맞아 들여 동침하지 않고 동거하면서 그녀에게서 태어난 예수 를 자기 아들로 삼았다는 내용이다. 이렇게 마태오는 예 수가 다윗의 후손이 된 까닭을 밝혀서 그분이 메시아임 을 말한다. 마태오는 그분의 동정녀 잉태가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고 두 번이나 말한다(1, 18. 20). 그 리고 그 잉태는 구약성서의 완성이라는 것을 말하기 위 해 이사야서 7장 14절을 인용한다. "보라, 동정녀가 몸 가져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부르리 라" (1, 23). 히브리어 원문에는 "젊은 여자가 잉태하 여···"라 하는데, 마태오는 70인역 그리스어 역문을 따랐 다. 마태오가 말하려는 것은 하느님이 예수로 하여금 성 령으로 말미암아 처녀에게서 탄생하게 하였다는 것이다. 그 결과 예수는 다윗의 아들 메시아일 뿐 아니라, 하느님 의 영으로 창조된 하느님의 아들, 곧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이라는 것이다.
② 루가 복음 1장 26-38절 : 하느님이 천사를 보내어 "다윗 가문의 요셉이라는 남자와 정혼한 처녀" 마리아에 게 예수의 탄생을 예고하게 한다. 마리아는 천사의 인사 와 수태를 알리는 말에 당황하여 천사에게 묻는다. "제 가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 습니까?" 천사는 마리아에게 말한다. "성령이 당신에게 내려오실 터이니, 곧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당신을 감 싸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태어나실 분은 거룩하다고
불릴 것이니, 바로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말은 이 스라엘 계약의 역사를 넘어서 창조에까지 시선을 돌리게 한다. 구약성서에서 성령은 하느님의 창조력이다. 태초 의 혼돈과 어둠 위에 성령이 내려오시면서 세상이 창조 되기 시작한다(창세 1, 2). 따라서 지금 마리아에게 일어 나는 일은 새로운 창조이다. 무(無)에서 만물을 창조한 하느님은 인류 안에서 새로운 시작을 한다. 말씀이 사람 이 되신다.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당신을 감싼다"는 말은 하느님이 구름으로 당신 현존을 드러내던, 광야에 서의 장막과 이스라엘의 성전을 가리킨다(출애 40, 34 : 민수 9, 15-22 ; 2역대 5, 13-14).
마리아는 하느님이 현존하는 성전으로 묘사되었다. 천 사는 이어서 석녀(石女)인 엘리사벳이 하느님의 배려로 잉태하였다고 알리면서, 창세기 18장 14절을 인용하여, "사실 하느님께는 무슨 일이든 불가능한 것이 없습니다" 라고 덧붙인다. 마리아의 잉태는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 를 기점으로 한, 석녀의 잉태사 안에서 이해해야 함을 암 시한 것이다.
③ 위의 두 사화는 서로 독립된 것으로 보일 만큼 자료 의 사용에 있어서나 사화의 전개 양식에 있어서 차이가 난다. 그렇지만 이미 두 사화가 다 구약성서의 언어에 젖 어 있고 구약성서의 '예고 도식' 과 '소명 도식' 을 그대 로 옮겨 사용하고 있다(G. Lohfink). 이 두 사화는 역사적 사실의 보도가 아니다. 이 사화는 이미 부활을 체험하여 예수는 메시아이며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신앙 고백을 하 는 공동체가 그 신앙 고백에서 출발하여, 그분은 영원한 왕좌에 임명된 분이므로 그분을 통해 구약성서의 약속들 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두 사 화는 그리스도론적으로 또 신학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 중심에 부활한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신앙 고 백이 들어 있다. 즉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그
의 잉태가 하느님의 영에 의해 이루어진 때문이라는 것 을 말한다. 따라서 이 사화를 역사적 사실의 보도로 생각 한다면 그것은 텍스트의 내용을 넘어서는 일이다.
