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촌 본당

東村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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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소속 본당. 대구시 동구 검사동 986 소재. 1957년 9월 26일 신암동 본당에서 분리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한국 순교 성인. 관할 구역은 검사동, 방촌동, 입 석동, 부동, 둔산동. 관할 공소는 둔산 1개소. 〔교 세〕 1957년 120명, 1960년 375명, 1970년 1,477명, 1980년 2,269명, 1988년 4,290명, 1991년 5,044명, 1994년 3,033명. 〔역대 신부〕 초대 강찬형(姜贊亨) 파 스칼(1957. 9~1958. 4), 임시 김희선(金喜善) 요셉(1958. 5~9), 임시 유성숙(俞性淑) 루도비코(1958. 9~1959. 4), 2대 최봉도(崔奉道) 사베리오(1959. 4~6), 3대 권영조(權永 兆) 마르코(1959. 6~1962. 7), 4대 정행만(鄭行萬) 사베리 오(1962. 7~1964. 8), 5대 장병보(蔣炳補) 베드로(1964. 8~12), 6대 박도식(朴道植) 도미니코(1964. 12~1965. 1), 7 대 하읍트(Wolfgang Haupt, 허보강) 볼프강(1965. 1~1972. 11), 임시 이문희(李文熙) 바오로(1966. 7~12), 8대 박춘택 (朴春澤) 베드로(1972. 1~1973. 1), 9대 곽길우(郭吉祐) 베 드로(1973. 1~1977. 7), 10대 윤광제(尹光濟) 다윗(1977. 7~1982. 1), 11대 허연구(許淵九) 모세(1982. 1~1986. 1), 12 대 이창호(李昌浩) 안드레아(1986. 1~1989. 6), 13대 정기 모(鄭奇謨) 요한 보스코(1989. 6~1991. 12), 14대 강택규 (姜澤圭) 예로니모(1991. 12~현재).
〔설립과 발전〕 동촌 지역에 복음이 전래된 것은 일제 시대 말기였다. 동촌은 원래 해안(解顔)이라 불리던 농 촌이었는데, 이곳 농민들은 일제 시대에는 일본인 지주 들에 의해 수탈되었고, 6 · 25 동란 당시에는 비행장 확 장 공사로 토지와 가옥을 징발당하여 대부분 가난하였 다. 1944년 이곳에 백무조(요아킴)의 가정이 전입해 옴 으로써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하였고 1952년경에는 가톨 릭 구제회의 원조 물자가 보급되면서 가난한 주민들의 입교가 날로 늘어나게 되었다.
1955년경 대구교구청에서는 일제 시대의 고아원인 후생원(검사동 소재)을 인수하여 성가 양로원을 개설하고 이곳에서 예비자 교리반을 시작하였는데 인근 검사동, 방촌동뿐만 아니라 멀리 불로동, 도동, 평광동, 둔산동 등지에서 예비자들이 모여들었다. 예비자수의 증가로 1957년 봄부터는 교리반을 세 반으로 나누어 방촌동 일 대의 예비자는 백무조의 집에서, 도동 · 불로동 · 평광동 일대의 예비자는 도동에 있는 양규식(요셉)의 집에서 각 각 교리 강의를 듣게 하였다. 이때 강의는 신암동 본당에 파견되어 있던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 수녀들이 맡았
다. 이와 같이 예비자들이 증가 하고 관할 신암동 본당과 의 거리도 멀어 불편을 느끼게 되자 이 지역 신자 50여 명은 1957년 봄 당시 대구 대목구장 서정길 주교에게 본당 설정을 건의하였다. 이에 신암동 본당 평의회로부 터 700만 환을 지원받아 현 소재지의 대지 1,400평을 구입, 9월 26일 성당 축성식과 아울러 본당 설정을 보게 되었다. 사제관은 1961년 여름 권영조 신부의 개인 부 담으로 건립되었으며, 수녀원은 1972년에 지었다가 1979년 3월에 이를 다시 신축하고 옛 수녀원은 교리실 로 사용하게 되었다. 1984년 9월에는 사제관과 강당을 건립하였다.
초창기 때 성당 부속 시설의 구비, 평의회 · 복자 부인 회 등 단체 구성, 백안 공소를 비롯한 공소들의 설립에 힘쓴 동촌 본당은, 전교 회장 제도를 단계적으로 폐지하 고 1973년 1월에는 예수 성심 시녀회 분원 설치 및 주 일학교 체제를 정비한 데 이어 이듬해에는 여름 산간 학 교를 실시하였다. 또한 전 신자의 조직화를 계획하여 이 미 창설된 복자 부인회를 비롯 동성회 · 부활회 등 7개 단체와 학생회 등을 조직하였을 뿐만 아니라 반상회를 편성하고 쁘레시디움을 대폭 증설하였으며 전 신자를 대 상으로 성령 세미나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종래의 이웃 돕기를 체계적 · 지속적으로 진행시키기 위해 1982년에는 인성회를 창설하였으며, 가난한 본당 신자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 1983년에는 신용 협동 조합 을 설립하였다. 노인들에 대한 선교 대책의 일환으로 1984년부터 대구 동부 지부 동광 노인 대학의 운영을 담당하기 시작하였고, 1986년에는 성소 후원회를 본당 신자 전체로 확대시키기로 하고 교무금의 10%를 후원 회비로 책정, 납부하도록 하였다. 또한 1987년 본당 설 정 30주년을 맞이하여 3월부터 9월까지 다채로운 기념 행사를 가졌고, 사제관을 2층으로 증축하여 안드레아 회 관이라 명명했으며 《동촌 본당 30년사》를 간행하였다.
대구시의 동쪽 변두리 지역을 관할하고 있는 동촌 본 당은 관할 구역이 매우 넓어 자(子) 본당을 분가시켜야 할 과제를 안고 있었다. 그래서 1984년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을 준비하면서 그 기념 사업으로 불로동(700평) 과 용계동(711평)에 성당 부지를 매입하는 한편, 성당 내 에 교육관과 사제관을 신축하고 성당 내부를 전면 수리 하였다. 그 후 1990년에 불로 성당 건립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10억 원의 모금 운동을 전개하여 1991년 12 월 27일 성당 봉헌식을 가졌으며, 용계동도 1993년 12 월 5일 독립하였으나 교구 지원으로 지하층만 건축되었 고, 미신축 부분은 대구 제2 지구 성당들의 공동 부담으 로 건설할 계획이다. 대부분 어려운 경제 사정임에도 불 구하고 이처럼 적극적인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동촌 본 당 교우들은, 앞으로도 더욱 사랑으로 다져진 본당 공동 체가 되고자 한마음으로 노력하고 있다. (→ 대구대교 구) 〔白仁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