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태생의 도미니코회 신부. 신학자. 1878년 도미니코회 입회, 프랑스 도미니코회 관구 신학교에서 27년간 교편 생활을 하였고 또 교장으로도 있었다. 그러나 좀더 저술에 전념하고자 1911년 교수직을 떠나 파리로 와서 마지막 20년 간 피정을 지도하고 저술 활동을 하다가 거기서 사망하였다.
가르데이 신부가 남긴 저술은 무려 230종에 이른다. 그의 시대의 사상적 움직임과도 완전히 일치하는 그의저술들은 3부로 구분될 수 있다.
1) 1893년은 《토미스트》(Revue Thomiste)가 창간된 해이기도 한데, 그는 그 창간에 동참하였을 뿐더러 거기에 철학과 호교학에 관한 논문들을 발표하였다. 그는 이 시기에 특히, 실증주의의 과학만능론과 신칸트주의의 관념론에 대답하는 철학에 관한 글들을 많이 썼다.
2) 1903년부터 근대주의자들과 논쟁을 적극적으로 벌이게 되면서 후일 고전이 된, 호교학과 신학의 방법론에 관한 대작들, 즉 《가신성과 호교론》(La Crédibilité et l'apologétique, Paris, 1908, 1910)과 《계시 사실과 신학》(Le donné révélé et théologie, Paris, 1911)이 출간되기에 이르고, 뿐만 아니라 재판까지 나오면서 또다시 많은 논쟁을 일으키게 하였다.
3) 1차 세계대전 이후 당시 발전 중이던 영성 연구에 참가하였다. 이 분야에서의 그의 대작은 《영혼의 구조와 신비적 체험》(La Structure de I'ame et l'expérience mystique. vol. 2, Paris, 1927)이다. 그러나 그의 영성 생활의 요강인 《참된 그리스도인의 생활》(La vraie vie chrétienne)은 그의 사후, 즉 1935년에 간행되었다. 가르데이는 확실히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을 부흥시키는 데 가장 효과적으로 기여한 신학자의 한 사람이다. 실제로 그는 토마스 사상에 가장 충실하면서 가톨릭 사상을 대담하게 옹호했다. 뿐 아니라 당시의 새 조류에도 정당한 요구라면 그것을 받아들일 만큼 개방적이었다.
※ 참고문헌 Garrigou-Lagrange Le P.A. Gardeil, Revue Thomiste, 36(1931), pp. 797~808/ H.D. Gardeil, Catholicisme, 4, pp. 1754~1755/H.D.
Gardeil, L'Oeuvre théologique de Père A. Gardeil, Paris, 1956. 〔崔奭祐〕
가르데이, 암브로시오 (1859~1931)
Gardeil, Ambro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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