〔전통적 이해〕 19세기 후반 역사 비평 방법론이 신학 에 도입되기 전까지 교회는 성서의 모든 사화 양식의 텍 스트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역사적 사실(事實)로 이해 하였다. 예수의 동정녀 잉태는 하느님 아들의 출생에 합 당한 기적으로 이해하였다. 1965년 3월 네덜란드에서 《새 교리서-성인들을 위한 하나의 신앙 선포》(우리말로 는 '가톨릭 신앙 입문-화란 새 교리서' 로 번역되었음)가 출판 되자 1968년 10월 15일 '교황 임명 추기경위원회' 는 그 교리서의 부족한 표현을 수정하도록 지침을 시달하였 다. 동정녀 잉태에 대해 그 지침서는 이렇게 말한다. "교 리서는 강생하신 말씀의 거룩한 어머니께서 언제나 동정 의 영예를 지니고 계셨음을 고백해야 한다. 또한 강생의 신비와 지극히 잘 부합하는, 예수의 동정녀 잉태 교리도 못지않게 명시해야 한다. 이 진리를 부정하고 성서에 입 각한 교회의 전통에 반하여 단지 상징적 의미만을 보존 하는-가령, 하느님이 당신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하 사(下賜)하신 순수한 은총을 지적하는 데 그치는-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가톨릭 신앙 입문》, p. 639). 동정녀 잉 태 사화를 역사적 사실 보도로 알아들은 데서 발생한 동 정녀 잉태 교리를 진리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동정녀 잉태의 교리는 순교자 유스티노(100~16)의 저 서와 이레네오(130~200)의 글에서도 나타난다. 2세기 중 반 이후의 신약성서 외경들, 특히 <야고보 원복음서> (Protoevangilium)는 동정인 마리아에 대해서 대단한 상상 력을 동원한다. 200년경에는 사도 신경의 전신인 신앙 고백문에도 삽입되었다. 4세기 라틴 교회는 마리아의 생 물학적 동정을 강조하기 위해서 마리아는 출산 전에도, 출산 중에도, 출산 후에도 동정이었음을 강조하기 시작 하였다. 이 교리는 동정 생활을 하는 수도자들을 중심으
로 발전하였다. 마리아가 출산 전에 동정이었음은 마태 오와 루가의 잉태 사화를 근거로 정당화되지만 출산 중 에도 동정이었다는 말은 <야고보 원복음서>의 영향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 <원복음서>는 출산 중에도 마리아가 생물학적인 처녀성을 잃지 않았다는 말을 하기 위해 산 파를 등장시켜서 마리아의 처녀를 확인하게 한다. 출산 후에도 마리아가 동정녀로 있었다는 교리는 아우구스티 노로부터 시작하여 라틴 교회 안에 공통된 교리가 되었 다. 이 교리는 마리아가 동정녀로 있기를 원했다고 가르 치며, 마리아가 천사에게 한 질문(루가 1, 34)을 이미 동 정 선서를 한 마리아가 천사에게 항의한 말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것은 불가능한 가설이다. 루가의 텍스트 어디 에서도 동정 선서에 대해 언급하는 바가 없으며, 그 시대 유대인들은 그런 종류의 선서를 생각할 수도 없었기에, 그런 해석은 마리아가 한 남자에게 약혼한 몸이라는 사 실을 올바로 이해하지 않는 데서 나온 것이다.
