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안동교구장. 주교. 파리 외방전교 회 선교사. 세례명은 레나도. 본명은 르네 뒤퐁(René Dupont)이 며 두봉은 그의 한국 명이다. 1929년 9월 2일 프랑스 오를레 앙(Orléans)에서 출생 하여 그곳에서 고등 학교를 졸업하였다. 1949년 오를레앙 대 신학교를 졸업하면 서 곧바로 파리 외방
전교회 신학교에 입학하였으며, 1951년에 신학교를 졸 업하고 다시 로마 그레고리오 신학 대학원에 진학하였 다. 1953년 6월 29일 사제 서품을 받고, 그 이듬해인 1954년에 대학원을 졸업한 후 한국에 입국하였다. 한국 의 언어와 풍습을 열심히 배우던 중 1955년에 대전교구 대흥동 본당 보좌 신부로 임명되어 10년 동안 사목 활동 에 전념하였다. 1960년에 대전 대목구 대목 대리, 1962 년에 대전교구 상서국장을 역임하였으며, 1965년 5월부 터 1년 간 충남대학교에서 철학을 강의하기도 하였다.
1967년 파리 외방전교회 한국 지부장을 거쳐, 1969 년에 대구대교구 관할이던 안동 지구가 안동교구로 승격 되자 그 해 5월 29일 초대 교구장으로 임명되어, 7월 25일 주교로 성성되었다. 초대 안동교구장으로서 그는 평소의 검소하고 소박한 생활로 안동교구민을 비롯한 한 국 교회 모두에게 존경과 신뢰를 받았다. 1982년에는 그가 한국에 와서 충실한 선교 활동을 통해 본당 사목은 물론, 지역 사회와 한국민을 위해 노력하여 프랑스 국위
를 선양하고 한불 양국간의 교량 역할을 한 공로가 인정 되어 프랑스 정부로부터 나폴레옹 훈장을 수여받았다. 21년 동안 교구장을 역임해 오면서 교구 발전에 많은 공 헌을 했는데, 처음 교구장에 취임할 때부터 꼭 10년 동 안만 교구장을 맡기로 한 자신과의 약속대로 1979년에 교황청에 사임을 요청하였다. 이때 사임이 수리되지 않 자 계속해서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인 1984년을 비롯, 1986년의 한국 주교단 교황청 정기 방문 때, 그리고 다 시 안동교구 설정 20주년이었던 1989년에 사임 의사를 표명하였다. 몇 번의 사임 의사 표명을 거쳐, 1990년 10월 6일에 마침내 교황청으로부터 사임서가 수리되어 교구장직을 은퇴하였다.
두봉 주교는 농촌 지역인 안동교구의 교구장직을 오랫 동안 수행하면서 가난하고 소외된 농민들에게 특별히 많 은 관심을 쏟았다. 교회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농민회 운 동 도입, 농민 회관의 건립, 농민 사목부의 운영 등 농민 사목에 많은 힘을 기울여서 '한국 농민 사목의 대부' 로 불릴 정도였다. 그 밖에 안동 문화 회관을 건립하여 지역 문화의 공간 역할을 하게 하는 등 지역 주민과 함께하는 교회, 세상 속에 열려 있는 교회의 모습을 구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다. 또한 그는 월남 교회에 대한 원조, 중국 · 만주 등지의 화룡(和龍) 본당과 자매 결연을 맺고 서로 돕는 방안을 모색함으로써 가난하고 작은 공동체에 서 서로 나누고 주는 교회상을 구현하고자 하였다.
이와 함께 그는 본당 · 공소의 잦은 사목 방문으로 교 구민의 생활상을 늘 일일이 파악하여 아무런 권위 의식 이 없는, 교구민과 하나 되는 사목 자세로 일관해 왔다. 특히 교구장으로 재직 중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한 다 미안 의원, 양로원, 각종 장애자 재활 기관 등 사회 복지 시설의 건립과 그 후원에 매우 적극적이었다. 상지전문 대학과 함창여자중학교, 함창종합고등학교 등을 설립하 여 전인(全人) 교육에 바탕을 둔 직능(職能) 교육에도 힘을 기울이는 한편, 학생 회관과 마리스타 야간 학교를 건립하여 청소년 교육에 큰 관심을 쏟았다. 그리고 각종 지역 모임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여 지역민과의 교류와 유 대 강화를 도모, 지역 사회에 열린 교회상을 심는 데에 모든 정성을 바쳤다.
두봉 주교의 경우에는 처음부터 주교 문장이나 사목 표어를 내세우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교구장직에 있으 면서 어떤 특별한 방침을 내세우기보다는 늘 '기쁘고, 고맙고, 떳떳하게 살자' 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그것은 그가 사제 서품 때에 가졌던 '남들과 함께하는 사제' 가 되겠다는 결심의 연장으로, 그 스스로도 평소에 늘 그와 같은 자세로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였다. 따 라서 그의 사목 방침은 함께 울고, 함께 기뻐하고, 함께 어려움을 극복하는 '함께 어울리는 사목' 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기도를 많이 하고 남과 함께 살다가 주님의 뜻 이 뚜렷해지면 주님 뜻대로 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마 음가짐이었기에 주교 서품을 받으면서도 주교 문장이나 사목 표어를 따로 내세우지 않았었다.
안동교구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주교 회의 산하의 사목
주교위원회 위원장 및 J.O.C. 담당 주교, 평신도 사도직 전국 단체 담당 주교 등을 역임하면서 많은 공적을 쌓았 다. 신부로 15년, 주교로 21년 모두 40여 년 동안을 한 국에서 선교 활동을 펼쳐 왔으며, 은퇴한 지금도 끊임없 이 한국 교회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재 경기도 고양군 행주 공소에 거처하면서 그곳 신자들을 돌보는 한편, 신부들과 신학생들의 피정 지도와 신자들의 영적 지도를 담당하고 있다. (⇦ 뒤퐁)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생활성서> 101호(1992. 1), 생활성서 사, pp. 82~87. 〔李裕林〕
두봉 (1929~ 第一 )
杜峰
글자 크기
3권

두봉 주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