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길교구 소속 본당. 1929년 10월 4일 용정 (龍井) 본 당에서 분리되어 만주 간도성 연길현 두도구시(頭道溝 市)에 설립되었다가 1946년 폐쇄되었다. 주보는 성 베 드로와 바오로. 〔교 세〕 1936년 신자수 1,334명, 공소 10개소, 해성학교 학생수 105명, 해성여자학원 학생수 60명. 〔역대 신부〕 초대 슈레플(C. Schräfl, 周) 코르비니 안(1929. 10~1931), 2대 하프너(A. Hafner, 韓) 암브로시오 (1931~1940. 9) , 3대 하이글(G. Heigl, 許) 군터(1940. 9~ 1942. 9), 4대 압쉬트(Abschied).
〔설립과 성장 과정] 1928년 연길 지목구가 설정된 이 후 첫 번째로 신설된 두도구 본당은 본래 두도구시에서 약간 떨어진 해안촌에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 후에 두도구 지역이 점차 성장하면서 인구 밀집 지역 이 되자 초대 지목구장 브레허(T. Breher, 白化東) 신부는 1929년 10월 4일, 슈레플 신부를 초대 주임으로 임명하 여 두도구 시내에 본당을 설립토록 하였다. 슈레플 신부 는 본당 설립과 동시에 사가(私家)를 매입한 후 성당과 사제관을 겸하여 사용하다가 1930년 사가를 수리하여 성당으로 만들고 사제관을 별도로 건립하였다. 뿐만 아 니라 그는 해성학원(海星學院)을 설립하는 등 교육 분야
에 남다른 관심을 보이기도 하였다. 2년 뒤인 1931년 슈레플 신부가 명월구(明月溝) 본당 주임으로 전임되면 서 용정 본당의 주임으로 있던 하프너 신부가 2대 주임 으로 부임하였다. 그는 임명 즉시 해성학원을 초등 교육 기관인 해성학교(海星學校)로 변경하였고, 빈민들을 위 한 해성여자학원을 설립하여 두도구의 많은 어린이들에 게 교육의 기회를 넓혀 주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는 동안, 설립 당시 수십 명에 지나 지 않던 신자수가 1936년경에 이르러 1,300명을 넘어 서자 하프너 신부는 성당 · 학교 · 사제관의 신축 계획을 세우고 브레허 지목구장의 허락을 받아 두도구시 북쪽에 새 부지를 매입하여 1938년에 이를 완공하였다. 이후에 도 본당은 날로 성장하였으며, 1940년 9월에는 하프너 신부가 신설 삼도구(三道溝) 본당으로 전임되면서 하이 글 신부가 3대 주임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장티푸스로 인해 자주 요양을 하게 되었고, 1942년 9월 에는 북경의 병원에 입원하여야만 했다. 이어 두도구 본 당에는 압쉬트 신부가 4대 주임으로 부임하였으나 공산 당의 탄압으로 신부가 체포, 투옥되고 재산은 몰수됨으 로써 침묵의 본당으로 남게 되었다. (→ 연길교구)
※ 참고문헌 St. Ottilien, Chronik, 1937/ 《가톨릭 청년》 41호(1936. 10)/ 《가톨릭 사전》. 〔車基眞〕
두도구 본당
頭道溝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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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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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도구 본당의 부활 첫영성체 기념(1937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