〔현대 신학적 이해〕 동정녀가 출산하는 이야기는 영웅 의 기적적 출산과 관련하여 여러 종교에서 볼 수 있는 현 상이다(D.A. Leeming). 이런 신화들의 공통점은 산모의 고 통, 피, 후산(後産) 등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런 신화에는 인류의 염원이 드러나 있는 것이다. 즉 건드 리지 않은 처녀가 구현하는 순박과 정결이 그것이다. 진 실한 모성(母性), 안도(安堵), 성숙(成熟), 양순(良順)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끝으로 한 인간이 태어날 때마다 싹 트는 희망, 한 어린아이가 뜻하는 희망과 기쁨이 모두 그 것이다" (J. Ratzinger)
그러나 신약성서의 동정녀 잉태 사화는 종교사적 배경 에서보다 구약성서 전통 안에서 이해해야 한다. 이 문제 에 대한 신약성서 본문들이 구약성서 언어에 젖어 있고, 마태오와 루가 두 사람의 의도도 예수의 탄생이 구약 약 속의 성취임을 말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구약성서는 중요한 순간에 기적적 탄생이 있었음을 보
도한다. 이사악의 어머니 사라(창세 18장), 사무엘의 어머니 안나(1사무 1장), 그리고 삼손의 어머니(판관 13 장) 등은 모두 수태하지 못하는 여인 들이었다. 수태와 결실이라는 인간 적 희망이 없던 사람들이다. 세 여인 이 모두 이스라엘에 구원을 가져다 줄 아이를 낳게 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을 이루고(창세 18, 14 : 루가 1, 37), 비천한 이들을 들어올리는(1사 무 1, 11 ; 2, 7 ; 루가 1, 48 ; 1, 52) 하느님의 자비로운 은총의 결과이 다. 하느님의 자비하심의 결과로 나 타나는 기적적 탄생은 석녀인 엘리 사벳(루가 1, 7-25)을 거쳐 마리아에 게서 그 절정에 이른다. 사건의 의미 는 모든 경우에 동일하다. 세상의 구 원은 인간에게서, 인간의 힘으로 성 취되는 것이 아니다. 구원은 하느님
이 무상의 선물로 주는 것, 인간은 하느님이 주는 것을 기다리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구약 전통은 구원이 하느 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인간의 불임(不妊)과 결부시켜 말하고 있다. "기뻐하라, 아이 못 낳는 불임의 여인아! 환성을 지르며 외쳐라, 산고를 모르는 여인아! 과연 외 로운 여인의 자손들이 남편 가진 여인의 자손들보다 더 많으리라" (이사 54, 1 : 갈라 4, 27).
신약성서는 물론이고 그리스도교 신학은 예수의 신성 (神性)을 동정녀에게서의 탄생과 연결시키지 않는다. 예 수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말할 때 하느님을 아버지로, 처녀인 마리아를 어머니로 한 반신반인(半神半人)을 의 미하지 않는다. 451년 칼체돈 공의회는 예수를 "온전한 하느님, 온전한 인간"이라고 천명하였다. "예수의 신성 에 관한 교리는 예수가 정상적으로 인간 결혼에서 출생 하였다 할지라도 변치 않을 것이다" (J. Ratzinger). 신앙으 로 받아들이는 예수의 하느님 아들 됨은 생물학적인 것 이 아니라 형이상학적인 것이다. 예수의 잉태는 하느님 의 아들이 새로 생겨났다는 말이 아니라 하느님이 인간 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느님의 아들' 이라는 표 현은 구약성서에서 하느님의 선택과 이스라엘의 희망을 의미한다(시편 2, 7). 루가 복음이 말하는 '하느님의 아 들' 은 이 전통을 잇고 있다. 예수는 하느님 약속의 참다 운 상속자 메시아이며 이스라엘과 우주 만물을 다스릴 왕이라는 것이다.
동정녀에게서 예수가 탄생했다는 말은 하느님이 결실 을 맺지 못하는 절망적인 인류 안에서 예수를 통해 새로 운 시작을 하였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새롭게 시작되는 역사는 인류 역사의 산물이 아니라 그 기원이 온전히 하 느님에게 있다는 것이다. 이 역사는 성령의 힘으로 이루 어지는 것이며, 근본적으로 새로운 시작이다. 따라서 예 수는 새로운 아담(1고린 15, 47)이며 그와 함께 새로운 인류가 시작된다.
〔의의 및 평가〕 성서가 전하는 동정녀 잉태는 하느님 의 베푸심이 어떤 것인지를 말하는 것이지 동정의 수덕 적(修德的) · 윤리적 가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 도교의 계시는 하느님이 어떤 분이며 인간은 그분 앞에 어떤 것인지를 말하는 것이지 인간의 훌륭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신약성서의 '동정녀' 라는 단어를 생물학적 처녀의 의미로 해석하면 구약성서적 배경을 떠나 종교사 적 · 신화적 배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이해하게 된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동정은 큰 의미를 지니지 못 한다. 결혼하는 신부에게 요구되는 것일 뿐이다. "하느 님의 백성은 자기 민족의 증대를 위하여 동정을 지킨다 는 것은 불임증과 같은 것으로 간주하였고, 이것은 큰 굴 욕과 불명예로 여겼다"(《성서 신학 사전》, p. 24). 구약성서 에서 동정은 인도에서와 같이 그 처녀가 속하는 집단의 순결을 상징하지도 않고, 그리스 · 로마 신전의 베스탈 처녀들의 경우와 같이 종교적 특권과 결부되지도 않는다 (J.W. Drijvers).
