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프라테스 강 서안에 있던 헬라-로마 도시. 지금의 시리아 유프라테스 강 서안에 자리잡은 강변 도시 데이 르 에즈 조르(Deir ez-Zor)에서 남쪽으로 85km 지점에 있 다. 두라-에우로포스에서 또다시 남쪽으로 35km 내려 가면 옛 도시 마리 유적지가 있다.
1921년 영국군 장교 머피(M.C. Murphy)가 참호를 파 다가 팔미라 신들을 모신 신전을 우연히 발굴하였다. 이 곳을 1922~1923년에 벨기에 학자 퀴몽(Franz Cumont) 이 본격적으로 발굴하기 시작하였고, 1928년부터 1937 년까지 미국 예일 대학은 프랑스 금석문과 고전 아카데 미(Académie des Inscriptions et Belles Lettres, 발굴 단장 : 퀴몽) 와 합동으로 발굴 작업을 계속하여 여러 개의 신전과 유 대교 회당 하나와 그리스도교 성당 하나를 발굴하였다. 그리고 두라-에우로포스는 로마군 국경 초소로서 256 년에 페르시아에 의해 파괴되었다는 사실도 밝혀 냈다. 뿐만 아니라 타시아노(Tatianus)가 만든 <네 복음서 조화> (Diatessaron) 양피지 한 장을 발견하였는데, 이는 3세기 초반에 그리스도인들이 두라-에우로포스에 살았다는 분명한 증거물이다.
〔역 사〕 두라-에우로포스는 셀레우코스 1세가 다스 렸을 때(기원전 311~281) 처음으로 건설되었다. 기원전 113년 파르트 민족이 이곳을 점령하여 카라반 거점 도 시로 성장시켰으며, 기원전 20년 로마 제국의 첫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파르트 왕 프라아테스(Phraates) 4세와 강화 조약을 맺었다. 그 후 로마 제국의 트라야누스 황제 (98~117)는 이곳을 강점하고 도시 서쪽 길에 개선문을 세웠다. 그러나 후임 황제 하드리아누스(117~138)는 파
르트인들에게 도시를 양도하여 두라-에우로포스는 40 년 동안 안정과 번영을 누렸다. 165년 루치우스 베루스 황제는 또다시 이곳을 점령하고 로마 제국 국경 수비대 를 주둔시켰다. 카라칼라 황제(211~217)는 두라-에우로 포스를 로마 식민 도시로 삼고 216년에 거대한 공중 목 욕탕과 원형 경기장을 완성하였다. 256년 페르시아 사 산 왕조의 샤푸르 임금이 두라-에우로포스를 초토화한 이후 현재까지 폐허로 남아 있다.
〔유 적〕 발굴 유적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것은 유대교 회당과 그리스도교 성당과 미트라 신전이다. 유대교 회 당은 1932~1933년에 발굴되었다. 본래 사가(私家)이 던 것을 1세기 말엽에 회당으로 개조한 것이다. 금석문 에 따르면 244~245년에 회당을 확장하고, 249~250 년에 벽화를 그렸다고 한다. 벽화는 네 벽면에 가득히 그 려져 있는데 벽면마다 수평으로 다섯 줄로 나뉘어 그려 져 있다. 맨 윗줄과 맨 아랫줄은 장식 문양이고, 중간 석 줄에는 총 28편의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구약성서에 관 한 장면은 총 58종이다.
즉, 서쪽 벽화 5호에는 모세와 불타는 떨기(출애 3장), 6호는 출애굽 광경, 7호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기 적적으로 물을 만들어 주는 광경, 8호는 아론과 제사 용 품, 10호는 야곱이 임종 때 후손을 축복하는 광경, 13호 는 불레셋과 계약의 궤, 14호는 엘리야가 사렙다 과부의 아들을 소생시키는 장면, 15호는 에스델에 의해 유대인 들이 구원받은 것을 기념하는 부림 축제, 16호는 사무엘 이 다윗에게 기름을 붓는 장면, 18호는 파라오의 딸이 모세 아기를 구하는 장면이다. 남쪽 벽화 4호는 바알 제 관들의 제사(1열왕 18, 22-29), 5호는 엘리야의 제사(1열 왕 18, 30-38)이다. 북쪽 벽화 1호는 야곱의 꿈, 2호는 에벤에젤 전투에서 이스라엘군이 불레셋군에게 패하는 장면, 4호는 에제키엘 예언자가 환영으로 본 죽은 이들 의 부활(에제 37, 1-14) 및 마따디아가 잡신에게 제사지 내려는 동족을 살해하는 장면이다.
그리스도교 성당 역시 1932년에 발견되었다. 사가이 던 것을 방 둘을 터서 성당으로 개조한 것이다. 성당 규 모는 12.5×5m로서 60여 명이 앉을 수 있었다. 성당 북
서쪽에 작은 방(3×6m)이 있는데 이는 세례당으로서 그 안에 세례탕(1.60×1.07×0.95m)이 있다. 세례당에는 선 한 목자 예수, 아담과 하와, 향료를 갖고 예수의 무덤을 찾아가는 갈릴래아 여자들, 야곱의 우물에서 물을 긷는 사마리아 여인, 다윗과 골리앗, 전신 불수를 고치는 예 수, 물위를 걷는 예수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 벽화들 은 232년에 완성되었다는 명문이 세례당 벽에 새겨져 있다. 따라서 두라-에우로포스 성당이야말로 그리스도 교 고고학상 가장 오래된 성당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그 벽화는 비잔틴 미술의 효시가 된다.
이란의 태양신 미트라(Mithra)를 섬기던 미트라 신전 은 168년에 신축되고 211년에 재건되었다. 신전에는 미 트라가 황소를 죽이는 저부조 두 편, 미트라가 활과 화살 을 지니고 말을 탄 모습을 그린 벽화 두 편, 미트라 신의 예언자들인 조로아스터와 오스타네스를 그린 듯한 벽화 좌상 두 편이 있다. 미트라 신전은 본래 지하실에 만드는 법인데, 두라-에 우로포스에선 파격적으로 지상에 세워 졌다. (→ 고고학, 그리스도교의 ; 타시아노)
※ 참고문헌 Henry 0. Thompson, 《ABD》 2, pp. 241~243/ Erwin R. Goodnough · Michael Avi-Yonah, 《EJ》 6, pp. 275~298/ Michel Clévenot, Les Hommes de la Fraternité IIᵉ~IIIᵉ siécles. Les Chrétiens et le Pouwoir, Paris, Fernand Nathan, 1981, pp. 147~152. 〔鄭良謨〕
두라- 에우로포스
〔라〕Dura-Europ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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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프라테스 강 옆의 두라-에우로포스 유적지(왼쪽)와 다마스커스 국립 박물관에 복원된 유대교 회당 내부 모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