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뮌헨 대주교. 추기경. 1913년 8월 26일에 독일 의 하우젠(Hausen)에서 태어나 로마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후, 1939년 10월 29일 그곳에서 밖르츠부르크 (Würzburg) 교구 사제로 서품되었다. 1941년 그레고리 오 대학교에서 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슈바인푸르트 (Schweinfur)로 보내져 그곳에서 고향을 잃고 동독(東 獨)에서 추방된 1천여 명의 사람들을 사목하였다. 전후 (戰後) 시기 동안에는, 교구 신학교에 봉직하면서 수많 은 전쟁 피난민들을 위한 협동 보호소의 설립을 추진하 였다. 1948년 10월 14일 주교로 서임되고 비오 12세에 의해 밖르츠부르크의 주교로 임명되었으며, 1957년 1월 17일 베를린 교구의 주교로 전임되었다. 그곳에서 베를 린 서부와 동부 가톨릭 교회 사이의 일치를 위하여 일한 되프너 주교는 전쟁 동안에 파괴된 성당들의 복구자로서 명성을 얻게 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의 관계〕 되프너는 1958년 12월 15일 교황 요한 23세에 의해 추기경으로 서임되면 서 뭔헨과 프라이징(Freising)의 대주교로 임명되었다. 독 일 교계의 지도자로서 되프너 추기경은 제2차 바티칸 공 의회를 준비하는 데에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 다. 공의회 회기 동안에는 아가지아니안(Agagianian) , 레
르카로(Lercaro), 수에넨스(Suenens) 추기경들과 함께, 공 의회 지도자로 임명되었고, 교회 · 주교직 · 종교 · 사제 양성과 성소 등에 관한 토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하였다.
되프너 추기경은 <교회 헌장>(Lumen Gentium)의 뼈대 가 형성되는 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교회의 제 도적인 개념을 넘어서 신비(mysterium)로서의 교회를 강 조하고, 성성(聖性)이 그리스도와 교회의 중재를 통하여 인간에게 부여되었는데, 이런 한에 있어서 교회는 그리 스도의 원초적인 성사라고 주장하였다. 후에 그는 다른 많은 추기경들과 함께 종교의 자유와 유대교와 가톨릭 교회와의 관계 등에 몰두하였으며, 1963년 8월에 풀다 (Fulda)에서 개최된 유럽 주교들의 모임을 조직하고 지도 하였다. 1963년 교회법전의 개정위원회 위원으로 임명 된 그는, 그 동안 수많은 중재의 역할을 하였고 그 후 그 릇된 교의에 대한 연구위원회의 위원으로도 임명되었다. 1970년에는 주교 시노드 사무국의 심의 위원으로 선출 되었으며, 뿐더러 교황청의 동방 교회성, 성직자성, 인류 복음화성, 가톨릭 교육성의 위원도 하였다.
평소에 제화공의 아들이었다고 말하기를 좋아하였던 그는 1976년 7월 25일 뮌헨에서 갑자기 사망하였다. 그 후 그는 '교회의 사람' 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 참고문헌 P.F. Mulhern, 《NCE》 17, p. 193. 〔梁惠貞〕
되프너, 율리안 (1913~1976)
〔독〕Döpfner, Jul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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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