성서는 신앙 체험을 기록한 전승이지 생물학적, 역사 적 사실 보도를 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마리아 한 사
람이 생물학적 처녀였다는 사실은 우리의 구원 체험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동정녀의 뜻을 생물학적인 것으로 해석하면 예수의 강생은 독신 생활하는 사람들에게만 어 떤 메시지가 될 수 있고 결혼 생활을 하는 절대 다수의 인류에게는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하게 된다. 사실 가 톨릭 교회 안에서는 동정녀 잉태 교리의 오랜 전통이 은 연 중에 독신자들의 독선적 우월감을 조장하는 데 일익 을 한 것이 사실이다. 그리스도교 안에 독신 생활 전통이 있는 것은 마리아나 예수가 동정이었다는 사실 때문이라 기보다 고린토 전서 7장 25-38절의 바오로 사도의 권고 와 마태오 복음 19장 10-12절의 복음적 권고에 바탕을 둔 특수 생활 양식으로 보아야 한다. 동정녀 잉태에 대한 마태오와 루가의 사화는 결혼 여부에 관계없이 모든 사 람에게 복음의 본질적인 것을 전하고 있다. 그것은 구원 에 있어서 인간은 무능하고 하느님은 베푸는 분이라는 메시지이다. 인간의 가치를 생산력과 동일시하는 현대 사회 안에 의미 있는 메시지라 할 것이다. (→ 마리아 ; 마리아론)
※ 참고문헌  Joseph Ratzinger, Einführung in das Christentum, Kösel- Verlg, Miinchen, 1968(장익 역,《그리스도 신앙 어제와 오늘》, 분도출 판사, 1974, pp. 213~221)/ Gerhard Lohfink, Jetzt verstehe ich die Bibel, Stuttgart, KBW Verlag, 1973(허혁 역, 《당신은 성서를 어떻게 이해하 십니까?》, 분도출판사, 1977)/ 정양모, 《마태오 복음서》, 분도출판사, 1990, pp. 37~39/ 一, 《루가 복음서》, 분도출판사, 1983, pp. 31~34/ Johannes Feiner . Lukas Vischer, Neues Glaubensbuch. Der gemeinsame christliche Glaube, Freiburg-Basel-Wiien, Herder Verlag, 1978(서강대학 교 신학연구소 · 한국신학연구소 역편, 《하나인 믿음》, 분도출판사, 1979, pp. 585~595)/ De Nieuwe Katechismus, geloofs verkondiging voor volwassememen, Utrecht, 1966(《가톨릭 신앙 입문-화란 새 교리서》, 대 건 신학대학 신학 전망 편집부, 1971, pp. 103~114)/ René Laurentin, Marie dans la foi chrétienne. Situation et avenir, Initiation a lapratique de la théologie, t. 3, Paris, Cerf, 1986, pp. 474~487/ -, Marie, 《Cath》 8, pp. 524~585/ -, Structure et théologie de Luc I~II, Paris, J. Gabalda, 1957, Pp. 176~188/ Heinz Schiirman, Das Lukasevangelium, Freiburg-Bael- Wien, Herder, 1984, pp. 41~64/ Wolfahrt Pannenberg, Grundzüge der Christologie, Giitersloher Verlagshaus, 1964, pp. 140~150/ David Adams Leeming, Virgin Birth, 《ER》 15, pp. 272~276/ Han J.W. Drijvers, (ER) 15, pp. 279~281/ R.E. Brown, The Birth ofthe Messiah. A Commentary on the Infcancy Narratives in Matthew and Luke, New York, Doubleday, 1977, pp. 516~533. 〔徐公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