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항 본당

東港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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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교구 소속 본당. 부산시 남구 우암2동 124 소재. 1954년 11월 12일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 마르티노. 관할 구역은 우암1 · 2동, 감만1동. 〔교 세〕 1965년 2,309명, 1975년 2,642명, 1980년 2,951명, 1985년 3,093명, 1988년 3,625명, 1990년 3,766명, 1994년 3,896명. 〔역대 신부〕 초대 이태준(李泰俊) 야고보(1954. 11~1957. 8), 2대 김재석(金在石) 요셉(1957. 8~1959. 10), 3 대 트라우너(A. Trauner, 하) 안토니오(1959. 10~1979. 2), 4 대 한영일(韓永日) 니콜라오(1979. 2~1981.2), 5대 이병만
(李炳萬) 요셉(1981.2~1982. 2), 6대 김창문(金昌文) 요셉 (1982. 2~1986. 2), 7대 오수영(吳壽永) 히지노(1986. 2~ 1989. 2), 8대 정명조(鄭明祚) 아우구스티노(1989. 2~1990. 2), 9대 이성균(李成均) 예로니모(1990. 2~1993. 2), 10대 박문선(朴文善) 야고보(1993. 2~1994. 2), 11대 방삼민(方 三敏) 가스팔(1994. 2~현재).
〔설립과 발전〕 해방과 더불어 일본에서 귀환한 동포들 로 형성된 우암동 지역에는 5세대 25명의 신자들이 공 소를 이루어 범일동 본당에 속하게 되었으나 실질적인 공소 집회는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그러던 중 1951년 1 월 공소 신자들 중 우암동에 있던 신자 17세대 70명이 모여 '본당 설립 기성회' 를 조직하여 회장에 김치명(베 드로)을 선출하고 본당 설립을 추진하게 되었다. 대지 50평에 가까스로 건립한 천막 성당이 1952년에 화재로 소실되는 등 고난을 겪게 되었으나 신자들은 여기에 좌 절하지 않고, 다시 힘을 합쳐 판자 성당을 건립하였다. 신자들의 이러한 노력으로 교세가 확대되어 나가자, 대 구교구청에서는 1954년 말 본당 설립 인가를 하기에 이 르렀다. 그 후 초대 이태준 신부가 부임하면서 성당 건립 에 주력하였고, 건립 사업의 일환으로 우선 1956년 9월 8일에 사제관을 준공하였다. 1957년에 김재석 신부가 부임하면서 성당 건립에 박차를 가하여 그 해 12월 25 일 마침내 성당 건물이 준공되었다. 그 후 신축한 성당· 사제관 · 수녀원 등이 비가 새고, 전기 · 수도 사정도 좋 지 못하여 전면 보수를 요하게 되었으나 본당 재정이 여 의치 못하여 부분적인 보수만을 하게 되었다. 1982년 2 월에 부임한 6대 김창문 신부는 성당 보수를 위한 모금 을 실시, 성당 창틀을 알루미늄으로 개조하고 제대 양쪽 방을 축소하여 제대 전면을 확장시켰다. 1983년 말에는 이웃한 대연동의 급속한 발전에 따라 교구에서 1984년 2월 3일자로 대연4동에 석포 본당을 설립하게 되어 183 세대 547명을 석포 본당에 분할함으로써 본당 교세의 약 4분의 1이 줄게 되었다. 1991년 8월 폭우로 인해 성 당 뒤 언덕이 붕괴되어 상당한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으 며, 이듬해 6월 22일 성당 지붕 공사에 이어 10월 12일 성당 내부를 도색하였고, 1995년 5월 17일 사무실을 보 수하기 시작하여, 1991년 5월 19일에 사제관 2층에 개 관하였던 도서실을 사무실 내로 이전시키는 등 본당은 안정된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활 동〕 1959년에 하 안토니오 신부가 부임하면서 성 모 신심 운동에 특히 힘을 기울여 '마리아의 푸른 군대' 가 창설되고, 루르드의 성모 동굴과 사랑의 집이 건립되 었다. 1962년 2월 인보 성체 수녀회 수녀들이 부임하였 으며, 1965년 11월 14일에 창립한 동항 신용 협동 조합 이 장기 발전 계획에 따라 1986년 11월에는 본당 밖으 로 이전하였다. 대체로 동항 본당 관할 구역은 부산항 내 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타지역에 비하여 모든 여건이 좋 지 않아 낙후된 지역으로 남아 있어야 했다. 따라서 본당 은 사회 · 선교 활동에 주력하여 왔는데, 1986년 이곳 본당 출신인 오수영 신부가 부임하면서, 사회와 가정에 서 버림받은 불우한 사람들을 한 두 사람씩 수용하기 시
작하여, 점점 본당 창고를 개조하고 가건물을 지어, 1986년 5월 27일 '오순절 평화의 마을' 을 창설하였다. 그 후 정부로부터 사회 복지 법인으로 인가를 받고, 부산 교구와 후원 회원, 그리고 정부의 지원을 토대로 하여 1988년 10월에 삼랑진에 대규모 무의탁자 보호 시설을 건립하였다. 1987년 3월 청년회, 12월 9일에는 60세 이상 노부인들의 모임인 안나회, 1989년 9월 10일에는 장년 모임인 산돌회가 창립되는 등 나날이 발전을 거듭 하여 온 동항 본당은, 한마음 한 몸 운동에도 적극 참여 하여 1989년 2월 26일에는 단체 헌혈도 하였다. 1989 년 5월 13일부터 매주 토요일 본당 신부가 담당하는 신 자 교실을 개강하여 교육을 실시하였으며, 1991년 5월 13~14일에는 여성 특별 세미나를, 1992년 11월 9일 에는 학부모를 위한 특강을 개최하는 등 신자 재교육에 도 노력을 기울여 왔다. 또한 본당 공동체의 일치와 친목 을 도모하는 데에도 큰 관심을 두어 1990년 이후 노인 피정이나 경로 잔치를 개최하고, 단체 성지 순례를 실시 하여 왔다. 방삼민 신부 부임 이후 동항 본당은 가정 공 동체의 활성화를 강조하여 1994년 9월 4일 성당 마당에 서 가훈 전시회를 갖기도 하였으며, 10월 28일에는 국 악 상설 강좌를 개강하였고, 1995년 3월 24일에는 '현 대 사회와 사순절' 이라는 주제로 사순절 특강을 갖는 등 신자들에게 전통 문화와 사회 참여 의식을 함양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 부산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부산교구사 편찬위원회 · 한국교회 사연구소, 《教區三十年史》, 천주교 부산교구, 1990/ 동항 천주교회, 《발자취》, 1977.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